할머니, 사랑해요. 그리고 감사합니다.
창 밖으로 보이는 이름 모를 나무의 잎사귀들이 한층 더 푸르고 무성해졌다. 집 앞의 막 깎은 잔디에서 퍼진 향긋하면서도 쌉싸름한 풀내가 열린 창문을 통해 살며시 들어온다. 이슬을 머금은 청량한 공기 덕분에 간신히 마음을 붙잡고 설거지를 시작했는데, 두 손이 반복적인 움직임에 익숙해지니 또 이런저런 상념에 사로잡혀 미간을 구기고 있다. 나도 모르게 내뱉은 짜증 섞인 한숨에 놀라, 학습된 대로 창 밖의 나무를 향해 얼른 고개를 돌린다. 햇살에 반짝이는 싱그러운 나뭇잎들은, 회오리치는 폭풍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는 내 마음을 언제나 차분히 내려놓는다. 그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어린 시절, 할머니와 셋째 고모와 함께 살던 빌라 뒷마당에 있던 예쁜 정향나무가 연상되기 때문일까. 해 질 녘, 향기로운 정향나무 밑에서 이파리를 흙과 함께 버무리며 가상의 남편과 자식을 위해 저녁을 짓고 있노라면, 빌라 안 저마다의 부엌에서도 포근하고 달큼한 쌀밥 짓는 냄새가 흘러나왔다. 그러면 나는 젖 냄새를 맡은 아기 강아지처럼 코를 벌름거리며, 우리 집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것은 나름대로 고단했던 나의 하루 끝에 찾아온, 마음속 깊이 안심이 되는 냄새였다. 할머니의 품에 깊숙이 안기면 나는 냄새이기도 했다.
할머니는 충청남도 홍성군에서 육 남매를 기르시고, 한의사이셨던 할아버지를 도와 환자들을 돌보시며 수십 년 세월을 보내셨다. 평안북도 강계군에서 내려오신 할아버지는 입맛이 꽤 까다로우셨는데, 그런 할아버지의 성격이 다시는 갈 수 없는 고향을 향한 그리움 때문이라는 것을 아신 할머니는, 사시사철 자주 이북식 냉면을 만들어 할아버지의 점심 상에 올리셨다. 이야기가 있는 음식이 늘 그러하듯, 애끓는 속이 뻥 뚫리는 차가운 냉면은 더없이 따뜻한 위로가 되어 쓸쓸했던 할아버지의 마음을 녹여주었으리라. 셋째 고모의 추억 한편 속의 할머니는 종종 앞마당에 솥을 걸어놓고, 장작을 때서, 진한 멸치 육수에 채 썬 애호박과 직접 반죽한 칼국수 면을 넣어 끓이시던 모습이다. 온 가족이 솥 주위에 옹기종기 둘러앉아서, 땀을 뻘뻘 흘리며 쫄깃한 칼국수에 아삭한 배추 겉절이를 척 얹어먹었다. 달큼한 애호박까지 다 건져먹고, 뜨거운 멸치 육수 한 사발을 쭉 들이키고 나면, 귀 옆으로 흐르는 땀방울에 스치는 선선한 저녁 바람이 정말이지 시원했다. 겨울에는 모두 따뜻한 안방에 모여, 살얼음이 얇게 낀 톡 쏘는 동치미 국물에 백김치를 채 썰어 넣고, 찬밥을 말아서, 참기름을 조금 떨어뜨려 밤참으로 먹기도 했다.
"아, 침 고인다."
입맛을 다시는 셋째 고모의 마음은 어느새 홍성군의 옛 집 앞마당에 들어선다. 젊고 건강하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처마 밑에서 반기시는 모습이 중학생으로 돌아간 고모의 눈에 선하다. 오감이 기억하는 그리운 집밥은, 이제는 칼국수를 끓여 먹이시던 그때의 할머니보다 훨씬 나이가 든, 먹먹한 고모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위로의 맛이다. 그렇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언제 어디서나 고모의 곁에 함께 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자녀들이 모두 성장하여 출가하자, 할머니는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는 셋째 고모와 함께 지내시기 위해 상경하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의 둘째 아들인 나의 아버지가 이혼을 하시며 당시 젖먹이였던 나를 할머니에게 맡기셨고, 나는 중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할머니와 셋째 고모와 함께 살게 되었다. 내가 애틋하게 간직하고 있는 추억 속 할머니의 밥상에는 국이나 찌개와 각양각색의 반찬이 늘 올라왔는데, 전부 간이 딱 맞고 혀에 착착 감겨서 수저질을 바삐 하게 했다. 냉장고와 찬장에는 고추장, 된장, 간장, 설탕, 고춧가루, 다진 마늘, 생강, 새우젓, 무, 양파, 건멸치, 다시마, 참기름, 들기름, 볶은 참깨 등이 항상 구비되어 있었는데, 할머니는 이 재료들 가운데서 적합한 것들을 선택하고, 서로 다른 비율로 알맞게 조합하여, 다채로운 양념장과 육수를 만드셨다. 아주 먼 옛날, 증조할머니, 고조할머니, 또 그 어머니의 어머니는 많고 많은 식자재 중에서 어떻게 이 재료들을 선발하여, 외국인도 반할 만한 기막힌 맛을 낼 생각을 하신 건지, 그 창의력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의 특색 있는 양념장들과 육수들은 어떤 주재료든지 그것의 고유의 맛과 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며, 조화롭고 깊은 감칠맛을 만들어 냈다. 음식을 삼키면 입안에서 은은히 감도는 감칠맛은, 걸작을 완성시키는 마지막 퍼즐 조각이 딱 들어맞을 때와 같은, 완벽한 만족감을 주었다.
할머니와 시장에서 사 온, 흙 묻은 냉이를 함께 다듬고, 삶은 고둥을 이쑤시개로 빼먹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간장으로 취나물을 무치는 할머니 옆에서 초고추장으로 무친 것이 맛이 더 좋다느니, 추석에는 들기름에 볶은 고사리가 먹고 싶다느니, 하며 맹랑한 주문을 하고, 소시지 반찬보다 김장철에 말린 무청으로 끓인 구수하고 시원한 시래기 된장국을 선호하던 나는, 할머니가 가장 아끼는 손녀이자 친한 말벗이었다. 내가 지금 안고 있는 골치 아픈 문제들을 할머니 앞에 풀어놓으면, 할머니는 어떤 지혜로운 해결책을 제시해주셨을까. 할머니를 생각하며 스테인리스 찜기와 가지를 꺼내놓는다. 오늘 저녁 반찬은 할머니가 자주 해 주셨던 짭짜름하고 보드라운 가지무침이다. 반으로 갈라서 푹 찐 가지를 결대로 쭉쭉 찢고, 간장, 설탕, 참기름, 볶은 참깨, 다진 파, 다진 마늘을 넣어 살살 무친다. 따뜻한 가지무침을 갓 지은 흑미밥 위에 올려 먹으면, 몸도 마음도 어느새 편안해진다. 평온한 상태에서는 복잡하게 엉켜있는 문제를, 그것이 어떤 문제이든지 간에, 차근차근 풀 수 있다.
며칠 후면 내 서른세 번째 생일이다. 어젯밤, 남편은 내게 그 날 무엇을 먹고 싶은지 물었다. 아마도 아침 상은 시어머니가 한국에서 보내주신 질이 좋은 건새우와 한국 식료품점에서 구입해놓은 미역을 참기름에 달달 볶다가, 멸치 육수를 넣고 한소끔 끓인 미역국으로 차려낼 것이고, 그 날 저녁은 외식을 하러 나갈 터이다. 저녁에 무엇을 먹고 싶은가, 곰곰이 생각하던 내 마음은 예전에 할머니가 차려주신 나의 생일상을 떠올린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이던 시절, 당시 나의 친구들 사이에서는 동네에 새로 생긴 근사한 함박 스테이크 전문점에서 생일잔치를 여는 것이 유행이었다. 그곳에서 함박 스테이크와 돈가스 세트를 대접하는, 생일잔치의 주인공인 친구는 우쭐해지기도 했다. 유명 패스트푸드점에서 기획한 친구의 생일잔치에서 햄버거 세트와 장난감을 받는 일도 흔한 일이었다. 5월의 끝자락이 가까워오자, 나는 어떤 식당에서 생일잔치를 열게 될까, 누가 내 생일잔치에 와줄까, 밥 먹고 나면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며 놀까, 친구가 작년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것만큼 예쁜 인형을 선물로 받을 수 있을까, 하며 하루 종일 상상하고 걱정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냈다.
드디어 찾아온 생일날 아침, 가스레인지 위 압력밥솥의 신명 나는 증기 배출 소리와 온 집안을 감싸던 고소한 참기름 냄새에 눈을 떴다. 주로 학교에서 소풍을 가는 날 아침에 맡았던 냄새와 분주한 소리 덕에 순간 설레었지만, 곧 불안감이 바짝 뒤를 이었다. 내 소중한 생일이 김밥처럼, 물론 반갑기는 하지만, 꽤 평범하게 지나가 버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떼를 쓰거나 무엇인가를 조르는 아이는 아니었으나, 하교 후에 집에 도착하면 혹시 깜짝 선물이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어쩌면 나 모르게 함박 스테이크 전문점에 생일잔치 예약을 해놓았을지도 몰라, 하며 내심 기대하는 마음을 안고 등교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시곗바늘만 바라보며, 수업이 마치기만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으려니까 이윽고 점심시간을 알리는 경쾌한 선율이 울려 퍼졌다. 달그락달그락 소리가 나는 커다란 책가방을 메고 일제히 정문으로 달려 나가는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 틈에서, 나도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 두어 명을 데리고 서둘러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학교 앞에서 팔던, 상자 안에 귀여운 병아리들에게도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달렸다.
버스에서 내려서 우리 집이 위치한 빌라 2층까지 단숨에 뛰어올라갔다. 계단을 올라서 오른쪽에 있던 우리 집 살구색 현관문은 평소와 다르게 활짝 열려있었다. 낯선 광경에 당황하여 집 안을 기웃거리다가, 주춤주춤 들어섰다. 집안에 가득 퍼진 묵직한 기름 냄새와 무엇인가를 지지는 소리와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내 주의를 끌었다. 중문 앞은 단정하게 벗어놓은 낯선 여성용 가죽 구두며 샌들이며 알록달록한 어린이용 운동화들이 한데 뒤엉켜있었다. 누가 온 건지 의아해하며 들어간 우리 집 거실에는 친숙한 사람들도 있고, 낯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 대부분은 우리 집에 한 번도 온 적이 없던 동네 사람들이었다.
수줍게 인사하며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반갑게 맞아주시던 그들 뒤로 명절 때에만 꺼내던 붉게 옻칠한 나무 밥상과 그 위에 산처럼 쌓인 색동저고리 같은 김밥이 보였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김밥이었다. 보통 아이들이 좋아하는 귀여운 캐릭터 모형의 초콜릿 케이크가 아닌, 할머니 나름대로 먹는 사람들의 건강을 고려하여 고르신, 생과일이 잔뜩 올라간 생크림 케이크도 있었다. 그 날 아침에 예감했던 아쉬운 광경에 조금 의기소침해서, 둥그런 밥상 옆에 엉거주춤하게 앉았다. 진심으로 기쁜 듯이 애써 밝은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옆에 앉은 친구들이 이 소박한 생일상과 우리 가족을 측은하게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지고, 동네 사람들까지 함께 하는 이 자리 또한 아무래도 어색해서 얼굴이 점점 상기되었다. 할머니는, 우왕좌왕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나의 등을 천천히 쓰다듬으셨다. 할머니의 손길에서 풍기는 고소한 기름 냄새와 익숙한 살 냄새가 나를 부드럽게 이끌었다. 그제야 나는 내 앞에 김밥을 제대로 보았다. 먹음직스럽게 쌓인 따뜻하고 정갈한 김밥이었다. 참기름으로 반질반질한 김과 식욕을 자극하는 맛있는 냄새는 내 마음을 스치던 실망감과 당혹감을 이내 달래주었다. 침이 고였다. 그 김밥은 요즈음 생긴 유명한 김밥 전문점에서 이국적인 재료로 말은 김밥이 아닌, 지극히 평범하고 익숙해서 더 자주 생각나는, 집에서 말은 김밥이었다.
깨끗하게 손질하고 채 썰어서, 달군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가볍게 볶다가, 소금으로 간을 해서 고소한 기름내가 나고, 씹으면 은은히 달금한 당근,
끓는 소금물에 살짝 데쳐서 꽉 짠 뒤, 간장, 소금, 참기름, 다진 마늘, 다진 파, 볶은 참깨를 넣어 조물조물 무쳐낸 싱그럽고 담백한 시금치나물,
물컹한 씨를 제거하고, 굵은소금에 충분히 절이다가, 흐르는 물에 깨끗이 세척해서 꽉 짜주면, 꼬들꼬들한 식감의 짭짤하고 시원한 오이,
여러 개를 풀어 소금으로 간을 하고, 넉넉히 두른 식용유에 폭신폭신하게 부쳐서 길게 자른 고소하고 따뜻한 달걀,
흐르는 물에 양념과 고춧가루를 깨끗이 씻어내서, 시큼하고 개운한 할머니의 묵은지,
소금, 참기름, 볶은 참깨로 간한 고슬고슬한 쌀밥과 하나하나 정성껏 준비해놓은 위의 재료들을 새까만 김 위에 가지런히 놓고 야무지게 만다. 말은 김밥 위에 또 한 번 참기름을 아낌없이 바르고, 볶은 참깨를 뿌린 후, 전날부터 갈아놓은 칼로 깔끔하게 썰어낸다.
"생일 축하해."
나에게 다가와 직접 만든 생일카드를 건네던, 동네의 또래 여자 친구들과 할머니를 도와 김밥과 새 접시들을 나르던, 그 친구들의 젊고 세련됐던 어머니들,
우리 집 앞 내리막길 끝에 위치한 이층 집에서 살던 동갑내기 여자 친구와 그녀의 발레 가방과 수영 가방을 챙겨서 잠시 들리셨던, 그녀의 새치름했던 어머니,
유명한 음악대학 진학을 목표로 저녁 내내 바이올린을 켜던 예민한 수험생 딸 때문에 매일같이 우리 집에 찾아와, 연습 중이니 뛰지 말라고 부탁하시던, 늘 초조한 눈빛의 아래층 어머니,
그 옆집에 살던 친절하고 얌전하던 새댁과 침대 머리맡에 분홍색의 작은 뻐꾸기시계가 있었던, 그녀의 어린 외동딸,
나와 동갑인 손자와 뇌출혈로 병상에 누우신 남편을 홀로 돌보시며, 지방에서 일하는 아들과 며느리가 방문하는 날만 하염없이 기다리시던, 위층의 과묵하시던 할머니,
우리 집에 남는 방 한 칸에서 홀로 자취를 하던, 방 안 장롱 문고리에 커다란 핑크 판다 인형을 걸어놓았던, 앳되고 풋풋했던 아가씨,
동네 놀이터 옆 작은 빌라에서 혼자 사시던 수다쟁이 할머니,
옆동네에서 방문하신 아름다웠던 젊은 날의 둘째 고모,
퇴근하시고 긴 연보라색 곱슬머리의 굉장히 예쁜 인형을 선물로 사 오신, 사랑하는 셋째 고모.
각자 신고 온 신발처럼 나이도, 고향도, 마음속 사연도 각기 달라서 한데 모이기 어려울 것 같았던 동네 사람들은, 마치 서로 다른 색과 맛을 가진 김밥 속 재료처럼 모두 한데 어우러져, 우리 집 거실과 부엌을 꽉 채웠다. 하나둘씩 불을 밝히던 노란 창문들이 창 밖의 하늘에 흩뿌려질 때까지, 우리는 모두 맛있게 먹고, 진솔한 이야기를 하고, 따뜻한 감정을 나누었다. 그리고 집 안에 가득 찬 맛있는 냄새와 한껏 들뜬 공기는, 할머니의 속이 꽉 찬 김밥처럼 내 특별한 하루와 마음을 빈틈없이 채웠다. 그날 밤, 나는 무섭고 매정하게 느끼던 동네 어른들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내 생일을 축하해주셨던 순간들, 내 어머니의 부재를 의식하고 일부러 내 앞에서 할머니를 한껏 치켜세워주시며, 내가 정말 부럽다고 말하시던 얼굴들, 철없던 내가 잠깐 창피하게 여겼었던, 할머니의 정성이 가득 담긴 김밥을 친구들이 맛있게 먹던 장면들, 회색빛 서울에서 우리의 이웃들이 나눔과 위로를 받고 돌아간 시간을 머릿속에서 재현하고 또 재현했다. 유명 패스트푸드점에서 열리는 생일잔치에 온 모든 아이들이 햄버거 세트와 함께 장난감을 받는 것처럼, 우리 모두가 각자에게 의미 있는 선물을 받은 시간이었다. 나는 더없이 즐겁고 행복하고, 왠지 우쭐해지기도 해서,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명절에 친척들이 우리 집에 놀러 와서 늦은 밤까지 북적거릴 때면, 내가 자는 사이에 모두 집으로 돌아가버릴까 봐 노심초사하여, 졸린 눈을 비비면서도 그들의 곁에 꼭 붙어있고는 했다. 할머니는 그런 나의 모습을 통해 내 마음속에 자리한 외로움과 허전함을 보셨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나의 가정환경이 친구들의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조금씩 눈치채며, 그것을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것 또한 읽어내셨다. 부모님이 곁에 없으니 제대로 된 가정교육을 못 받았을 거라는 몇몇 어른들의 수군거림과 그 자녀들의 배려 없는 질문들이 내 면전에 내던져진 후, 위축된 내가 겁을 먹고 숨고 싶어 한다는 것도 잘 알고 계셨다. 부모님의 곁에서 한창 어리광을 부리며 넘치는 사랑을 받아야 할 나이에, 불안한 마음을 공유할 형제자매조차 없이 쓸쓸하게 크는 듯한 내가 가엾고 안쓰러우셨던 할머니. 그래서 할머니는 그 생일잔치를 통해 나도 이웃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정성과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는 것과 나의 존재 자체가 온 동네 사람들을 초대해서 널리 자랑하고 싶은, 할머니의 가장 큰 기쁨이라는 것을 나에게 알려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동네 사람들에게 나를 잘 부탁드린다는 당부를 전하는 할머니의 방식이기도 했다. 당시 내 또래 친구들의 젊고 건강하셨던 어머니들도 선뜻 엄두 내지 못 하신 생일상차림은, 우두둑우두둑 소리가 나는 아픈 무릎에 힘을 준 할머니가 새벽부터 준비하신, 가슴 아픈 생일잔치였다. 나를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다고 끊임없이 말씀해주시던 할머니가 나를 위해 준비하신 최고의 생일선물이었다. 할머니의 생일선물은 오늘날까지도 내가 누구인지, 누군가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인지, 얼마나 큰 가치가 있는 존재인지, 항상 상기시켜주는 나의 자존감의 원천이다. 내 마음이 무너지는 시기마다 다시금 일어서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모두가 익숙해진 탓에 놓쳐버린 할아버지의 슬픔을 언제나 곁에서 묵묵히 위로해주던 할머니의 이북식 냉면처럼, 현재는 타국에서 사시는 셋째 고모가 한국이 그리운 날이면 따라 해 보는 할머니의 손맛처럼, 할머니의 그 생일상은 언제고 내 안에서 나를 위로하고 응원하며 이끌어준다. 그래서 지금껏 맛본 화려하고 진귀한 동서양의 산해진미가 많이 있어도, 심신이 힘들고 지쳐서 입맛이 없는 날은 고소하고 따뜻한 김밥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김밥은 한 줄만 먹어도 금세 든든해져서, 다시금 힘내서 살아보게 된다. 깊은 우울증의 늪에 빠져 허덕이며 맞이할 뻔했던 나의 서른세 번째 생일, 이제는 돌아가신 할머니로부터, 나는 여전히 큰 생일선물을 받는다.
"여보! 내 생일날, 김밥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