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셔널 미니멀리즘"

by HJ Eun


사람이 가장 밑에 있을 때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사람이다.

사람이 아무것도 아닐 때,

그 사람 존재 외에는 아무런 타이틀도, 그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않을 때 주위 사람들도 자연스레 정돈된다.

가장 힘든 시기에 더 힘들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인간관계가 정리되는 탓도 있다.

힘든 시기란 누군가에게 얘기로 터놓을 수도 없고 살아갈 희망이 없는 반죽음 상태를 얘기한다.

만약 사람을 통해 풀 수 있을 정도의 힘든 시기라면 사람의 말을 통해 위로를 얻고 일어설 힘을 얻기도 하니까 그다지 외로운 상태는 아니라고 본다.


정말 힘들 때는 어떤 위로의 말도 통하지 않기 때문에 혼자 고립되어 간다.

그런 시기에 가장 무거운 심연을 같이 들여다볼 용기가 없거나, 밑바닥의 그림자를 드리운 사람을 마냥 하찮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저절로 떨어져 나간다.

그렇게 인간관계도 미니멀 라이즈 된다.

반대로 사람은 뜻밖에 잘되었을 때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보고도 알 수 있는데, 그때는 사람이 물리적으로는 붙어있기 때문에 관계가 정리되지는 않는다. 잘 되는 사람을 떠나는 자는 거의 없다.


사람이 정리되는 과정은 참으로 외롭다.

외로운 것이 마냥 계절이 바뀌거나 이성이 없어서 외로운 감정이 아니라, 궁극적 고독감이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대치의 고독함.

눈물 젖은 밥을 먹고 아침이 오는 것이 가장 두렵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잠겨 발버둥 치는 듯한 감정을 뭐라 표현할지조차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감정을 겪다 보면 감정도 미니멀 라이즈 된다.

잡음에 귀 기울이지 않게 되며 인생의 목표도 바뀌고 생활도 단순해진다.

인생이란 별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기 때문에 사사로운 것에 신경 쓰지 않게 된다.

회의주의적인 측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많은 것이 단순화된다.


예전의 내 버킷리스트에는 수많은 항목이 존재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쓸데없는 것들도 많지 싶다.

다시 버킷리스트를 써봤다.

정말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다 보니 별거 없었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용서하기, 강아지와 산에 올라가서 하늘 보며 누워있기 등등 거창하지 않다.


좌절에서 더 나아가 고독에 몸부림칠 때 많은 것들이 정리된다.

인간관계, 감정, 인생 목표 등.

감정적인 미니멀리즘이 그제야 완성된다.


사람이 없으면 그의 물품도 쓸모없게 된다.

요즘 사물적 의미의 미니멀리즘이 대세라면, 감정적 의미의 미니멀리즘 또한 인생에서 거쳐야 할 부분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많은 사람들이 정리되고, 목표가 단순해지며 나의 감정이 사사롭지 않은 상태.

참으로 힘들지만 겪고 나면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을 것 같다.

사람을 잃는다 해도, 건강이 나빠져도, 목표가 실패해도, 진정으로 용기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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