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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준 Oct 26. 2017

[번외] 철학의 눈 1. 철학과 철학사

이번 주 연재는...
철학사 강의 시작을 기념하며
번외편, 철학과 철학사를 써 보았습니다.

철학사 강의는 
이번 주부터 매주 토요일 2시~4시까지 강남역 모임전문공간 더플레이스에서 27주 동안 진행됩니다.

(문의: 010-7220-5368)



1. 철학+


우선, 철학사를 말하고자 한다면 당연히 ‘철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해야 합니다. 철학사라는 건, 결국 그것들을 모아 놓은 역사이니까요. 말하자면 라면을 끓이는데 라면이 뭔지 모르고 끓일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일단 라면이라는 게 도대체 뭔지를 알아야 하는 거랑 별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냥 조금 복잡한 라면일 뿐이죠. 


아무튼, 그러니까...


철학(哲學)+()=철학사


라는 것이죠. 


너무 단순하고 당연한 거라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뭐 세상만사가 그렇듯이 언제나 사람들은 정작 중요한 것은 까먹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쯤 되면 예민한 분들은 알아야 할 게 한 가지가 더 있다는 것을 눈치를 챘을 수도 있습니다.  


바로 史입니다. 


그래서 결국, 철학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역사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비로소 ‘철학사’가 무엇인지에 대한 예기가 가능하겠죠. 


그럼 둘 중 무엇을 먼저 알아야 할까요?


뭐, 사실 둘 중 아무거나 먼저 해도 됩니다. 내키는 대로 하는 거죠. 공부에는 왕도가 없지만, 가장 안 좋은 방법은 있습니다. 바로 ‘재미도 없고 어려워서 이해도 안 되는 걸’ 억지로 시키는 것입니다. 지겨워서, 그리고 지쳐서 나가떨어질 뿐이죠. 

그러니 아무런 고정관념을 갖지 말고 내키는 대로 하는 겁니다. 먼저 땡기는 것부터 알아가는 거죠. 연애도 땡기는 사람(이러니 좀 저속해 보이는군요... 저속한 놈 맞습니다)과 해야지 할 맛이 나지 스팩이니 뭐니 따지면서 하면 ‘사랑’이라는 게 잘 생기지 않잖아요. 

시험 볼 것도 아니므로, 먼저 땡기는 것부터 해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먼저 ‘역사’부터 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철학사는 역사의 한 종류라고 볼 수도 있거든요. 

그럼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이렇게 생각하시겠죠? 


‘철학의 한 종류일 수도 있잖아?’


라고요. 

물론 맞습니다. 

철학의 한 종류이기도 하죠. 


결국, 무엇을 먼저 보느냐, 즉 철학의 한 종류로 볼 것이냐, 아니면 역사의 한 종류로 볼 것이냐는 그것을 보는 사람의 ‘시각’에 달려 있다는 말입니다. 한 마디로 ‘관점’의 문제라는 말인데, 바로 여기에 독자분들이 주의하여야 할 함정이 숨어 있습니다. 어떤 책이나 강의, 기타 등등의 무언가를 통해 ‘철학사’를 알아갈 때, 그 강연자나 책이 “철학사는 역사의 한 종류이다”라고 한다거나 혹은 “철학의 한 종류이다”라고 한다면, 거기에는 이미 어떤 ‘관점’이 들어가 있다는 말입니다. 


‘의도’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죠. 

 

대놓고 말을 하진 않지만, “나는 철학사를 OOO으로 보겠어. 그러니 XXX하게 설명하겠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즉 특정한 개인의 시각이나 관점이 전제로 깔려있고, 그에 맞는 설명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독자가 그런 의중을 모르고 읽게 되면 저자가 말하는 것이 진실이고, 정답이고, 보편이고, 상식인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함정에 빠지는 것이죠. 

이건 마치 어떤 질문을 했는데 “노코멘트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겁니다. 노코멘트라고 말한 사람은 대답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이미 ‘노코멘트’라고 대답한 것이죠. 대답을 하지 않을 거면 그냥 대답하지 않고 무시하면 되거든요. 그런데 노코멘트라는 말을 했다는 것은, 바로 ‘노코멘트’라는 발화 행위, 즉 입을 통해 나와 소리로 들리는 그 자체에 의한 효과를 기대한다는 것입니다. 


교묘히 자신의 의도를 숨기며 중립적인 척 하는 것이죠.  

자신의 관점을 언급하지 않고 ‘단언’하는 글은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둘 중 아무거나 먼저 해도 된다고 말씀 드린 겁니다. 그리고 저는 ‘역사’를 먼저 설명하는 쪽을 택하겠다는 것이죠. 


굳이 역사를 먼저 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삶과 철학의 관계 때문입니다. 저는 삶이 먼저고 철학은 단순히 그것을 보조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철학은 삶의 해석일 뿐이며, 더 좋은 삶을 살기 위해 철학을 하는 것이지 철학을 하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더 자세한 이유는 아마 이 시리즈 전체에서 지속적으로 언급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철학’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설명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리하자면, 제 목적은 이겁니다. 인간의 생각이 발전해 온 그 흐름의 나열과 인과관계(역사) 속에서 사유의 체계와 사유 그 자체를 설명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철학+역사”가 아니라 “철학사”를 설명할... 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하하.. 될지 안 될 진 모르겠지만요.


시작하기 전부터 말이 길어졌는데...

그럼 이제 진짜 역사에 관해서 말해 보겠습니다.

먼저 역사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 전에 말해야 할 것은 이 정의는 제가 정의한 것일 뿐이며, 그러므로 이 정의는 이 연재에 한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전혀 얼토당토 않는 정의를 내리며 시작하진 않겠지만, 그 점을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2. 역사란 무엇인가?


언젠가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몇 백 년 후의 사람들은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를 알기 위해 어떤 사료(史料)를 찾게 될까?라고 말이죠. 우리의 후손이 가장 먼저 찾는 것은 아무래도 국가 기록기관인 ‘국가기록원’의 기록들이겠죠. 아무래도 일반 사설 기록기관 보다야 정확하다고 생각할 테니까 말이죠. 그리고 그 다음에는 무엇을 볼까요? 신문이라는 것이 그때까지 남아있다면 아마도 그걸 참고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혹은 방송을 볼 수도 있겠고, 지금 시중에 판매되거나 도서관에 보관되는 책일 수도 있겠죠.  


그 다음으로는? 그 많은 것들 중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선택 하겠죠. 중요도에 따라 선택을 할 수도 있고, 혹은 또 다른 어떤 이유로 선택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지금은 정보가 너무 넘쳐나는 세상인지라 그 모든 걸 ‘역사’라고 말할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죠. 


그렇게 선택한 사료들을 가지고 이제 드디어 역사를 쓰기 시작할 것입니다. 우리가 삼국사기를 정사(正史)라고 보고, 삼국유사를 흔히 야사(野史)라고 보는 것처럼 그들도 뭔가를 정사로 선택하여 그것을 기준으로 역사를 쓸 것입니다. 


그런데 우선 국가기록원에 기록되는 것이나 지금의 언론에 보도되는 것은 어떤 건가요? 사실을 전부 옮기지 않죠. 누군가(국가기록원이라면 국가기록원장일테고, 언론이라면 언론사의 사주나 편집장이겠죠)가 특별하다고 판단한 것만을 선택하여 씁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첫 번째 ‘선택’이 있습니다. 

역사는 ‘사실’이 아니라 ‘특권적 사실’이죠. 여러분이 지금 인터넷을 하는 거나 제가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은 역사로 선택되지 않는 겁니다. 역사 편집의 권한을 가진 누군가에게 간택되어야지만 역사가 되는 것이죠. 

그리고 다시 또 ‘선택’의 과정을 거칩니다. 우리의 후손들도 이 모든 자료들을 취할 수는 없으니 그 중에서 자기들이 필요한 것만 선택하는 것이죠. 여기까지 두 번의 선택의 순간이 있었던 겁니다. 여기까지 살아남은 것들은 아주 운이 좋은 거겠죠. 여기까지 이르는 동안 이미 우리가 아는 21세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 있을 겁니다. 


여기서 끝이냐? 아니죠. 그 선택된 것들 가운데서도 이제 직접 역사를 쓸 역사가의 선택이 남았습니다. 만약 300년 후에 도민준이라는 이름의 역사가가 역사를 쓴다면 그는 또 그것들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필요한 것만 고르겠죠.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나 이데올로기, 패러다임, 취미 등등 상당히 개인적인 신변잡기들의 영향 안에서 그것을 선택할 겁니다. 어쩌면 전날 친구와 마신 술의 숙취가 아직 안 풀려서 전혀 엉뚱한 걸 선택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인 것 같지만 실제로 종종 일어나는 일이죠.


그럼 이번에는 진짜 끝이냐? 당연히 아닙니다. 그렇게 정리된 사료들을 가지고 뭔가를 써 내겠죠? 먼 미래니 쓰지 않고 그냥 생각만 해도 뭔가 쓱쓱쓱 만들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결국 도민준이라는 역사학자가 그것을 해석하고 의미부여 한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가공’되는 겁니다.

환태평양 조산대 근처의 팔딱팔딱했던 참다랑어가 우리 식탁에 올라올 때쯤 되어서는 동그란 캔에 담긴 동원참치가 되는 거랑 비슷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동원참치를 보며 살아 움직이는 참치를 상상하는 경우가 없죠. 먹는데 죄책감 느끼지 말라고 캔에 그려놓은 행복한 표정의 참치 그림이 없다면 참치가 어떻게 생겼는지 짐작도 못할 겁니다. 


그것처럼 먼 미래의 후손들은 실제 우리의 삶과는 완전히 다른 역사를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역사는 ‘과거 그 자체’를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거 그 자체에 관한 ‘역사가의 사상만’을 다루는 것도 아니죠. 역사가가 마치 자료를 주물럭주물럭해서 자기 마음대로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참치를 가지고 삼계탕을 끓여 낼 수는 없잖아요.


보는 각도에 따라 핸드폰의 모습이 다르게 보인다고 원래 핸드폰의 객관적인 모습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과 같습니다. 역사상의 사실을 설정할 때 필연적으로 역사가의 해석이 작용한다고 해서, 또 그런 해석들이 완전히 객관적일 수 없다고 해서 모든 해석에 차이가 없다든가 어떤 식으로 해석해도 괜찮다는 말은 아닌 것이죠. 있었던 일을 없었다고 말하거나 없었던 일을 있었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해석을 하되 사실에 기반하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임진왜란은 1592년에 일어난 것입니다. 이건 1593년도, 1594년도 아닌 정확히 1592년에 일어난 것이죠. 이 부분에 있어서는 절대로 오류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역사는 ‘상호 관계’에 있는 양자를 다루는 것입니다. 


E.H.Carr



그래서 E.H 카는 이걸 아주 멋지게 표현했죠.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What is history? is that it is a continuous process of interaction between the historian and his facts, an unending dialogue between the present and the past.) 

라고 말이죠. 


그런데 제가 굳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카의 말을 언급하기 위해 여기까지 글을 쓴 것은 아닙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철학사 역시 역사의 한 종류이기 때문에 이러한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려고 하는 거죠. 

우리가 철학사를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생각의 역사인 철학사이기 때문에 더 많은 대화를 해야 하죠. 일반 역사처럼 유적이나 유물이 남아있는 것도 아니고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닌 철학사를 볼 때 우리는 철학사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하여야 합니다. 그들의 생각과 사유체계를 읽어야 하기 때문이죠.


대화를 포기하고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우리의 시각으로만 그들을 본다면, 탈레스가 말한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에서의 물을 H2O로 밖에는 볼 수 없게 됩니다. 이건 마치 전쟁나간 아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기다리는 어머니의 정한수를 H2O로 보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 어머니는 H2O에 비는 것이 아니라 천지신명에게 비는 것이죠. 


최초의 철학자라는 탈레스를 보든 소크라테스를 보든, 우리는 ‘지금’, ‘우리’의 관점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한계죠. 다만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그들과 대화를 해야 합니다. 그들이 살았던 그때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의 대화, 그리고 과연 그들은 어째서 이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또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를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대화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과정 속에서의 대화 자체가 철학이 되겠죠. 




그럼 이제 역사에 대해서는 대충 말했으니 철학에 관해서 이야기를 해 봅시다. 

철학적 물음은 뭔가 거창합니다. 보통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식으로 나오죠. 우리 주변에서 누군가가 “삶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식의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은 무슨생각을 하겠습니까?  

이런 거대한 담론에 제가 감히 말을 놓을만한 입장이 될 리가 만무합니다. 그렇기에 “철학”이 무엇인지에 대한 대답보다는 “철학”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형성이 된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풀어 놓아 보겠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은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볼 여지도 없는 것처럼,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쓰고 있는 이 말, “철학”은 일본어입니다. 사실, 철학뿐만이 아니죠. 우리는 물리학, 심리학, 생물학, 화학 등등 거의 대부분의 학문적 용어를 일본에서 번역한 것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번역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철학”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려면 이 일본어 번역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근대일본철학의 시조. 서주-생애와 사상>, 松島 弘, 単行本


철학이라는 용어를 처음 확립한 사람은 도쿠가와막부 말기에서 메이지 시대에 걸쳐 활약한 19세기 일본의 학자인 니시 야마네(西周. 1829~1897)라는 사람입니다. 니시 아마네는 주자학과 오규 소라이의 철학도 공부한 엘리트 학자로써 일본의 유명한 소설가인 모리 오오가이의 큰할아버지가 되는 사람이기도 하죠.

아무튼 일찍이 서양 학문을 접한 니시 야마네는 친구 쯔다 마미치와 함께 1862년에 네덜란드로 유학을 가게 됩니다.


그렇게 유학을 떠난 그는 네덜란드에서 1862년부터 1864년까지 배우고 경험한 사항들을 정리하여 1874년에 책으로 내게 되는데, 그 책이 바로 ‘백일신론(百一新論)’이라는 제목의 책이었습니다. “백가지 학문을 하나로 통일하는 새로운 이론”이라는 거창한 뜻의 제목이었죠.


이 책은 당시 네덜란드에서 유행하던 오귀스트 꽁뜨의 실증주의와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의 영향을 받아 동양학문과 서양학문의 새로운 접목을 시도한 첫 번째 책이기도 합니다.

바로 여기에서 처음으로 철학(哲學. 일본어 음가로는 ‘테쯔가쿠’)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그것이 지금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철학”이라는 단어의 사용이 우리나라에서는 1919년 3.1운동 이후 문화통치로 노선을 바꾼 일본이 경성대학을 통해서입니다. 1920년 6월 100여 명의 독립운동가들이 재단법인 조선교육회(朝鮮敎育會)를 발기하고 '조선민립대학설립운동'을 전개하여 종합대학의 설립을 추진하자, 이에 일본은 한국인의 고등교육기관을 봉쇄할 목적으로 1924년에 서울(당시 京城府)에 관립 종합대학인 경성제국대학을 설립합니다. 그리고 이곳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내부에 법학과, 문학과, 사학과, 철학과 4개의 학과가 설립 되었으며, 여기에서 문사철(文史哲)이라는 단어도 유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철학이란 그리스어의 ‘φιλοσοφία’가 라틴어 ‘philosophia’가 되고, 다시 독일어 ‘philosophie’와 영어 ‘philosophy’를 거쳐 일본어 ‘哲學’을 마지막으로 경유하여 우리나라의 ‘철학’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哲學이라는 개념은 한자를 사용하는 일본과 중국 등지에서는 그 뜻이 글 자체에서 명확히 드러나지만, 국어의 경우에는 사회학, 윤리학, 물리학 등과는 다르게 그 뜻이 명확하게 드러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밝을 철”이라는 개념 속에 들어있는 ‘알다, 분명히 하다’ 등의 의미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죠.


그렇다면 니시 야마네는 굳이 philosophia[philo(愛) + sophia(智)]를 애지(愛智)가 아닌 철학으로 번역을 했을까요?


일단 니시 야마네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꽁뜨와 밀의 실증주의와 공리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 첫 번째 이유가 아닌가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이상학적인 사변(思辨)을 배격하고 관찰이나 실험 등으로 검증 가능한 지식만을 인정하는 인식론적, 방법론적 태도로써의 학문을 추구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philosophia는 학문이 되었다고 보입니다.


그리고 지(智)가 아닌 철(哲)이 선택된 이유를 도올 선생은 아마 중국 경전인 이아(爾雅)의 영향 때문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중국에서 가장 오랜 자서(字書)이자 시경(詩經), 서경(書經) 등 고전(古典)의 문자(文字)를 추려 유의어(類義語)와 자의(字義) 등을 해설한 이아(爾雅)를 보면 철과 지를 같은 뜻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漢)과 당(唐) 시대의 훈고학(訓詁學)이나 청(清) 때의 고증학(考證學)에서 특히 중요하게 쓰이는 이아는 고대 중국어의 어휘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쓰이기 때문에 이를 택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모든 개념(槪念 = concept)에는 그것의 역사가 있는 것처럼, philosophia, 즉 철학이라는 개념 역시 특정한 목적과 특정한 집단 및 인물에 의해 특정한 방법으로 구성된 이미지의 정치학(politics of images, politics of imagination)의 산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의 개념이 설정되고 유통되고 작동되는 방식을 알기 위해서는 그것의 역사, 즉 그 개념사(槪念史), 계보학(系譜學, genealogy)을 살펴야 하는 것처럼, 철학 역시 그런 과정을 면밀히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것은 철학을 공부함에 있어서 필수적으로 선결되어야 할 부분, 즉 그 목적을 명확히 설정하는 과정이기 때문이죠.


이러다 보니 철학과 철학사는 순환적, 상호적으로 관계합니다. 이 인류의 역사 전체에서 도대체 무엇을 선택하여 철학사라고 할 것인지, 그리고 어떤 책을 철학사에서 의미가 있는 책으로 선정하여 철학사를 다룰 것인지, 그리고 철학의 시작을 누구로 볼 것인지를 정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철학의 한계를 어디까지로 설정하고, 무엇을 철학이라고 생각해야 하는지 등을 ‘우리의 입장에서’ 한계 짓고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사라는 것을 이해하기가 그리 단순하진 않습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철학사를 하는 것 자체가 철학함이라고 볼 수도 있겠죠. 

철학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개념적 외연과 내연을 잘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앞서 설명한 “철학”이라는 말의 역사는 철학의 외연적인 측면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겠죠. 


그런데 이런 외연과 내연을 규정짓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모든 문화, 역사, 문명에는 철학이 있고, 지금도 우리는 흔히 철학에 대해 얘기를 합니다. “현재 정부는 철학이 부재한 정부다”라고 말을 하기도 하고, “야, 철학적으로 좀 살아라”라고 말을 하기도 하고, “이 제품의 철학은...”이라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의 철학은 또 다른 것이죠. 


오늘날 학문의 세계에서 인정하는 철학은 크게 두 가지 요건을 충족하여야 합니다. 우선, 1) 사고가 체계적이어야 하고, 2) 텍스트로 명확하게 표기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아프리카의 철학을 접하지 못하고, 철학사에 있어서 아프리카의 철학을 집어넣지 않는 이유는 아프리카의 언어로 명확하게 쓰인 철학이 없기 때문이죠. (우리는 여기에서 ‘아프리카’라고 하는 또 다른 오리엔탈리즘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철학을 규정할 때는 보통 그리스를 철학의 모태라고 봅니다. 모든 문명에는 나름대로의 철학적 토대가 깔려 있지만, 서구가 지배한 지금의 세상에서는 거의 모든 학문의 기준이 그리스에서 출발했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유념해서 봐야할 부분이죠. 해석권력입니다.  


그런데 그리스(Greece)라고 이름은 영어식 표현입니다. 정확히는 헬라닉 공화국(Hellenic Republic)이죠. 그리스인 자신들이 자신들을 헬라스라고 불렀기 때문입니다. 이런 헬라스(Hellas)가 라틴어로 번역 된 후 그것이 영어식으로 번역된 것이 그리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헬라닉 공화국, 즉 헬라스를 오늘날의 국가적 개념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의 국가(Nation state, 국민국가, 민족국가)는 근대의 개념이죠. 그렇기 때문에 근대적 국가가 형성되기 이전의 철학사를 볼 때는 오늘날과 같은 국가의 개념이 아니라 지역, 문명, 언어권으로 보아야 합니다. 


헬라스란 오늘날의 특정한 국가로서의 그리스가 아니라 에게해를 둘러싼 지역 전체를 뜻했습니다. 서쪽의 그리스 반도, 남쪽의 크레타 섬, 동쪽의 트로이 지역, 그리고 코카서스 산맥 지역으로 구성된 이 지역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한가운데에 에게해라는 바다가 위치해 있고 육지가 그것을 빙 둘러싸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구조는 이 지역에서 거대 권력이 등장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어냈으며, 바다를 중심에 두는 해양 문화가 발달하게 만들었죠. 그래서 그리스의 모든 전쟁(호메로스의 서사시)과 역사는 바다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거대권력이 등장하기 어려웠다는 점은, 헬라스 지역의 문화적 특성을 결정하게 됩니다. 

미개사회에서 문명사회로의 발전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단절이죠. 왕이 생기고, 성을 쌓이고, 문자가 생기고, 기록이 생기고, 관료제도가 생기고, 화폐가 등장하는 등의 그 과정은 미개사회에서 갑자기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 거대권력이죠. 인도의 브라흐만, 이집트의 파라오, 페르시아의 황제가 그런 것들입니다. 하지만, 그리스 문명은 그런 거대 권력이 생길 수 없는 지리적 구조였기 때문에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소규모의 도시국가로 남게 됩니다. 또한 해양 문명이 발달되었기 때문에 모험심이 강해졌고, 땅이 척박하였기 때문에 농사대신 상업이 발달하게 된 것도 그들의 문화형성에 영향을 미칩니다. 상업이 발달하기 위해선 화술과 계산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발달해야 하는데, 이게 철학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논변술과, 계산에 의한 합리론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죠. 또한 지중해지역의 온난한 기후 역시 그들의 삶의 형태를 결정하게 됩니다. 그리스인들은 상당히 교류적이었죠. 고정관념이 없고, 절대적 진리라든가 종교적 배타성이 없게 됩니다. 한 마디로 상당히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던 것이죠. 그로 인해 헬라스 인들은 ‘그리스의 기적’ 즉 민주정치의 탄생과 철학의 탄생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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