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들렸던 해는 2013년 겨울이었다. 무교인이기에 산속에 있는 고즈넉한 분위기의 절을 종교의 안식처라기보다, 산과 어우러지는 풍경처럼 느낀다. 그래서 단청이 화려한 절보다 장식이 적고 수수하게 목조 건물의 고유한 자태를 보여주는 부석사를 '편안해 보인다'라고 느꼈고, 모르는 사이 마음속에 '가고 싶은 곳'으로 저장해 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크나큰 상심으로 말 없는 위로를 받고 싶었던 당시, 이불속에서 울고만 있다가 문득 떠올린 장소가 이곳이었다. 울면서 이불속에서 나와 아무 생각 없이 이끌리듯 이곳으로 첫 발걸음을 했던 그해 겨울이 아직도 생생하다. 눈 덮인 부석사에서 얼마나 울었던지, 그리고 아무것도 해준 것 없이 그저 받아주기만 한 이곳에서 또 얼마나 많은 위안을 받았던지.
그 해 방문을 시작으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8년째 매년 영주 부석사를 찾고 있다. 그날의 그곳을 잊을 수 없어서 인지 아니면 그날의 위로에 대한 감사의 마음인지 모르겠으나,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 공민왕(恭愍王) 서체의 현판, 귀 솟음 지붕, 동남쪽을 향하여 항마촉지인 수인을 하고 있는 소조 여래좌상(塑造如來坐像), 앞 석등과 뒤 석탑, 창건에 얽힌 의상(義湘)과 선묘(善妙)의 애틋한 사랑의 설화가 담긴 부석(浮石), 모든 것이 좋다.
1일 1그림, 그렇게 4번의 영주
1일 1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 2016년 겨울이었으니, 이듬해인 2017년부터 지금까지 4번은 그림 속에 담겨 있다. 4년 동안의 그림을 살펴보면 같은 장소를 그리더라도 상당히 주관적인 그림이 그려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때마다의 감정이 펜 끝에 녹아 있어서 같은 장소에도 같은 풍경이 그려져 있지 않다. 매번 그림체가 달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함께 하는 재료와 스케치북에도 변화가 보이지만 비단 그것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림이 달라 보이는 것은, 아마도 그곳에 머물러 있던 마음이 다르기 때문이겠지.
여름의 녹음 무성한 무량수전
한여름, 시원하게 문을 열어 불상이 보이는 무량수전 앞에서
봄의 무량수전을 들린 후 근처 소수서원 취한대에서 쉬면서
드로잉 그리기 시작한 이후 세 번째 무량수전, 맑은 하늘과 산줄기가 좋았던 날
지난해는 소수서원, 이듬해는 근처 무섬마을 외나무다리에서 조용한 휴식
드로잉 그리기 시작한 이후 네 번째 무량수전, 오래간만에 연초에 들려 흩날리는 눈발을 보며 새해 소망을 가득 염원하고 온 날
소수서원, 무섬마을에 이어 이번에는 안동에 잠시 들려 휴식
예전에는 부석사만 들리고 돌아왔는데 최근에는 소수서원, 무섬마을, 안동 등을 함께 들리기도 했다. 보통 연차나 휴가 기간에 하루 날 잡아 들리는 곳인데, 누군가와 함께 할 때도 있었지만 보통 혼자 조용히 다녀오는 편이다.
"나만의 '힐링 장소'가 있나요?"
'힐링 장소', '마음의 고향'이라고 표현할 만큼 영주 부석사에 대한 감정은 남다르다. 그곳을 찾는 자신에 대한 연민과 그곳에 대한 애착은 생각하는 것보다도 상당히 강하다는 것을, 남겨 둔 그림을 다시금 펼쳐 보면서 새삼스럽게 느낀다. 그 해 그곳을 방문했을 당시의 감정과 이곳에서 얼마나 의지하고 위로받았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 놀라움과 동시에 더욱 깊은 애정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마음에 한몫을 하게 되는 것이 결국 남겨진 드로잉인 것 같다.
나, 이곳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알게 모르게 가는 것만으로도 많은 위안을 얻고 있구나. 하는 감정의 조각들이 한 페이지로 남겨져 있다. 그래서 더더욱 매년마다 이곳을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