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아들이 저희 회사 대표입니다

대학생 아들의 프로그래밍적 경영 이야기

by 달박상

MZ아들이 저희 회사 대표가 되었습니다.


22년 동안 운영한 교육센터는

팬데믹을 간신히 버텼지만, 리모델링 두 달 만에

재개발 소식에 쫓겨날 위기에 놓였습니다.

누가 봐도 문을 닫아야 할 상황이었지만,

아무 대책 없이 그만둘 수는 없었습니다.


코너로 몰린 우리의 선택은

어이없게도 명리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크몽에서 결제를 하고 초조하게 기다려,

전화기 넘어 그분의 말씀을 신탁처럼 들었습니다.

나쁘지 않았어요.

올 하반기부터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해서

2024년부터는 대박이래요.

귀인도 나타난다네요.

지금 생각하면 기가 찬 노릇이지만,

저희는 그분의 말씀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래? 그럼 센터를 이전할까.

그때는 폐업하거나 폐업 직전인 상가가

널려 있었습니다.

학원가에도 하나 건너 하나에 임대가 붙어있었고,

다들 권리금을 받을 기대조차 못했죠.

아이러니하게도 그 상황은 권리금 없이

들어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고민 끝에 대형 영어학원이 2개 층을 쓰고 있는

건물의 4층으로 이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있는 그대로, 간판만 교체하고 새롭게 시작했습니다.


본래 나쁜 일은 몰아치는 법이라던

저희 어머니 말씀이 딱 맞았어요.

학원을 이전한 지 한 달도 안 되었을 때입니다.


저희는 글로벌기업의 교육사업을 도입해 운영하는

전국 백여 개 인증센터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교육사업의 중단을 선. 언. 했죠.

유예기간은 일 년이래요.

뉴스에서나 보던 대형로펌에서

건물 내외, 온라인 카페나 블로그 등의

모든 로고와 이미지를 제거하라는 문서가 날아왔어요.

새 간판을 단 지 2주 만에

간판부터 교체해야 할 판이었죠.


교육인증센터에서 '인증'이 빠지는데,

뭘 할 수 있겠어요?

엎친데 덮친 격으로

같은 건물에 있던 대형영어학원까지

폐업을 하면서 건물은 텅 비어버렸어요.

그리고 어마어마한 일이 두 차례 더 있었지만,

예민한 부분이니 패스하겠습니다.


그때쯤 아들이,

다니던 학교를 휴학하고 내려왔습니다.

상황을 알게 된 아들이 묻더군요.

"폐업하고 나면 어쩔 건데?"

"직장 구해야지.

요즘 다 힘드니까 배달이라도 해야지."

"대단한 대책이다.

그래서, 폐업하면 얼마 남는데?"

"남긴. 보증금까지 다 들어가야 할 판이지.

선생님들 퇴직금에, 원상 복구해줘야 하고...

너나없이 망하는 요즘에 '인증' 빠진 센터를

권리금 내고 인수할 사람은 없을 테고.

상가 계약을 5년씩이나 한 게 문제지."


며칠 뒤 아들이 말했어요.

"권리금은 못 받는 거 맞지?"

"응."

"정리하면서 보증금은 다 써야 하는 거고?"

"그렇지."

"그럼, 센터 나한테 넘겨라.

보증금은 여섯 달 뒤에 갚아줄게. 무이자로.

그때 상황 괜찮으면 물품비도 좀 지급할게.

엄마는 나한테 취업해서 월급 받아라."

"그... 래? 그럼 그러던지..."


아들은 그 길로 사업자등록을

자기 명의로 바꾸었습니다.

뭔가 덤터기 씌운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군대 가기 전에 나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위안했죠.

당시의 나는 뭔가 선택할 에너지까지

모두 소진된 상태였거든요.


그렇게 23살 MZ 아들이

저희 회사 대표가 되었습니다.


아들은, 아니 대표님은 말로만 듣던

MZ의 까칠함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모든 기준에 가족이라고 예외는 없었습니다.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했고, 동시에

낯설고 새로운 세상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쏟아지는 낯선 툴들을 익혀야 했고,

문서는 공유되어야 했고,

모든 시간은 기록되었습니다.


운영자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나는

모든 부분에서 버전업을 강요받았습니다.

하루하루가 22년의 경험을 부정하는 것 같아

상처가 됐습니다.


당연히 우리는 매 시간 부딪혔습니다.

나는 '경험'을 말했고,

아들은 '데이터'를 말했습니다.
나는 '정'을 내세웠고,

아들은 '시스템'이 우선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열심히'가 중요했고,

MZ아들은 '방향'을 강조했습니다.

6개월 정도가 지났을 때,

아들은 약속대로 보증금을 갚아 주었습니다.

돌아보니, 못되게만 들렸던 그 말들이

센터를 살리고 있었습니다.

교육서비스의 질은 향상되었고,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과 유연하게 접목되면서,

확실한 차별화가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근무환경 역시 개선되어

직원들의 자존감이 높아졌고,

이는 곧 업무 성과로 이어졌습니다.


MZ대표는 강조합니다.

"기업도 버전업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그의 경영 방식은 종종

프로그래밍 과정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아들의 프로그래밍적인 경영이

조직을 어떻게 이끌고 업데이트했는지,

다소 불편할 수도 있지만—

그 과정을 스물셋 MZ대표의 직설로 기록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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