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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올프체스키 May 18. 2016

스타트업 햇병아리의 스타트업 리뷰#2

스타트업은 고속도로 주행이다(?)

서울에서 출발해 목적지는 부산으로 정해졌다. 이제 나는 차를 운전해 부산까지 가야한다. 아니! 근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내비게이션이 없이 부산까지 가야한다는 조건이 생겨버렸다!! 이제 난 도로의 표지판과 지도만을 의지해 부산까지 가야한다. 그것도 가능한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김 대리는 아직 IT 업체에 대해 잘 이해 못 하고 있나봐"


대표님과 회의를 진행하던 중 대표님은 웃으며 나에게 이렇게 말을 건넸다. 그날 회의는 마케팅용 콘텐츠 기획에 대한 내용이었고 나는 콘텐츠 기획을 책임지고 맡아 진행을 해야했다. 디테일한 내용을 설명하고 진행 일정을 말하며 뿌듯하게 마무리 지은 나는 살짝 당황했다.


이유는 이렇다. 기획에 대한 내용은 나쁘지 않지만 진행 일정을 너무 길게 잡았다는 것이었다. 큰 틀에서의 기획을 시작으로 이미지 제작을 내부와 외부 인력을 활용해 조율하며 진행하고 그에 따른 홍보까지하며 마무리 하는 일정이 약 10일 정도였다. 현재 가용 인력과 세세한 콘텐츠 계획까지 고려해 나는 최적의 스케줄이라 생각했는데 대표님은 이정도면 요즘 IT 업체에서는 최대 5일 빠르면 2~3일이면 끝낼 수 있다고 말을 했다. 특히 우리 같은 스타트업은 무조건 빠르게 그러면서도 최대한의 효과를 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다행히 기획안을 던지며 다시 짜오라는 그런 일은 없었다. 우리 대표님은 그런 분은 아니시니...ㅋㅋ)


지금의 사업을 시작하기 전 국내 굴지의 게임 업체에서 일했던 대표님은 거기서의 경험을 이야기 해주셨다. 팀장을 맡아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오히려 자기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팀원들의 작업 속도가 상상 이상이었다는 것이었다. 팀원들이 컨펌을 닥달할 정도로 업무 처리가 빠르고 능숙했기에 그 속도를 따라가기가 힘들었다는 것이었다.


스타트업에서 나와 같은 마케터를 두고 이런 이야기를 한다. 마케터는 개발과 디자인 빼고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다 하는 사람이라고. 근데 프로그래밍까진 아니지만 개발 기획까지 맡아야 하고 디자인도 시안은 그려줘야 하니 사실 개발과 디자인까지 해야하는 사람인 것 같지만... 어쨌든 그건 사실이고 아마 스타트업이 아닌 다른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스타트업은 그 속도가 매우 빨라야 한다는 것.


"업무를 빨리 처리하려 하면 퀄리티는 버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박하자 대표님은 그런 업무 방식이 익숙해지면 속도도 빨라지고 퀄리티도 높아지고 결국 어딜가나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듣게 된단다.(단호) 일을 시작도 하기 전에 퀄리티를 신경 쓰면 아무것도 하지 못 한다며 최대한 빡빡하게 일정을 잡고 진행을 해보라고 하며 회의를 마쳤다.




나는 기존의 약 10일의 일정을 반으로 줄여 5일 내로 처리하기로 마음 먹었다. 대표님 말대로 퀄리티는 후순위로 하고 당장 시작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업무 방식을 바꿨다. 근데 이게 웬걸?? 처음 목표로 했던 2~3일 정도 걸릴 업무가 회의 후 2시간 내에 절반이 완성되고 결국 다음날 오전 완료가 됐다. 결과물을 바탕으로 1차 회의 후 수정까지하는데 그날 오후에 최종 완료가 되었다. 그렇게 되고나니 나도 얼떨떨해졌다. 그동안 내 몸에 익은 업무 방식은 쓰레기였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대표님은 기획서나 보고서에 시간을 투자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그냥 메모장에 끄적이는 수준으로 계획과 진행 내용 결과만 알아볼 수 있으면 그게 무엇이 됐던 상관없다며 그런 문서작업에 절대 힘을 쓰지 말라고 했다. 사실 이번 기획안의 PPT를 만들면서 색상이며 디자인이며 이래저래 신경 쓰느라 거의 하루를 잡아 먹고 스스로 뿌듯해했던 게 조금 민망해지는 순간이었다. 다음부터는 마인드맵이나 에버노트에 끄적인 것을 보여주는 식으로 정리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기획안을 제출하고 설명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다 보니 업무 처리 시간이 크게 줄어들게 되었다.


이곳에 2달 정도 넘는 시간 몸을 담고 있으니 확실히 요즘 IT 계열 회사나 스타트업의 업무는 뭔가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디테일한 보고서는 필요 없으며 퀄리티보다 무조건 실행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전 같으면 온라인 광고 같은 것을 하기 전에 카피를 정하고 보고 후 수정하고 이미지 제작을 맡기면 다시 수정하고 수정하며 진행했는데 여기서는 우선 시작하고 시장 반응을 보고 그때 수정을 하는 것이 일반적 과정인 것 같다.


사실, 내가 퀄리티에 신경을 쓰고 엄청난 고민을 하고 시작을 했더라도 그게 과연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고 나조차도 장담은 하지 못한다. 오히려 별 생각없이 시작했는데 그게 더 반응이 좋을 수도 있다. 처음 반응이 좋지 않더라도 그때 수정을 하면 왜 사람들이 반응을 하지 않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경우도 있어서 이제 그런 방식이 나도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데이터'라는 든든한 무기가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 와서 데이터 분석의 놀라움을 느끼게 됐다. 하나의 상품을 A와 B의 형식으로 시장에 내놓았을 때 어떤 것에 더 사람들이 반응을 보이는지 그리고 어떻게 반응을 보이는지 별별 데이터가 잘 알려준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어딘가에 있는 대중들의 행동패턴을 눈에 보이게끔 하고 그걸 바탕으로 A나 B 혹은 새로운 C를 만들어 내놓으면 결과는 눈에 띄게 좋아진다는 것을 데이터는 증명하기 때문에 그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


잠깐 얘기가 딴데로 갔다... 어쨌든 이곳에서는 스피드가 곧 일을 잘하느냐 못하느냐를 보여주는 척도인 것 같다. 우리 회사와 협력하는 다른 스타트업의 이사님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일을 처리하고 그것을 좋은 결과로까지 이어지게 한다. 여기 저기 하루에만도 몇 군데 영업을 나가면서 페이스북, 블로그, 밴드 등 SNS를 관리하고 거기다가 디자인과 개발기획 등 3~4명이 하루 동안 해도 부족해 보일 일을 하루만에 모두 해결한다. 이런 사람은 대표님도 정말 보기 드문 경우라며 혀를 내두르니 조금 특이한 사례이기도 하지만 그런 업무 추진력 하나만큼은 존경스럽고 나 스스로가 부끄러워지게끔 만들기도 한다.


이제 나도 이곳에 익숙해지고 퍼포먼스를 조금이라도 내야하는 시점에 오게 되니 대표님은 나에게 일을 할 때는 100% 넘는 역량을 쏟고 업무에 대한 부담감도 많이 짊어지고 가야한다고 말을 한다.(그러면서도 칼퇴를 강요한다. 어쩌다 보니 칼퇴를 하지 않는 것은 일을 느슨하게 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이다...)그렇지 않으면 한순간 무너지는 곳이 스타트업이라고 항상 강조한다. 갈수록 부담감은 쌓이는 것 같지만 그게 나쁘지는 않다.




스타트업은 요즘 광고에서도 나오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라는 말이 확 와닿는 곳이다. 계속 시장에 징징거려도 무슨 일이 일어날거라는 보장이 없는 곳이다. 다행히 우리 회사는 시장에서 스스로 알아주고 있는 상황이라 사정이 조금 나은 것 같지만 아마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정말 계속 징징거리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스타트업이라는 자동차에 탑승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부산에 가야한다는 목표만큼은 누가 뭐라해도 의심의 여지가 없이 확실하다. 다만 나에겐 지도와 도로의 표지판 외에는 자원이 없다. 그렇다고 출발을 망설이면 안 된다. 우선 출발을 하면 무언가 보이게 될 것이다. 나는 무조건 최대한 빨리 갈 수 있는 길을 예측하고 가는 길에 돈이 생기면 내비게이션을 사던, 길을 안내할 안내자를 고용하던 주변에 널려 있는 방법들을 캐치하고 적용하며 실패도 성공도 맛보면서 결국 최적의 시간에 목적지에 도달해야만 한다.


힘들다고 내가 멈추면 모든 것이 멈춘다. 많은 기업이 내가 힘들어서 멈추면 잠깐 일의 처리가 늦어질 수는 있지만 회사가 멈추진 않는다. 그렇지만 스타트업은 내가 힘들어서 멈추면 회사가 무너진다. 참... 어떻게 보면 무서우면서도 매력적인 곳이 스타트업이다.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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