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듯 다른 영화 속 좀비들
좀비영화라는 장르는 공포영화이자 마니아층을 갖고 있는 고어물이라고 할 수 있고 화려한 액션과 반전, 가슴 졸이는 스릴까지 느낄 수 있는 종합선물세트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의외로 우리 주변에서도 좀비물이라면 ‘닥다(닥치고 다운)’를 하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로 선호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잔인하고 무서운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괜히 찾아보게 되는 매력이 있는 장르 중 하나가 아닐까. 그래서인지 좀비영화라 검색을 하면 포털에서도 따로 테마별 정리를 해놓았을 정도이니 이제는 ‘좀비영화’는 공포영화의 하위 개념이 아닌 하나의 장르로서 오래도록 만들어지고 발전해 가고 있다.
글쓴이 역시도 좀비영활라면 감독이 누구이건 배우가 누구이건 무조건 보는 좀비 마니아 중 한 명이다. 영화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10살도 안된 어린 시절부터 피와 살이 튀는 좀비영화에 열광해 어머니에게 좀비영화 시청금지령을 받았을 정도로 어렸을 때 부터 즐겨보는 장르 중 하나였다. 그래서 문득 지금까지 봤던 좀비물들을 노트에 하나하나 써내려 가다가 그 중 두 번 보고 세 번 보더라도 질리지 않을 베스트를 뽑아 봤다. 우선은 흥행여부와 작품성을 떠나 그저 저의 기호에 맞았던 지극히 개인적인 주관이라는 말을 올리며 '내 맘대로 좀비물 베스트'를 소개한다.
살아있는 시체, 부두교의 제사장에 의해 마약을 투여해 살아난 시체에서 유래한 좀비는 살아있는 시체라는 말답게 느릿느릿 걷고, 초점이 없으며 본능에 의해서만 행동하는 모습을 우리는 보통의 좀비라고 생각할 수 있다.
느림의 미학이라고 할까? 서서히 다가오는 공포감으로 주인공을 위협하는 전형적인 좀비의 모습들을 볼 수 있는 영화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좀비영화의 시작을 알린 <화이트 좀비>
우선 우리가 쉽게 상상하는 좀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들은 대부분 고전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좀비라는 개념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굳이 지금처럼 화려한 액션을 담아 좀비영화를 만들 필요도 없었기에 초기의 좀비영화들은 이렇게 자칫 지루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932년 작품인 <화이트 좀비: 원제 White Zombie>는 오락성을 담지는 못했지만 좀비라는 것을 세상에 처음으로 알렸기에 그것만으로 가치가 있고, 좀비영화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She Was Not Alive Nor Dead Just A….. White Zombie’
(그녀는 살아있지도 죽지도 않았다 그저…화이트 좀비일뿐)
이라는 포스터의 문구로 볼 수 있듯 죽어있는 산 사람이자 시체 좀비를 알린 영화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좀비영화의 오락성을 입증하다
저예산 B급 호러 영화인 조지 A.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Night Of The Loving Dead>에서부터 사실 좀비영화가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생각한다. '나 좀비영화좀 봤다' 싶으면 이 영화를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고전 중의 고전이 아닐까? 좀비를 만나 도망을 가고, 숨어서 피해 다니고… 좀비영화 특성답게 별다른 스토리는 없지만, 다소 충격적인 결말과 좀비라는 존재를 아주 잘 표현한, 비록 B급 영화라 불리더라도 영화의 역사에도 한 획을 그은 명작이라고 할 수 있다. 원작과 리메이크판은 결말이 조금 다르니 비교해서 보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21세기 좀비를 역행했던 <더 데드>
느리게 걷는 좀비가 아닌 벽을 타고, 점프를 하고 뛰어다니고.. 지금은 이런 모습의 좀비가 오히려 더욱 자연스럽다. 그 흐름 속에서도 본래의 좀비 모습을 충실하게 표현했던 <더 데드: The Dead>는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척박한 땅에서의 인간의 절박함과 어두운 미래를 보여준다. 공간적 배경이 주는 낯설음과 느린 좀비라는 점 때문에 지루함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좀비물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봤을 때는 감독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그 의미에 공감해 볼 수 있는 좋은 영화였다.
당신은 어떤 이유로 좀비영화를 즐겨보는가? 무엇보다 게임을 즐기듯 하나하나 쓰러지는 좀비들과 그들에 의해 쫓기며 만드는 긴장감 그리고 각종 무기로 공격을 하는 묵직한 타격감으로 카타르시스를 느끼지 않는가? 그래서 좀비물은 모든 것을 다 잊고, 조금 잔혹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킬링타임을 위한 가장 적합한 오락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가장 대중적이며 재미있는 좀비물은 어떤 것이 있는지 한번 알아보자.
말이 필요 없는 좀비영화, <새벽의 저주>
CF감독답게 독특한 영상과 화려한 액션 암울함 속에서도 재미를 주는 요소로 그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낸 '잭 스나이더' 감독의 데뷔작 <새벽의 저주: Dawn Of The Dead>는 흥행과 오락성 거기다가 영상미에 작품성까지 좀비영화로서는 보기 드문 흥행과 화제를 불렀던 영화다. 이 영화를 제하고서는 좀비영화를 이야기할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리메이크한 영화이지만 현대적 감각으로는 오히려 원작을 넘어선다고 생각한다.
현대 좀비영화의 큰 틀을 만들어준 새벽의 저주. 영화의 시작부터 마지막 엔딩 크레딧까지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만들어 줬던 명작 중의 명작이 아닐까
핸드헬드 기법으로 좀비물 특유의 긴장감을 극대화 했던 <R.E.C>
보기 드문 스페인 영화 <R.E.C>는 핸드헬드 기법으로 특유의 긴장감을 줬습니다. 너무 정신이 없어서 보기 힘들다는 반응도 있지만, 기존의 핸드헬드와는 다르게 카메라맨을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보여주지 않으며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 속 카메라맨이 된 듯한 기분을 준다. 특히 소방관들이 카메라를 향해 끄라고 고함을 치고, 이에 흠칫하며 실제로 카메라를 끄는 등 그런 모습을 통해 카메라맨의 입장으로 영화를 즐기기도 했다.
한 아파트에에 갇힌 소방관들과 리포터와 카메라맨 그리고 알 수 없는 이유로 그들을 구출해주지 않는 정부. 무엇보다 너무 매력적인 리포터로 인해 영화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R.E.C2 에서는 영화가 종교와 관련된 이야기로 가며 갑자기 산으로 간 것 같았지만, 숨막히는 긴장감을 즐길 수 있었던 좋은 영화였다.
<28일후>좀비영화에 감성을 담다
분노바이러스에 감염된 좀비에게 쫓기는 과정을 담은 대니 보일 감독의 2002년작 <28일 후: 28 Days Later>는 훌륭한 캐릭터와 깊은 주제를 가지고 섬뜩함과 스릴을 준다. 영화 중반에 평원에서 펼쳐지는 평온한 분위기와 감성적인 O.S.T들이 인상적인 영화다. 인간과 좀비의 대결과 함께 결국은 인간과 인간의 내면 전쟁을 담으며 카메라 구성과 음악이 돋보였던 명품 영화라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지극히 평범하고, 특별할 것도 없지만 재미있게 볼 수 있는 <Day Of The Dead>
다소 엉성한 스토리, 가끔 보이는 어설픈 CG 특별할 것 없는 스토리. 영화 <Day Of The Dead>는 그저 킬링타임용 좀비영화일뿐 그 이상의 의미를 볼 수 없다. 하지만, 흑묘백묘론처럼 뭐 어떤가 그저 즐거우면 그만 아닌가? 이를 갈며 무자비하게 덤비는 좀비들과 고어물적인 잔혹함이 묻어 있는 이 영화는 피튀는 살육 장면에 열광하는 좀비 마니아들에게 실망을 주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오히려 새벽의 저주나 다른 좀비영화에서 보여주는 좀비들보다 더욱 빠르고 강력해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에 재미만큼은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좀비물이다. 흉측한 좀비, 물어 뜯기며 죽어가는 인간 그리고 총알이 난무하는 액션만으로도 만족한다면 적극 추천해드리고 싶은 영화다.
시대가 변하며 기존의 좀비영화에서 보여주는 전형적인 좀비 모습에서 조금 탈피해 새로움을 보여주는 영화들도 많이 있다. 이런 영화는 사실 호불호가 갈리기도 하지만 감독 특유의 발상과 새로운 좀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재미가 숨어 있는 그런 좀비물도 빠뜨릴 수 없다.
총을 든 좀비, 도구를 쓰는 좀비들이 등장하는 <Land Of The Dead>
좀비영화의 대부 '조지 로매로'의 <Land Of The Dead>는 외부는 좀비들이 점령했고, 살아남은 권력층과 부유층들은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어 평화로운 삶을 보내고 있다는 설정으로 남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자연스럽게 그런 부유층들을 비난하는 메시지도 담겨 있다. 이로 인해 평론가들에게 극찬을 받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다소 어설픈 좀비 분장과 연기가 아쉬운 작품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영화에서 좀비들이 인간들과 싸워가며 그들 스스로도 학습효과를 통해 총을 쏘기도 하고, 도구를 사용해 공격을 하고, 물 속을 걸어서 잠수해 건너가고 리더 좀비의 지휘 아래 움직이는 좀비들의 모습에서 색다른 재미를 느꼈던 작품이다. 평론가들의 찬사가 관객들에게는 냉소적인 반응으로 흥행은 덜 됐던 숨은 보석과 같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좀비 세상으로 변한 세계 속에서 성장해가는 소년의 이야기 <Stake Land>
사실 이 영화를 좀비영화로 소개해도 될는지 고민이 됐다. 좀비라기 보다는 '뱀파이어'에 가까운 괴물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도 좀비영화의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기존 좀비영화의 관습을 탈피해 담은 독특한 영화이기에 소개한다.
온 가족이 괴수에게 살해 당해 홀로 남은 소년 마틴은 뱀파이어 사냥꾼인 마스터의 보호를 받으며 괴수들과 싸우는 법을 터득하며 살아가는데, 여행을 하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점차 성장해 가는 주인공 마틴의 모습에서 이 영화는 보통의 좀비물이 아닌 로드무비이자 성장영화의 형식이 더욱 강하다.
시종일관 암울하고, 어두운 배경으로 다소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 어둠에 휩싸인 세기말에 괴수들보다 무서운 것은 광신도와 같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집단의식과 사악함이 아닐까 생각하게 만들어주기도 하며 총이나 화려한 무기가 아닌 창과 같은 단순한 도구로 좀비와 일대일로 싸우는 전투신에서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지독하게 웃긴 좀비영화 하지만 가볍기만 하지 않은 <좀비랜드>
루벤 플래셔 감독의 2009년작 <좀비랜드: Zombie Land>는 장르 자체가 좀비나 공포물이 아닌 코미디, 모험, 액션에 분류가 돼있다. 무엇보다 정말 재미있는 웃긴 영화이기도 하다. 진지함이 묻어있지 않고, 유쾌함마저 느낄 수 있다. 감정 따위에 흔들리지 말고 내 살길을 찾아라, 총알을 아끼지 말고 확인 사살을 해라, 차에 탈 때면 뒷좌석에 좀비가 없는지 확인해라와 같은 '좀비로부터 살아남는 법'을 배울 수 있는깨알 같은 재미가 가득한 영화다.
사실 이 영화는 좀비영화의 탈을 쓴 가족영화라 할 수 있다. 좀비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싸우며 싹트는 가족애가 담긴 특유의 장르영화이기도 하다. 필자는 의외의 상황에서 웃기게 만들며 기존 좀비영화를 비틀고 꼬면서 새로운 장면을 담아내는 감독의 발상에 찬사를 보내고 싶은 영화라고 소개하려 한다.
얼마 전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라는 책을 구입했다. 이 책은 말 그대로 좀비들이 공격하면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지 방법들을 소개한 책인데, 그 방법들을 작가는 정말 진지하게 진실하게 적어나가고 있다. 화제작 세계 대전 Z의 작가인 맥스 브룩스의 신간으로 좀비에 대한 상상력 속에서 블랙 코미디가 절묘하게 조합되어 재미를 주는 책이기도 했다. 책으로 만나는 좀비 이야기도 나름 괜찮은 경험이었다.
이렇게 소개한 좀비영화 추천작은 앞서 말했듯 지극히 주관적이라 공감을 하지 않는 분들도 많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어쨌든 무더운 여름밤 시원한 액션과 긴장감으로 잠시 무더위를 잊고자 하는 분들에게 좋은 가이드가 됐으면 하는 마음이라는 말로 글을 마무리 짓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