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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by mola mola

입사할 때 낸 글이다. 다시 읽어보니 그때 엄마가 그랬었나 싶다.극적 재미를 위해 내가 엄마의 어떤 면모들을 과장했던 것 같기도하고. 어쨌든 오랜만에 이 글을 읽으며 내가 이 때도 정확한 이해와 무조건적인 사랑이 한 궤에 놓여있다고 믿었구나 싶었다.


나는 이 글을 쓴 직후 복기를 해서 당시 만나던 애인에게 어떻냐고 보여줬는데, 그는 그 이후로도 가끔 이 글을 읽었다. 이 글을 무척 좋아했던 그에게, 나는 이 글에 쓰인 것처럼 결혼이 안중에도 없다며 이별을 고했다. 이제 그에게 별 감정은 없어서 그런지, 내가 그렇게 서툴고 거칠고 완강히 거절했어야했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 때는 그게 최선이었다. 요즘은 엄마처럼만 살아도 잘 사는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이렇게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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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엄마와 6개월째 말을 하고 있지 않다.


대학에 간 이후로 엄마와 나는 계속 다투기만 했다. 엄마는 내가 대학을 졸업하면 적당히 안정적인 회사에 갔다가 번듯한 남자를 만나서 결혼하길 바랐다. 엄마는 그렇게 본인이 행복해졌다고 주장했다. 나는 그런 말이 듣기 싫었다. 나는 위태로워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었고, 결혼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 후로 우리는 모든 사안에서 서로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날도 평범하게 다투는 날이었다. 나는 그 날 엄마에게 “나는 엄마처럼 살고 싶은 게 아냐”라고 말했다. 그 날 엄마의 입은 굳게 닫혔고,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열리지 않고 있다. 엄마의 침묵이 이어지는 반년 동안 나는 ‘엄마처럼 사는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대학에 가고 싶었던 엄마, 간호사가 되고 싶었던 엄마, 임신했다는 이유로 좋아하던 회사에서 잘린 엄마, 그리고 그 모든 걸 보상했다던 나의 존재에 대해 생각했다.


침묵의 시간 속에서 나는 불현듯 엄마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엄마가 가진 결여와 꿈에 대해, 엄마의 삶에서 멋진 부분과 멋지지 않은 부분에 대해, 내가 알았던가.


우리는 부모와 자식이라는 이유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의무를 지게 됐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어떤 사랑이어야 하는지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나는 우리가 서로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비로소 내가 엄마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은 엄마가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난 모른다. 내가 그녀를 정확히 알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평생 엄마를 정확히 알고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어려운 일이다. 나는 반년째 닫힌 엄마의 입을 어떻게 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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