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5) - 전세 사기를 알게 되다
2020년 겨울이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우울과 슬럼프에 잘 다니던 직장도 그만 두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은채 집에서 허덕이고만 있었다. 그 날도 매일과 별로 다를것 없이 한낮이 되어서야 일어났고, 씻으려고 보일러의 온수를 켜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머리를 감으려고 했는데 따듯한 물이 나오지 않았다. 몇 분간 보일러가 작동되기를 기다리다가 안되겠다 싶어 거실로 나가 보일러를 확인했다. 보일러는 평소와 다르게 에러 코드를 띄우고 있었다.
어쩐지 불길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그래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나는 출근한 B에게 집주인에게 연락을 좀 해달라고, 보일러가 망가졌다고 카톡을 보냈다.
[집주인이 연락이 안돼.]
카톡으로 온 한 마디에 바로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했다. 홀린듯 인터넷에 집주인의 이름을 검색했다. 집 계약한 날에는 아무 것도 뜨지 않았던 검색 결과와 다르게 이번에는 뭔가 많이 떴다. PD수첩, 전세사기, 빌라왕, 1000채. PD수첩 방송일은 2019년 10월. 우리가 그와 계약했던 날짜는 2019년 9월이었다.
어쩐지 이상하다 싶었어! 우리는 둘 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제와서 뭐 어쩔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방송이 나간 뒤 엄청난 연락이 쏟아졌는지 집주인은 연락을 일절 받지 않았다. 부동산도 폐업하고 사라진지 오래였다.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황망한 심정으로 PD수첩 ‘빌라왕’ 프로그램을 다 봤다. 우리가 당한 사기는 ‘기획 파산’ 사기였다. 빌라의 전세대출금액은 공시지가의 150%까지 나오는데, 빌라의 실 거래가는 그보다 낮은 경우가 많았다. 빌라는 거래량도 많지 않아 시세를 파악하기도 어려웠다. 이를 이용해 전세금을 공시지가의 150%로 설정해 내놓고 건축주, 공인중개사, 집주인(바지사장) 세 사람이 전세금을 나눠 가진 뒤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는... 방식의 사기였다.
계약 당시 약간 모지리처럼 보였던 집주인은 아마도 1억 4천의 전세금 중 몇백만을 받아 명의를 양도 받았을 터였다. 그래서 보통 이런 경우는 전세, 매매 동시 진행이 많고 또 시세 파악이 더더욱 어려운 신축 빌라에서 이런 사기가 많았다. 우리는 이미 ‘빌라왕’이 몇년이나 보유하고 있던 구축 빌라에 전세로 들어갔기 때문에 이런 방식에 대해 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없었다. 그제서야 “아시죠..?”하고 전에 살던 사람들에게 의미심장하게 건내던 공인중개사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들은 이곳의 위험성을 알았고 우리에게 폭탄을 넘기고 떠났던 것이다.
'집주인잠적 피해자들' 이라는 카페에 가입했다. 가입하라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B도 그 카페에 가입했다. 피해자들이 모여있다는 단톡방을 찾아 단톡방에도 들어갔다. 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었다. 카페와 단톡방 모두 와글와글 했지만 집에 대한 또렷한 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우리는 카페의 모든 글들을 정독했다. 다들 경매까지 갈 것을 생각해서인지 경매에 대해 물어보고, 설명하고 있었다. 전세계약한지 4개월밖에 안된 우리가 1년 6개월동안 전세 만기를 기다리고, 또 경매기간까지 견뎌낼 수 있을까? 깡통전세인데 경매를 간다고 전세금을 온전히 다 받을 수는 있는건가?
게다가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집주인은 세금을 1995년부터 체납하고 있었다. 계약할 때 집에 잡힌 근저당이 없는것도, 우리가 1순위인것도 확인하고 들어왔는데, 세금을 납부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런데 세금은 개인의 재산권보다 먼저라서, 세금 때문에 압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면 전세금을 전혀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충격적인 글이 있었다.
도리어 사기꾼들은 당당할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자기들은 집만 경매로 털고 훌훌 나가면 세금도 해결 되고, 전세금도 꿀꺽 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전세입자들은 등기부등본만으로는 집주인이 세금을 체납한 바가 있는지 전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보증보험을 가입하려고 했을때, 보증보험사는 우리의 신청을 거절하면서 거절의 이유에 대해 또렷하게 설명해주지 않았다. 개인정보라고 말하면서... 그때 이유를 들었더라면 약간이나마 결과가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나라와 제도는 열심히 사는 소시민들의 삶을 보장해주지 않았다.
카페엔 이미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왁자지껄 자신들의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머릿속이 아득해질 정도로 무서웠던 점은, 이런 방식의 사기는 사실 몇년 전부터 성행하던 사기였으며, 이것이 아직 시작 지점에 불과하다는 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