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이야기 - 이혼의 불씨
난 이혼힌지 가만 있어봐라 1년..2년.....3년......7년.....9년.....10년 횟수로는 11년째이다
제목을 보면 갸우뚱 하겠지만 .. 난 말 그대로 법적 이혼하지 10년인데 이제야 마음의 이혼중이다
남들은 다 바보 잊어버려 미쳤다하고 한다 ..
나도 내가 바보 같고 미쳤고 ... 에라이 하고 싶지만
내가 나에게 만큼은 그러고 싶진 않다
내 이혼이야기를 잠깐 해보자면
오래전 시간을 뒤로 보내야 할듯한데....
나에게 유난히도 추웠던 10년전 겨울...
전남편이 갑자기 연락을 끊고 생활비를 안주며 전화도 받지 않았다
난 갑자기 였지만 아마 남편을 맘정리를 하고 있었던것 같다
못살겠다고 이혼하자고 ..그리고는 전화도 받지 않았다
난 그때 일을 잠시 쉬고 있을때였다
내맘은 심하게 요동을 쳤다 바람핀것도 아니고 도박도 아니고
왜 저러지 ?? 생활비도 없이 카드도 정지를 시켜놓고 남편을 전화도 광주로도 오지 않았다
전 남편을 그때 오렌지호 노력항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한번을 왔었다 인감도장이랑 예물반지와 예물시계 내어놓으라고 ~~~
그게 마지막이었다
난 고부갈등이 심했다 그래서 배우는걸로 맘힘듬을 풀려고 했는데 남편은 거기에 돈쓰는걸
싫어했다
주변사람들에 말에 아이를 데려다 줘라 하는데 아이들이 물건도 아니고...라고 생각했지만
그때 난 자궁에 난소쪽에 이형성증이라고 해서 양성종양이 자라고 있었고 수술을 해야했었다
자신이 없던 나는 아이들을 짐을싸서 시골에 있는 전시어머니와 애아빠가 있는곳에
데려다 주고 오는길 남편을 직장을 간다며 차를 타고 차도 없이 도로를 걷고 있는 나를 지나갔다
너무 무심하고 비참하던지 택시를 잡아타고 남편이 일하는 노력항을 따라가 차에서
소리도 지르고 멱살도 잡았지만 남편을 끄덕이 없었다 아이들만 남기고 난 그렇게 광주로 왔다
집에오니 아이들이 너무 보고싶어 짐승의 울부짖음의 소리를 내며 가슴을 치며 울었다
친정엄마는 내가 죽을까봐 집에 일하다 오셔서 나를 보살폈다
그날 저녁 딸이 전화를 걸어와 아빠가 잔다며 피아노방에서 몰래 나와 전화를 한다고 했다
"엄마 집에 가고 싶어 ~ 할머니가 우리 고모집으로 보낸데~~"
속이 시커멓게 타다 못해 가슴이 녹아내렸다 하지만 내가 데리러 갈순없었다
그 다음날 아이들이 버스를 타고 광주로 올라왔다
아이들이 없어지자 애야빠가 아이들을 찾으러 가는 버스를 세우고 내리라고 했지만
아이들이 안내리지자 애아빠가"니들 선택해 지금 안내리면 생활비 못준다"
그래서 아들이 "네 안주셔도 돼요 " 그러고 아이들은 버스를 타고 광주로 왔다
난 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들을 보고 결심했다 평생 아이들에게 미안할일 안하기로~~
그런데 말이 쉽지 10년동안 여자 혼자 아이둘을 키우며 미안한일이 끝도 없는 미지의 숫자처럼
세월에 무게만큼이나 복리처럼 불어났다
그러고는 난 소풍을 가는 아이들의 도시락을 싸놓고 병원에 입원을 했다
수술을 하고 첫날은 피주머니와 물묻은 거즈를 입에 물고 정신을 차릴 수없이 잠만 잤는데
잠깐 잠깐 실눈이 떠질때 쯤이면 병실에서 바로 보이는 엘리베이터로 눈이 갔다
남편이 오려나 남편을 많이 기다렸다 오겠지.. 그래도 올꺼야 ...
피주머니를 달고 복도운동을 할때면 열리는 엘리베이터문에 고개가 돌아갔지만
이내 고개를 떨구어야 했다 전남편을 그렇게 퇴원할때까지 오지 않았다
난 복대를 차고 삼춘가게에 생활비를 벌러 가야했다 가장이 되었으니 아이들을
굶길수가 없었다
너무 비참했고 추웠고...나에게 그보다 더 애렸던건
일을 마치고 고개를 떨구고 땅을 보며 어깨를 흔들며 뒤돌아 울고 가는 딸의 뒷모습을
바라만 보고 속으로 울어야 했던 친정엄마였다
그때 내 힘든 뒷모습을 친정엄마에게 보여서 애까심 태운게 제일 큰 불효였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