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빈 Feb 29. 2024

2월 29일이 생일이라는 것은 이렇다

내 시간은 4년 단위로 흐른다


내 시간은 4년 단위로 흐른다


 기나긴 겨울 끝에 봄을 여는 날에 태어난 나는 올해 4년 만에 생일을 맞는다. 누군가는 “넌 어떻게 하필 그날 태어났어?”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네 생일은 참 특별하다.” 하고 덧붙이기도 하는 날. 4년 만에 맞는 생일이라는 건 다른 사람들에게는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말이겠지만 내게는 익숙한 말이다. 생일이 2월 29일이라는 것은, 이번이 내가 맞는 6번째 생일이라는 것, 내가 기억하는 생일은 두 번의 생일뿐이라는 것(16살과 20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나이 먹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일을 맞이하여 만 24살, 대학교 4학년의 마음가짐을 기록하여 고이 두고 종종 꺼내 보려 이 글을 쓴다.


 "생일을 맞는 기분이 어때?" 올해 이런 질문을 자주 듣는다. 대답은 미적지근하게 한다. 보통 "별생각 없어"라고 답한다. 어렸을 때는 매년 꼭 생일을 챙기고 싶어서 2월 28일이나 3월 1일에 생일을 챙긴다고 꼭 말하곤 했다. 그래봤자 별 효과 없었다. 내 생일은 항상 방학이었고, 생일이 없는 해에는 내 생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대다수였으며, 아무도 생일이 없다는 것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가장 친한 친구들도 2월 28일이 지난 후 3월 1일이 돼서야 올해는 29일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연락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족들끼리는 보통 2월 28일에 케이크를 먹었다. 그래서 난 보통 2월부터 3월까지 두 달 동안 항상 다른 날짜에 불규칙적으로 축하를 받았다. 20살이 되어서는 생일이 없는 해에는 생일을 챙기지 않았다. 생일이 없는데 축하받고 싶지 않았고, 나 또한 누군가의 생일을 챙기는 게 귀찮았기 때문이다. 4년에 한 번씩 생일이 있다는 건 평소엔 생일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조금 억울할 때도 있었다. 2월 28일과 3월 1일 사이 어딘가 내가 태어난 날이 있을 텐데. 오히려 홀가분한 날도 있었다. 투명 인간이 되어 모든 걸 잊고 살았던 날도 있었다.


 그러다 그날이 왔다. 4년이 단숨에 지나간 것처럼 느껴진다. 생일의 의미를 다시금 떠올렸다. 겨우 이십몇 년 전 태어난 날일 뿐인데, 뭐가 별거라고 축하를 받고 선물을 받을까? 어렸을 때 생일에 큰 의미를 두었던 이유는 그날이 내가 그동안 쌓아 온 인간관계를 시험받는 날인 것 같아서였다. 실제로 내 생일을 까먹은 절친에게 절교를 선언한 적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어떤 선물을 받고 싶으냐는 질문을 받으면 “선물은 됐고, 편지를 써줘”라고 말했다.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내가 그들을 아끼는 만큼 나를 아낄까 궁금해했고, 그들에게 자주 서운함을 느꼈다. 어린 마음이었다. 나 또한 생일을 맞은 친구들의 마음을 세세히 헤아려주지 못했고, 오히려 혼자가 익숙한 요즘엔 생일을 챙기는 게 귀찮기까지 하다. 챙겨주면 고맙지만 안 챙겨도 그만이다. 영화 <브리짓 존스의 다이어리>에서 ‘all by myself’를 목놓아 부르는 르네 젤위거가 내 모습처럼 느껴진다. 고독도 고독한 노래도 좋지만 감사한 마음도 크다. 부모님에게, 언니에게, 고모와 삼촌에게, 생일을 기억하고 연락해 주는 모든 이들에게.


 4년 전엔 만 20살밖에 안 됐는데 금세 시간이 흘러 만 24살이나 먹었다. 4년이면 중학생이 성인으로 버금 날 정도의 시간인데 나는 성인이 되고서 4년이 흘렀어도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다. 정신머리는 그대로인데 주름과 걱정만 늘었다. 해낸 것도 없는데 시간이 파이프에서 물이 새듯 줄줄 흐르고 있다. 요즘에는 소설책을 읽다가도 소설은 시간 낭비라는 누군가의 말이 자꾸 떠올라 더 이상 집중이 안 돼 책을 덮는 일들이 잦다. 내 마음에 닿는 김애란의 절절한 문장들, 혼란스러우면서도 따뜻한 이제니의 시를 뒤로하고 경제 신문이나 주식 투자 단타 전략 따위의 책을 읽어야 하는가. 나는 현실을 생각해야 하는 어른이니까.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돌아올 2028년의 생일에는 이윽고 어른이 되어 있을까.


  2024년 2월 29일 어느 곳에는 유채꽃이 활짝 피었다. 울 엄마 꿈에 수려한 독수리로 나타나 아기였던 언니 옆에 폭 누웠던 나는 2000년 2월 29일 새벽에 엄마 품에 안겼다. 그 후로 4살, 8살, 12살, 16살, 20살 그리고 24살이 되기까지, 내 시간은 4년 단위로 흘렀다. 16살 나는 미국에 있었다. 생일이라고 머핀 바구니를 사서 점심때 친구들에게 나눠 주었고, 머핀을 받지 못했다고 서운해하던 친구를 달래주었다. 20살 나는 철학과 동기들과 생일을 보냈다. 지금은 다들 휴학하고 바쁘지만 시간을 내어 며칠 전에 이른 생일 파티를 했다. 24살 나는 여전히 비슷한 사람들을 만난다. 여전히 피아노 선율을 들으며 소설책을 읽는 걸 좋아하고, 시크릿 가든처럼 유치한 드라마를 여러 번 돌려 보며 깔깔거린다. 기타를 치며 노래하고,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며 잔잔한 대화를 나누는 게 좋다. 꾹꾹 마음을 담아 한 글자 한 글자 눌러쓰는 글이 좋고, 따스한 햇빛이 있는 날에는 꼭 산책을 한다. 멀어만 보이는 28살도 이렇게 단숨에 오겠지. 꽃이 피고 바람이 불고, 눈이 녹고 새순이 돋으면 또 여전한 것도 변하는 것도 있겠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말한다. "시간은 내가 낚싯줄을 내리는 강물일 뿐이다. 시간의 얕은 강물은 흘러가 버릴지라도 영원은 그 자리에 남는다. (...) 사계절과 우정을 나누는 동안은 어떤 것도 내 삶을 힘겨운 짐으로 만들지 못한다."(『내가 살았던 곳과 거기 살았던 이유』, 헨리 데이비드 소로) 28살의 나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는, 소박하고 용감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4년 뒤에 반갑게 다시 만나, 2월 29일.


추신. 희귀한 생일이다 보니 나와 같은 생일을 찾으면 기억에 문신처럼 남는다. 중학교 때 영어학원 선생님, 생일과 생시까지 똑같은 철학과 동기 건호, 프랑스에서 만난 일본인 히요리까지. 모두 행복한 생일 보냈기를!





작가의 이전글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5시간만 있을 수 있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