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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력 Aug 14. 2024

남편 외모만 보고 결혼했더니, 망했다.

첫 만남 '합격'

나는 까칠한 도시여자이고 싶으나 태생이 촌스러운 것 같다. 아무리 좋은 옷을 입어도 태가 안 난다. 시골 어느 마을에 가면 현지인(?)으로 알고 길을 물어보고, 상점에서는 점원으로 알고 나에게 서비스를 요구한다. 처음 본 사람도 어디서 본 듯한 친근한 얼굴인지 '우리 어디서 만났죠.'를 수두룩 빽빽으로 듣는다.


나는 외모 자신감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작은 오빠가 어릴 때부터 클 때까지 언제나 '메주'또는 '옥돌매(옥상에서 떨어진 메주)'라고 불렀다. 참으로 듣기 싫었는데 어느새 각인이 돼서 '내가 그렇게 못생겼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잘 몰랐는데 결혼하고 알았다. 나는 외모를 중시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남편이랑 결혼까지 간 이유가 생각해 보면 외모가 지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남편은 좀 희한한 인연으로 만났다. 우리 큰 오빠집 지하방에 세 들어 사는 노총각이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출퇴근하는 잘생긴 총각을 올케언니가 좋게 보고 소개팅을 해준 것이다. 올케언니는 본인 여동생도 중매로 성공한 전적이 있는, 중매 감(?)이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정말 정말 촌스럽게도 초원다방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폼에 살고 폼에 죽는 내가 이름도 촌스러운 초원다방에서 만난다는 게 마뜩지 않았지만, 연애세포가 가득했던 때라 가뭄에 콩 나듯 들어오는 소개팅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올케언니는 초원다방에 장소를 정하면서 한마디 한다.


"거기서 소개팅했던 사람들이 다 잘됐데."


나는 미신(?)을 믿지 않는 철저한 크리스천이고, 일주일 전 회사 차사장님(예전 차대리님)이 소개해준 소개팅에서 실망했던 터라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나도 맘에 안 들었지만 에프터도 들어오지 않아서 자존심이 상했던 터이다.


'누가 날 좋아할까? 내가 그렇게 별로인가.' 이런 생각으로 늘 마음속에 자신감이 없었다.


그래도 외롭기도 하고, 올케언니의 긍정적 피그말리온 효과 때문인지 일말의 기대를 안고 초원 다방으로 들어갔다.


남편을 처음 보았다. 고개를 들고 환하게 웃으며 나를 쳐다보는데 쌍꺼풀 진 눈이 초롱초롱 예뻤다. 보자마자 내 마음속으로 '합격'을 외쳤다. 남편감 서류전형에서 합격한 것이다. 그리고 든 생각은,


'어. 잘생겼다.'

'어. 그런데 왜 여자친구가 없지?'


그 순간이었던 것 같다. 그 순간 모든 것을 결정해 버린 것이다. 


남편은 키가 컸다. 여자를 사귀어 본 적이 없는지 숙맥같이 행동했다. 그런 것이 참 순박해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보는 눈빛이 나쁘지 않았다. 잘생긴 총각이 매너도 좋고 나를 좋게 보는데 우리는 그날부터 사귀었다.


나는 아직도 남편이 나를 택한 이유가 미스터리다. 남편은 평소 보이시한 여자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때 당시 내 모습은 선머슴아 같았다.  남자보다도 짧은 스포츠머리에 세상 화려한 빨간색 줄무늬 스트라이프 민소매조끼와 바지 세트를 입었는데 나름 꾸미고 나간 것이다. 내 딴에는 명동 제일 번화한 옷가게에서 멋스럽다고 생각하고 샀던 아끼고 즐겨 입던 옷이다. 참 요란하고 촌스럽다.


남편도 콩깍지가 쓰여 있던 것이 분명하다. 당시 나는 퇴근하고 한양대에서 1년 과정 보육교사 과정을 배우고 있었다. 올케언니는 나의 학구열(?)로 어필을 한 모양이었다. 우리 집 식구들은 내가 어릴 때 공부를 잘했으니 꽤 똑똑한 줄 안다. 아닌데.


우리는 그날부터 매일 만났다. 내가 한양대에서 공부를 끝마치면 10시인데 남편 퇴근시간이랑 맞는다. 우리는 왕십리역에서 매일 만나서 남편이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헤어지고도 새벽까지 전화통화를 했다. 핸드폰도 없던 시절에 안방에 전화기가 있어 아버지 눈치가 보인다고 하니 내 방에서 통화하라고 전화기도 사다 주었다.


어느 날은 공부 끝나고 동대문 두산타워에 가서 남편과 쇼핑하고 돌아다니기도 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걸어 다니기도 힘들었다. 나는 그 틈에 남편 손을 과감히 잡았다. 남편의 손이 떨림이 느껴졌다. 땀도 났다. 남편의 이런 모습이 좋았다. 이런 숙맥 같은 모습이...


나는 아버지같이 무섭고 무뚝뚝한 남자만 보다가 남편은  잘생기고 순박하고 나를 좋아하니 우리는 불이 붙은 듯 연애를 했다. 그저 틈만 나면 서로 붙어서 떨어질 줄 몰랐다.


어느 날은 헤어지기 싫어서 아버지가 잠든 틈을 타서 살금살금 내 방으로 들어와 한참을 둘이 같이 있다가 또 몰래 빠져나가기도 했다. 아버지가 눈치챘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무래도 이성은 없고 본능이 충실했던 기간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4월에 만났고 추석이 있는 9월쯤 양가 부모님께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고 같이 살기로 하였다. 이렇게 좋아하는데 서로 미룰 이유가 없었다. 나는 결혼식이라는 형식보다는 서로의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살림부터 합치기로 한 것이다.


우리 아버지께 처음 인사드리는 날, 남편은 백화점에 들러서 비싼 과일바구니를 사 왔다. 그리고는 선뜻 들어오지를 못했다. 한참을 망설였다. 나에게서 아버지의 악명(?)을 익히 들었던지라 무서웠던 모양이다. 남편은 겁이 많다. 땀을 비 오듯 쏟는 남편이 귀여웠다. 거의 손을 잡아끌다시피 우리 집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를 만나서 당황하고 어리숙한 모습이 되게 웃겼다.


'저렇게 긴장이 되나?'

'장인어른 만나는 게 그렇게 무서울 일인가?'


생각했다.


나중에 남편이 가고 나서 버지에게 남편이 어떠냐고 물어봤다.


"사람 괜찮아 보이네."


아버지도 마음에 들었던 것이고 허락한 것이다.


이제는 시골에 계신 남편의 어머니만 만나면 된다. 남편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거의 8년을 시골집에도 가지 않고 전화도 안 했던 모양이다.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어찌 됐든 이번에 실로 오랜만에 집에 가는 것이고, 결혼할 여자를 인사시켜 드리러 가는 것이다.


남편 처음 만났던 이야기를 하면 되게 신나고 즐겁다. 우리가 제일 사랑했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참 멋 모르고 무모하고 무식한 때이기도 하다.


그랬던 남편인데...  


나는 너무 감성적인 사람이다. 이런 점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별 도움이 안 될 때가 많다. 가뜩이나 이성이 없는 사람이 평생 살 남편감을 고르는데 너무 이성이 마비가 돼서 잘 살펴보지 않아서 영원히 고통(?) 받고 있다.



어쩌면 남편의 흉이 될 수도 있는 일들을 세상에 꺼내 놓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나는 글을 쓰고 많이 건강해졌다. 남편과의 그 일(?)만 생각하면 자동으로 눈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나의  눈물 버튼이다. 아직도 치유가 안 됐다는 얘기다. 그래서 나의 벽한 치유를 위해서 세상에 꺼내 놓기로 결정한 것이다.


얼굴만 보고 남편의 다른 면을 살펴보지 못하고 결혼한 나의 불찰(?)이다. 브런치에 쓰고도 남을 아버지보다 더한 고통을 안겨준 남편이다.


남편과의 결혼 이야기를 이제부터 풀어내려 한다.



아버지보다 더 한 사람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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