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월이와 병원 간 이야기

칠월이 아주 애기 때 이야기

by 필력

아. 어렵다.


고양이가 너무 애기라서 그런가.


고양이 문외한이랑 너무 애기 고양이란 만나서 그런가.


그냥 분유 잘 주고 소변 대변 잘 보게 하면 잘 성장할 줄 알았다.


문제는 '변비'다.애기들도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야 건강하듯이, 고양이도 잘 먹고 잘 자고 잘싸....야 하는데 잘싸..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지난 목요일 대변을 본 후 아직까지 소식이 없다. 오늘까지 소변은 모래에 가서 잘 싸는데 아직까지 대변은 발견하지 못했다.문질 문질 배도 마사지해 주고 항문도 톡톡 두드려도 소식이 없다. 아. 기술이 부족한가.


하루종일 칠월이 대변보길 기다렸는데 감감무소식이다.아무래도 안 되겠어서 집 앞 동물병원에 데려갔다. 새로 개원한 곳이라 정말 깔끔하다. 고양이 담당은 여수의사님이신데 너무너무 어려 보이신다.


순간 학부모 모드가 발동해 좀 더 연륜 있는 의사 선생님을 찾아야 되나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일단 왔으니 진료를 보기로 했다.


그동안 컸는지 260g이다. 저번보다 크긴 했지만 많이 큰 건 아니라고 하신다. 엑스레이도 찍고 검진도 했다. 폐가 깨끗하지 않다고 한다.


이런.. 이건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오늘 대변을 볼 것 같다고 하신다. 오늘 잘 나오기를...


일단 분유는 중지하고 키튼 사료를 주라고 해서 몇 개 사 왔다. 좀 더 많이 먹여서 항문 주변의 대변이 나와야 한다. 예방접종 전까지 최대한 조심하고 아픈지 잘 보라고 하신다. 토하는지 힘이 없는지 등...새로운 지식이다.


고양이 사료 종류가 다양한지 몰랐다. 고양이 모래도 진짜 여러 가지다. 너무 많으니 도통 더 모르겠다.


나같이 섬세하지 않고 단순한 사람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아기 고양이라 어려운 것 같다. 어미고양이들은 새끼가 잘 성장하도록 계속 새끼들을 핥아 주니까 배설을 잘하는 것이다. 어미의 보살핌을 못 받은 칠월이는 저리 배변 하는 것도 어렵다.


아기 때만이라도 어미의 보살핌을 받았다면 잘 성장했을 텐데...


나는 아홉 살까지 엄마의 보살핌을 잘 받았다.


보육교사가 되려고 유아교육을 공부한 적이 있는데 그때 인간의 어린 시절 보살핌이 평생의 애착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았다.


특히 36개월까지 주양육자와의 관계는 더욱 그렇다.


아기가 울면 반응해 주고 기저귀가 불편하면 해결해 주고 이런 것들이 세상에 대한 신뢰와 엄마 애착형성에 중요하다.


엄마가 나를 아기 때 사랑해 줘서 그 힘으로, 엄마가 없어도 세상의 고난을 잘 헤쳐나갔다.


나는 어릴 때 왠지 모를 나에 대한 자존감이 높았다.


지금도 그렇다.


번아웃이 와서 아프기 전까지 세상 어려운 게 별로 없었다. 씩씩하게 잘 헤쳐나갔었다.


다. 엄마 덕분이다.


칠월이는 엄마가 없다. 대변도 어렵게 싸야 한다. 솜씨 없는 내가 문지르니 안 나온다.


제발 오늘 나오기를...





작은 책방에 가서 그림책 몇 권을 샀다.


곧바로 교회에 일요일에 먹을 음식 재료를 사러 **마트에 들렀다. 교회에 들러 장을 본 물건을 냉장고에 넣어 놓았다.


바쁜 하루였다.


오늘 수고했으니 나를 위한 보상으로 근처 초밥집에 가서 점심특선 12,000원짜리를 시켰다.


여러 가지 초밥 9개에 메밀국수가 나오는 구성인데 가성비도 괜찮고 맛은 상급이다.


나는 요새 나를 셀프 칭찬을 한다. 그동안 너무 하지 않았던 나의 보상이다.


초밥을 시켜놓고 기다리는데 셋째한테 전화가 온다.

나는 늦잠 잔 셋째가 점심메뉴 뭐 먹냐고 전화 한걸 줄 알고 시큰둥하게 받았다.


"어. 왜 "


"엄마! 칠월이가 똥 쌌어. 배변패드에 예쁜 똥 쌌어!"


"뭐? 똥 쌌다고. 이야! 걱정 덜었다."


그동안 칠월이가 대변을 일주일째 보지 않아 병원도 가고 엑스레이도 찍고 걱정을 많이 했었다.


드디어 드디어 칠월이가 성공한 것이다.


셋째와 나는 마치 금메달을 딴 것처럼 감격스러워하며 통화했다.


상기된 톤으로 대화했다.


"이야. 됐다. 됐어."그동안 배 마사지도 해주고 유산균도 주었는데 소용이 없었다.


나올 때가 되어서 나온 것 같다.


너무 애를 태웠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점심을 맛있게 음미할 수 있었다.


어제는 귀밑에 상처도 보여서 약도 발라주었다.


혹시 긁을지 몰라서 집에 있는 부직포행주로 넥카라도 임시로 만들어 씌워줬었다.


대변도 안 나오고 귀밑 상처도 있으니 걱정이 됐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살펴보니 귀밑 상처는 많이 아물었다.


다 시간이 지나니 해결이 된다.


나는 좀 새가슴이다. 대범한 성격은 아니다.


아이들 키우면서도 아이들이 조금만 문제가 생기면 과도한 공감능력 발휘로 같이 아팠다.


셋째, 넷째 키우며 많이 내려놓았는데 작디작은 고양이는 다르다.


말도 못 하는 동물이다 보니 그렇다.


고양이가 아니라 나를 다독여본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고...




칠월이 예방접종을 다녀왔다.


총 세 번이니 앞으로 두 번만 가면 된다.


너무 어린 아기로 우리 집에 와서 한고비 한고비 잘 넘고 있다. 배변도 모래에 따박따박 잘하고 신통방통이다.


오른쪽 귀 상처도 아주 잘 낫고 있다. 이제 깨어서 노는 시간도 제법 된다.


놀아달라고 쫄쫄 쫓아다니는 칠월이. 얼마나 배를 보이고 한참을 노는지 모른다.


셋째가 방학이라 하루종일 붙어 있으니 어디 가든 따라다닌다. 강아지 같다.뭔가 고양이 몸이 안정되 가는 것이 느껴진다.


새록새록 신기하다. 내가 고양이를 키우다니....어째 이런 고양이가 왔는지 모르겠다.


셋째는 너무너무 행복해한다. 아주 사랑으로 귀여워해준다.


나는 고양이를 키우며 한 가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왜 진작 이 어린 동물과의 교감을 알지 못했을까.'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아주 아주 외로움을 잘 타는 사람이었다.


어릴 때 엄마가 집을 나가고 아버지랑 살며 망망대해에 혼자 내버려진 느낌으로 평생 살았다.그런데 고양이를 키우니 뭔지 모르겠는데 외로움이 많이 덜어진다.


이 작은 생명체가 뭐라고...


나에게 특별히 무언가 해주는 것은 없는데 존재 자체가 힘이 된다.그냥 옆에서 그루밍하고 나랑 장난치고, 내 옆에 조용히 편안히 있는다. 그게 다다. 배고프면 사료 주면 되고 진짜 별개 없다. 그런데 왜 기분이 좋은지 모르겠다.


셋째한테 고양이가 왜 좋으니 물으니 "싸우지 않잖아." 한다. 그동안 인간들과의 싸움이 힘들었었나 보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누군가와 다투는 일에 많이 지쳤던 모양이다.


그동안 작은 일로 셋째에게 툴툴거리고 독설 한 적이 있었는데 그러지 말아야겠다. 조금 더 친절해야겠다.


오늘만이라도...


우리 집에 칠월이가 온 지 두 달이 돼 간다. 그동안 너무너무 새끼라서 어려웠었다. 고양이도 접해 보지 않았던 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새끼를 만지고 돌본다는 게 얼마나 어려웠던 일인지 생각한다. 무모하고 무식한 성격이니 그렇게 한 것이지 알고는 못했겠다.


어쩐지 나는 칠월이 새끼 때 유독 많이 졸리고 피곤했다. 신경을 많이 쓴 모양이다. 지금은 너무 편하다. 우리랑 잠자는 사이클도 잘 맞고 쑥쑥 잘 크고 있다.


이 주 전 예방접종 할 때 560g이었으니 지금은 더 컸을 것이다.


지금 어려운 점이라면 자꾸 우리가 먹는 식탁에 올라오는 거, 나를 미치도록 따라다니는 것, 집안일할 때 너무너무 간섭하는 것이다. 그래도 건강하게 잘 크니 귀엽기만 하다. 하루에 나랑 보내는 시간이 많으니 고양이의 관심은 온통 나를 향해있다.


그것 또한 나쁘지 않다. 나는 관심 종자니까.


칠월이 덕에 아이들이 돌보고 사랑 주는 것에 익숙해져 너무 기쁘다.


어리디 어린 작은 생명을 먹여 살리고 사랑 줄 수 있는 내 상황에 감사하다.칠월이 덕에 생각지도 못하게 브런치북 소재가 하나 더 생겨서 그것 또한 감사하다.


우리 가족 모두 칠월이랑 재미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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