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블랙의 사랑

나는야 프로 취미러, 하지만 제로 세팅 중 - 여섯 번째

by 문하현

짝꿍이 여행을 갔다.

우리 집에 이직의 바람이 불었나, 짝꿍도 이직을 하게 됐다. 덕분에 짝꿍에게 일정 시간의 여유가 생겼는데, 나와는 일정이 맞지 않아 짝꿍 혼자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혼자 집에 남은 나는 빨래를 하고, 남은 집안일들을 했다. 그러다 문득 오랜만에 혼자 영화를 보러 가고 싶어졌다.



브런치2-007.png 미리캔버스로 직접 제작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까지도 동네에는 비디오테이프를 빌려주는 비디오가게가 있었다. 언덕 끝에 위치해 있는 우리 집으로 올라가려면 길목에 있는 비디오가게를 늘 지나쳐야 했는데, 학교를 다니느라 바빠 한 번도 그 안에 들어가 보지 못했다가 수능을 본 다음날에서야 처음으로 비디오 가게 안에 들어섰다.



가게 안 양쪽 벽면에는 다채로운 비디오테이프들이 책처럼 쌓여있었다. 교복을 입은 내가 들어서자, 심드렁하게 나를 쳐다보던 사장님은 내가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 부부'를 꺼내오자 '이거 재밌더라!' 한마디만을 건넸다. 그렇게 처음으로 비디오를 빌려온 날, 집까지 한 달음에 도착했다. 그렇게 한참을 소파에 벌러덩 누워 영화를 보았고, 깔깔 웃어댔다. 그 순간만큼은 수능을 망친 기억이 잠시 사라졌다.



그때부터 나는 영화관에 혼자 가곤 했다. 독립영화도 즐겨봤고, 유명하지 않은 유럽영화들도 즐겁게 봤다. 그렇게 남들처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나의 최애라고 말하는, 그저 평범한 영화인 중 하나가 되었다. 대학교 수업 중 영화 관련 수업들을 교양으로 몇 개를 들었던 때가 영화 사랑의 고점이 아니었나 싶다. 그때 우연과 필연의 합작으로 참여하게 된 영화제 스태프 일은 영화를 더욱 사랑하게 해 준 경험이기도 했다.


빨라진 영화 산업의 시계



브런치-3-_-삽화-002.png 미리캔버스 AI 그림으로 그린 이미지



생각해 보면, 영화 산업은 매우 빠르게 발전했다. 초기 영화는 무성영화로 단순한 기록 영화 수준에 그치지 않았지만, 헐리우드가 산업의 중심지가 되면서 파라마운트, 유니버설 같은 대형의 스튜디오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특히, 1970년대에는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카스 감독들이 파격적이고 창의적인 영화들을 제작해 냈다. 1990년대에 들어서자, 여러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입혀진 영화로 확대되었다.



영화 산업을 반추해 보며,

짝꿍이 여행을 간 기간 동안 영화관에 쪼르르 달려가 F1 영화를 봤다. 영화는 여전히 내게 압도되는 음향으로 흥분을 줬고, 한눈에 담기지 않는 멋진 스크린을 나에게 홀리는 멋진 분야였다.



조 블랙의 사랑


집에 돌아와서도 여운이 쉬이 가지 않아, OTT 플랫폼을 통해 브래드피트와 관련된 여러 영화들을 찾아봤다.

그러다 오래된 영화, 조 블랙의 사랑이 눈에 띄었다. 간단한 줄거리를 말해보자면 저승사자인 조 블랙이 인간의 몸을 빌린 시간 동안 여자 주인공(수잔)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수잔은 아버지의 회사에서 일하는 약혼남과 결혼을 약속했지만, 그와는 진정한 사랑을 하고 있지 않다고 느끼고 있었다. 무덤덤한 관계를 이어가던 중 우연히 조 블랙이 몸을 빌린 본체 인간과 카페에서 마주치게 되고, 그를 통해 처음으로 깊은 사랑을 느끼게 된다.



나는 수잔의 모습을 통해 나를 비추어봤다. 현재의 사랑이 무덤덤하다는 말이 아니다.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어떤 운명 같은 나의 '일'과 마주하지 못한 나 자신을 본 것이다. 펑펑 울지도 못하겠는데 그렇다고 행복하다고 마냥 웃지도 못하는 기이한 날들이 지속되던 근래의 나를, 수잔이 조 블랙을 만나기 전의 그 무료한 얼굴 속에서 찾았다.



늘 어떤 직장에 속해 있는지보다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가 중요했다.

그래서 직장의 근로 조건이 다소 열악하더라도 '일'이 나에게 흥미를 준다면 그것으로 좋았다. 덕분에 취미도 찍먹, 일도 찍먹했다. 경험은 쌓였지만 운명의 일은 만나지 못했다.



마음을 열어 놓으렴. 혹시 아니?
번쩍하고 좋은 일이 생길지.
- 조 블랙의 사랑 中 -



무료한 수잔의 얼굴을 보던 수잔의 아빠 빌이 그렇게 말했다.

마음을 열어 놓으라고.

.

.







작가의 이전글요소가 모여 삽화가 되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