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소가 모여 삽화가 되기까지

나는야 프로취미러, 하지만 제로 세팅 중 - 다섯 번째

by 문하현


집 앞 상가엔 미술학원이 있었다. 엄마 손에 이끌려 들어간 미술학원은 온통 물감 냄새로 가득했고, 벽엔 휘황찬란한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수업 등록을 마친 다음 날, 선생님은 그림 하나를 그려보라 했다. 나무와 하늘을 그렸던 것 같은데 꽤나 선생님의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미술학원에 등록한 첫 해, 무슨 국제아동미술대회라는 곳에서 상을 받았다. 미술학원에서 대신 제출해 준 덕분이었는데, 확실한 건 선생님은 내 그림을 좋아했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미술과 관련된 창작활동, 그리고 부수적인 일들과 연이 닿았다. 미술심리치료사자격증을 따기도 했고, 그 자격증 덕분에 시청 소속으로 복지센터 대상 아동미술교육을 1년 동안 맡을 수 있었다. 이후, 운이 좋아 동화책 삽화 작업을 했는데, 또, 그 덕에 다른 유아용 삽화들까지 그리게 되었다.


브런치2-006.png 미리캔버스 직접 제작


ILLUSTRATE


삽화는 라틴어 illustrate의 의미로 그림을 통해 글의 내용을 보충하기 위한 그림에서 비롯되었다. 삽화의 개념을 크게 본다면 고대 이집트 파피루스 두루마리에서도 볼 수 있고, 중세 유럽 수도원에서 만든 성경에도 일부 그림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삽화는 텍스트를 보조하는 그림으로써 자리를 잡게 되었다.


5 (1) copy.jpg 2017년에 완성했던 삽화 중 일부 / 출처: 나


삽화는 참 흥미롭다. 텍스트를 보조하기 위해 텍스트 안에 담겨진 많은 의미와 요소들을 한 캔버스 안에 담아내야 한다. 각 요소들과의 연계도 중요하고, 그림체도 맞춰야 한다. 색상도 톤이 맞으면 보기 편해진다. 동화책 삽화는 난이도가 꽤 높다. 아동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그림이 복잡하지 않아야 하고, 색감도 중요하다. 어떤 때에는 글을 보조하는 수준이 아니라, 글을 읽지 못하는 아동들이 삽화만 보고도 이해할 수 있게 그려내야 한다. 생각보다 더 머리를 쥐어짜야 한다.



콘티의 기한은 늘 촉박해서 발을 동동 구르며 콘티를 짜낸다. 그런데 콘티를 그린 후 직접 삽화 작업으로 요소를 채워나가다 보면 늘 의도했던 것과 다르게 흘러간다. 막상 삽화 안에 이것저것들을 바꾸다 보면 의외로 필요가 없어지는 것들이 있고, 채워야 할 부분들이 눈에 띈다. 참 신기한 작업이다.





모든 요소들이 다 모여질 때까지..


그렇게 밑그림을 그리는 것부터 완성된 삽화로 마무리하기까지의 일이 익숙해지기 시작할 무렵, 내 인생도 늘 그런 생각들을 바탕으로 움직였다. 내 인생의 밑그림을 그리고, 요소를 채워 넣으면서 나는 어느덧 인생의 창조주가 되었다. 그런데 많은 일들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밑그림 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허다했다. 요소를 채웠지만 사실은 전체와는 어울리지 않는 필요 없는 부분이었다.



그때에 나는 무언가에 늘 화난 사람처럼 지냈다. 어딘가로 취업을 했지만 정작 원했던 일들을 하지 못하는 현실에서의 낙담이 있었다. 그것을 해소하고자 다른 곳에 이직을 했지만 이때엔 또 월급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느 하나 내가 원하는 그런 그림으로 완성되질 않았다.




나는 창조주가 아니니까


절망의 시간을 사실 어떻게 보냈는지 확실히는 모르겠다. 그저 꾸역꾸역 하루를 살아내다 보니 어느 날엔가 갑자기 불현듯, 그래. 나는 창조주가 아니잖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쯤 오래 손을 놓고 있던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다시 그림을 그리면서 그림의 색깔과 완성도가 또 신기할 정도로 바뀌었다.



그렇게,

내 인생의 그림을 완성시키는 하나하나의 요소들이 비록 마음에 들진 않았음에도.

생각보다 더 멋진 그림을 완성시키기 위해 필요했던 것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어떤 때에는,

내가 원하는 시간 내에 그림을 완성시키고자 노력할 필요가 없을 때도 있다.

다시 보다 보면 더 완성도 높은 그림들을 그릴 수 있게 되는 시간과 마주할 수 있다.



그때까지 내가 오롯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내가 가진 나만의 요소들을 스스로 발견해 보는 것.

그리고 어느 날엔가 퍼즐을 맞추듯 딱 맞는 그림으로 완성되는 그 시기에 그것을 꺼내드는 일.


그것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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