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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지윤 Dec 19. 2020

물 좋고 싱싱한 등푸른 고등어같은 남자

고등어 같은, 잘 나가는,  인기 좋은

Chelsea Market NYC. 남자가 없어도 와인과 굴이 있어 행복한 처녀들의 밤.



그와 나는 꽤나 오래된 친구였다. 우리는 자주는 못 만나도 내가 연애를 하느라 공중에 떠있다가 어느 날 이별이라는 절벽에서 곤두박질 치고 땅바닥을 나뒹굴 때면 늘 귀신같이 나타났다. 그렇다고 안부를 캐묻는 것도 아니다. 헤어진 'ex'와는 어떻게 만났는지 또 어떻게 헤어졌는지 이제와 무슨 소용인가 하는 태도가 고마웠다. 대신 잘 먹었다. 마치 지나간 지난한 기억을 음식물로 밀어내려는 것 같았다. 대식가 이면서 미식가인 나와 그는 식성이 잘 맞았다. 뭐 이 정도면 그럭저럭 잘 맞는 친구다 생각했다. 그때까지는.


그날 우리는 뉴욕의 어느 레스토랑에 앉아 있었다.

결혼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였지만 그때 우리는 둘 다 만나는 사람이 없었다.

그와 착실하게 우정을 이어오던 어느 날. 그날 그 레스토랑에 앉아 나는 해산물을 먹고 있었다.


여기서 잠깐.

그러니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나는 음악에 아주 많이 민감한 사람인데 어떠한 멜로디를 들어도 눈물을 울컥하고 쏟는 아이였다. 여기서 '어떠한'이라고 말한 이유는 그 곡이 슬픈 곡이어서가 아니라 Rock이든 Hip hop이든 특히 음의 굴곡이 심하면 심할수록 더 그랬기 때문이다.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서 의외로 초연한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긴 했다. 그렇다고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백 그라운드 음악을 들으면서까지 울고 짜는건 아니고 음악을 감상한답시고 일부러 찾아 듣거나 누군가가 부르는 걸 집중해서 본다면 나는 마치 목구멍으로 굴 덩이가 넘어오는 것 같은 울음이 밀려와 애써 그걸 삼켜야 했다. 멜로디 만으로도 나는 백발백중 울 수 있었다. 소위 나는 예술적이며 감수성이 풍부한 아이였다.


나의 음악 편력 따위야 다음에 이야기 하기로 하고 나에게는 유독 내장을 심하게 두드리는 노래들이 있었다. (대체로 Beat와 Bass가 강한 멜로디가 그렇다) 무거운 음이 나의 내면을 심하게 두드려 대면 복부가 굴밭 이기라도 한 듯 덩어리감 있는 무언가가 목구멍 위로 울컹물컹 밀려왔다.


그날 그 레스토랑에서 하필 그런 음악이 나왔다. 접시 위에 올려진 해산물속 굴이 설마 내 목구멍에서 밀려 나온 건가 하고 자세히 들여다 보고 있는데 말이 없는 내가 불안 했는지 그가 나를 처다복 있었다.

나는 휘젓던 포크질을 멈추고 감상에 젖어 음식을 먹느라 놀리던 입으로 그에게 한마디를 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야. 나는 저 비트를 (내가 울 것 같은 이유는 가사가 아니라 멜로디 때문이었다) 들을 때마다 눈물이 터질 것 같아.


그러자 그 애가 재빠르게 눈과 머리를 굴려가며 그에 상응하는 최상의 대답을 뽑아내려고 애를 쓰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는 최상의 대답 대신 땀구멍으로 옅은 땀방울을 뽑아내며 몇 초를 허비했다.


그는 내 앞에서 자주 그랬다.

내 조신치 못한 자유분방함에 종을 잡을 수 없는 것인지 내 똘기에 기가 눌린 것인지 알 수 없었으나 종종 그는 나의 재기 발랄한 사상과 질문에 절절매곤 했었다.


그러던 그가 드디어 인고 끝에 어렵사리 한마디를 착출해 내는 데에 성공했는지 입을 열었다.

그때 그의 한마디는 이후 내 삶이 나아가야 할 곳의 방향을 정확하게 제시해 주었다. 그렇게 그의 별 의미 없는 한 마디가 그와 나는 갈 길이 다르다르다는걸 말해주고 있었다. 그때 어쩌면 우리는 갈림길에 놓인것 이다.

내가 무심코 내 취향과 나의 비밀을 (멜로디를 들으면 갑자기 목구멍에서 굴이 나온다는 게 비밀이라면) 말했을 때 그 친구가 내게 했던 말은 평소에도 그가 자주 했던 말이고 그뿐 아니라 누구라도 내게 자주 했던 말 이었다. 살면서 지겹도록 들어온 나도 인정하는 나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가장 적절한 말.





'음, 넌 참 독특한 아이야'


그는 자신의 접시 위 명예롭지 못하게 죽은 생선의 자결이라도 도우려는 듯 들고 있던 나이프로 그것의 옆구리를 콕콕 찍어대며 수줍은 듯 말했다.


이미 나도 잘 알고 있었고 그로부터도 혹은 누구로부터도 지겹도록 듣던 그 말이 왜 그 순간만큼은 낙뢰 하듯 뇌어 박혀 들었는지. 벼락을 맞고 불현듯 천재가 되었다던 누군가처럼 깨달음이 생긴 것이다.


그날 나는 그 널브러진 굴들을 망연하게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 나는 이아이 같은 남자와는 결혼할 수 없겠구나.


적어도 나에게 만큼은 무매력이었던 그와는 연애조차 할 마음이 없었고 더욱이 아무 사이도 아니었던 그를 앞에 앉혀 놓고 왜 하필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그때 결혼 적령기 (그딴 게 있다면야) 어디쯤에 머무는 청춘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밥맛이 떨어진 것은 물론 비트에 얻어맞고 밀려 나오던 굴들이 삼키는 수고 없이도 목구멍 아래로 쏙 들어가 버렸다.


그러니까 그 아이는 제법 번듯했다. 매우 성실했고 당시 뉴욕에 손꼽히는 firm에서 전문직종에 종사하고 있었으며 내 타입은 아니었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흠잡을 데가 없는 유한 성격이었다. 그냥 한국에 있었다면 결혼 정보회사에 무난하게 내놓기 좋은 상품 같은 남자. 그러니까 이를테면 물 좋은 고등어 같은 느낌의 남자 였다.

아주 귀하거나 엄청 손질이 까다로운 생선보다 잘 팔리고 두루 해 먹기 쉬운 그래서 잘 보이는 자리에 수북이 쌓아놓는. 너무도 흔하고 흔한 고등어 같은.


나는 고등어 같은 남자와는 어차피 살 수 없었다. 그때쯤은 바로 그가 세상에 내놓기 좋은 직장에 들어간 직후였다. 딱 내가 답답해하는 타입의 인생이 이제 막 펼쳐진 남자. 그러나 그 애는 그즈음부터 부쩍 자주 연락을 해 오기 시작했다.


비린내 나는 어느 이름 모를 망망대해를 여념 없이 헤엄치다가 이제 막 손질이 되어 보기 좋게 진열대에 올려진 자신의 푸른 등짝이 자랑스러웠던 것일까. 그러나 그는 몰랐다. 맛 좋고 영양가 좋고 보기도 좋은 이제 막 잡은 싱싱한 고등어라 할지라도 누군가는 먹지 않는다는 것을.






어릴 때 친구들끼리 서로서로 이성친구를 소개해 주던 시절 우리는 타겟을 골라주기 전에 질문을 했다. 대부분은, 그래서 어떤 사람을 좋아해? 이상형이 뭔데? 혹은 꼭 바라는 것 한 가지는? 따위의 다소 진부한 질문들이 오고 갔다.


그러나 내 생각은 좀 달랐다. 저런 것들은 물어서 뭐 하나, 내가 묻는 질문은 단 한 가지였다.

그래서, 니기 '진짜 최소한 이것만은' 참지 못한다 하는 게 뭔데 그걸 말해봐.

그러면 대부분은 답을 찾지 못하고 헤맸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그건 닥쳐보지 않고서야 알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성을 볼 때 이것만은 꼭, 원하는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대체로 대답이 빠르게 나왔다.

어릴 때부터 영악했던 친구는 돈이 많은 남자를 원했고 어릴 때부터 맹해 터진 애들은 얼굴만 따졌다. 제일 어이가 없는 부류는 그 귀한 딱 하나라는 자리에 키를 집어넣는 아이였다. 턱이 빠질 만큼 놀랍지만 그런 놀라운 여자애들이 꽤 있었다.


그러나 참지 못하겠는 것, 에는 대체로 구체적 답을 못했다. 하긴 지금 생각하면 그땐 나도 내가 뭘 참을 수 없었는지 잘 몰랐던 때니까.


우리가 새로운 이성을 만날때 그에게서 만큼은 이전의 쓰레기들과는 차원이 다른 특별한 무언가를 기대한다. 이것만은 참지 못하겠는 사람을 생각하는 건 뭔가 쓰레기 더미에서 재활용이라도 거르는 기분이랄까.

그래, 최소한 오물은 아니니까, 이틀 전 신생아의 장에서 밀려 나온 것이 말려있는 똥기저귀는 아니니까 다행이지 모야! 하고 이성을 만나기에 우린 너무 젊고 예뻤다.


그리고 그렇게 목록을 정해 이상형을 나열했건만 기대했던 쓰레기와 차원이 다른 특별한 무언가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고 그나마 재활용품 정도면 안심을 하던 때를 지나 똥기저귀만 아니면 된다는 마지막 단계, 그러니까 그 '최소한 이것만은'을 알 때쯤의 나이가 하나둘 되어갔다.


그러니까 그날, 그 레스토랑에서 나도 그 나이에 (혹은 순간에) 도래한 것이다. 드디어.

재수 없게도 (아니면 다행히도) 연인도 뭣도 아닌 남자를 앉혀 놓고.


허공을 가르던 포크질이 멈췄고 목구멍에서 밀려 나온 것 같은 굴은 결국 접시 위에 홀로 외로이 남겨졌다. 평소 같으면 없어 못 먹는 굴이지만 포크 자국 하나 남지 않은 온전한 굴이 거기 그냥 버려졌다. 아깝지 않았다. 내가 그토록 알고 싶고 알아야 했던 것, 그 깨달음의 페이를 오롯하게 남겨진 굴로 하기로 했다. 안녕, 잘 가라. 영양분으로도 사용되지 못한 굴의 죽음은 값졌으나 가여웠다.


그리고 그날 덤으로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 하나.

내가 인생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을 다섯 손가락에 넣어 보라면 나는 단연 아끼지 않고 한 손가락을 축구에 내어줄 정도로 축구, 그리고 스포츠를 좋아하는데 그가 스포츠를 즐기지 않는 것은 고사하고 팀조차도 구분을 못한다는 걸 그날 알았다.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는 남자라니. 이건 정말 내장 빠진 고등어를 다시 바다에 띄워놓은 꼬락서니의, 그런 느낌이었다.

심지어 MSG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의 회사에 다니고 있으면서 닉스가 어느 팀인지 헷갈려하는 남자. 회사에서 나오는 닉스 티켓을 구겨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하는 남자를 쿨하다고 해야 하나 대단하다 해야 하나 뭐라고 해야 할지 조차 헷갈리게 하는 남자.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 남자라니. 농구를 보지 않는 남자라니. 함께 축구 경기를 보면서 기쁘고 슬플 수 없는 남자라니. 그런 남자와는 어떻게 사는 것인지 방법을 알 수 없었다.


벌써부터 영악해 늘 돈을 우선으로 따졌던 친구는 너는 왜 아직도 그런 게 중요한 건지 물을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그 딴것들이 여태 참을 수 없는 이유가 되는지 정신 차리라고 따귀를 갈기지나 않을까 겁이나 입을 다문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게 중요했다.

예전에 어딘가에서 봤던 글이 떠올랐다. 인간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라며 번호를 매겨 몇 가지를 나열해 놓은 것이었다. 번호를 따라가던 중 어느 번째에 멈췄다. 그리고 그 뒤를 더 이상 읽지 않았고 앞서 읽었던 방법들도 모두 잊었다. 내 눈이 마음을 멈추게한 방법 하나는 이거였다.


인생을 살면서 좋아하는 시가 한편쯤은 있을 것.


좋아하는 시를 한편쯤 보유하는 건지 외우라는 건지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빼곡한 숫자들 속에서 내가 건저낸 방법은 저것 뿐 이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갑자기라도 나에게 좋아하는 시가 무어냐고 물으면 지체 없이 대답할 수 있는 시들이 가슴 안에 있다는 것에 음, 최소 나는 행복하게 사는 방법 중에 하나는 실천하고 사는 인간이구나 스스로 대견했다.


우리는 예술이나 아름다운 것 따위에 대롱대롱 매달려 사는 사람들이었다.

나와 같은 방향에 서있어서 내 독특함이 보이지 않는 사람, 내가 특이해 보이지 않는 사람이 필요했다.


돈이 많으면 얼굴 못생긴 걸 참고 얼굴이 잘났으면 돈 좀 못 벌어도 참아지는 그런 간단한 삶을 나는 왜 살지 못할까.


그애는 마침 지금 막 갖잡은 싱싱한 등푸른 고등어처럼 윤이나고 번지르르하며 잘나갔다.


"오, 아줌마 오늘은 고등어가 아주 싱싱하네!"


남에게 빼앗길까 두려워 얼른 집어들고 검은 봉투에 담겨 잘 팔려나갈 인기좋은 남자. 아니 고등어.

내일이 되기 전에 남들이 채가기 전에 얼른 손질해 내집 내 식탁 위에 올리고 싶은 등푸른 고등어.


그 아줌마는 시장에서 사들고 온 그 싱싱한 고등어가 맛이 가기 전에 굽거나 찌거나 조려 귀한 딸의 저녁 밥상위에 올린다. 딸은 그 잘 조리된 고등어에는 눌길 한번 주지 않고 젖가락 조차 대지 않는다. 엄마는 애써 쟁취해 요리조리 양념을친 싱싱한 고등어를 먹어보라고 권하지만 딸은 눈살을 찌푸린다.


"비려. 엄마 나는 고등어를 먹지 않아! 양념된건 더더욱!"


세상에는 맛좋은 고등어를 먹지 않는 여자도 있으니까.






지금, 우리가 가야 할 길의 각도가 심하게 벌어져 있다는 걸 알았다.

이순간 부터 우리는 각자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목구멍에서 나온듯한 굴은 끝내 버려두었다. 먹음직스럽던 굴이 이젠 내 것 같지 않았다.

우리는 밥을 먹고 나와 거리를 걸었다. 그때 그는 우리가 알고 지내던 그 10수년 중 어느 해보다도 자주 연락을 해 왔고 우리는 자주 만났으나 되려 나는 그가 점점 낯이설었다. 우리는 어른이 되었다.


10년 동안 그랬듯 우리는 어깨를 붙이고 나란히 걸었지만 마음속 거리의 각도가 점점 반대 방향으로 벌어져 가는 걸 느꼈다.

그렇게 10년을 늘 친구라는 이름으로 함께 걷던 그와 이쯤에서 안녕을 해야된다는걸 알았다.


안녕, 함께 걸었지만 서서히 벌어지는 각도의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우리는 이제부터 달라질 각자의 인생의 방향으로 막 첫 걸음을 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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