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지윤 Dec 22. 2020

개와 애와 노숙자에게도 위안이 있는 밤 이기를

열정적인, 진취적인, 패기있는


눈보라가 몰아 쳤다.

12월 16일 2020. 올해 뉴욕의 첫눈이었다.

아침부터 오후에 눈이 많이 올거라며 라디오와 휴대폰에 warning이 떴다. 그러나 오후가 되었는데도 날이 멀쩡했다. 대신 어제와 다르게 엄청 추웠다. 올해 뉴욕의 겨울이 유난하게 따듯하다며 지구 온난화를 비난하던 중이었다. 미루어 왔던 롱 패딩을 새로 사야겠군 마음먹을 무렵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아주 옅고 아름답게. 그러니까 최소한 따듯한 실내에서 바라보기에는 그래 보였다. 잠깐 눈이 내리나 싶더니 이내 사그라들었다. 역시 뉴욕의 일기예보는 맞은 적이 없어 라며 낙심 혹은 안심을 했다. 그때, 그 따듯한 실온에 있을 때 까지는 그랬다.


우리는 곧 밖을 나갔다. 우리는 단지 이쪽 빌딩에서 저쪽 주차장 빌딩으로 가로지를 뿐이었다. 그러나 문을 밀고 나오는 순간 이건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고 확신했다. 우리는 앞을 보지 못한채 걸었다. 눈이 회오리바람이 되어 몇 미터 앞 시야를 가렸고 그대로 축축한 안구에 와 부딪혔다. 앞을 볼 수 없었다. 몇 발자국 걷다가 그 바람에 내가 날아가 버렸다. 내 옆을 걷던 80kg의 남자애가 저만치 멀어지는가 싶더니 걔도 곧 몇 발자국 바람에 두둥실 떠 밀렸다. 걔를 붙잡으려 했으나 너무 순식간이었다. 내가 놓친 그 애가, 나보다 족히 30kg은 무거운 그 애가 자기를 잡을 새도 없이 날아가 버린 모양이 안쓰러워 나를 구하러 오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눈보라 속에서는 누가 누구를 구할 처지가 아니었다.

단지 서로 맞은 회오리 장단에 춤을 추며 안쓰러운 눈빛을 교환할 수 있을 뿐, 무방비였다.


우리가 걷던 그 길은 단지 1분 길어도 2분이 안 되는 거리였다.

우리는 사방이 거의 막힌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던 차로 얼른 달려갔다. 사방이 막혔으나 층마다 있던 작은 틈 사이로 회오리치던 눈보라가 밀려들었는지 어이없게 앞유리에 눈이 쌓여 있었다.

우리는 차를 타고는 어이없어 웃었다. 우리가 맞은 눈발이 앞유리에 달라붙은 눈송이처럼 앞머리에 처량하게 얼어붙어버린 것이다.


우리가 걷던 1분 혹은 그 2분 사이에.


일순 우리는 비장해졌다.

우리가 달려와야 할 도로는 꽤나 멀었다. 그리고 우리 집으로 가까울수록 언덕이 있었다.

그 애는 사뭇 비장하게 말 했다.

"우리 지금의 대화가 마지막일 수 있어."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여기서 너와 죽을 수는 없어.

사뭇 비장하게 목숨을 걸고 달렸지만 우리는 이내 깔깔거렸다. 원래가 그런 애들이었다.

그렇게 웃다 밖을 내다 봤는데 차들 조차도 전혀 다니지 않는 도로에 웬 젊은 여자가 큰 개를 산책시키고 있었다. 이날씨에? 실로 경악 스러웠다. 차조차 엉금엉금 기어가야만 하는 상황 이었다. 태생이 좀 게으른 데다 쓸데없는 것에 힘을 쓰지 않는 우리는 뭘 저렇게 수고롭게 사나 싶은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그리고 조금 더 가다 보니 또 다른 젊은 여자가 애가 꼬물거리는 유모차를 끌고 나와 담배를 피고 있었다. 저렇게 열정적이고 진취적으로 사는 여자들의 삶이란 과연 내것보다 풍요로울까, 궁금했다. 저 여자들의 패기가 인적이라고는 없는 도로 한복판 눈덩이 위에서 이글 거렸다.

그곳은 도시여서 사실 평범한 그 시간 날이 좋으면 높은 빌딩 사이로 웃통을 벗고 구릿빛 몸을 들어내고 뛰는 남자와 자전거를 타는 날렵한 여자, 운동복을 입고 막 짐에서 나온 남녀 커플과 개를 산책시키는 게이 커플들까지 와글거리는 거리였다.

그러나 그날은 죽었다 깨나도 개 산책과 담배를 포기할 수 없는 애엄마 만이 황망하게 거리에 나와 있었다.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여자들의 손에 이끌려 나온 개와 애의 축 처진 모습이 가엾게 보였다.


그리고 내가 주차장으로 간신히 뛰어가던 찰나 코너를 돌다 마주친 어느 남자.

그 남자는 한눈에 봐도 도시남은 아니었다. 스페니쉬가 많은 동네에 일거리를 찾으러 거리를 서성이며 시간을 보내는 그런 라티노 남자처럼 보였다. 두껍지도 않은 재킷을 뒤집어쓰고 이리 가거나 저리 갈 생각 없이 거기 그렇게 우뚝 서 있었다. 바람에 저항하며 뛰어가던 남자애 하나와 여자애 하나를 바라볼 뿐 움직임이 없었다. 언뜻 보인 옷깃을 부여잡은 손등이 발가벗은 채였다. 파리하게 얼어붙은 손이 괜히 안쓰러웠다. 나는 마음이 좋지 않았지만 뛰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 난리통에도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죽기 살기로 냅다 뛰는 우리가 그 라티노 남자로 인해 조금 호들갑스러워 보였다. 우리는 겁이나 뛰는 그 회오리장단 안에서 그만은 중심인듯 초연했다.


나는 차에 올라 탄 후 뉴욕의 노숙자들을 떠올렸다. 이 회오리 눈바람을 그들은 어떻게 견딜까.

젖은 머리를 털며 그 애가 말했다. "아마 여럿 죽겠지 오늘 밤에."


눈이 내린지 불과 3시간도 안된 시점이었다. 겨우 몇 시간 퍼부은 눈 때문에 죽는 사람은 없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예쁜 눈송이에 맞아 죽다니. 아름다운 눈송이는 잔인해서는 안된다.

일부러 그 눈보라를 뚫고 나온 여자들도 있는데 그런 여자들은 죽지 않고 살아 남을 텐데. 개와 애와 노숙자가 내내 아른 거렸다.


그러나 그 애는 노숙자가 아니라 자기 처지를 걱정 했다. 우리 지금의 대화가 마지막이 되지는 말자, 그 애는 다시 한번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한번 말 하지만 난 여기서 얘랑 죽을 수는 없었다. 내게는 기다리는 삶이라는 게 있었다. 기대하는 삶이라는게 있었다. 여기서 이 남자애랑 죽을 수 없는 아껴둔 내 미래가 있었다.


우리는 언덕을 죽기 살기로 달려 집에 도착했다. 정말 개미새끼 한마리 보이지 않는 도로 위의 밤은 재앙이 덮친듯 공포스러웠지만 집은 놀랍도록 평온했다. 그 눈과 바람과 죽음과 노숙자와 개와 애가 다 어젯밤 꿈처럼 모호해졌다.

나는 집에 와서 여러 사람에게 문자를 했다. 평소에 연락이라고는 하지 않는 내가 갑자기 너와 걔와 얘한테 문자를 했다. 심지어 어느 생면부지의 남자가 그 난리통 속에서 내가 살아남았는지 안부를 물어왔다.

같은 곳 같은 시간 같은 고통을 겪은 이들에게는 연대가 있었다. 상황이 지난 할수록 마음이 서로에게 오므라들었다.

괜히 또 한 번 노숙자를 떠올렸다. 그들에게도 안부를 묻고 싶었다.




이제 막 삶이 재미있어지나 싶은 날들이었다.

그러나 혹 한편으로는 그러지 못할까봐 낙심을 했다.

모든 일에 초연하기로 마음을 다잡았는데도 사소한 것에 마음이 납덩이가 되어 쿵 하고 내려앉았다 헬륨으로 가득 채운 풍선처럼 두둥실 떠올랐다 했다. 눈보라 속에서 죽기 살기로 달리던 찰나에 나는 낙심을 몰랐다. 나는 살아야 했다. 무조건 차가 있는 곳까지는 뛰어야 했다. 따듯한 실내에 들어가기 전까지 나는 달리는 것 말고는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않았다. 그순간 만큼은 나도 개와 애를 끌고 밖을 나온 여자들처럼 열정적이고 진취적이며 패기있게 삶을 갈구 했다. 살아야해, 살아 남아야만 해. 삶에 온 열정이 쏠렸다. 내가 했던 고민들은 그 눈보라 안에서 아주 하찮거나 사치스러운것이 되어 있었다. 하찮거나 사치스럽다는것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뜻 이라는 것을 그 눈보라 속에서 깨달았다.

그러나 죽고 사는 문제를 탈피하니 나는 다시 사소하거나 사치스러운 것에 일희일비하는 그저 그런 인간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겨우 앞머리에 얼어붙은 눈송이가 따듯한 히터 바람에 물이 되어 녹자마자 깔깔 댔다. 노숙자와는 다른 삶. 우리는 금방 안전해 질 수 있는 사람들 이었다. 날카로운 얼음이 금세 위협적이지 않은 물이 되어 버리는 인생 이라서 금세 두려웠다 웃었다 했다. 우리의 앞머리에 얼어붙은 눈송이가 힘을 고 녹아 버린 후에도 힛터에 얼은 몸이 노그라든 후에도 우리가 마치 무슨일이 있었냐는듯 따듯하고 평온한 집에 도착한 후에도 노숙자의 앞머리위의 얼어붙은 눈송이는 거기 그대로 단단하고 날카롭게 위협적인 채로 존재할 것이다. 그 생각을 하자 그 얼음에 베인듯 마음이 아팠다.


어쨌거나 우리는 모두 지난한 밤을 보내고 있었다.

걔는 남자지만 군대를 안 갔고 나는 여자라서 군대를 안 갔지만 우리는 뭉근한 전우애를 느꼈다. 우리는 평소에도 때때로 동지애를 느끼고는 했는데 이곳의 혹독한 눈보라가 전에 없던 전우애까지 덤으로 안겨준 것이다.


여기, 2020 뉴욕의 첫눈은 무서웠다.

그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작은 낙심을 경험했지만 이내 괜찮아졌다.

떨어진 마음을 얼른 주워 들었다. 어쨌거나 나는 도로 그것을 가슴에 품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만 했다. 오늘 나는 살아 남았으니 앞으로의 삶은 열정적이고 진취적이며 패기로운 그녀들 처럼 살아보자 다짐을 해본다. 쓸모없는 다집들이 인생에 쌓인다. 이내 사그라들 눈송이 처럼.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뜨거운 커피를 내려 마셨다. 그러는 와중에도 안부를 물어오는 문자가 왔다.

이 눈 보라 속에서 하마터면 함게 생을 마감할뻔 했던 친구와의 실없는 농담이 따듯한 집이 뜨거운 커피 한 모금이 그리고 그들의 안부가 그 밤의 공포에 이내 위안이 되어 주었다. 그때까지도 노숙자에게는 위협적이였을 그밤에 나만이 안전한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나에게는 이미 물이 되어 증발된 그 무해한 액체가 그들에게는 오랫동안 뽀족하고 날카롭고 단단한채로 위협적일것이었다.


부디 그 개와 애와 노숙자에게도 그런 위안이 있는 밤이기를 바랬다.



개와 애와 노숙자 사이에서 우리는 무사했음을,

감사한 밤이 저물었다.




올여름 호기롭게 사들였던, 미처 들여놓지 못한 뒷마당의 patio가 처량해 보여 미안했다




작가의 이전글 물 좋고 싱싱한 등푸른 고등어같은 남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