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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지윤 Jun 21. 2020

유린당한 꿈으로 지어진 밥값을 갚아야 할 시간

그녀의 시간과 손이 쓰임의 갈피를 잃고 말았다



엄마의 하루 루틴은 새벽 5시부터 시작된다.


그녀의 새벽 루틴의 시작은 오늘 아침 자신의 가족들의 배를 채울 쌀을 불리는 일로 열렸다.

그녀는 결혼을 하고 남편과 자식을 둔 이후로 단 한번도 이 루틴을 거른 적이 없다. 그러니까 그녀의 남편과 자식은 매일 아침 그녀의 잠과 맞바꾼 시간으로 지어진 새 밥을 먹고살았다.

그녀는 매일 밥을 불리고 짓는 일, 남편과 자식의 배를 채울 음식을 준비하는 일 다음으로 매일 하는 것이 또 있었다. 그녀는 그녀가 소유한 자그마한 땅뙤기에 무성하게 자라난 식물과 채소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그것들 역시 그녀의 밥을 먹고 살아나는 남편과 자식과 같은 존재였다. 그들도 남편과 자식처럼 그녀의 보살핌이 필요했다. 새벽이면 무조건 가족들이 먹을 쌀을 불리고 그 물을 들고 밭으로 갔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그녀의 남편과 자식에게 먹일 식량이었다. 우리는 그걸 먹고 자랐다.


ㅡ너희들도 먹고 자라거라.


풀들이 우리보다 먼저 식사를 했다. 그녀는 늘 말했다.


ㅡ식물은 주인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라는 거란다.


그녀의 밭은 늘 풍년이었다. 식물과 채소를 키우는 일은 여간 손이 많이 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목도 못 가누던 나를 먹이고 입히고 똥기저귀를 갈아주며 키워낸 것과 비슷했다. 지지대가 없으면 엉망으로 자라는 아이들에게 지지대를 만들어 주며 말했다. 


ㅡ아이도 자랄 때 어른의 손을 잡고 걸음마를 떼고 바르고 삐뚜로 나가지 않도록 길잡이가 되어주어야 하듯 이 아이들도 새싹이 나왔을 때 지지대를 해 주어야 한단다.


엄마 손을 놓지 않고 바른길로 따라가 자라난 나처럼 채소들은 엄마의 지지대를 타고 성장했다.

돌봄이 없는 아이들의 몰골은 흉했다. 올곧게 위로 뻗지 못하고 밭 이리로 저리로 제멋대로 자란 잎들은 부모를 잃은 아이처럼 처량했다. 엄마의 지지대를 잡고 자란 아이들만이 하늘과 가깝게 올라갔다.


우리 가족은 그렇게 시간과 공이 들어 자란 것들을 먹고 자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의 밥.

그녀는 매일 아침 새벽기도를 하듯 새 밥을 짓는다. 그녀에게는 모든 것에 정성과 규칙이 존재했다. 쌀알 하나하나에도 고마움을 표시했다. 자그마한 땅뙤기에 공을 들여보아 그런가 농부의 마음을 헤아렸다. 매일 새벽잠을 이기고 일어나 여인의 열 손가락 사이로 깨끗해진 쌀알들이 일순 물속에서 반짝하며 찰랑였다. 


ㅡ모든 일에는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한다.


물속에서 몸을 불린 아이들이 그녀의 손에 조절된 불 위에서 알맞게 익어간다.

매일 아침 우리 가족이 먹었던 밥의 맛은 기가 막혔다. 열 살 조카가 놀러 와서도 그 밥의 맛은 예술이라고 했다. 고작 열살인생, 뭘 안다고 밥맛을 평가하느냐던 그도 지금은 어른이 되었지만 우리 집 밥맛을 잊지 못한다. 그렇게 우리 집 인간들은 밥에 관하여라면 매우 까다로운 기준을 갖게 되었다. 어른이 되어 미국에서 자란 우리들은 한국인의 기본 힘은 바로 밥에서 나온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렇게 인고가 배인 밥을 먹고 자란 우리들이 허투루 혹은 삐뚜루 나갈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에겐 예외가 없었다.

전날 남편과 앙앙 거리며 싸운 후 다음날까지 끌어 오르는 화에 분노를 감추지 못해 하면서도 새벽에 기어이 일어나 시간과 정성을 들여 새 밥을 지었다. 그리고 부부의 작은 땅뙤기에 그녀의 남편과 함께 일구어놓은 채소들에게 물을 주고 그것들로 상을 차렸다.


그럼 아빠도 이 여편네가 이 와중에 밥 따위는 무슨, 할 법도 한데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꼭 그 밥을 꼭꼭 씹어 먹고 먹고 나갔다. 둘의 입은 꼭 다물어진 체였다. 밥을 짓고 밥을 먹지만 그런 날 아침은 그 밥을 먹는 것 말고는 입을 사용하는 법이 없었다.

그것은 무언의 화해의 제스처 같은것 이었을까? 그런 날 저녁에 퇴근하는 아빠의 손에 들린 검은 비닐봉지 안에는 귤 따위가 들어 있었다. 여전히 말이 없는 채로 식탁에 놓여지던 귤을 그녀가 집어 먹는 걸로 묵언은 겨우 24시간도 체 가지 못하고 허물어졌다. 그리고 역시나 막 지어진 밥과 시간과 공으로 자란 채소들로 차려진 밥을 먹었다.


우리는 늘 그 새벽녘 그녀의 손에 의해 새로 지어진 밥으로 귀결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의식하지 못했지만 매일 잠을 이긴 정성으로 밥을 짓는 여자의 가족들이 그걸 먹고는 삐뚤거나 허투루 사는 사람이 될 수 없었는지도. 우리가 먹던 정성은 우리를 함부로 망가지는 사람이 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사실 그녀에게는 다른 재주가 있었다. 그녀는 그림을 잘 그렸다.

그냥 두었으면 지금쯤 유명한 화가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당시로서는 조금 늦은 나이에 가난한 아빠를 소개받고 결혼을 했다. 그리고 나를 낳았다.

그녀는 처음 아빠를 소개받아 만났는데 용모가 매우 준수했고 특히 구두가 무척 깨끗했다고 했다. 그 깨끗한 구두를 보고 어쩌면 저런 남자와는 살 수 있을 거란 결심을 했다고 했다. 가난했지만 용모가 단정하고 품행이 방정맞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와 그녀는 그게 발등을 찍었다고 했다. 아빠는 말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단 한번도 밥투정 반찬 투정을 않는 남자는 오히려 재미가 없었다.


나는 가끔 생각했다 그녀가 그날 그의 구두를 보지 않았다면 그 일로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 나를 낳고 키우지 않았다면 그녀의 손은 이런 밥을 짓거나 채소를 키우는 일로 허망하게 허비되지 않았을텐데.

그녀의 손가락이 갖은 재능은 그날들로부터 소멸되어갔다.


어쩌면 그림을 그리고 작품을 만들어야 될 손이 허공에서 길을 잃고 죽어가는 절망을 견디려 남들보다 노고를 할애해 자신을 꿈과 바꾼 가족들의 밥을 짓고 채소를 키우는데 매달렸는지도 모르겠다, 고 생각했다. 소멸되는 재능을 어디에라도 붙들어 매야 했던 것이다. 그 꿈을 함부로 뭉개버린 남편과 자식이 먹고 자랄 밥으로 라도 말이다.


그녀는 모든 음식을 제 손으로만 했다. 그리고 제 손으로 물을 주고 길러낸 것들로 만 했다. 우리 집 저장고에는 모두가 엄마 손에서 자라난 것들로 채워져 있었다. 어쩌다 겉절이좀 버무릴라 치면 손에 잡히는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 따위는 모두 해를 넘기고 땅속에서부터 그녀의 대지를 이기고 자라 나온 것들이었다. 모든 과정에 그녀의 손이 거친 아이들. 물감으로 얼룩지고 붓이 들려야 마땅했을 그녀의 손이 흙과 식재료에 고꾸라 지고 있었다.


마치 어느 시골 전원 풍경 같은 소리지만 그녀는 서울에 산다. 그리고 심지어 그녀는 서울 출신이다.

결혼 하기 전에는 밥 한번 지어 보지 않은 그녀의 손이 밭에서 허비되고 겨우 밥을 짓는 일에나 정성을 들인다는 것에 나는 일말의 가책이나 책임을 느껴야 했다.


문을 열고 조금만 나가면 모든 농산물이 손질되어 상품이 된 채소들이 즐비한 마트가 있었다. 농사는 짓는 것도 구경하지 못하고 자랐다는 그녀가 왜 그렇게 시간과 노력과 손을 필요로 하는 일에 매달리는지 어릴 때는 몰랐다. 아니 궁금해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우리는 물어온 지렁이를 쩌억 벌린 입으로 받아먹기만 하면 배가 부르고 절로 크는 아기새 같았다.


어쩌면 그것은 그녀가 절망을 견디는 방법이었다.


장롱 한켠에는 그녀의 그리다 만 그림들과 더 이상 기능을 하지 못하는 붓과 도구들, 차마 버리지 못한 최소한이 남겨진 그녀의 도구들과 시와 스케치가 여백 없이 빼곡했던 수첩과 그녀가 젊은 시절부터 모아두었던 영화 포스터들이 가득했다.


어릴 때 나는 늘 그 옷장의 한 구석이 궁금했다.

그녀는 좀처럼 그것을 꺼내 보지 않았다. 나는 호시탐탐 그곳을 노렸지만 그녀는 절대 보여 주지 않았다. 그곳은 마치 판도라의 상자 같은 것이었다. 그 장롱은 그저 어느 누구의 집에도 있는 장롱이었다. 그 구석을 제외하고는 제 기능을 했다. 옷을 꺼내 입고 이불을 개어 넣고 빨래를 개 집어넣고 내가 늘 궁금하던 그 한 구석을 제외하면 그 장롱은 하루에도 수없이 열렸다 닫혔다 제 할 일을 했다. 장롱을 열어보기 위해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먹을 일 따위야 없지 않은가. 나는 늘 거기가 궁금했다.


아주 가끔 한번씩 그녀는 그곳의 일부를 보여주었다. 오랜만에 빛을 본 붓은 모습이 처연했다.

한때는 살아 움직였던 동물의 털로 만들어진 고급 붓은 그렇게 옷장 속에서 벌레에 파 먹히고 있었다. 우리 가족이 그녀의 꿈을 파먹듯 파 먹힌 붓을 처연하게 바라보는 것 말고는 도리가 없었다. 아주 가끔 빛을 본 털들은 날이 갈수록 숫이 줄어들어 있었다. 그리고 많은 그림들이 이모의 집에 가엽게 방치되어 있었다.


그녀가 왜 그 장을 자주 열지 않았는지 이제 나는 알것 같다.

그녀가 손에 붙들고 시간과 힘을 써야 할 것들이 거기 그곳에서 잠들어 갔다.

제기능을 상실한 손은 가족의 밥상 위 가족을 먹이는 일에 쉬지 않고 써버렸다.

자신의 꿈과 자신의 재능을 툭, 부러뜨려야 했던 이유인 남편과 자식에게 먹일 밥으로 한을 푼 여인. 우리는 그녀의 가엽게 접힌꿈의 한이 담긴 밥을 먹은 셈이었다.


몇 년 전 아빠가 이유도 없이 아픈 적이 있었다. 이유 없는 구토와 설사는 결국 아빠를 중환자실까지 가게 만들었다.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고 몸은 심하게 말라갔다. 병원에서 그녀에게 하는 말은 이유를 알 수 없고 아무래도 오래 버티지 못하실 것 같다는 말까지 전해 들었다. 이유는 병원에서도 원인을 알아야 병을 고치는데 원인을 모른다고 했다. 그저 먹지 못하고 의식 없이 하루하루 말라가기만 했다. 그때 나는 미국에 있었다. 몸만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당시 나는 이유도 모를 우울감에 빠져 있었다. 그냥 하루가 무기력했던 무렵 이렇게 하루가 이틀이 되고 평생이 되는 거면 인생은 살 가치도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떠 올랐다.


그때 글로리아라는 세례명을 갖고 있던 그녀는 무슨 마음이었는지 무당을 찾았다고 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자만 그때 무당은 신이 니 남편을 데려갈지 니 자삭을 데려갈지 한다, 했다고 했다.


꿈을 꺾고 얻은 남편과 자식을 키우고 지키는게 전부가 된 그녀는 누구보다 강했다.

아빠가 병원에 있는 동안에도 그녀는 병원과 집을 오가며 새벽밥을 지었다. 나는 미국에 있었고 아빠는 병원에 있었지만 그 밥은 서로 뿔뿔이 흩어진 그녀의 끈을 모아 힘을 내는 방법이었다.

언젠가는 이밥을 먹을 아빠를 생각했고 미국에서 제 손으로 밥을 해먹을 나를 생각했다.

아무것도 멋지 못했지만 진짜로 밥이 없으면 먹고자 해도 먹을 것도 없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함이었으리라.


병원에서 더 이상 차도가 없으니 그만 집으로 모시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온 아빠는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엄마는 새벽밥을 지었다. 어차피 자신도 먹지 않을 밥이었지만 그것은 그동안 우리 가족의 힘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날 정말 기적처럼 갑자기 아빠가 정신을 차렸다.

그때 아빠가 했던 첫마디가 배고파 였다고 했다. 평소 아빠는 배가 고프다는 말을 한번도 한적이 없다.

그녀는 그날부터 무척 분주해졌다. 다시 밥상을 차리는 일로 하루를 시작했다. 아빠는 조금씩 조금씩 차도를 보여갔다. 그것은 거의 기적 같은 일이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 아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때쯤 나의 무력감도 나를 따라붙던 속도가 느려지고 멀어져 갔다.


병원에서 놀랐다고 했다, 아빠의 주치의는 꽤나 쾌활하고 서글서글한 사람이라고 했는데 아빠를 볼 때마다 되려 어떻게 나았냐고 그녀에게대고 물었다고 한다.


ㅡ어머니가 살리셨네요. 그녀는 병원에서도 정성을 다 했으리라.


어쩌면 그때 글로리아라는 세례명을 가지고도 무당을 찾은 절박함만 남은 그녀는 꿈을 접고 밥을 지어 먹이던 힘으로 남편과 자식을 고른다던 그 신이라는 존재를 위해 밥을 지었는지도 모르겠다. 정성이 부족해 노했다는 그 신을 위해서 매일 새벽기도를 가는 심정으로 남편과 자식의 밥을 해 먹이던 그 마음으로 병원으로 미국으로 흩어진 그 전부를 지켜달라는 절박함으로 우리는 아무도 먹지 못할 그 밥을 제발 도와달라는 심정으로 지어 올린게 아닐까.


그녀의 정성은 나를 이렇게 건강하고 바르게 길렀고 아빠를 살렸고 밭에 자라는 모든 풀들을 키웠고 신도 물러나게 했다. 그 정도면 하늘도 감동할 만하다 싶은 질기고 모진 정성. 아빠는 오늘도 새벽부터 지어진 밥을 먹고 그들의 밭에 허드렛일을 하고 하루 두 시간씩 산책을 한다.


그녀의 밥이 우리를 살린 셈이다.


지금 나는 그때 구두가 깨끗했던 남자와 결혼을 결심하고 나를 낳으며 꿈을 접던 그녀 나이가 되었다.

나는 먹이고 입힐 남편과 자식이 아직 없어 다시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엄마와 달리 어느 순간 그림을 접고 회유를 했지만 결국 엄마가 꿈을 꺾던 나이가 되어서 나는 꿈을 펼치는 호사를 누린다. 그것은 모두 그녀의 정성과 꺾인 꿈과 분절된 재능 따위로 유린당한 그녀의 인생이 값을 치루어 가능한 일이었다.


그 밥을 먹고 자란 딸은 그녀를 유린해 얻은 전리품을 가지고 기껍게 꿈을 이룬다.

착취, 고작 자식이 되어 하는일은 그런것 따위 였다.


그녀가 고급진 손으로 한 밥을 씹어 삼킨 것을 먹고 자라 그녀의 외피를 보호막으로 호식을 누리다 이제 사람 좀 되었나 하여 겁도 없이 그 뱃속을 박차고 나온 핏덩이가 자라 그때 그녀의 나이가 되었으니 나도 결심이 필요했다.


이 겁없는 핏덩이를 키우기 위해 내팽겨친 그녀의 꿈, 그녀 자신이 아닌 아내나 엄마로 살기 위해 함부로 버려진 그녀의 꿈을 내가 주워다 쓰기로 했다. 그녀가 더 이상 그녀가 아닌 아내나 엄마로 살기 위해 분절된 그 시점에 다가가 그것을 내 손으로 깁어 쓰기로 했다. 그녀의 손이 놀아나야 할 그 꿈을 펼치지 못한 한으로 지어진 밥을 먹고 되어버린 그녀의 나이. 나에게는 책임이 있었다.


유린당한 그녀의 꿈으로 지어진 밥값을 이제는 갚을 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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