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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hayn May 09. 2022

시소 놀이

Teeter-Totter Wall

정치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은 하이데거에 큰 영향을 받아 근대정치를 비판하고 고대정치를 찬양하는 경향을 보였다. <호모 사케르>를 통해 그는 유럽과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구 근대정치의 기원을 추적하고 그것들이 근원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근대 국가들의 내장된 메커니즘으로 인해 ‘벌거벗은 생명'은 끊임없이 생산되고, 서구 근대정치의 이러한 본질은 홀로코스트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생명life을 두 종류의 단어로 구분하여 사용했다. 동물적 생명을 뜻하는 조에zōē는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삶을 의미했으며, 비오스bios는 정치 공동체에서 하나의 구성원으로서의 삶,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적 삶을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상적 폴리스의 건설은 비오스에 근거해야 하며 개별 인간을 비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고 했는데, 조르조 아감벤이 고대 정치가 위대했다고 생각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프랑스 인권선언을 포함해 많은 국가에서 천부 인권을 선험적으로 인정하는데 이는 한 인간을 ‘태어남' 이라는 생물학적 사실에 근거해 정치계로 포함되어 생물학적 삶을 강제로 영위하게 한다. 국가가 조에의 문제, 안전과 생존 문제를 보장하는 것은 겉보기에 정치 영역의 확대 같지만, 역설적으로 내부는 빈약해져 생물학적 삶에 근거하게 되어버린다. 벌거벗은 생명이 정치적 삶의 가장 밑바닥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국가는 단지 생존할 수 있는 권리만 부여하는 권력을 갖게되고, 권력은 가치없는 생명, 벌거벗은 생명을 만든다. 호모 사케르는 성스러우면서 저주받은 인간으로 제물로 바쳐지는 것은 허용되지 않지만, 그를 죽이더라도 죽인자가 살인죄로 처벌받지 않는다. 인간 사회 내에 있지만 인간 사회에서 배제되어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다. 권력자는 스스로를 위해 호모 사케르의 존재를 설정한다.


우리는 늘 장치에 둘러쌓여 있다. 조르조 아감벤은 작용과 반작용의 이항대립에서 벗어나 기계 자체를 중단시키는 것을 요구한다. 기존 장치를 역장치화하고 무력화 하는것, 기존 권력을 최소화하고 장치들로부터 거리를 인지하게 하는 것. 잠재태가 양자선택에서 벗어나 불확실할 때, 유동성을 가질 때 현실태는 가장 큰 힘을 갖는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것이 예술이다.


예술은 배타적인 권력의 점거를 흐뜨리고 공공의 영역으로 전환한다. 옛 기무사령부터를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안기부 자리를 한국예술종합학교로 바꾼 것이 그 예다. 예술도 하나의 장치이지만 기존의 장치의 작동 방향을 중단하고 무력화 할 수 있는 특수한 장치다.


‘세속화profanation’는 성스러운 것의 신성성을 훼손시켜 공공의 것으로 되돌리는 것으로 근대의 종교와 세속을 구분하는 라이시테laïcité와는 구분해 사용한다. 아감벤은 자본주의가 내재한, 극단화된 형태로 포함하고 있는 종교적 형식에 주목해 자본주의가 하나의 종교처럼 작동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또한 “세속화 한다는 것은 단순히 분리를 폐지하고 지운다는게 아니라 분리를 새로운 사용에 집어넣는 것을 배우는 것”이라며 분리선 자체를 문제삼고 이것을 드러내고 사용방법을 무력화하는 것으로 세속화에 대한 더 엄밀한 정의를 내린다. 이로써 예술은 분리하는 선을 발견하고 그것을 비활성화하는 동시에 장치의 포획을 비판하는 이중적 과제를 부여받는다.


"We will build a wall and Mexico will pay for it." 도널드 트럼프가 불법 이민자들의 밀입국을 막기위해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내선 공약이다. 트럼프는 기존에 있던 장벽보다 더 높고 견고한 장벽을 만들어 멕시코로부터의 밀입국자들을 막겠다고 선언했다. 중남미로부터 불법적으로 유통되는 마약 문제를 해결하고 범죄자 퇴로를 막으며 효율적인 이민정책을 실행할 수 있으리라는 낙관적 전망을 담았다. 하지만 불법적인 이민과 범죄 문제는 단순히 장벽을 짓는 것 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복잡한 사회문제로 비용문제와 외교적 갈등을 피할 수 없을것이라는 우려가 있었고, 그 결과 각계의 반발을 불렀다. (미국 관세 국경 보호청(US Customs and Border Protection)에 의하면 2020.10.6 기준 15마일의 새로운 경계 벽이 건설되었는데 이는 트럼프가 약속한 2,000마일과는 거리가 멀다. 현재 대통령 당선이 유력한 조 바이든 후보는 트럼프 대통령의 장벽을 허물지는 않지만 더 이상 확장하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어느 토요일, 캘리포니아의 교수 Ronald Rael과 Virginia San Fratello는 "Teeter-Totter Wall"라 이름 붙인 핑크색의 시소(Teeter-Totter)를 장벽을 가로질러 설치했다.그림1 국경 근처 주민들, 특히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시소로 몰려들어 시소를 탔다. 그저 즐거운 얼굴로 국경 너머의 낯선 이와 함께 오르락 내리락 하며 놀이를 했다.



국경은 국가의 경계다. 국가에 대한 규정은 그 수만큼 다양하고 모호하지만 분명한 영토와 영속적 인구, 외교적 활동을 하는 정부(또는 어떠한 단체)를 그 구성 조건으로 전제한다. 자본주의는 많은 국가들에서 순환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그 장치는 사유재산을 만들고 대개의 경우 국가는 이를 보호한다. 국경은 이를 수호하기 위한 국가적인 장치로 벽wall 이자 문gate이다. 국경은 보호하면서 동시에 배척하는, 열림과 닫힘이 교차하는 이중상태로 양립한다.


시소 놀이를 통해 문과 벽은 목적을 상실하고 역설적으로 자유로워졌다. 시소 놀이는 단순히 장벽 자체를 폐지하는 것이 아닌 그것을 인지하고, 그 자체를 문제삼아 탈연쇄화했다. 아이들은 무심하고 소홀하게 놀이의 사명을 다했다. 부주의함을 부추긴 시소놀이는 장벽의 경계를 해체하고 세속화했다. 예술의 이중적 과제를 완수한 것이다.


그러나 예술은 장치를 무화시키고 행위doing를되돌리는undoing 역할에 그치지 않고 ‘창조’의 단계에 이르게 한다. 기무사령부터를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안기부 자리를 한예종으로 되돌렸지만 일제가 점거하기 훨씬 전에도 누군가의 소유, 점령당한 어떤 것 이었다. 그리고 이미 엔트로피가 상승한 대상은 그 전의 상태로 되돌아 갈 수 없다. 따라서 무력화는 무의미하며 ‘재 정의’하는 ‘창조’만 있을 뿐이다. 태초의 땅인 에덴동산은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를 탄생시킨 아담의 이름짓기가 주체와 대상을 바꾸어 반복될 뿐이다.




참고문헌

조르조 아감벤, <세속화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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