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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hayn May 09. 2022

Starry Beach

a'strict, 국제갤러리, 2022

개념은 경험을 참조하며 진행된다. 철학은 과학의 인식적 경험과 예술의 심미적 경험, 두 영역을 참조하는데 두 경험은 갈등하며 상보적 관계를 유지한다. 심미적 경험은 반성적 판단으로 예술가에게 발견과 창조를 가능하게 한다. 니체는 그의 저서 『비극의 탄생』에서 ‘세계는 오직 미적인, 감각적인 현상으로서만 긍정된다.’며 심미적 경험의 중요성을 말했다.


창작자의 의도와 수용자의 해석, 작품의 위상은 예술을 예술이게끔 하는 구성요소로 순환적인 구조를 가진다. 들뢰즈는 예술작품 내의 조건을 사유하고 설명하고자 했으며 예술의 형이상학을 전개했다. 오늘날 창작자, 작품에서 벗어나 수용자에게 예술작품의 판정을 맡기는 현대미술의 관점에서 보면 일면 구시대적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요소별 중요도에 따라 풍부한 감상과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들뢰즈의 주장은 여전히 유효한 것 중 하나다.


사실상의 문제는 경험을 설명하고, 구체적 사례로 말하는 반면 권리상의 문제는 경험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을 탐색한다. 실체, 술어라는 범주가 인간 인식의 조건으로 프로그래밍 되어 있어서 예술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과정도 인간의 마음 안에서 일어난다고 설명할 수 있다. 인간의 마음이 특정한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아름다움은 지극히 인간적인 형상이다.


칸트는 예술 철학의 문제를 권리상의 문제를 탐구하는 것으로 보고 인간 정신을 주체의 주관적인 곳에서 찾고자 했다. 반면 들뢰즈는 제3의 차원, IDEA라는 관념적, 이념적 차원에서 예술의 의미를 탐구했다. 물체적인 차원으로 예술작품은 실존하지만, 관념적 차원에서 예술은 지속하고 자기 안에 스스로 보존된다. 각각의 존재방식은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작품을 예술작품이게 하는 핵심 구성요소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된다.

예술작품은 이처럼 스스로 서 있을 수 있는, 자기-정립이 가능한 것으로 감각의 블록, 즉 percepts와 affects의 구성체이다. 인간이 인격적 차원에서 경험한 사실의 현실적 일인 perception과 affection으로부터 인간과 무관한, 비인격적이고 잠재적 세계인 percept와 affect가 추출된다. 감각작용 어딘가에서 포착되는 순수한 감각 대상의 요소들인 percepts와 affects는 하나의 존재로 인식되며 창작자는 물질을 통해 이를 잘 표현될 수 있도록 표현하며 해석자는 작품 안의 percepts와 affects를 잘 끌어낸다.


서양 철학은 실체와 속성으로 구성된 주어-술어의 기본 구조를 가진다. 세상을 정적으로 보고 정적인 상태를 실체에 귀속시킨다. 반면 들뢰즈는 주어-동사를 최소한의 형태로 세계가 끊임없는 변화, 생성, 과정으로 가득 차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들뢰즈 예술의 형이상학에 따르면 예술은 재료가 지각 또는 정서를 자기 안으로 받아들이는 사건, 지각이나 정서가 재료 위에 도래하여 뒤섞이는 사건으로 어디서부터 시작되고 끝나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들뢰즈는 기존 형이상학이, 사건, 변화를 생각하는데 무력했음을 지적하며 그것을 포착하는 개념을 기억을 통해 만들고자 했다. 기억은 예술에 관여하지 않으며 현재의 변형, 도래할 사건을 위해 작동한다. 기억한다는 것은 그것을 불러오는 것으로 현재에서 ‘아이 되기’로 사건의 생성과 현재의 잠재성을 드러낸다. 되기는 횡단적으로 작용하며 두 개 이상이 쌍으로 일어난다. Affect의 교환, 탈취를 통해 ‘되기’가, 인간성이 사라지면서 ‘생성’이 일어난다.


미디어 아티스트 그룹 에이스트릭트a’strict는 2020년 국제갤러리에 대형 멀티미디어 설치 작업인 <Starry Beach>(2020)를 선보였다. 블랙박스blackbox로 변신한 갤러리를 별처럼 눈부시게 빛나는 파도와 그 소리로 가득 채워 초현실적인 풍경을 만들었다. 힘차게 들이쳤다 사그라지는 파도의 움직임은 관람객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경험을 제공하고 자연 너머의 신비로운 상상하게 한다. 


   Starry Beach 2020


에이스트릭트는 선두적인 미디어아트 기술을 바탕으로 인터페이스와 디스플레이를 결합한 콘텐츠를 제작하는데 역설적이게도 작업 대상은 자연이다. 첨단의 기술로 현대미술이 결별을 선언한 자연의 모방을 답습한다. 형식적으로 6m 높이의 공간을 압도하는 설치미술이지만 내용은 한폭의 풍경화인 것이다. 반면 들뢰즈는 이렇게 말한다. “이미지는 어떤 전제된 현실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예술은 그 자체로 전적인 자신의 현실성을 갖는다.” 들뢰즈에게 예술은 문화의 허구나 인류학적 기준이 아니라, 질료 속에 감응이 살아 생동하게 하는 주체화 효과로서의 공속성과 순수성을 가진다. 예술은 실재이며, 형태가 아닌 힘의 평면에서 실질적 효과들을 작동시킨다. 들뢰즈에 따르면 <Starry Beach>는 자연의 파도와 블랙박스를 넘어 작가가 창조한 제3의 공간, 그곳으로 관람객을 이행시켜 주체를 생산하고 변신하게 한다. 이상적인 제3의 지각세계를 만들고 관람객을 그 안에 존재하게 한다. 넋을 놓고 보게 되는 가득 찬 파도의 불빛과 소리에서 관람객은 자연을 초월한 경험을 한다. 


작품은 외부세계로부터 단절된 블랙박스에 설치되었는데 물리적 공간에 관람객을 가두고 의도된 affects와 percepts를 추출하도록 강요한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해볼 수 있다. 물론 갤러리에 방문한 것은 관람객의 선택이지만 블랙박스에 들어선 순간 감상으로 가득 찬 세계에 파도와 함께 떠밀려간다. 동시에, 작품의 의도는 단순하고 명확한 편이어서 해석자가 지각하고 감상할 수 있도록, 예술작품의 의미를 찾도록 노력하지 않더라도 느낄 수 있다. 직설적인 메시지는 작가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다분히 정치적이며 의도적이며 계산된 것이다. 이때의 percepts와 affects는 관람객이 본인의 것이라 믿고 있는 착각이 아닐까? 그 물음은 ‘창조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감상을 강요하는 것 같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관람객 개인의 경험과 역사는 개별적이며 주관적이어서 예술을 예술로 만드는 과거의 기억은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주체의 기억이 작동하여 현재의 잠재성을 드러내고 사건을 생성하기에 예술가의 의도를 창조하는 것은 결국 모두 다른 개별 관람객이다. 그들은 무의식/의식적으로 과거를 활용하고 탐색함으로써 블랙박스의 작품을 새롭게 보고 그 순간을 창작한다. 


Starry Beach 2020


물체적 차원에서 <Starry beach>의 재료는 0과 1, 개발되고 작성된 코드다. 관념적 차원에서 작품은 초월적 경험으로 존속한다. 예술은 지각 내지 정서를 자기 안으로 받아들이는 사건이며, 지각 내지 정서가 재료 위에 도래하여 뒤섞이는 사건으로 어디서부터 시작되고 끝나는지 알기 어렵다. 모든 물질은 고흐의 노란 물감이 광기를 나타내듯 표현적이다. 물체는 시간 바깥에서 끝없이 생성하고 소멸하며 동사의 형태로 존재한다. <Starry beach>는 파도라는 표현 대상으로도 이를 여실히 표현하고 있다. 제 3의 고유한 차원에서 영원성을 향유하며 관람객의 상상력에 파도를 치게 만든다. 


코로나 시대에 온라인 전시, 온라인 아트페어 등 예술이 온라인을 통해 관객과 만나기에 힘쓰고 있지만 가까워지려는 노력만큼 더 멀어진 것 같은 느낌이다. 그 원인은 affect의 교환, 탈취를 통한 ‘되기'의 부재에서 찾을 수 있다. 다행히 에이스트릭트의 작품은 직접 경험하고 감상할 수 있었지만, 온라인에 갇혀 percept 되지 않는 작품, affect가 생성될 수 없는 전시들을 보며 오늘날 예술이란 무엇인가? 에 대해 고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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