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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hayn May 09. 2022

공든탑

고요하고도 진실한 욕망의 탑으로부터






등산길에 으레 쌓여있는 돌탑은 무수한 익명이 무한한 시간동안 쌓은 개인의 욕망과 염원의 집합체다. 사람들은 돌이 지닌 주술성을 믿으며 정성스레 하나씩 쌓아 올린다. 작은 돌멩이 하나마다 인생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렇게 쌓인 돌들은 시간을 지나 하나의 형태로 견고해진다. 돌탑은 겹겹의 욕망을 드러내며 새로운 풍경을 자아낸다. 산과 어우러지며 만들어낸 고요하고도 진실한 욕망의 탑으로부터 <공든탑>은 시작되었다. <공든탑> 시리즈는 돌탑에 드러난 짙은 욕망을 일상적 노력에 빗대어 표현했다. <공든탑>은 세 가지 버전에 걸쳐 개인과 사회, 그리고 공간의 다양한 관계 맺기 방식을 보여준다. 동시에 다양한 공간에서 점유 방식을 유연하게 바꿔가며 확장한다.


공든탑Ⅰ 2018



첫 번째 공든탑인 <공든탑Ⅰ>은 돌탑의 원형을 적극적으로 차용하되 자연의 돌이 아닌 건축적 재료를 사용했다. 마치 건물의 기둥 같은 나무 각재를 중심으로 우레탄 폼과 모래, 자갈 등을 오랜 시간 공들여 쌓아올렸다. 모래 한 톨, 자갈 한 알과 엉겨 붙은 우레탄 폼은 테이블로부터 더 멀리, 더 높이 솟아오르고자 처절하게 매달린다. 주목해야할 것은 탑이 놓인 장소와 그 규모다. <공든탑Ⅰ>은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탁 위에 놓여있다. 방 한편에 놓인 테이블은 개인적인 관계를 가능하게 한다. 그 관계는 얼굴을 마주하고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서 일어날 수 있는 규모의 사적인 해프닝이다. 마주보고 앉은 누군가는 마치 장기말을 두듯 신중한 태도로 다양한 재료를 쌓아올렸을 것이다. <공든탑Ⅰ>은 수행자에게 허락된 공간의 크기만큼 가능성의 여지를 남긴다. 


공든탑Ⅱ 2018


<공든탑 Ⅱ>은 전자의 공 功 들인 탑을 부정하고 <공든탑Ⅰ>을 뒤집고 부풀린다. 말 그대로 ‘텅 빈空 공ball을 든 탑’이라는 의미도 되는데 처음의 성실한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고무공에 펌프로 공기를 주입해 손쉽게 커다란 탑을 만들었다. 가벼운 고무공들은 여러 개의 의자와 결합해 어지럽게 놓였다. 의자들은 뒤집히거나 누워버려 원래의 역할을 상실하고 그저 공을 두기 위한 수단이 된다. 엔트로피는 증가하고 공든탑은 무질서해진다. <공든탑 Ⅱ>는 사적인 공간을 넘어 공公 적 실외 공간에 배치되어 관계를 확장시킨다. 강렬한 색을 가진 가벼운 공은 존재감을 과시하고 유희하며 구른다.


공든탑Ⅲ 2018


<공든탑 III>은 관객의 참여로 완성된다. 워크숍을 표방해 ‘스케치업 SketchUp’ 강의를 했다. 스케치업은  3D 제작 프로그램으로 비전문가도 비교적 쉽게 입체 형태를 만들 수 있어 여러 방면에서 많이 사용된다. 사전 신청을 통해 모인 참가자들에게 프로그램 안의 x, y, z 축을 기준으로 공간을 이해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기본적인 그리기 툴을 설명해줬다. 짧은 강연 후 참가자들과 함께 가상의 좌표 공간에 오브제를 쌓아 올리며 탑을 만들었다. 3D 공간 안에서는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무제한의 탑을 쌓을 수 있다. 


공든탑은 끊임없이 새로움을 찾아 탐험을 떠난다. 전시장에서 외부로, 공공 공간으로 때로는 지극히 사적인 공간으로의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던 공든탑은 이제 가상세계인  메타버스Metaverse로 흥미로운 시선을 보낸다. 메타버스는  진짜Virtual 이면서도 허구Virtual 의 것이다. 혹자는 ‘가상’세계이기에 형이상학적으로 ‘없다’라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하기도 하지만, 있으면서도 없는 아이러니의 지점에 메타버스는 분명 존재하고 있다. 이미 ‘세계universe’로서 명명되었고 다양한 목적에 의해 적극적으로 경험되고 있다. 또한 가상공간의 특정 부분(땅, 즉 가상의 부동산)은 가치에 따라 지불되고 점유되며 그곳으로부터 연속적인 관계가 발생하고 있다. 메타버스에 쌓는 <공든탑>은 원시적 염원의 형태가 메타버스에서도 유효한지, 인간은 새로운 공간에서 어떤 모험을 하게 될지 그 다음 공든탑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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