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민 작가 인터뷰
대안공간 루프 전시 작가 공모 선정 전시
2023. 6. 16 - 7. 16
대안공간 루프
대안공간 루프는 실험 정신을 기반으로 한 역량 있는 신진 작가를 지원해왔다. 그간 다수의 작가를 지원해왔고, 선정된 이들은 저마다의 시선을 담은 개성있는 작업을 선보였다. 올해는 사진을 기반으로 현실을 조망하며 예술적 실천을 이어오고 있는 정찬민 작가가 공모에 선정되었다.
우선 작가 공모 당선을 축하드린다. 사진을 공부한 작가는 ‘이미지’를 주요 소재로 다루며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이번 전시는 이전 작업에 비해 규모나 형태 면에서 새로운 시도가 더욱 돋보인다. 그간의 작업이 어떻게 전개됐는지, 이번 전시의 차별점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초기 작업부터 사진이 만드는 이미지에 한계를 느껴 이미지 밖의 촬영자로서의 ‘나’라는 존재와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물리적인 과정을 드러내기 위한 작업을 꾸준히 했다. 2016년의 〈반사된 공간 사이〉가 그러했고, 2021년 발표한 〈현상된 움직임〉에서는 특히 그러한 면이 두드러진다. 겉보기에 이전과 다를 수 있지만 이번 전시는 프레임 밖으로 탈주하려는 지속적인 과정의 일환이며, 이전의 주제로부터 확장하여 ‘행동함’, ‘행동하고 있음’ 그 자체를 확인하고 확인 받고자 하는 작업적 구조를 이어가고 있다.
작업을 들여다보며 질문을 이어가겠다. 개인의 일상이 설치 구조물 〈행동부피〉의 크기를 결정한다. 무의미하게 여겨졌던 신체의 움직임, 일상적인 행동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인데 휴대폰 사용량 추적 애플리케이션이 가시화된 것 같기도 하다. 사실 그것을 보면 “내가 이렇게나 쓸데없는 짓(주로 SNS)을 많이 했다니!” 하는 생각 때문에 한심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작가는 이러한 가치 없다고 여겨지는 행동을 왜 주목하게 되었나.
팬데믹 당시 격리된 생활이 영향을 많이 끼쳤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이전에는 안 보이던 것들, 인지되지 못한 활동들을 눈여겨보게 되었다. 대부분 경제적이지 않고 이익 창출과 거리가 먼 행동이었지만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여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개인의 일상을 대중으로 확대해 저마다의 소외된 행동을 시간으로 계산해 풍선을 만들었다.
풍선이 천장에 매달린 모습이 나비가 되기 전 번데기 같기도 하다. 번데기는 성체로 진화하기 위해 준비 중인 상태를 이르는데, 작가가 정의한 소외된 행동 역시 결국은 경제 가치 창출을 위한 준비단계는 아닐지.
풍선의 형태와 관련해 다양한 추측이 있었다. 번데기뿐만 아니라 열매나 괴생명체 같다는 말도 들었다. 사실 모양은 부차적이고 중요한 것은 풍선을 부풀리는 ‘모터’다. 무가치하게 여겨지는 행위들이 이 모터를 통해 생산성 있는 무엇인가로 변환되기를 바랐다.
사회의 경쟁에서 벗어난 인간의 무기력함이 느껴지는 동시에, 그것을 거스를 때의 쾌락이 느껴지기도 한다. 의무와 권태로움 사이, 작가의 삶은 어떤 모습에 가까운가?
나는 생산성과는 거리 먼 편이다. 자본주의에 적합하지 않은 인물일지도 모르겠다. 약간의 자기 합리화지만, 작품을 통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성실하게 매일의 성장을 일구는 것만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소외된 행동과 자본은 무관하다고 보는가?
특정 행위와 자본의 연관성을 따지는 일은 쉽지 않다. 쉬는 순간에도 OTT 플랫폼에서 영상을 보는 것처럼 하나의 행동에는 여러 가치가 혼재되어 있기에 명확히 구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초기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면서 작품을 자본주의나 산업화에 국한하기보다 일상의 시간을 시각화하는 것 자체에 신경을 썼다.
같은 맥락에서, 자본의 축적과 개인의 행복이 비례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자본은 삶에서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기도 하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 경계하는 것은 무엇인가.
돈은 삶에서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며, 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극단화된 자본 위주의 세계에서 우리가 놓친 것은 없는지 검토하고, 속도와 성장만을 추구하기보다 다른 가치들을 고민해보는 것을 제안하는 것이다.
작가가 요즘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상적인 행동은?
추석이와 시간을 보내는 일. 늦은 밤 추석이랑 놀아주고 하루를 마감하는 게 저녁 루틴이었는데 한동안 전시 준비로 바빠서 지키지 못했었다.
플랫폼의 발달과 고도화된 비대면 사회는 인간에게 많은 편리함을 가져다주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노동력을 더욱 착취하고 있다. 택배 산업은 이러한 역설적인 상황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례다. 〈행동 부피를 위한 탑〉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택배 노동 관망하는 작업이다. 작품은 어떻게 제작되었나.
전시를 준비하며 실제로 받은 택배 상자를 3D로 촬영해 만든 탑으로 만들었다. 기획 단계에서 고민의 시간이 길었다. 택배는 계속 쌓이는데 손에 잡히는 결과물은 없고 혼자만의 치열한 시간이 계속되었다. 물리적으로 쌓이는 건 없었지만 내가 작업하고 있음을, 고달픈 정신노동 과정임을 상자의 무게로 증명하고자 했다. 수집한 발걸음 소리를 데이터로 변환한 뒤, 데이터의 형상을 입체적으로 시각화한 〈들은 모양〉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청각이 시각으로, 촉감으로 확장되면서 무의미하던 신체의 움직임과 평상적인 패턴들에 가치를 매긴다.
영화 《미안해요, 리키》가 생각난다. 주인공 리키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장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택배회사에 취직했다. 그러나 회사는 무리한 일정을 강요하고, 그로 인해 리키는 점점 불안정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택배 탑을 쌓게 한 것은 한 명의 리키, 바로 또 다른 우리다.
작가로 사는 삶은 늘 불안정하기에 배송 플랫폼에서 일용직 기사로 일해본 친구들이 많이 있다. “빈 시간을 활용하라!”라는 매력적인 광고에 시작한 일이었지만, 남들보다 좋은 성과를 내는 이에게 다음 날의 일감을 주는 시스템은 노동자 간의 경쟁을 유도했다. 선택받기 위한 몸부림 끝에 택배 기사들이자 우리의 친구들은 빠르게 소진되어버렸다. 이런 과밀화된 성장 시스템의 열기를 해소할 수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무의미해 보이는 일상의 행동이다.
〈건조기 모르게 추는 춤〉의 움직임이 재미있다. 건조기의 등장으로인해 불필요한 행동이 된 빨래터는 동작이 모티브라고?
빨래한 후 건조대에 널기 위해 ‘탁~’하고 터는 동작은 왠지 모를 쾌감을 준다. 빨래터는 동작이 가사 노동 중 소소한 즐거움이었는데 건조기가 이를 대신한다니 아쉬움과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건조기 같은 기계가 삭제시키는 육체노동을 기리며 (건조기가 사라졌으면 하는 약간의 심술을 담아) 건조기 몰래 춤을 추기로 한다.
다음은 어떤 동작이 폐기될까? 우리 집은 로봇청소기를 사용 중인데(너무 좋음) 덕분에 청소기를 돌리는 행동이 필요 없어졌다.
기술 진화 과정에서 인간의 물리력이 누락 또는 폐기된 것 이라 했는데 ‘대체’된다는 말이 더 적합한 것 같다. 결국 사람들이 해야 하는 일이 있고 기술을 어떻게 다루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예술도 노동의 산물이고, 예술가도 일종의 노동자다. 근래 봇 bot을 활용한 작업이 많이 보이는데 슈퍼컴퓨터를 활용한 반복 작업과 자료수집, 무작위로 한 이미지와 텍스트의 생산, 데이터 기반의 랜덤한 결과물 추출을 탁월하게 수행하며 작가의 개입을 최소화한다. 팝아트의 4차산업 버전 같달까? 압도적인 시스템이 지배하는 혁명의 시대에 예술가의 역할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는 사라져가는 것들을 손에 잡히는 덩어리로 계속해서 만들어내고자 한다. 한 장의 이미지에서 꾸준히 탈주해왔던 것처럼.
정찬민(b.1991)은 중앙대학교에서 순수사진을 전공한 후 (아이러니하게도) 프레임으로부터의 탈주를 지속해서 시도하고 있다. 이미지가 만드는 장면보다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행위에 집중하며 바깥의 시선을 드러내고자 한다. 《극상림》 (신사옥, 2023), 《Somewhere Over There》 (인사동 Kote, 2022), 《우린결국닮은모양》 (KT&G 상상마당 춘천, 2021), 《소환술》 (d/p, 2021)을 비롯한 다수의 전시와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진행, 사진: 문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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