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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미야 Jun 03. 2024

어제는 울어 버렸다.

옛날 사진을 들춰서 가끔씩 돌려본다. 딸의 어릴 적 모습들, 전남편이 환하게 웃으며 딸을 안고 있는 모습들 등. 그러다 어제는 전남편이 딸을 안아들고 음악을 들으며 이리저리 움직이는 영상을 보았다. 흘러나오는 노래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Can't help fallin' in love였다. 나는 웃으면서 영상을 찍고 있었다. 자기, OO이가 자기 수염 다 뜯는다, 하면서. 허밍을 하며 딸을 안아들고 춤을 추는 전남편을 가만히 영상으로 바라보는데 눈물이 차올랐다. 에잇, 내일이 시험인데 나 대체 뭐하는 거지, 하고 눈물을 닦고 담배를 피우러 나가긴 했지만 마음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아, 나도 저렇게 평온했던 한때가 있었지, 하고. 아, 나 이혼했지. 아, 나 이제 혼자지. 아, 나 이제 남편이란 것도, 세 가족이란 것도 절대로 가질 수 없지, 하고. 너무 슬퍼졌다, 갑자기. 서러워졌다. 이혼하고 나서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더 이상 그때를 추억하며 우는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리움은 불현듯 찾아오고 나를 흔들어 놓는다. 이래선 안 되는데, 강해져야 하는데, 하고. 그래도 눈물은 멈추질 않았다.


오늘은 새벽 3시 반에 일어났다가 다시 자서 아침 6시 반에 일어났다. 컴퓨터그래픽스운용기능사 시험 날이라 서둘렀다. 엄마는 나를 태워주기 위해 아침부터 일어나서 커피를 내리는 중이었다. 엄마가 뭔가 몇 마디를 했는데 나는 짜증이 나서 더럭 화를 내고 말았다. "내 신경 긁는 소리 좀 하지 마." 이런 워딩이었던 것 같다. 왜 이렇게 예민해져 있었을까. 시험장에 가서는 감독관한테도 짜증을 냈다. "좀 조용히 해주시겠어요?" 하고. 감독관에게 세상 그렇게 말하는 수험자가 어디 있을까. 나도 내가 예민해져 있다는 걸 알면서도 쉬이 마음을 추스를 수가 없었다. 시험장에서 1등으로 나온 나는 가만히 근처에 앉아서 연거푸 담배를 2개비나 피웠다. 두 달여간 달려온 레이스는 끝났고 이제 시험 결과만 기다리면 된다. 안 봐도 불보듯 뻔하다. 시험 결과는 본인이 제일 잘 알 것이다. 난 합격이다. 시행처에서 내 준 공개문제 54개를 다 풀고 간 사람은 교육생들 중 나밖에 없었다. 자만하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이 그렇다. 난 합격이다. 내가 합격이 아니라면 말이 안 된다.


시험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나는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내가 너무 예민해져 있었나 봐, 엄마 미안해, 하고 사과를 했다. 시험이 끝나고 난 뒤 교육생들 중 내 짝꿍이 차를 태워줘서 집으로 올 수 있었다. 오자마자 엄마는 차를 타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내게 맛있는 점심과 커피를 사주기 위해. 엄마란 그런 걸까. 아무리 자식이 속 썩여도 뭔가 해주는 사람. 해줄 수밖에 없는 사람. 결국 지는 사람. 결국은 자식을 위해 무언가 해내는 사람. 나는 엄마에게 너무나도 미안했다. 짜증 낸 감독관에게도 미안했다. 교육생들이 날 어떻게 봤을지도 덜컥 겁이 났다. 이게 다 어제 갑자기 흘린 눈물 때문인 것 같아서 더 짜증이 났다. 나는 엄마와 밥을 먹고 커피를 사들고 집에 오자마자 바깥에서 담배를 피우며 생각했다. 나 왜 이러지. 나 왜 이렇게 예민해져 있지. 나 왜 이렇게 풀이 죽어 있지. 그새 전남편이 딸 사진을 올려줬다. 티니핑 노래를 따라부르며 차 안에서 몸을 흔드는 딸을 보면서 나는 침대 위에서 웃었다. 엄마도 거실에서 그 영상을 틀어놓고 안마의자에 앉아 계신다. 나는 미뤄왔던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았지만 갈피도 안 잡히는 이런 글 따위나 늘어놓고 있고 말이다.


전남편은 웃고 있었다. 딸은 기분이 좋아서 아빠 품에 안겨 수염을 잡아 뜯거나 발을 동동거리거나 했다. 나도 웃었다. 주방에서 환하게 웃던 우리 셋은 이제 없다. 후회하지 않으리라, 그리워하지 않으리라 수없이 다짐해도 나는 또 그때 사진을 꺼내 본다. 그때 영상을 찾아본다. 전남편이 내 볼에 뽀뽀하며 석양을 등지고 찍은 사진을 수분간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러곤 운다. 전남편과 다시 합치고 싶다거나 그가 너무나 간절하다거나 한 게 아니다. 그냥 그 순간들에 존재했던 행복한 내가 그리운 거다. 셋이서 행복했던 한때가 너무나도 그리워져서 울었다. 나는 지금 엄마와 함께 살고 있고, 무직의 조울증에 이혼한 마흔 살의 여자다. 그렇게 존재하던 내가 이렇게 존재하게 된 게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지만, 다 알겠지만, 그래도 그립다. 딸이 티니핑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찍어 올리는 전남편이 너무 고마웠다. 고마운 전남편. 그리운 우리들. 안타까운 우리들. 안타깝다, 그저.


시험을 마쳤다. 드디어 거의 세 달에 가까운 여정을 마쳐 간다. 이제 3주만 더 교육을 나가면 수료식이다. 그다음 뭘 할지 나는 정해야만 한다. 아마 서울에 갈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른 교육을 더 받기 위해서다. 엄마는 전적으로 나를 서포트해주신다고 하셨다. 생각해 보면 모든 게 나를 돕고 있는 것 같은데, 어째서 나는 항상 부족하다고, 그립다고, 외롭다고, 서럽다고 징징대는 걸까. 시험 전날에 공부는 안 하고 전남편과 딸 사진을 보다가 문득 울어버린 내가 너무 한심했다. 언제까지 이런 순간이 반복되어야 괜찮아지는 걸까. 언젠가 괜찮아지기는 한 걸까. 나보다 더 힘들고 괴로운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나도 안다. 나는 희망을 노래하는 종달새, 결국 희망이다. 자만하지 말고 다음 스텝을 잘 생각해서 살아나가야 한다. 그리워해요, 그리워해요, 그리워해요.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나는 끊임없이 뭔가를 그리워한다. 바로 전남친도, 전남편도, 전남편과 딸과 함께였던 그 모든 순간들도. 그리워한다. 내일은 독서모임이다. 간만에 예쁘게 화장을 하고 꾸미고 옷도 차려입고 갈 예정이다. 그리고 독서를 할 것이다. 시험 공부 때문에 못했던 독서를 몰아서. 작고 후미진 내 방 한구석 나는 홀로 이렇게 존재할 수밖에 없다. 물론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난 나홀로일 때 그들의 존재를 가끔 잊어버린다. 바보같다. 이런 우스운 글을 쓰는 나도, 예민해진 나도, 그리워하는 나도 바보같다. 오늘은 마음이 쉬이 정리되지 않을 것 같다. 두서없이 쓰는 글을 이해해 달라. 하나의 장이 끝나면 하나의 또 다른 장이 시작될 것이고, 나는 그곳으로 또 나아가야겠다. 바로 전에 썼던 글에서처럼 나는 다시 하나의 문을 열어 볼 것이다. 그리워하라지. 외로워하라지. 마음껏. 마음껏 그리워하고 외로워하자. 그립고 외로울 때는 그리워하고 외로워하는 수밖에. 그럴 수밖에 없다. 오늘도 나는 나 자신을 재련하고 단단히 하려 노력한다. 엉거주춤한 꼴이라도 괜찮다. 나가 보자. 희망을 잃지 말자. 수고했다,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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