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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y Oct 10. 2024

아버지의 눈웃음

누구나 힘든 일은 있겠지만 나의 일이 가장 힘들다.

오늘은 요양원에 계신 아버지의 건강 상 이상으로 병원을 가야한다고 해서 며칠전에 예약을 잡고, 휴가를 쓰고 아침부터 걱정스런 마음으로 요양원으로 갔다. 요양원에 가면서 병원 방문을 어떻게 처리를 해야할지, 당백뇨가 나왔다는데 혹시 신장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이상이 있다면 치료는 또 어떻게 해야 할지, 여러가지 걱정을 하면서 운전을 했다.


나와 아버지는 띠가 같다. 아버지가 24살때 내가 태어났다. 그래서 난 아버지 나이를 생각할 때, 항상 내 나이에 24를 더한다. 거기서 2를 빼면 어머니 나이다. 나와 여동생들과의 나이차이는 4살, 6살이다. 어느 날인가 어머니가 외할머니 생신을 잊어버리고, 제사날도 기억이 안난다고 하면서 속상해 한적이 있다. 생각해보면 나이가 들어가면서 많은 기억들은 소실되고, 언젠가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 같던 날자들이 중요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틈틈이 중요한 날자들은 적어 놔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버지는 70대 후반에 들었고, 혼자서 걷기가 힘들어졌고, 섬망증세도 나타나고, 온 몸에 여러가지 병을 달고 사신다. 요양원에 들어가신지는 1년 반(2023.2)이 넘어서 2년이 되어간다. 갈 때마다 마음이 안 좋고, 아버지를 생각하면 애증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관계가 되어가고 있다.


아버지는 가족의 입장에서 보면, 잘한 것보다는 잘 못한 것이 좀 많다. 돈을 버는 것에 대해서 허황된 꿈을 꾸고, 사기도 당하고,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벌리고, 마무리 짓지 못하고 도망가곤 했다. 경제적으로도 손해를 끼치는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왜 아버지는 저렇게 되셨을까를 가족들끼리 얘기를 나눈 경우도 많았던 것 같다.


몇 해 전에 가족들과 싸우고 집을 나가신 이 후 한동안 연락이 없다가 연락이 왔을 때는 몸의 상태가 회복이 어려울만큼 망가진 상태였다. 그 때 요양원에 입원시키면서 잘못된 판단으로 병을 얻은 아버지를 보면서 그렇게 눈물이 났었다. 이 후에 보통 2~3주에 한번씩 아버지를 방문하고 있는데, 지난 주에는 다른 가족들이 모두 방문을 했지만, 난 일정이 안 맞아서 근 한달 반정도만에 아버지를 만나게 되었다. 섬망과 치매증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보자마자 잘 알아보셔서 치매가 심해지지 않았다는 생각에 살짝 위안이 되기도 한다.


서로 사이가 그다지 좋지도 않은 두 부자가 병원진료를 위해서 휠체어를 끌고 가는데, 가벼운 일상 대화이외에는 이야기의 주제가 될만한 것이 없다. 신장외과에 접수를 하고, 순서를 기다리느라 의자에 앉았는데, 주변에는 왜 그렇게 환자들이 많은지 북적되고, 할 말도 별로 없는 상황에서 휠체어를 의자쪽으로 돌려서 얼굴을 보니, 깨끗하게 씻지 못해서 눈에 눈곱이 끼어 있고, 마스크에 눌려서 오른쪽 눈밑의 살이 삐죽 나와 있는 게 보인다. 문득, 아버지가 노래를 좋아했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선 이어폰을 꺼내서 한쪽 귀에 끼워드리고, 나도 한쪽에 끼고 무슨 노래를 듣고 싶으냐고 물어봤다. 조용필의 '가슴이 쿵쿵'이라고 하기에 검색을 해보니 '바운스'라는 노래가 있었다. 귀에 딱 달라붙지 않는 무선 이어폰을 다시 꽂아주면서 노래를 트니, 마스크를 쓴 얼굴에 보이는 두 눈이 슬며시 웃고 있다. 왜인지 모르지만 그 웃고 있는 모습이 한편으로 좋아보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꽤 슬펐다. 언제든지 버튼 몇번만 누르면 들을 수 있는 노래를 돈이 더 드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 몸을 통제하지 못해서 못 듣는 아버지의 상태가 슬픈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저렇게 좋지 않은 상황 속에서 노래소리 하나에 슬며시 웃을 수 있는 것이 삶에서의 조그마한 행복일 수 있는데, 별것 아닌데 라는 생각이들었던 것일 수도 있었다.


잠시간의 노래 감상 이후에 조용필의 '헬로우'를 요청하고, 두 노래가 비슷한 시기에 나왔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얼마간의 노래 감상이 끝나고 나서는 다시 이해할 수 없는 사업얘기와 자기 비서로 온사람에 대한 허구의 얘기와 성공에 대한 얘기,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에 대한 얘기를 한다.


지난 번에 우리가 없을 때, 얘들을 본인이 다 돌봐주겠다고 했을 때, 내가 대소변을 못가리는 데 그건 어쩔꺼냐는 물음에 "그게 문제인데..."라는 재치있는 말로 현실 인식이 완벽한 듯이 보이도록 해서 우리를 웃겼을 때, 얼굴 만면에 웃음이 핀 것을 본 이후에 처음보는 웃음이었던 것 같다. 오늘 음악을 들으면서 보여줬던 가벼운 눈웃음은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이 교도소에서 클레식 기타를 무단으로 틀고 지었던 한순간의 평화롭고, 자유롭고, 행복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신장기능은 정상이지만, 소변검사에서 나오는 당백뇨의 수치가 높아서 초음파와 피검사와 소변검사를 다시 하자고 하는 병원의 검사지시를 받으면서, 의사가 돈을 버는 방식으로만 보이는 부정적인 시각이 머리를 치켜든다. 검사를 받으러 갔을 때, 과도한 업무에 지쳐서 딱딱하고 사무적인 목소리가 되어버린 간호사들과 얘기를 나누는 것도 즐겁지 않았고, 오줌을 참지 못해서 초음파 검사와 소변검사를 할 수 없게 된 것도 짜증나는 순간이었다. 여러 분과에서 진료를 받다보니, 검사들이 중복되는 경우도 있고, 의사들은 자기가 진단을 내리기 위한 검사지를 무작위로 요구한다. 이러니, 의사들 연봉이 평균 4억이라고 하는 것인가 보다. 병원의 스케줄에 맞춰서 휴가를 무작정 내기도 어려운 상황도 문제가 되고, 병원은 기분좋은 장소가 아님을 다시 한번 실감하면서 요양원으로 되돌아 갔다.


소변검사를 위해서 화장실에서 소변을 받다가 실패하고 나서 아버지가 미안한 듯이 "바쁜데 어떻게 니가 왔냐?", "나 때문에 니가 고생을 한다."는 말을 하는데, 스스로 하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의존해야만 하는 상황의 아버지가 느낄 감정에 공감이 되면서 참 서글픈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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