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의 형태

by 문작가

부자는 인간을 두려워하고, 가난한 자는 인간을 두려워한다.

관계에 대한 중요성은 고대 역사 혹은 그 이전부터 존재했다. 우리는 관계에 대해 무관심하고 선을 긋기도 한다. 본질적으로 삶을 번영하기 위해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는 순간들이 중요하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장면들은 관계에 충실한다. 이 관계의 끝에는 절망과 희망이 공존하며 이 사실자체가 고통일 것이다.


혹자는 어두운 공간에서 어두운 표정을 한다.

또 누군가는 어두운 공간에서 밝은 표정을 지으며 밝은 공간에서 또한 어두운 표정을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이 있기에 존재할 수 있는 장면들에게 강렬히 이끌리는 것은 우리가 인간이기에 가능하다. 고개를 들고 조금은 널널한 정신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평소와는 다른 것이 보인다. 신발의 색, 너덜 해진 바지 밑단, 헤어스타일, 손등까지 억지로 끌어내려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는 외투, 알 수 없는 영어로 가득한 쇼핑백, 강하게 이끌리는 밝은 형광색의 휴대폰 케이스처럼 말이다. 이를 보고 있을 때 각자의 스토리를 상상해 볼 수 있다.


손등까지 외투를 끌어내린 장면은 아직 소매가 긴 외투를 찾지 못할 것일 수도, 또는 계절의 시간을 놓쳐 그냥저냥 살고 있는 것일 수도, 끌어내린 스타일이 본인에게 맞는 스타일일 수도 있다. 우리가 보는 모든 장면은 이야기가 있고 또는 상상할 수 있다. 이는 곧 영감이며 영감은 우리를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다양한 이야기가 나에게 다가와 풍요로워지고, 어느새 나 자신은 아름답게 존립할 것이다.




자기 계발 책들은 잠자는 나의 세포들을 하나하나 모두 찔러 허튼짓을 하게 만드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지금은 간접 경험 하고 싶은 사람이 쓴 에세이나 내가 배우고 싶은 분류의 책들을 위주로 읽으며, 어렵지만 소설에도 도전하고 있다. 어김없이 인생에 대해 고민하고, 삶에 대해 사색을 하던 중 하나의 전념하지 못하는 어리둥절한 성격을 고쳐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관련 책인 '원씽(The One Thing)'책을 읽어보았지만, 이 또한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었다. 그러다 '전념'이라는 책을 알게 됐다.



책 '전념'에서는 무언가에 전념했다가 나중에 다른 것에 전념하지 않은 것을 후회할까 걱정하는 '후회에 대한 두려움', 무언가와 깊게 관계를 맺으면 자신의 정체성, 평판, 통제감이 위협받을까 걱정하는 '유대에 대한 두려움', 헌신으로 인한 책임감 때문에 그 밖의 다른 것들을 경험하지 못할까 걱정하는 '고립에 대한 두려움'들의 문제를 지적한다. 거의 완벽하게 현재 나의 상태와 부합했다.



후회에 대한 두려움

자그마치 4년 동안 사진과 영상을 좋아했다. 돈을 벌 생각도 없고 그냥 좋아한다는 것. 고가 장비를 들이고 조금 더 넓게 돌아다니며 경험한 것은 1년뿐이었다. 나의 인생에서 이렇게 전념하고 진심이었던 적이 있었는가. 하지만 이러한 나의 상태를 점검해버리는 인간들은 꼭 나타나기 마련이다. "복학해야지,,", "그걸로 어떻게 먹고살아", "취업해야지"... 진짜 짜증이 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내가 이 말들을 듣고 "아, 그렇구나"할 정도로 깨달음을 주는 조언들은 아니었다. 많은 조언들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복에 겨웠다고 하지만, SNS나 GPT로 우리는 이미 조언에 휩싸여있다. 조언을 일부로 조절 해야 하는 기분이다. 사실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창작활동을 위해 전념하고 있다. 잠자는 시간 이외에 모두 창작, 사진 찍는 것은 아니지만 내 삶의 대부분이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다 많은 조언들이 뇌 저 뒤편에 숨어있다 가끔 튀어나온다. "다른 것도 해야 되나..", "지금 나이 때에 이것도 해봐야 될 것 같은데,,"



유대에 대한 두려움

관계에 대해 크게 생각하진 않았다. 그러다 사회에서는 원하지 않더라도 관계가 필요했다. 그 아무리 히키코모리여도 말이다. 인간관계를 하다 이 사람과 많은 것을 공유하게 되면 아차 싶을 때가 있다. 말을 줄이기 시작하고, 계산을 하기도 한다. 이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도 고민하게 된다. 사람 간의 관계도 있지만, 취미에 대한 관계도 있을 것이다. 카메라에 빠져 있는 내가 가끔 생각한다 "이렇게 너무 깊어지면 시야가 고착되진 않을까.", "이렇게 빠져 있으면 나중에 금방 나가떨어질 수도.."



고립에 대한 두려움

비교적 평범한 위치에서 많은 사람들을 관리해야 하는 위치에 가게 되었을 때. 항상 고민했었다. "내가 이걸 하면 뭐가 좋지?" 결국 이성적 보다는 감정이 우선이 되어 결정했다. "경험이니까.." 시간이 지나 지금은 어딘가에 묶여 있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직장생활이 그 예가 될 수도 있다. 헌신을 떠넘겨 받고 그 책임감 때문에 내가 경험하고자 하는 것들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지금의 나로서는 굉장한 고통이다.



대부분 남의 시선을 본다. 이 말을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말이 한참 떠돌 때 조금은 회의적이었다. 우리는 서로가 없으면 살지 못하며, 같은 인간이 주변에 있기에 살아간다. 그러면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옷 매무새에 신경 쓰고, 깔끔한 외모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사람들에게 이렇게 보여야 나를 이렇게 생각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매번 한다. 그러나 위의 세 가지의 두려움을 만드는 것 또한 남의 시선을 봤을 때의 문제기도 하다. 결국 남의 시선을 보는 것은 당연하지만, 나의 주체가 서 있는 상태에서 보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두려움의 형태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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