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인생 사전
●아일랜드: 어느덧 순수한 환상이 된 어떤 나라.
물론 내가 아일랜드(Ireland)를 좋아하는 것은 기네스 맥주 때문만은 아니다. 더블린이나 골웨이 같은 아일랜드의 여행지를 내가 직접 다녀왔기 때문도 아니다.
아일랜드에 대한 나의 환상은 대학 신입생 시절 교양 영어 시간에 우연히 처음 접한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더블린 사람들》에서 시작된 듯하다.
“유리창을 몇 번 가볍게 치는 소리에 그는 창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다시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그는 은빛의 까만 눈송이가 가로등 불빛을 머금고 비스듬히 내리는 것을 졸린 눈으로 지켜보았다. 서쪽으로 여행을 떠나야 할 때가 왔다. 그래, 신문이 옳았다. 눈은 아일랜드의 전역에 내리고 있었다. 어두운 중앙 평원의 구석구석과 나무가 없는 언덕 위에도 눈이 내렸다. 앨런의 늪 위에도 소리 없이 내리고, 더욱 먼 서쪽에 있는 섀넌 강의 거칠고 검은 물결 위에도 눈이 사뿐히 내렸다. 눈은 또한 마이클 퓨리가 묻힌 언덕 위의 쓸쓸한 묘지의 구석구석에도 내렸다. 비뚤어진 십자가와 묘비 위에도, 조그만 대문의 뾰족한 문설주 위에도, 메마른 가시나무 위에도 바람에 나부끼며 수북이 쌓였다. 온 세상에 사뿐히 내리는 눈 소리, 그들의 최후의 하강인 양 모든 산 자와 죽은 자들 위에 사뿐히 흩날리는 눈 소리를 들으며 그의 영혼은 서서히 의식을 잃어갔다.”
―J. 조이스, 〈죽은 사람들〉(《더블린 사람들》 중에서)
〈죽은 사람들〉은《더블린 사람들》의 장엄한 대단원을 이루는 작품이다. 중년의 주인공이 아내와 함께 연말 파티에 참석했다가 이미 속물이 된 자신을 발견하고 슬픔과 회한에 잠긴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그러한 뼈저린 깨달음을 가져오게 하는 촉매는 그의 아내의 첫사랑 이야기이다. 아내는 젊은 시절 짝사랑하던 자신을 기다리다가 눈비를 맞고 죽은 불쌍한 어린 남자를 추억한다. 처음에 주인공은 아직 순정을 간직한 아내를 이해하지 못하다가 결말 부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깨달음처럼 그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아무튼 나는 시적이고 리드미컬한 저 아름다운 문장을 정말 여러 번 읽었다.
이렇게 조이스에서 시작된 나의 ‘아일랜드 환상’은,《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에 실린 아일랜드의 풍광과 아일랜드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우리나라와 닮은 아픈 역사를 그린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켄 로치, 2006) 등으로 커져갔다.
나는 지금도 누군가 가고 싶은 여행지를 물으면 아일랜드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실제로 갈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래서 나의 아일랜드 환상은 더욱 순수하고 또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