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지금 생각하면 조금은 무모한 일이지만, 편집자로서 중학교 국어 교과서를 만들던 시절 보르헤스의 다음 짧은 소설 한 편을 싣기 위해 고심한 적이 있다.
이 총탄은 오래된 것이다.
1897년 아레돈도라고 하는 몬테비데오 출신의 한 청년이 우루과이 대통령을 향해 쏘았던 바로 그 총탄이다. 그는 공범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사건을 일으키기 전 오랫동안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30년 전 한 배우의 범죄적 또는 마술적인 작업에 의해 발사된 같은 총탄이 링컨을 죽였다. 그는 셰익스피어 희곡의 대사를 통해 카이사르의 암살자인 마커스 브루투스로 변해 있던 자였다. 17세기 중반 복수의 화신이 전투의 공공연한 학살의 와중에서 스웨덴 왕 구스타보 아돌포를 죽이기 위해 그것을 사용했다.
전에 총탄은 다른 물건이었다. 왜냐하면 피타고라스적 윤회*에 따르면 그것은 단지 인간만의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동방에서 대신들이 받았던 비단 오랏줄이었고, 알라모 요새를 방어하던 수비대원들을 몰살시켰던 소총과 총검이었고, 한 여왕의 목을 갈랐던 세모꼴의 단도였고, 구세주의 몸을 관통했던 칙칙한 못과 십자가의 목재들이었고, 카르타헤나의 장수가 쇠반지 속에 숨겨두었던 독약이었고, 어느 날 저녁 소크라테스가 마셨던 잔잔한 독배였다.
그것은 태초에 카인이 아벨에게 던졌던 돌이었고, 지금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고, 인류와 함께, 인류의 불가사의하고 덧없는 운명과 함께 끝이 날 많은 것들이리라.
―J. 보르헤스(황병하 옮김), 〈케네디를 추모하며〉
*피타고라스는 영혼은 죽지 않고 다시 다른 형상을 가지고 계속 태어난다고 믿었다.
‘총탄’의 시점에서 역사와 신화, 문학을 넘나드는 재미있는 작품이다. 즉, 아벨을 죽인 카인의 돌과 카이사르를 죽인 브루투스의 칼 그리고 링컨과 케네디를 죽인 총탄이 ‘암살의 도구’라는 연결 고리로 나란히 등장한다. 우리가 익히 아는 소설에 대한 고정관념을 유쾌하게 깨는 그야말로 포스트모던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내러티브 방식은 저주 받은 바이올린을 소재로 한 영화 〈레드 바이올린〉(프랑수아 지라르, 1998)과도 비슷하다. 보르헤스의 시 속의 ‘총탄’처럼 영화 속의 ‘바이올린’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풀어 낸다. 즉 이 작품 속 명품 바이올린은 소재이자 주제이고, 카메라이자 피사체 그리고 결국 진정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도 한동안 포스트모더니즘(post modernism)이 떠들썩하게 소개된 탓인지 필자도 겨우 ‘환상적 사실주의’나 ‘상호텍스트성’ 같은 몇 가지 용어가 무얼 뜻하는지는 대략은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이전에 필자에게 포스트모더니즘은 인용, 패러디 혹은 오마주 된 보르헤스를 통해 그리고 직접 읽은 그의 작품에서 느낀 신선한 충격으로 먼저 왔다.
보르헤스는 움베르트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 속 호르헤 수사의 모델로, 미셸 푸코의 철학에 영감을 준 소설(기상천외한 분류법이 등장하는 ‘중국의 백과사전’ 부분)*에도 영원히 남아 있지만, 내게는 무엇보다 기존의 익숙한 사실주의 소설을 갑자기 고색창연한 유물로 변화시키는, 세상에 처음 문학을 창조한 조물주 같은 그 무한한 ‘상상력의 신’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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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은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a. 황제에 속하는 동물 b. 향료로 처리하여 방부 보존된 동물 c. 사육동물 d. 젖을 빠는 돼지 e. 인어 f. 전설상의 동물 g. 주인 없는 개 h. 이 분류에 포함되는 동물 i. 광폭한 동물 j. 셀 수 없는 동물 k. 낙타털과 같이 미세한 모필로 그려질 수 있는 동물 l. 기타 m. 물 주전자를 깨트리는 동물 n. 멀리서 볼 때 파리같이 보이는 동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