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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창적이고 환상적인 단편 소설로 20세기 문학의 신화적 존재가 된 보르헤스가 원래 시인으로 문학적 여정을 시작했다는 것은 조금은 뜻밖의 일로 여겨질 수 있다.
마치 사람들이 카뮈 하면 먼저 《이방인》이나 ‘부조리의 철학’과 같은 것을 떠올리지만, 정작 카뮈의 데뷔작이 《안과 겉》이라는 자그만 젊은 시절의 에세이집인 것처럼….
특히 소설가들에게 시나 에세이는 픽션(소설)에서 직접적으로 다루기 힘든 개인적 사건이나 내면세계를 자연스럽게 엿볼 수 있게 해 주는 장르이기도 하다.
그래서 첫 문학적 날개짓과 같은 보르헤스의 시에서, 미로와 같은 보르헤스 문학의 영원한 주제와 그의 내밀한 목소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리아 에스떼르 바스께스에게
누구도 눈물이나 비난쯤으로 깎아 내리지 말기를.
책과 밤을 동시에 주신
신의 경이로운 아이러니, 그 오묘함에 대한
나의 허심탄회한 심경을.
신은 빛을 여읜 눈을
이 장서 도시의 주인으로 만들었다.
여명마저 열정으로 굴복시키는 몰상식한 구절을
내 눈은 꿈속의 도서관에서 읽을 수 있을 뿐.
낮은 무한한 장서를 헛되이
눈에 선사하네.
알렉산드리아에서 소멸한 원고들같이
까다로운 책들을.
(그리스 신화에서) 샘물과 정원 사이에서
어느 한 왕이 굶주림과 갈증으로 죽어갔네.
높고도 깊은 눈먼 도서관 구석구석을
나도 정처 없이 헤매이네.
백과사전, 아틀라스, 동방
서구, 세기, 왕조
상징, 우주, 우주론을
벽들이 하릴없이 선사하네.
도서관에서 으레
낙원을 연상했던 내가,
천천히 나의 그림자에 싸여, 더듴거리는 지팡이로
텅 빈 어스름을 탐문하네.
우연이라는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필시 이를 지배하리니.
어떤 이가 또다른 희뿌연 오후에
이미 수많은 책과 어둠을 얻었지.
느릿한 복도를 헤매일 때
막연하고 성스러운 공포로 나는,
똑같은 나날, 똑같은 걸음걸음을 옮겼을
이미 죽고 없는 그라고 느낀다.
여럿인 나, 하나의 그림자인 나,
둘 중 누가 이 시를 쓰는 것일까?
저주가 같을지면
나를 부르는 이름이 무엇이 중요하랴?
그루삭*이든 보르헤스이든,
나는 이 정겨운 세상이
꿈과 망각을 닮아 모호하고 창백한 재로
일그러져 꺼져가는 것을 바라본다.
▪우석균 옮김
*폴 그루삭(Paul Groussac,1848~1928). 18세에 프랑스에서 이민 와 정착한 아르헨티나의 문인이자 문학 평론가. 죽을 때까지 45년간이나 국립도서관장을 역임했다. 재임 중에 보르헤스처럼 시력을 상실했다.
무릇 시를 포함한 문학 그리고 더 넓게는 모든 예술 작품의 모티프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구체적이고 실존적인 삶과 운명에 닿아 있다.
이 시도 마찬가지이다. 30대부터 유전적인 요인과 지나친 독서로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던 보르헤스는 1955년 국립도서관장에 임명된 뒤에는 시력을 거의 잃고 만다. 마침내 꿈꾸던 대로 수많은 책들에 둘러싸이게 된 순간 정작 직접 책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잃게 된 그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리라.
그래도 그는 다행히(?) 시인이라서 그의 절망적인 상황을 ‘책과 밤을 동시에 주신/신이 경이로운 아이러니’로 받아들인다. 어쩌면 이렇게 서로 어긋나고 모순된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새롭게 표현하는 것이 문학의 오랜 지혜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낙원이자 정겨운 세상이었던 도서관이 ‘꿈과 망각’이 되어 사라지게 한 신의 저주를 반어법으로 ‘축복’이라고 부르며 예술적으로 치유하려 한다.
과연 이 시 한 편으로 보르헤스가 상실과 절망의 상황을 단번에 극복했을까? 아마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를 통해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객관적이고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하는 데 성공한 이후에는 아마도 받아들이기가 조금은 수월했을지도 모른다. 비유하자면, 그것은 당장 치유를 받은 것은 아니지만 치유를 위한 첫 단추를 잘 끼운 것쯤은 되지 않았을까? 일종의 예술적 치유법이다.
졸음과 진흙이 감도는 이 강을 통해서였을까,
범선들이 나의 조국을 창건하러 온 것이?
울긋불긋한 배들이 넘실거리는 파도 속에
밤갈색 물결치는 수초를 헤치며 항해하였으리.
어쩌면 그때는 하늘에서 잉태된 듯
강이 푸르렀을지도 모르지.
후안 디아스가 굶주리고 인디오들은 배를 채우던
장소를 가리키는 붉은 별이 빛나고.
확실한 것은, 아직 인어와 괴물,
나침반을 미쳐 날뛰게 하는 자석으로 득실대는
다섯 달 뱃길 바다를 건너
천 명, 아니 수천 명이 도달했다는 것이네.
사람들은 점점이 너울거리는 오두박을 강가에 지피고,
낯선 잠을 청하였네.
그곳이 리아추엘로라고들 하나, 보까에서 날조된 허풍일 뿐.
빨레르모의 내 사는 동네 한 구역 전체였네.
오로라, 비, 남동풍에 노출되어 있던
들 복판의 한 구역 전체.
과테말라, 세라노, 파라과이, 구루차가 거리로
반듯하게 둘러싸인 채 여전히 우리 동네에 남아 있는 구역.
카드 뒷장 같은 붉은 잡화점이 눈부셨고,
점방에서는 카드놀이가 한창이었지.
그 분홍빛 잡화점은 이미 증오와 강인함으로
길모퉁이를 장악한 어느 꼼빠드레에게서 만개했네.
보잘것없는 풍모, 아바네라, 외래풍 가락으로
최초의 손풍금이 지평선까지 울려퍼졌네.
확신에 찬 꼬랄론*에서는 이미 이리고옌**을 거론했고,
사보리도의 탱고를 연주하는 피아노도 있었네.
살랑거리며 잦아드는 전원의 저녁
한 담배 가게가 장미처럼 향기를 흩뿌렸네.
현관들이 있었고, 키스를 나누는 연인들이 있었네.
단지 길 건너 보도가 아직 생기지 않았을 뿐.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창건이 믿기지 않네.
이 도시가 내게는 영원한 물과 공기와도 같기에.
▪우석균 옮김
*빨레르모의 한 지구
**이뽈리트 이리고옌(1852~1933). 중산층과 서민층의 지지를 업고 1916년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그의 단편 소설처럼 이 시에서 보르헤스는 역사와 허구(픽션),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그가 태어나고 사랑한 도시를 불멸의 공간으로 만들어 놓았다.
한 도시를 ‘불멸의 도시’로 만드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보르헤스는 아예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위한 신화를 시로 쓴다.
보르헤스가 쓴 부에노스아이레스 신화에는 물론 로물루스와 레무스도, 곰과 호랑이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몇 가지 역사적인 인명이나 지명과 함께, 환상과 상상력이라는 MSG(조미료)가 곳곳에 절묘하게 흩뿌려진다.
그렇다면 왜 보르헤스는 자신의 일부와 같은 이 도시를 위해 굳이 시로 새로운 신화를 썼을까? 시인은 짐짓 진지하고 장엄하게 부에노스아이레스를 팩트와 픽션을 버무려 신화화해 놓은 다음 마지막에 다소 김빠지게(?) 이렇게 읊조린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창건이 믿기지 않네
이 도시가 내게는 영원한 물과 공기와도 같기에”
내게 이미 물과 공기처럼 삶의 일부가 된 이 도시에, 신을 기리는 시를 바치듯이 새롭게 지은 신화(시)를 지어 바치는 것이 뭐 그리 큰 의미가 있을까? 그러니까 그럴 듯한 신화를 가장한 이 시는 결국 시인이 한 도시를 향한 무한한 사랑을 자랑스럽게 고백하는 한 편의 러브레터일 뿐이다.
그녀는 모든 것을 지녔지만
천천히 모든 것이 그녀를 버렸네.
모두가 아름다움 그 자체인 그녀를 보아 왔었지.
아침 그리고 화창한 정오는 창공으로부터
그녀에게 지상의 아름다운 왕국들을 보여 주었네.
오후가 그것들을 지워 나갔지.
(무한한 잠재적인 원인망인) 천체는
그녀에게 호의를 베풀었지.
아랍 융단처럼 거리를 뛰어넘고
소망과 소유를 혼동시키는 행운을,
처절한 고통들을 음악, 속삭임, 상징으로
승화시키는 시적 재능을,
그리고 열정도 주었고,
이투사잉고* 전투와 월계수의 무게를
피에 흐르게 했으며,
방랑하는 시간의 강과(강과 미로)
오후의 느긋한 빛깔 속에서
헤매이는 열락을 주었지.
모든 것이 그녀를 버렸다네,
한 가지 외에.
넉넉한 품성이 거의 천사처럼
신열과 죽음을 넘어
그녀의 마지막까지 동행했네.
오래전 엘비라에게서 처음으로 본 것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본 것도 미소였다네.
▪우석균 옮김
*아르헨티나의 한 지방으로, 엘비라의 조상이었던 카를로스 알베아르가 지휘하여 브라질군에 승리하였던 장소이기도 하다.
시의 제목이기도 한 ‘엘비라 데 알베아르’는 보르헤스가 한때 짝사랑했던 상류층 여인의 이름이기도 하다. 또, 그녀는 미모와 사치, 튀는 행동으로 유명한 사교계 스타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 시에 나타난 것처럼 말년에는 가난하고 쓸쓸하게 죽음을 맞았다고 한다.
이 시를 읽으면 할리우드 고전 영화 <선셋 대로(Sunset Boulevard, 1950) 속 여배우처럼, 화려한 전성기를 보낸 뒤 차츰 사람들에게 잊혀져 결국 세상의 뒤안길로 사라진 어느 여성의 삶이 떠오른다.
그런데 한때 마음을 두었고, 또 복잡하고 떠들썩한 삶을 살았을 한 여인을 추억하는 시인의 시선은 더없이 고요하다. 그 우정 어린 시선 아래로 그 여인이 살았던 예외적이고 세속적인 삶의 덧없는 행로가 단색화처럼 흘러간다. 다만 보르헤스는 시간이 흘러도 변함 없는 그녀의 미소를, 조금은 단조로운 그림 옆에 붉은 개양귀비 꽃 한 송이를 올려 놓듯이, 담담하게 노래할 뿐이다. 그것만으로 이미 그녀의 삶도 시인의 추억도 다 이야기했다는 듯이… .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때 기대와 달리 부진을 거듭하던 아르헨티나 축구 대표팀 경기 기사 댓글에 이런 막돼먹은(?) 것이 하나 있었다.
“못 사는 주제에 내세울 거라곤 축구밖에 없는 나라가….”
보르헤스의 위대함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 이 댓글을 보았다면 그 당당한 무지와 무례함에 안타까움과 분노를 함께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떤 이들에게 아르헨티나는 ‘메시의 나라’ 이전에 ‘보르헤스의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