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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아 Feb 25. 2016

#1 노르웨이의 가을

드넓은 자연 아래 첫 발걸음

금방이라도 핑크빛 로맨스가 떨어질 것 같은 유럽은 사진은 언제나 인기가 많다.  페이스북의 유명 페이지에 필터가 잔뜩 낀 사진들에는 좋아요와 친구들의 태그가 항상 가득했다. 처음 내가 여행을 시작했을 때 내 눈에는 필터가 없었고 그렇게 바라본 유럽은 생각보다 심각하게 로맨틱?! 하며 사랑스럽기만 한 도시는 아니었다. 사실 실망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돌아보니 내가 여행을 했던 계절, 바람, 사람 나는 기억의 필터가 생겼고  어떨 땐 따뜻한 봄처럼 무더운 여름처럼 또 쓸쓸한 가을처럼 아니 아름다운 가을처럼 또 겨울처럼. 다양한 감정이, 이야기가 남아 있었다.


비가 추적추적 오던 날이었다. 물가가 비싸다는 말에 라면 가득 실은 캐리어 하나를 끌고 병원을 개조한 호스텔에 도착했다. 호스텔 직원과의 첫인사에 영어를 잘한다던 북유럽 사람은 어디에 갔는지 생각보다는 시작이 난관인 듯했다. 내가 떠났던 가을에는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아 방이 텅텅 비었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새벽같이 일어났다. 절벽 벼랑 끝에 서있는 소위 포토 포인트인 '펄핏 락'이라는 곳에 가기 위해서였다. 시즌이 아니라 차를 렌트하거나 히치하이킹을 해야 했고 일단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그 근처에 도착했다. 히치하이킹은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생각보다 소심한 나에겐 많이 부끄러웠다. 그런데 그만큼 반응도 차가웠다. 결국 등산로까지 걸어서 두시 간인 길을 그냥 걸어가기로 했고 남들은 산아래서부터 시작하는 길을 나는 저 멀리 선착장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열두 시 반쯤 등산로 앞에 도착했다. 이미 살짝 지치기도 했지만 노르웨이의 가을은 낮이 참 짧았다. '펄핏 락'의 등산로는 약 왕복 5시간이 걸린다.  그래서인지 표지판에는 적어도 2시에는 산을 내려와야 한다는 말로 시작 전부터 빡센 등산길을 친절히 말해주었다. 시작의 길목에서 특이한 발음의 언어를 쓰는 외국인 두 명이 나를 따라왔다. 어차피 같은 길을 오를 거 같아 먼저 인사를 건넸다.


참 특이한 두 사람이었다. 커플인지 아닌지 모르겠는 기류와 함께. 조애나는 외갓집 이모 같은 성격의 영국에서 대학원을 다니는 폴란드인이었다 레드불 하나를 든 채로 씩씩하기도 한...? 내가 조아나라고 발음하면 꼭 집어서 "헤이 달링~ 아임 조애나" 하며 특유의 콧소리와 함께 다시 알려주곤 했다. "허니~달링"을 말끝마다 붙이지만 말로는 잘 표현할 수 없는 그녀만의 쿨함이 있었다. 나는 영국에서 교환학생을 하고 있었는데 처음 본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자기는 영국에 늦게 갈 거라며 장난인지 진담인지 자기 집 키를 맡기고 싶다고 했다.  그냥 모든 면에서 딱 우리 이모 같았다. 모함메드는 남자친구인지 친구인지 참 아직도 궁금한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온 친구였다. 폴란드어를 쓸 줄 알았는데 나를 위해 둘이서 같이 영어를 써주는 모습이 너무 고맙기도 했고 그 특유의 발음 때문에 귀엽게 느껴지기도 했다.




 처음으로 공기가 맛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잔잔한 물에 거울처럼 비치는 나무들이 좋았다. 등산을  시작한 지 30분이나 되었을까? 셀카를 찍으며 조애나가 말했다. "얘 이만하면 우리 다 왔지 않니?? 너무 덥다~ 뿌듯하기도 하네!"  핸드폰 GPS로 확인한 우리의 위치는 아직도 시작점에 있었다. 셀카 렌즈가 신기했던 조애나는 비가 와서 미끌미끌 그냥 걷기에도 힘든 길을 열심히 색다른 포즈와 함께 사진을 찍으며 따라왔고 모하메드는 먼저 가서 화살표 따라 안전한 길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노르웨이의 풍경은 참 너무너무 큰 나무와 산들이 떡떡 그냥 병풍같이 둘러져 있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산이 어찌나 큰지 그냥 사진을 찍어도 줌을도 당긴 것처럼 화면을 가득가득 채웠다.


 등산이 아니라 돌로 된 산을 타는 느낌이었다. 몇 번이고 돌아가고 싶었는지 모른다. 내려가야 할 시간은 다가오고 끝은 보이지 않고 마지막에는 서로 뒤에서 밀어주며 꽁꽁 숨겨둔 초코바의 힘으로 겨우 꼭대기에 도착했다.

벼랑에 서서 멋진 인생 사진을 남기고 싶었는데 막상 거기에 도착하니 끝에 가기 전부터 다리가 후들거렸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하메드는 어디 또 탐험을 하러 갔는지 훌쩍 사라졌고 조애나는 셀카를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은 산과 강이 내 앞에 놓여있었다. 사실은 그렇게 어마어마한 자연이 조금은 두려웠던 것 같다. 전에 스위스를 여행했었는데 그것보다도 훨씬 웅장하다는 느낌이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레는 느낌이 들었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나는 내가 자연을 이렇게 좋아하는지 몰랐다. 내가 나를 잘 몰랐던 점들 내가 좋아하는 것들. 그것들을 조금씩 알게 된  것만으로도 사춘기처럼 아직도 잘 모르는 나 자신을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헤이 허니~" 갑자기 조애나가 불렀다. 포토 포인트의 그곳은 아니지만 중간에 비슷한 돌에 올라가 바닥을 자르고 찍자는 그녀의  아이디어였다. 우리는 연신 셔터를 눌러댔고 결과물은 만족스러웠다. 마치 겁도 없는  사람들처럼 공중에 다리를 들고 찍고 있으니 말이다.


산을 내려와 어둑어둑해진 도시로 돌아갔고 케밥인지 버거인지 그냥 음식 만물상 같은 인도 음식점에서 같이 저녁을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혼자였다면 많이 외롭고 더 힘들었던 길을 친구를 덕분에 재미있는 추억이 되었고 지금의 조애나는 택배로 내 셀카 렌즈를 기다리고 있고 모하메드와 아부다비를 여행 중이라고 한다.


 이날의 기억은 쓸쓸하기보다 알록달록 독특한 색을 가진 조애나와 모하매드와의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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