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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푸레나무 식탁 Sep 03. 2021

금요일에 쓰는 여자

- 근황 토크와 책 소개

분명 일주일에 나흘만 일을 하기로 한 것은 평일 중 하루인 금요일은 ‘내가 쓰는 시간’, 주말 중 하루는 ‘수업 준비하는 시간’, 하루는 ‘휴식하는 시간’으로 나름의 배분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내가 쓰는 시간’은 평일 동안 하지 못한 집안일과 잡일들을 처리하는 시간이 되어버리고, 나는 그렇게 또 쓰는 시간을 잃어버렸다. 너의 브런치는 왜 아무것도 업데이트가 되지 않는 것이냐는 친구의 물음에, 그러게 나에게 이곳이 있었지 하고 깜짝 놀라, 서늘한 바람이 부는 9월 첫 주 금요일을 맞이해 다시 쓴다.       


근황을 보고하자면

바빴다. 매우 바빴다.

기존 스무 명 안팎으로 운영하던 나의 책 읽기 수업은 신도시 특수에 코로나19라는 복병을 만나고도 훌쩍 성장하였으나 그놈의 코로나 때문에 괜찮아질 만하면 수업 연기, 보강, 취소 등등으로 바쁘지만 바쁘지 않은, 한가한가 싶다가 바빠 버리는 상태가 되다 말다 하였다. 그래서 정작 수업 외의 것들에 신경을 쓰고 시간을 들여야 할 일들이 많아져 자잘한 신경 쓸 것들이 많았다. 딸의 중학교 입학과 함께 학원 투어와 레벨테스트, 등록 등으로 신학기를 다 보내고 일하는 중간중간 딸 학원 데려다 주기 스케줄을 펑크 없이 소화하고, 세 식구의 살림을 완전히 놓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하다 보니 여름. 정신을 차릴 수 없는 더위에 지쳐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짜잔~ 가을이 왔다.


가을이라고 특별한 계획은 없지만 신경 써야 하는 온갖 뒤치다꺼리와 잡일이 사라질 리는 없지만 멀어져 가는 글쓰기의 머리끄덩이라도 잡아 앉히기 위해 노트북을 켠다.      

코로나19와 함께 모든 사적인 만남을 카톡으로 하고 있다. 가족 외의 사람을 만나서 사적인 대화를 한 지가 너무 오래됐다. 어른들의 사적 대화가 어떤 흐름으로 이어졌는지 가물가물할 지경이다. 가족 말고 말할 대상이 없는 나는 그동안 누구와 대화를 했냐면 다소 유치하게 들리겠지만 소설 속 주인공들과 대화를 했다. 사춘기 시절의 나는 소설 속 주인공이 되는 상상을 했지만(나는 자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가 되어 애쉴리와 레트 버틀러 중에 누구를 택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곤 했다) 중년의 나는 2인 이상 만날 수 없는 긴긴 전염병의 시대를 소설 속 주인공들과의 만남으로 대신했다. 조회수 최고를 올릴 인기글은 맛집 탐방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딘가 멀리서 나처럼 외로운 전염병의 시대를 보내고 있을 누군가에게 좋은 만남을 주선하는 마음으로 그동안 읽은 책 두 권을 소개한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거기, 내가 가면 안돼요?>, <영원한 유산>     

이금이 작가의 <거기, 내가 가면 안돼요?>와 심윤경 작가의 <영원한 유산>은 서로 다른 두 작가의 작품이지만 함께 읽으면 그 감동이 두 배로 커지는 책이다. 두 분 다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이지만 그중, 딸에게 추천할만한 가독성 좋은 책을 고르다 만난 작품이다.      

책을 다 읽고, 너무 재미있어서 제발 딸이 읽어주었으면 좋겠어서 “딸아, 이건 소설로 읽는 미스터 선샤인이야! 미스터 선샤인 한 편 보려면 한 시간 반은 걸리지? 책은 한 시간 반이면 못해도 반 권은 읽을 수 있어! 드라마 두 편 볼 시간이면 완독 할 수 있다고! 드라마보다 전개가 훨씬 빠르니 이거 얼마나 남는 장사냐? 게다가 이것만 읽으면 근현대사 흐름은 완전히 정리가 되겠구나!”라고 말했더니 솔깃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아직 읽지 않음)  


근현대사 정리는 차치하고라도 일단 이 책은 가독성이 좋아서, 주인공 두 여인의 운명의 소용돌이가 너무 흥미진진해서 한 번 손에 들면 놓을 수가 없다. 구한말 제일가는 갑부이자 친일파 윤자 작의 딸 채령과 채령의 몸종이 된 수남의 이야기가 192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펼쳐진다. 격동의 시대였고, 나라 안팎으로 예측할 수 없는 사건들이 터지던 시대 채령과 수남의 운명 또한 그러해서 읽는 내내 마음을 졸이게 된 책이다. 채령과 수남이를 비롯한 인물들이 너무나 생생해서 그녀들과 함께 경성과 교토, 하와이와 중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타까웠던 것은 살기 위해, 더 나은 삶을 위해 목숨을 건 수남을 보며, 실제로 그 시대를 살아내며 수남만큼이나 힘들었을, 혹은 그 고통을 채 이겨내지 못했을 이름 모를 사람들을 생각하며 숙연한 마음이 들어 책을 내려놓고도 한참 그 시대를 생각하곤 했다.      


<영원한 유산>은 <거기, 내가 가면 안돼요?>를 읽고 먹먹한 마음이 채 가시기 전, 아무 정보 없이 읽기 시작했다. 아니 그런데, <거기, 내가 가면 안돼요?>를 읽고 아쉽게 보낸 채령이 다시 <영원한 유산>에서 살아 돌아온 게 아닌가? 분명 두 책은 서로 다른 작가가 쓴 것임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유산>의 원섭과 채령은 묘하게 이미지가 겹친다. 배경은 1966년, 해방을 맞이하고, 전쟁이 끝난 우리나라는 아직도 혼란스럽다. 혼란의 시대, 친일파 윤덕영 자작의 딸, 원섭이 서대문형무소에서 출소하면서 <영원한 유산>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해방 후, 친일파이자 반민족 행위에 앞장서던 윤덕영 자작의 후손들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거기, 내가 가면 안돼요?>를 읽고, 채령의 뒷이야기가 궁금했는데, <영원한 유산>의 원섭을 보며 채령의 뒷이야기를 상상해보기도 했다.


해방 후, 윤덕영의 딸 원섭은 친일파인 아버지가 남겨둔 벽수산장을 차지하기 위해 유엔 언커크(유엔 산하 한국통일부흥위원회)의 통역사 해동과 만나게 된다. 윤자작이 나라를 팔아먹는데 앞장서 어마어마한 거부가 되고, 쓰러져가는 초가집들 사이에 당시로는 상상하기 힘든 성채 같은 저택, 벽수산장이라는  난생처음 보는 유럽식 성채를 지을 동안 해동은 독립운동을 하다 이름도 없이 죽은 아버지의 얼굴도 모른 채 미국인 선교사 집에서 얹혀 유년 시절을 보낸다. 그 덕에 영어를 배워 통역을 하며, 소시민의 삶을 꾸리고 있지만 이름도 없고, 남긴 것도 없는 독립운동가의 아들의 삶이 어디 그리 호락호락하던가. 비록 이름 없는 독립운동가의 아들이라지만 해동의 눈에 윤덕영 자작의 딸 윤원섭의 등장이 달갑지만은 않을 터다. 게다가 벽수산장을 되찾기 위해 친일파 윤자작의 과거를 미화시키는 그녀의 행태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해동의 처지 또한 얼마나 피가 거꾸로 솟을 일인가. 거기에 한 술 더 떠, 친일파들의 행적을 감싸 안는 한국 주재 외국인들의 발언과 그것을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통역해야만 하는 해동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화가 나던지.

       

“윤자작 일족의 일본 지배 행적으로 비난받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지금의 대한민국과 그때의 조선은 다른 세상이 아닌가? 나는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형편은 그때의 것으로 이해한다고 생각하네.”

방금 들은 애커넌 씨의 대답은 해동이 국제 사회에 대해 마음 속에 간직했던 어떤 신뢰를 결정적으로 꺾었다,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의 형편은 그때의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그 말은 곧 한국의 비참했던 일제강점기 삼십육 년 동안 나라와 민족이 아닌 일본과 개인적 치부를 위해 진력했던 사람들에게 비난하거나 책임을 물을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었다.      


과거를 미화시켜 제 몫을 챙기기에 급급한 원섭의 행태를 보며 과거에 대한 평가와 책임이 어디까지가 정당한 것인지 생각한다. 그렇게나 대단한 벽수산장을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과 신념을 내려놓아야 했는지, 정말 제정신으로는 살아 남기 힘든 시대에 인간의 도리를 지키는 것은 어떤 일인지 말이다.      


66년 화재로 소실되었다는 실제 벽수산장의 흔적을 찾아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 자료들을 보며 백 년 전 기이하고도 위협적인 장대한 기골로 주변을 모두 주눅 들게 한 건물을 상상한다. 벽수산장이 지금까지 남아 있었다면 그 건물은 누구의 손에서 어떤 운명을 갖게 되었을까? 소설 속 원섭의 기세가 너무나 당당했기에, 혹은 이미 지난 일이었기에 그것은 원섭이 것이 되었을까? 딸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너무 추워지기 전에 딸과 함께 벽수산장의 흔적을 찾으러 서촌을 가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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