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고3 맘>

intro

by 물푸레나무 식탁

이것은 현재 진행형이다.

어쩌면 실패의 기록일 수도 있다.

고2딸의 학원에서 예비고3 학부모를 위한 안내문자가하루에도 몇 개씩 발송된다.

엊그제 생일을 맞은 딸에게 주민등록 발급 안내문이 도착했다.

열여덟 살.

나의 어설픈 육아는 이제 일 년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

2026년 딸에게는 고된 고3 생활이 기다리고 있다.

고3 엄마의 생활은 상상해 본 적이 없다. 나의 고3 시절에는 ‘엄마 입장’ 따위는 고민의 대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야 수많은 고3 엄마들의 후회와 탄식과 절규를 듣게 되었다.

그깟 입시가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대한민국은 수학능력시험을 위해 출근 시간을 조정하고, 영어 듣기 평가 시험을 위해 항공기 이착륙도 중지시키는 나라다. 대학 간판을 완전히 무시하고 살기위해서도 큰 베짱이 필요하다.


딸의 고3을 앞두고 12년간의 학부모 생활과 19년 간의육아를 마무리하며 내가 그토록 몰입한 ‘엄마’의 자리를 돌아보기로 한다.

이것은 어쩌면 반성문일 수도 있고, 후회와 잘못된 선택의 기록이 될 수도 있다. 또는, 고3 엄마로 살기 위한준비 의식 같은 거라고 해야 할까?.

최소한 SKY는 다니고, 다정한 엄친아들딸들과, 알아서 인강만 듣고 1등급인, 그냥 시험 봤는데 학원 탑반인 엄마들 말고, 육아가, 아이가, 교육이, 사춘기가, 자식과의 관계가 절대로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 땅의 엄마들과 이 글을 나누고 싶다.


애가 하나밖에 없어서 남의 집 자식들의 사정은 잘 모른다. 그나마 딸이어서 아들 엄마들의 고충도 어림짐작만 한다. 10년간 아이들과 독서교실을 하며 많은 아이들을 봐왔지만 아이들은 밖에서 모습과 집 안에서 모습이 정말로 다르다. 닮고 싶은 부모와 자식도 있었지만, 저러진 말아야지 싶은 부모와 자식도 있었다. 우리 딸은 고집이 무척 세고 자존심이 강한 아이였다. 공부도 잘하고 싶었지만 인싸도 돼야 하는 아이다. 밖에서 언뜻 보면 엄친딸일 수도 있겠지만 밖에서 인정받기 위해감내하는 스트레스를 엄마한테 푸는 쪽이었다. 아이의 사춘기는 이제 끝나가는 듯해 보이지만 사춘기 다음에 온 공부유세도 그냥 보아 넘기기 쉽지 않다. 한때 “쌈닭”이라 불렸던 나의 과거에 비해 본다면 누군가를 이렇게 인내하는 게 가능한 것인지 나 자신을 의심할 정도다. 하고 싶은 말을 참느라 많은 에너지를 쓴다. 그저지켜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애를 키우면서야 알았다.


이 글엔 “서울대맘의 공부팁, 로드맵” 따위는 절대 없다. 그렇게나 많은 서울대맘과 의대맘과 하버드맘의 책들에서 당신은 답을 찾았는가? 우리 애가 서울대와 의대 로드맵을 착실히 따라오고 있는가? 그렇다면 이 글을 볼 필요가 없다. 축복받은 당신은 착실히 그 로드맵을 따라가면 된다.


서울대와 의대 로드맵은 고사하고, 나의 첫 번째 실패는 세계 엄마들의 바이블, 아이를 존중하는 엄마들의 책 <베이비 위스퍼>에서부터 이미 시작됐다. 고지식한 나는 하라는 대로 수유와 수면 시간과 아이를 존중하는 법을 책에서 하라는 대로 모조리 했지만 우리 아이는 절.대.로 먹을 시간에 먹지 않았고, 절,대,로 잘 시간에 자지 않았다. 깊은 밤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면서도 수유양과 시간과 아이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기록하던 나는 50일쯤인가 베이비위스퍼 책을 집어던졌다. 실패였다. 내 아이는 다른 아이였다. 나는 우리 아이가 베이비 위스퍼의 아이처럼 안정되고 건강하게 자라지 못할까 봐 초조했고, 불안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걸 어떻게 하겠는가?


분명 의대로 가는 로드맵이 있겠지만 우리 아이는 아니다. 다행인 건 <베이비 위스퍼> 때처럼 피눈물 나게 노력하지 않고도 이제 이 아이가 의대는 아닌걸 바로 알 수 있다.

<베이비 위스퍼>는 망했지만 어쨌든 이 아이는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

<서울대 로드맵> 시작해보지도 못했지만 어쨌든 아이는 자신의 길을 찾고 있다.


그렇다면 실패한 것인가?

서울 자가 없는 중년과 1등급 성적표 없는 고2의 삶은 망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우리는 행복하다.


어떤가? 의대로 가는 로드맵 보다 이 이야기가 더 궁금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