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년 책육아의 진실은?
온라인에 올라온 사진 한 장.
두세 살로 보이는 아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다. 옆에 앉은 엄마는 책을 읽고 있다.
아이가 보라고 책을 읽는데, 왜 아이는 관심도 없는 거죠?
수많은 댓글이 이어졌다.
내가 남긴 댓글은 이랬다
- 그렇게 나만 책 많이 읽은 엄마 됨.
책 육아라는 말이 있다는 것은 알게 된 것은 아이가 초등 고학년이 넘어서였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책을 손에서 놓아본 적이 없는 읽는 인간 중의 한 명이지만 애들 육아 앞에 책이란 말이 붙어 있는 줄은 몰랐다. 그때 어떤 블로거가 책육아를 외치며, 책육아를 전도하고, 출간하고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육아맘들 사이에서 책만 잘 읽으면 뭐든지 해결된다는 바람이 불고 있었다. 이런 책육아 열풍이 있는지도 모르고 아이의 어린 시절을 보냈다니 나는 한 발 늦은 엄마였다.
우리 딸이 어릴 적에는 TV 없는 거실이 유행이어서 거실의 서재화와 함께 거실 전면을 전집으로 꽉 채우는 게 유행이었다. 어찌 보면 그것도 책육아의 한 예라 볼 수 있겠지만 분명 우리 애가 어렸을 때는 ‘책육아’라는 말은 난 듣도보도 못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딱히 어떻게 놀아줘야 할지 몰라 난감했던 나는 그저 잘하는 걸로 놀아주자 싶어서 선택한 게 책이었다. 끝나지도 않는 소꿉놀이보다 예쁘고 재미있는 동화책들을 사고 읽어주는 게 더 편했던 게으른 엄마였다. 나의 책 육아는 거창한 책 육아라는 이름하에 시작된 게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다 산다는 마*피리니 명작*집이니 수학 동화니 과학 동화를 전집으로 착착 사서 전집으로 펼쳐놓는 류의 엄마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전집을 안 샀다는 것은 아니고 전집을 몇 질 사다 보면 30권 중에 반은 괜찮고, 반은 별로인 경우가 많아 아이를 데리고 직접 서점과 출판사, 도서관 바자회 등을 다니며 낱권으로 골라 읽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땐 파주 출판단지와 가까운 곳에 살고 있어서 어린이 전문 출판사에 수시로 들락거렸다.
남들이 말하는 책육아는 보통 이렇게 귀결되면 해피엔딩인 듯하다. 그렇게 읽어서 우리 아이 수능 언어 영역 공부 안 해도 1등급 무조건 나와요. 그렇게 읽어서 우리 아이 SKY 갔어요. 그렇게 읽어서 우리 아이 국어도 잘하고 수학도 잘하고 영어도 잘하고 과학도 잘해요. 블라블라블라. 그래, 부럽다.
나에게 독서는 사실 유희에 가깝다. 나도 누가 굳이 물어본다면 96년도 수학능력 시험에서 언어 영역 만점 받았어요, 하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난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 너무너무 짜친다. 그 시절 언어 영역과 지금의 언어 영역은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아이가 들고 온 언어영역 시험지는 들춰보기도 싫을 정도로 지문도 길고 복잡하다. 집중해서 읽고 싶지도 않은 글들이 너무 길게 쓰여 있다. 왜 저렇게 어렵게 써놓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나에게 독서는 그냥 유희일뿐이다. 그저 나는 문자에 중독돼서 하루 종일 뭐라도 읽는 사람인 것이다. 남이 들려주는 얘기가 재밌고, 궁금한 사람이다. 그냥 나는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어릴 적 아랫목 이불속에서 할머니가 들려주던 얘기를 기다리던 것처럼 매일매일 새로운 책을 펴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기다리는 사람일 뿐이다.
내가 아이에게 책을 읽힌 것은 그게 제일 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혹여 어린 시절의 책 읽기가 수능 언어 영역 1등급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면 대박이겠지만. 그런 흑심이 0.00001%도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내가 아이와 책을 읽은 것은 책 읽기가 아이가 가장 쉽게 즐거울 수 있는 일 중에 하나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타인과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바로 책 읽기인 것을 아이가 눈치채길 바랐던 것이다. 네가 해답을 구할 많은 질문들의 답을 갖고 있는 것이 책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아이는 책을 좋아했다. 절반쯤은 성공했다고 봐도 되는지 확신이 안 선다. 초등고학년 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같이 도서관과 서점을 갔다. 동네의 몇 군데 도서관에서 식구수대로 최대치의 책을 대출해서 책을 읽던 아이의 엄마였다. 한 번 읽고 마는 책도 있었고, 두고두고 보는 책들도 있어서 전부 다 새책으로 사기는 어려웠다. 도서관과 서점, 중고책방을 종횡무진하며 아이가 책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닥치는 대로 잘 읽길래, 아이가 3학년 때쯤 한국사 책을 슬쩍 넣어줬다.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한국사 책은 3학년 때쯤부터 수시로 보여주라는 정보를 접하고 나서였다. 만화와 그림이 많은 한국사 책도 밀어 넣었지만 반응이 좋지 않았다. 나는 그때 하나밖에 없는 딸을 키우는 독서 선생님이기도 했기에 초등 4학년인 우리 아이와 친구들에게 한국사 책 수업을 했다. 엄마가 하래서 하긴 했는데 영 좋아하지 않았다. 남편과 내가 좋아하는 책인 <먼 나라 이웃나라>와 몇 개의 시리즈들은 우리는 이미 볼 만큼 다 봤지만 아이가 꼭 읽기를 바라는 마음에 새책으로 준비해 들여놓았지만 아이는 제 스스로 한 번도 꺼내 읽지 않았다.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해 보면 쓸데없는 짓이었다. 그냥 좋아하는 책을 더 읽었으면 될 일이지 관심도 없는 한국사 책이며 세계사 책을 밀어 넣을 필요는 없었다. 심지어 그때 한 한국사와 세계사 수업은 홀랑 다 까먹은 것인지 학교 시험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지금 아이의 모의고사 한국사 등급은 매국노 수준이다.
중학생이 된 아이가 말했다. “엄마 때문에 책이 싫어졌다.”라고. 이건 충격 발언이었다. 아이는 비행기나 기차를 탈 때도, 늘 책을 읽고 있어서 주위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총애를 받았다.
이런 기억들이 그때의 나에겐 자랑스럽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아이가 엄마 때문에 책이 싫어졌다니. 이런 뒤통수가 어디 있단 말인가.
독서지도사 자격증을 따고, 집에서 수업을 하기 시작한 것은 그나마 좋아하는 일을 하며 육아를 놓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밖에 없어서였다. 아이를 남의 손에 키울 자신이 없어서 시작된 전업주부도 7-8년을 하다 보니 못해먹겠다 싶었다. 남을 잘 못 믿는 성격에 아이 책 읽기 정도는 내가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서 시작한 일이었다. 자기 자식을 가르치는 일은 친자식 인증을 하는 것이라는 것을 그때의 나는 잘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잘 따라와 줬고, 나는 아이와 책을 읽고 얘기하며 소통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아이와의 독서 수업이 끝난 것은 사춘기와 함께였다. 중학교 3학년이 된 아이는 돈 한 푼 안 내고 하는 엄마와의 수업에 눈에 띄게 불성실해졌다. 다른 친구들과도 함께 하는 수업에 선생님 딸이라는 애가 책도 안 읽고 온다든지, 학교에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긴다든지 하는 것을 나는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다. 그나마 일주일에 한 권씩 억지로 읽던 책도 안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아이에게 생긴 것이다. 아이는 옳다구나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된 엄마와의 수업을 끝냈다. 아이는 고등학교에 가서야 국어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적어도 중학교 3학년 때부터는 국어 학원을 다녔어야 하는데 생전 국어 학원을 다녀 본 적이 없는 어미는 지가 알아서 공부하면 국어는 다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건 나의 오만한 생각이었다.
중3부터 아이는 책도 안 읽고, 그렇다고 국어 문제도 안 풀었다. 결론적으로 보면 책 육아는 하룻밤의 꿈같은 것이었다. 가수 이적의 어머니가 아이 옆에서 늘 공부를 해서 아들들이 모두 서울대에 갔다는 얘기를 보고, 책을 읽고 공부를 하는 나의 뒷모습을 아이가 보고 자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엄마가 공부를 한다고 모두가 서울대를 가는 것은 아니다.
오래된 사진첩의 동영상을 클릭해 봤다. 돌이 갓 넘은 딸이 거실에서 놀고 있다. 나는 두꺼운 책을 무릎 위에 놓고 아이가 노는 것에는 관심도 없이 책을 읽고 있었다. 아이가 다가와 책을 손으로 가리고 탁탁 친다. “그만 읽어! 그만 읽으세요!”
아이의 메시지는 확실했다. 나만 모르고 있었을 분이다.
- 그래서 책 육아 아닌 그 책 육아를 한 아이는 어떻게 됐냐고? 해피 엔딩으로 끝나기 위해선 언어 영억 등급을 공개해야 하는데, 아직 입시가 끝나지 않은 관계로 속 시원히 공개하지 못함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아이의 프라이버시상. 1등급만 있다면 제가 왜 말을 못 하겠어요?? 안타깝게도 등급은 널을 뜁니다. 책은 좀 읽냐고요? 학교에서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정해진 거 외에는 절대로 안 읽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좀 더 희망적인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분들을 위해서 희망적인 소식을 기억해 봅니다. 첨언하자면 학교 상담 가면 선생님들이 애가 글을 잘 쓴다는 말을 많이 하셨어요. 나는 우리 애가요?라고 답하고,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늘 엉거주춤했고. 수업하면서 아이의 글을 계속 봐왔기에 아이가 특출 나게 잘 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 눈엔 그냥 평범한 수준으로 보여요. 그런데 이번 국어 수업 시간에 논증 수행평가가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아주 기본이 튼튼하게 글을 잘 썼다면서 혹시 논술 수업을 받았냐고 물어봤다고 하십니다. 중학교 때까지 논술 수업받았다고 대답했다고 하네요. 네네~ 그 애 제가 가르쳤습니다만. 하지만 이게 책육아 때문이었을까요? 아님 논술 때문이었을까요? 집안의 분위기 때문이었을까요? 심지어 우리 애는 엄마 때문에 책을 싫어하게 까지 됐는데. 누가 100% 확신을 갖고 대답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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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육아 결론은 여러분도 알고 있습니다. 애마다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