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멋졌다
‘미술학원 근처로 오는 게 찾기가 더 편할 거야.
오목교역에서 내려서 8번 출구로 올라오면 카페가 있어.
2층에 있을게. 3시에 보자.’
가방 안에 수첩, 펜, 혹시 몰라 아이패드를 넣고 집을 나선다.
그 외에 내 물건은 지갑과 핸드폰이 다이지만, 양손은 무겁다.
아이들이 많은 집이라, 우유에 넣어서 먹으면 초콜릿 맛이 나는 빨대, 낱개 포장이 된 곰돌이 모양의 젤리, 그 외에 언니를 위한 선물… 또 무얼 좋아하려나, 아이들은 무얼 좋아하려나…
코스트코에 가서 한 바퀴 돌면서 무엇이 필요할지 몰라 결국 카트에는 몇 개 담지 못했다.
역시나, 선물을 고르는 건 늘 어렵다.
선물에 대한 생각이 바뀌면서부터였을까…
이제까지 나는 그 사람한테 필요한 것을 주는 게 선물이라 생각했다.
오죽하면 대학 다닐 때 최고의 생일 선물은 교과서라고 생각했을 정도
(절대 교과서가 좋아서라기보다, 학기마다 책값이 정말 많이 나갔기 때문에).
근데 졸업할 무렵, 한 친구가 그런 말을 했었다.
자기를 위해 막상 사기는 어렵지만 갖고 싶은 걸, 그 사람이 원하는 걸 주는 것이 선물이라고.
그다음부터 선물 고르기가 더 어려워진 것 같다.
아무튼, 언니가 필요할 것과 아이들이 원할 것의 접점이라고 결론 내린 몇 가지 물건을 든 채 지하철을 타고 30분, 넉넉잡아 40분쯤이면 되는 오목교역으로 향한다.
‘나 도착했어. 언니 어디야?’
‘어, 나 아직 3층 미술 학원에 있어. 지금 내려갈게.’
‘응. 뭐 마실 거야? 주문해 놓을게.’
‘난 아이스 라떼, 시럽 없이. 나 그럼 슈퍼에 가서 저녁거리만 금방 사 올게. 고마워!’
아이스 라떼 두 잔을 들고 다시 2층으로 올라가 자리를 잡는다.
반이상 찬 틈에서 자리를 잡고 앉으니, 곧 양손 가득 비닐봉지를 들고 계단을 올라오는 언니가 보인다.
“여깄었네!”
자리에 앉아 인사를 나누고, 간단한 안부를 묻고.
생각해 보니 둘이서 만나 따로 대화를 나누는 건 20 몇 년 처음인 것 같다.
어쩌면, 언니에게는 이렇게 카페에 앉아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오랜만일 것이다.
아이 셋의 엄마, 그녀는 엄마다.
그녀는 한때 결혼은 물론 아이를 절대 낳지 않겠다던 사람이었다.
남편과 연애를 하게 된 과정도, 결혼하게 된 이유도 그만의 재미있고 감동적인 이야기지만, 사실 내가 제일 궁금했던 건 아기를 절대 갖지 않겠다던 언니가 오늘날까지 오게 된 과정이었다.
그랬던 언니가 하나도 아니라 지금은 6살 첫째 딸, 4살 둘째 아들과 2살 막내 아들, 아이 셋의 엄마라니.
저출산이 심각한 나라에서 아이 셋의 엄마라니.
경력을 쌓고 자격증을 따고 이직을 위해 모든 준비를 마쳤을 때 찾아온 첫째.
그리고 아예 안 낳으면 안 낳았지 하나만 낳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인해 갖게 된 둘째.
또 둘로 만족하려는데 예상치 못한 선물처럼 찾아와 준 셋째.
수족구로 시작해 고열, 경기, 응급실의 경험,
사교육에 들어가는 무시무시한 돈이며, 줄넘기 학원도 있다는 얘기와 그녀의 야간 업무 (2시간마다 깨서 우는 언니의 클라이언트들),
요즘 아이들이 크는 환경에 있어 고민들과 다른 정책이 문제가 아니라 한국에서는 아빠들이 종일 회사에 있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없다는 게 문제라는,
첫아기를 낳고 나서 집에 돌아왔을 때의 막막함, 처음 아기가 아팠을 때 어찌할 바를 몰라 느꼈던 두려움, 불청객처럼 찾아온 우울증, 무기력함, 그걸 벗어나게 된 계기,
의젓함에 가끔 놀라게 하는 첫째, 첫째에 치이고 막내한테 치여 중간에 낀 서러운 둘째, 큰 탈 없이 잘 커 주고 있는 막내,
그리고
너무 행복하다는 말.
지금 생활이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는 말.
“미술 학원 끝날 시간이다. 일단 올라가자.”
그렇게 우리는 한 층 더 올라가 미술학원에서 기다리니, 조금 있다 그 날 만든 작품을 펄럭이며 예쁜 여자아이가 걸어 나온다.
“오늘 이모 왔어. 이모 기억나지? 지난번에 만났지?
오늘 우리 집에서 놀다가 저녁 먹고 갈 거야.”
선생님들께 인사하고 학원이라는 주제로 꽤 많은 대화가 오갈 만큼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드디어 지하에 주차장으로 내려갔더니 갑자기 아이가 한마디를 던진다.
“엄마, 나 화장실 가고 싶어.”
헉… 방금까지 아무 말도 안 하더니 지하에 내려오고 나서 화장실 가고 싶다는 말을…
엘리베이터를 기다린 시간이 꽤 되었기에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언니는 익숙하다는 듯 우리는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화장실에 들린다.
그리고 이번에는 정말 차를 타고 이동해 둘째가 있는 유치원에서 기다리니 예사롭지 않은 슈퍼맨 복장을 한 남자아이가 가방을 메고 걸어 나온다.
그래도 명절 때마다 보는데 내가 아이들을 엄청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보니 처음에는 조금 어색 어색, 서먹서먹하다.
이모라기보다는 갑자기 나타난 조금 친숙해 보이는 (혹은 그조차도 아닌) 아줌마 정도.
집으로 올라가 짐을 내려놓고 2살 어린 아기와 엄마는 저녁을 준비할 동안 4살, 6살을 데리고 두 가지 색깔의 씽씽카를 끌고 나가 놀이터에서 놀다 오라는 임무를 받고서는 ‘그래! 그리 어려울 일이 뭐가 있겠어!’ 싶은 마음으로 출동한다.
“여기 안에서만 노는지 보면 돼. 벗어나면 오라고 하고. 그럼 자기들이 알아서 잘 놀아.”
씽씽카를 타고 6살 여자아이랑 4살 남자아이가 앞으로 튀어나간다.
놀이터에는 이미 동네 친구들이 다 모인 후.
그네가 있는 쪽으로 갔다가, 미끄럼틀이 있는 쪽으로 갔다가, 목마가 있는 쪽으로 갔다가, 뺑뺑 왔다 갔다 돌다가 어느새 빨간색 씽씽카는 이쪽, 파란색 씽씽카는 저쪽에 각각 홀로 외로이 남겨지고 아이들은 무시무시하게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나도, 나도 탈래. 나도.”
누나가 하는 건 꼭 무조건 자기도 해야 성이 찬다는 둘째.
카페에서 언니가 한 말이 사실이라고 증명하듯, 그네를 타고 있는 누나를 쫓아가더니 그 옆에서 얼굴이 점점 비오기 전 구름 끼듯 울상이 되기 시작한다.
“나도 탈래, 나도.”
“누나 다 타고.”
“싫어. 나도.”
어어– 불안하다, 왠지 불안하다. 내가 다가가 보지만, 나의 존재가 별로 위로가 되는 것 같진 않다.
“지금 누나 타니까 누나 다 타고나서 탈까?”
고개를 절레절레, 얼굴에 먹구름이 점점 더 끼기 시작한다.
“그럼 우리 잠깐 동생한테 양보할까?”
누나도 고개를 절레절레, 얼굴에 조금 다른 느낌의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싫어요. 나도 타고 싶은데. 내가 먼저 왔는데.”
그래, 저 마음 안다. 내가 저 마음 왜 모를까. 같은 첫째로써 맨날 동생한테 양보하라고 하면 짜증 나던 그 마음.
내가 6살이던 시절은 옛날 옛적이지만, 저 마음만큼은 내가 잘 안다. 뭔가 속상하고 억울하던 마음.
그래 봤자 2살 더 많은 누나인데, 6살이 어른이면 얼마나 어른이라고 누나니까, 누나라서, 누나이기 때문에 따라오던 첫째의 책임들.
내가 저 마음을 왜 모를까.
“어! 이게 뭐야?! 이게 뭐야?!”
그네 뒤쪽에 있는 풀들 사이 초록색 가득한 모자이크 속 빨간 점이 보인다. 산딸기 같이 생겼다.
이곳저곳 하나 둘 보이는데, 다행히 아이의 시선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우와.”
주섬주섬 다가가더니 딸기를 따서 손에 올려놓는다.
밥그릇처럼 손을 동그랗게 말더니 그 안에 하나 둘 담고서는 한참을 쳐다본다.
“집에 가야 돼요.”
“집에? 왜?”
“집에 가서 엄마한테 보여줘야 돼요. 엄마.”
“그럼 우리 조금 있다가 저녁 먹으러 올라갈 때 들고 가서 보여줄까?
이모한테 주면 이모가 여기 조심히 잘 갖고 있을게.”
“안돼요, 지금. 지금 보여줘야 돼요. 지금.”
“그럼 이모가 지금 사진 찍어서 엄마한테 핸드폰으로 보내주면 되겠다.”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지만 마음에 안 드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이미 씽씽카는 저 멀리 버려둔 채 입구를 향해 동그랗게 오므린 손을 감싸며 걸어가고 있다.
입구에 비밀번호를 누르면 공동현관문이 열리는 시스템인데, 나는 비밀번호를 알 리가 없고, 4살인 아이도 비밀번호를 알 리가 없어 자꾸 이모한테 문을 열어달라고만 한다.
근데 번호는커녕 몇 자리 숫자인지도 모르겠다.
결국, 6살 누나의 도움을 받아 이모는 길을 모르니 둘 다 함께 날 인도해줘야 한다며 집으로 겨우겨우 데려간다.
“엄마한테 꼭 지금 보여줘야 한대서.”
저녁을 다 준비할 때까지 한두 시간 놀이터에서 같이 놀면 되는 거였는데, 임무에 실패한 느낌이 들어 언니에게 미안하다.
그러나 나보다 경험이 많고 유연한 언니는 아주 간단하고 쉽게 작전 변경을 지시한다.
“그럼 일단 들어가서 손 씻고 옷 갈아입자!”
손을 씻고 나오니 마룻바닥을 잔뜩 수놓은 장난감 모형에 급 식당 놀이를 시작해본다.
어렸을 때 나는 야외에서는 숨바꼭질, 실내에서는 비행기 놀이 혹은 식당 놀이를 즐겨했던 게 생각이 나서 엄지손가락만한 그릇을 들고 그 위에 국수 모형을 올려놓고 “스파게티 나왔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해본다.
그리고 고맙게도 나의 스파게티를 받아준다. 이럴 때 흐름이 끊기면 안 된다.
“스테이크 주세요.”
“네.”
프라이팬을 집어 들더니 그 위에 고기를 얹어 자신 있게 건네준다.
디테일을 추가하면 놀이는 한층 즐거워지므로 “썰어주세요”라고 친절히 요청한다.
그럼 내가 생각지도 못한 깨알 같은 디테일로 어디서 뒤적뒤적 칼과 도마를 집어 들더니 열심히 써는 시늉을 하고 나에게 그릇을 내민다.
“감사합니다! 냠냠 냠냠, 벌써 다 먹었어요!”
그 자리에서 음식을 한 30인분은 해치우고, 이제 모두가 배가 터지고도 남을 즈음에 진짜 저녁 식사가 준비된다.
미리 경고를 들어 안다. 오늘의 저녁 식사가 메인이벤트라는 걸.
식사를 하는 게 가장 전쟁터이지만 늘 승리로 마친다는 언니의 예고와 위로가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 시간 좀 안 되는 시간 동안 언니와 나는 한편이 되어 아군으로 전쟁에 임한다.
“반찬 먹고 밥 먹고! 반찬만 먹으면 안 되지.”
“입에 있는 걸 씹어야지. 씹어서 삼켜야지!”
“밥이 왜 안 주는 거야, 밥이 그대로인데.”
“젓가락으로 먹으라 했지. 엄마가 자꾸 손으로 먹으면 된다고 했어 안 된다고 했어?”
예전에 하던 두더지 게임 (두더지가 튀어나오면 방망이로 때리던) 처럼 시도 때도 없이 6살, 4살, 그리고 2살의 쉼 없는 연주가 흘러나온다.
한 명한테 말 한마디를 하면 돌아서서 다른 애한테 할 말이 생기고, 건너편에 있는 아이한테 한마디를 하면 또 왼쪽, 오른쪽에서 공격이 들어오고.
쉴틈이 없다. 스릴 넘치는 밥상이다. 덕분에 나는 반찬 먹고 밥 먹고, 입에 있는 걸 세 번은 꼭꼭 씹고, 줄어드는 밥알 개수를 세고 있으며, 평소보다 심혈을 기울여 젓가락질을 선보이고 있다.
신세계라 제일 도움이 못 되었던 식사 시간도 끝이 나고, 잠깐의 틈을 타 얼른 언니가 자기 밥 한 그릇을 퍼온다.
그런 언니의 모습을 보며 우리 엄마도 저렇게 힘들게 먹이고 본인은 그렇게 급하게 드셨던가 죄송스러운 마음이 든다.
무엇이라도 제대로 돕고 싶은 마음에 얼른 아이들을 마루에 깔린 매트로 유인한다.
그럼 내가 무언갈 제시하기도 전에 동화책을 꺼내더니 읽어달라고 하는 좌 6살 우 4살.
흥부와 놀부, 인어공주(비극적 결말),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신데렐라.
한쪽 벽면을 꽉 채울 정도로 동화책이 가득한데, 아이들은 지칠 줄을 모른다.
글자만 읽을 줄 모르지, 스토리에 대한 호기심과 집중력은 누구보다도 뛰어나다.
장난친다고 “이거 아까 읽은 건데?”라고 하지만 통하지 않는다. 귀신같이 기억한다.
조금씩 지쳐가던 나는 아웃사이더의 속사포 랩으로 동화를 읽어준다. 그래도 찰떡같이 이해한다 (혹은 사실 열심히 그림만 쳐다보고 있다).
그렇게 저녁 9시쯤, 이제 이모도 집에 가야 한다고 다음 책으로 넘어가는 걸 말리니 아이들이 섭섭한 표정을 짓는다.
정류장까지 길이 멀다며 다섯 식구가 다 나 하나를 위해 마중을 나온다.
밤공기가 시원하고 아파트 단지가 커서 여기저기 산책 나온 부모님과 아이들의 모습이 좋아 보인다.
무언가 서울이지만 서울 같지 않은 서울이랄까.
“첫째 낳았을 때는 몰랐는데, 둘째 낳고, 셋째 낳고 나니까 얼마나 예쁘고, 귀한 것인지 알겠더라고.
날 닮은 자식이 한 명, 두 명, 세 명 생기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산후우울증이 다 없어졌어.”
“그래도 개인 시간이 없으니까 아쉽거나 힘들지 않아?”
“개인 시간은 주로 저녁에 애들이 다 잠들면 잠깐?
그때 블로그에 글도 올리고, 책도 읽고.
근데 난 그걸로 충분해. 그걸로도 되게 감사하고 만족해.”
하루를 같이 보낸 한 언니의 삶은
하나를 키우고, 둘을 키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셋을 키우는 (동생의 아기까지 돌봐주니 넷을) 어려움을 보여 주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해하는 언니의 모습에
나의 사촌이자, 아이 셋의 어머니이자, 여자이자, 사람이자, 슈퍼우먼인 그녀와의 하루는
참 멋지고, 존경스럽고, 아름다운 한 장의 그림으로 마음에 남을 것 같다.
서울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1. 그녀는 멋졌다.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