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요일은 쉽니다 Dec 16. 2016

이병률,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VI - 그런데 나, 어떻게 잘 지낼 수 있을까요



당신을 한 번 본 적이 있습니다. 당신과 내가 자주 갔던 극장에서였어요.

나는 많은 사람들과 같이 있었고 당신은 혼자였습니다.

혼자인 당신이 어떤 영화를 보러 왔는지 알려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당신을 지켜야겠다는 마음이 앞서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나는 많은 사람들과 한 줄로 극장에 앉았지만 영화를 보지 않았습니다.

내 머릿속에 가득 찬 ‘끝’이라는 말이 서러워서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대신 당신과 함께 속해 있는 이 건물이 무너지는 상상을 하면서 급기야 내 자신에게 놀라고 말았습니다.

왜 헤어짐의 상태에서는 사랑하지 않았던 거라고 믿게 하는지를,

사랑이 아니었다고 말하게 되는지를,

왜 헤어진 이후로는 정확하지 않은 것만 생각하게 되는지를

모르고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었는지를,

어쩌면 그토록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지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버둥거립니다.

당신이 잘 지내고 있다면 나 지금부터라도 잘 지낼까 합니다.


그런데 나, 어떻게 잘 지낼 수 있을까요.

이렇게 못났고 마음도 엉망인데.





글. 이병률,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

매거진의 이전글 이병률,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