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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요일은 쉽니다 Jan 07. 2022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김지수 (A)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모임, 열여섯 & 열일곱 번째

211221 & 220106, 2021년의 마지막 모임과 2022년의 첫 모임을 죽음을 주제로

※가공되지 않은 raw data 그대로입니다


[잡담]

S: 아니 난 오늘 동기가 같이 사주를 보러 가재요. 자기가 서른 전에 결혼할 거라고 들어서 확인하고 싶다고. 그래서 내가 나도 교회 권사님이 스물일곱에 간다고 그랬는데 못 가고 이러고 있으니까 그런 거 다 쓸데없다고.


Y: (웃음)


[대화 시작]


S: 네, 그래서 어떠셨습니까? 이번 주에는 챕터 1에서 4까지만 읽기로 했는데 와... 책에 붙인 포스트잇이 엄청 많네요. 오늘 이래서 다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왔어요. 이 책은 나눠서 이야기를 좀 천천히 많이 하면 좋을 것 같아요.


Y: 나는 일상생활에서 죽음에 대한 테마를 가지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도 한정적이고, 그런 주제가 수용 가능한 공동체도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 같은데 책을 읽으면서, 나도 죽음의 일부분을 눈앞에서 경험했던 사람으로서 죽음과 관련된 대화를 어쩌면 되게 나누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나도 내가 경험했던 나의 소중한 사람의 죽음이... 뭔가... 말하기도 어렵고, 그 사람의 죽음에 대한 심오한 나의 마음속에 되게 다양한 감정, 그런 소용돌이들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었어. 그 얘기를 들으려고 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고, 그 주제도 우리에게 일상적이지가 않기 때문에 그냥 나도 어느 순간 접었던 것 같아. 이렇게 좀 숨겨놨던 느낌? 근데 이어령 선생님의 모토가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인데 죽음을 인지하고 살아가는 사람과 대화를 하는 느낌인 거야. 그래서 나도 되게 많이 해갈되고 아 이게 죽음이구나, 이게 내가 그때 경험했던 느낌이었구나, 이게 내가 그때 느꼈던 감정이었구나를 이 대화를 통해 많이 정리한 것 같아.


꾸밈없이 그냥 이분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죽음 같았어. 그러니까 김지수 기자가 빨리 이 책을 내고 싶었다는 그 마음이 너무나도 이해가 가는 거지. 그래서 나도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딱 넘기자마자 진짜 막 뿌리고 싶을 것 같아 제발 읽어보라고. 우리가 최근에 읽었던 올해 베스트 중에 하나였던 신경숙 작가의 소설과는 또 다른 결로 베스트야. 그리고 어느 나이에 읽느냐에 따라 느끼는 것도 되게 다를 것 같은데, 나는 지금 내 나이에 이 책을 만났다는 것도 엄청 큰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너는?


S: 저도요. 이 책은 신문에서 추천해서 골랐던 건데, 이어령 교수님은 워낙 유명하니까 궁금했고 이 분의 글을 접하면서 언니 말대로 그 지성에 압도당하는 느낌이었어요. 책이 두껍지 않은데 처음 1/3을 읽고 진이 빠졌어요. 진짜 이렇게 포스트잇 붙일 부분들이 너무 많아서, 책의 길이와 다르게 한 장 한 장이 되게 무겁고 너무 많은 것들이 내포되어 있는, 정말 응축된 느낌?

 

저는 맨 처음에 써놓은 질문은,

"스승이란 무엇인가. 시인 이성복은 스승은 생사를 건네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죽음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기 위해 생사를 공부하는 사람이 스승이라고."

그리고 여기서 이어령 교수님은 그런 스승이신 거 같아요, 우리에게 죽음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언니가 생각하는 스승은 어떤 사람이고 언니의 스승은 누가 있어요?


Y: 나한테 스승은 멘토 같은 사람인 것 같아. 멘토를 만나고 싶은 그런 갈급함이 있어. 그건 아마 그런 멘토, 스승의 역할이 아빠였었기 때문에 더 그런 갈급함이 있는 것 같아. 우리 아빠가 스승이고 멘토였던 이유는, 나의 삶의 되게 중요한 가치는 사랑인데 그 사랑을 몸소 보여주신 분이야. 그리고 아빠가 보여준 사랑은 희생이었는데 난 사랑이 곧 희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더 와닿았던 것 같아. 너는?

 

S: 저는, 책에서는 스승이 죽음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사람이라 하고, 언니는 스승이 사랑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나는 꿈이나 가능성을 알려주는, 내 안에 있는 가치를 발굴 해내 주는 사람. 제가 스승이라고 생각한 분들은 그렇게 사람 안에 있는 가능성을 알아봐 준 사람들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그다음 세대를 또 육성하려고 했던 그런 스승들이 기억이 나요. 그런 맥락에서는 교수님들이 많이 생각이 나요.


근데 죽음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사람은 잘 없지 않아요?


Y: 그렇지, 죽음에 대해서 알려주는 사람도 없지만 그냥 죽음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는 사람조차 잘 없어. 주변에 우리 한번 죽음에 대해 얘기해볼까?라고 하는 사람을 난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나는 그래, 부재에 대해서 그 사람을 추억하는 것이 내가 치유하는 방법인데 오히려 사람들은 그 반대로 생각을 해서 금기어가 되더라고. 근데 나는 그게 더 속상한 거야. 예를 들면, 아빠가 되게 아프다가 돌아가셨잖아.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만 해도 다들 건강은 좀 어떠셔, 오늘 상태는 좀 어떠셔, 오늘 안색은 좀 어떠셔 이렇게 물어보다가 아빠가 소천하시고 나서 그다음 날부터는 아무도 묻지 않는 거지. 당연한 거겠지만 그냥 그게 하루아침에 마치 동전 뒤집는 것처럼 그냥 없는 사람이 되는 게 더 마음이 아픈 거지. 그래서 나는 오히려 친구들 만나서도 얘기를 하고 싶어서 한다고 하는데 또 그러면 분위기가 싸해지는 거야. 그럴 때 이제 나는 이게 아닌가 보다 하고 다시 고이 접어뒀지. 근데 처음에는 그걸 엄청 서운해하다가, 지금은 그럴 수 있다, 뭔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니까 그들에게 내가 이해를 바라는 것도 강요가 될 수 있는 거고 강압이 될 수도 있는 거고... 그런 걸 나도 이해하고 나름대로 좀 삼켜내는 그런 시간인 것이지. 그래서 죽음을 테마를 얘기할 수 있는 것 자체가 관계의 깊이, 친밀성이 전제되어 있을 수도 있겠더라고.


S: 맞아. 언니는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을 때 어떤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Y: 나는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그게 억울했던 것 같아. 내가 생각했던 아빠는 정말 위대한 삶을 사셨어. 되게 헌신적이고 되게 대단한 삶이었는데 그걸 이 땅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느낌? 근데 그걸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스토리를 증거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거지. 근데 그걸 들을 사람이 없으니까 나는 그 이야기가 내 입에서만 맴도는 게 너무 아쉬웠던 것 같아. 그리고 아빠가 나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빠와의 추억은 무엇이 있는지, 그런 정말 사소한 것들이었을 것 같아.

 

[SKIP]


S: 저는 또 되게 감탄했던 표현 중에

"'내가 느끼는 죽음은 마른 대지를 적시는 소낙비나 조용히 떨어지는 단풍잎이에요.
때가 되었구나. 겨울이 오고 있구나... 죽음이 계절처럼 오고 있구나.'"

이어령 선생님이 하신 말씀인데 이 비유가 너무 찰떡같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이 정의는 이분의 케이스일 것 같긴 해요. 왜냐하면 내가 만약에 갑자기 교통사고로 죽으면 그건 조용히 떨어지는 단풍잎의 느낌은 아닐 수도 있으니까. 근데 나이가 들고 몸이 아프고 하는 그런 죽음을 가정했을 때, 이 표현이 너무 슬픈데 너무 적확한 거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꼭 죽음이 아니라 나이 드는 것도 이런 느낌일까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마른 대지를 적시는 소낙비나 조용히 떨어지는 단풍잎... 언니는 죽음을 표현한다면 어떻게 표현하겠어요?


Y: 영혼의 생일. 육신은 죽고 영혼만 남아서 또 다른 영적인 세계로 들어가는... 그러게, 되게 무거운 주제이지만 표현하기는 굉장히 긍정적으로 표현했네. 너는?


S: 저는... 보물상자? 죽음을 맞이하며 한 번 정리가 돼서 가루를 곱게 거르는 것처럼 고운 기억들만 마음에 남는 것 같아요. 서로 다퉜던 것, 원망했던 것, 미워했던 것은 사라지고 그냥 한없이 좋았거나 한없이 그리웠거나 그런 아련함만 남아서 결국 내 마음에는 그 사람과의 보물밖에 안 남는 거 같아요. 그래서 더 힘든 것 같기도 해요. 너무 좋은 것만 남으니까...


Y: 그럴 수도 있겠다. 되게 좋은 엄청난 표현인데, 보물상자.


S: 근데 <아버지에게 갔었어>에서도 죽음은 정말 이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특히 끝으로 갈수록, 때가 되었구나, 겨울이 오고 있구나 하고 뭔가 아버지하고의 이별을 계절처럼 자연스럽게 맞이하게 되는 느낌...


Y: 난 또 되게 인상 깊었던 게 이어령 선생님께서 김지수 기자한테 거듭 얘기하는 게 있는데, 너의 머리로 생각해라, 네가 창조적으로 이 글을 쓰길 원한다고 하셨어. 이어령 선생님께서는 자기는 평생 누구를 보고 겁먹은 적이 없는 게 본인 머리로 생각했으니까.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하나하나 내 머리로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인간은 흔치 않으니까. 나도 아니 왜 그렇게 해야 되는데?를 뒤늦게 성인이 돼서 생각해 봤던 것 같아. 그걸 이어령 선생님과 같이 좀 일찍 생각해봤더라면 또 다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데, 이 포인트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우리의 책 모임도 어떻게 보면 우리가 우리 스스로 생각하기 위한 굉장히 큰 통로이겠다 싶었어. 우리가 매주 모여서 이 부분에 대해서 너는 어떻게 생각해, 나는 이렇게 생각해와 같이 나누는 것 자체가 어쨌든 내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나. 너는 네 머리로 생각한다는 게 어떤 듯인 거 같아?


S: 문자 그대로 그냥 쓰여 있는 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한 번쯤은 내가 그것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던져보고 누군가 그것에 대해 질문했을 때 나만의 답을 할 수 있는 것. 언니 말대로 교육도 교육인데 종교에 있어서 특히 모태신앙이면 그러지 않기가 쉬운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너는 왜 교회를 다녀? 하고 물었을 때 선뜻 나만의 대답이 없는 거죠. 나는 그냥 어렸을 때부터 당연히 믿었으니까. 그러니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왜?라는 질문을 한 번은 던져야 되는데, 그게 종교에 있어서는 본질적으로 그래서 나는 왜 믿는가?라는 질문을 살면서 한 번은 대답을 해야지 안 그러면 그냥 깡통 같은 믿음으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Y: 맞아. 나는 교육도 신앙도 그렇지만 또 내가 진짜 처절하게 내 머리로 생각해야만 하는 곳이 바로 지금, 이 직장이었어. 인수인계라는 것이, 매뉴얼이 있으니까 그대로 하면 되는 게 인수인계잖아. 근데 나는 그게 없었어. 이대로 하라는 매뉴얼이 없으니까 왜 이렇게 해야 되지, 결론이 이렇게 되려면 왜 그렇게 해야 되지를 하루 종일 생각했던 것 같아. 그렇게 내가 지금 일 년 넘게 일하면서 보니까 나는 이 매뉴얼을 잊어버릴 수가 없어. 나도 보니까 일을 하면서 내가 배운 걸 예를 들어서 내 밑에 있는 직원분한테 설명하면서 나도 또다시 배우는 것 같아. 그래서 내 머리로 생각하는 게 곧 나의 재산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무언가에 대해서 이렇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면 그게 나의 재산이고 나의 자산이고 나의 능력이 되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 맥락이 엄청 공감이 됐던 것 같아.


S: 저는 나왔던 얘기 중에 이것도 인상 깊었어요.

"마인드를 비워야 영혼이 들어간다"
"'스님을 찾아온 사람이 입으로는 '한 수 배우고 싶다'고 하고는 한참을 제 얘기만 쏟아냈지. 듣고 있던 스님이 찻주전자를 들어 잔에 들이붓는 거야. 화들짝 놀라 '스님, 차가 넘칩니다' 했더니 스님이 그랬어. '맞네. 자네가 비우지 못하니 찻물이 넘치지. 나보고 인생을 가르쳐달라고? 비워야 가르쳐주지. 네가 차 있어서 말이 들어가질 못해.' 마음을 비워야 영혼이 들어갈 수 있다네.'"

언니는 지금 얼마큼 차 있어요?


Y: 나는 이제 30% 찬 것 같아. 사실 내가 비워지게 된 결정적이었던 계기는 작년 즈음이었던 것 같고... 그 당시에 모든 게 나한테는 비워지게 되는 계기였고... 그러고 나서 그 후의 시간들에서 채우려고 하는 욕구가 다시 발동을 하는 것 같아. 너는?


S: 저는 막 흘러넘치다가 좀 비워져서, 그래도 아직 50, 60%는 차 있는 것 같아요. 한 120, 130%에서 50, 60%로 내려가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용서였어요. 미움이나 원망이 가득 차 있을 때가 제일 아무것도 안 들렸고, 그럴 때는 좀 뭔가 악에 받쳐서 드라마 주인공들이 흑화 해서 갑자기 막 복수하겠다고 머리 어둡게 염색하고 나오는 그런 느낌처럼, 옆에서 아무리 너 이런 사람 아니었잖아 해도 안 들리는 것처럼 미움이 가득 차있었는데... 내 마음을 비우는 과정은 결국에는 용서가 선행돼야 했어요.


Y: 그리고 또 코로나가 사람들이 죽음하고 직접 마주치게 되는 계기였다는 맥락이 나도 너무 공감이 됐던 것 같아. 정말 우리의 삶 속에 느닷없이 죽음이 찾아온 거지. 근데 죽음을 예비하지도 예측할 수도 없을뿐더러 뭔가 준비가 전혀 안되어 있었으니까 이 앞에서 우리는 진짜 속수무책이었던 것 같아. 그리고 그 계기로 비로소 죽음을 천천히 들여다보는 계기가 된 것 같고. 아까 말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우리가 비워지는 상태가 되어가는 게 아닐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들도 제한이 많아졌잖아.


S: 맞아요. 코로나는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들에 대해 강제로라도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든 것 같아요. 종교에 있어서는 다들 별생각 없이 주일날 당연히 교회를 가다가, 못 가게 되니까 또 별생각 없이 집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풀리니까 내가 다시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려야 하나 온라인으로 드려야 하나, 근데 생각보다 집에서 드리는 게 너무 편해, 이러면 전에는 안 했던 고민을 하게 되는 거예요. 


Y: 그렇지. 흔한 말로 이제 걸러진다고 하는 게 맞아.


S: 그렇게 그냥 내가 무의식적으로 했던 많은 것들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되고 진짜 걸러지는 경험이었던 거 같아요.


[SKIP]


S: 이어령 선생님이 인생을 이렇게 비유하셨어요.

"'인생도 다르지 않아. 어느 순간부터는 인생을 풀(full)로 보는 게 아니라 불현듯 뛰어들어가 후반부 영화만 보는 것 같지. 영화가 끝나고 'the end' 마크가 찍힐 때마다 나는 생각했네. 나라면 저기 꽃봉오리를 놓을 텐데. 그러면 끝이 난 줄 알았던 그 자리에 누군가 와서 언제든 다시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을 텐데... 인생이 그래.'"

그리고 제가 이렇게 적었네요. 누군가의 인생 중간 지점에서 만난다는 것은? 상처의 자리로 들어가 회복이 일어난다는 것은? 이게 무슨 뜻일까요 (웃음)? 누군가의 인생 중간 지점에서 만난다는 것은... 내가 뭔가 마음이 힘들었나 봐요 (웃음). 상처의 자리로 들어가 회복이 일어난다는 것을 써놓은 것으로 봐서...

 

Y: 누군가의 인생 중간, 그렇지 그러니까 영화 속 한창 고난의 때에 만나게 됐을 때 그런 느낌을 물어보는 거 같아. 결론지어지지 않은 그 과정 속에 있는 순간.


S: 그리고 그런 생각도 들어요. 뭔가 특히 우리 나이가 되어서 만날수록, 그러니까 영화를 시작부터 봤으면 이해가 될 텐데 그 사람을 어렸을 때부터 내가 보고 자라온 게 아니면 지금 우리 나이를 인생의 한 1/3을 달려왔다고 치면 앞부분이 빠진 채로 갑자기 중간에서 만나는 거니까 이미 액션은 일어나고 있는데 갑자기 투입되는 거잖아요. 지금의 나이가 되고 나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그런 느낌이 있어요.


Y: 그래, 이 시점에 이 시즌에 만나는 사람들 -


S: 응, 뭔가 그렇게 구구절절 서로의 인생에 대해 3박 4일 공유하고 들어가지 않는 이상 우리는 영화의 초반을 모르잖아요.


Y: 장단점이 있을 거 같긴 해. 오히려 나의 모든 걸 알고 있는 사람보다 나의 일부, 일부라고 하면 내가 내 의지에 의해 공유한 정보들이겠지? 내가 그 사람한테 공유한 틀 안에서 대화하는 영역이 오히려 좀 더 간결하고 긍정적으로 포장될 수도 있겠지. 부연 설명 없이 요약해서 전하면 되게 뭔가 간결할 것 같긴 하다만, 또 쉽지 않은 건 예전에 얘기했던 대로 부연설명을 할 여력이 없을 땐 그게 좀 서운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예를 들어서 우리 가족의 상황에 대해서 몰라. 그 상태에서 어떤 사람을 알게 되었어. 근데 내가 지금 이런 모습인 게 이러이러한 비하인드 스토리 때문이다라는 것을 내가 너무 힘들 때는 설명할 힘이 없을 수도 있잖아. 근데 또 나의 이야기를 모른 채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그것도 또 다른 감동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오히려 제3자한테 가서 털어놓는 나의 속마음이 편할 때도 있는 것처럼.


S: 맞아, 맞아.


Y: 어쨌든 나에 대한 정보가 없으면 선입견도 없잖아. 오히려 내가 이전부터 알던 사람들은 너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이런 식으로 선입견을 가지고 판단할 수도 있는 거고. 근데 너의 질문의 결과 맞는 대답인지 모르겠어.


S: 맞는 대답이에요, 왜냐하면 나도 내 질문을 모르겠거든 (웃음). 그래, 그러니까 영화 중간에서 이미 각자가 상처 투성이인 채로 처음 만났는데, 그때부터 이 사람을 알아가게 되고 관계를 쌓아가며 상처의 자리로 들어가 회복이 일어난다는 것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길래 상처의 자리로 들어가 회복이 일어난다는 것은 이라고 적었을까요 (웃음)?


Y: 상처의 자리로 들어가 회복이 일어난다는 것은,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예전에 네가 얘기했던 영화인가 드라마처럼, 각자의 상처가 너무 깊은 채로 만나는데 둘 다 서로의 상처와 아픔에 대해 알아봐.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는 것에서부터 회복이 시작되는 거지.


S: 그게 참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아요. 그 상처를 알고 지내온 사람도 함께 회복을 하기에는 어렵고, 모르던 사람도 중간에 나타나서 함께 회복을 하기에는 어렵고...


Y: 맞아...


S: 그리고 이건 지난번에도 나왔던 얘기인데, "메멘토 모리"가 계속 나오잖아요.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나는 이게 반가웠던 게, 메멘토라는 단어를 <굿피플>에서 처음 들어봤어요. <굿피플>에 제가 진짜 진짜 좋아하는 장면이 몇 개 있어서 그 장면들만 돌려보기도 하는데, 하나는 후반부에 변호사님들이 모여서 저녁 먹으면서 누구를 뽑아야 되나 인턴들에 대해 얘기하는 자리인데, 채승훈 변호사님이 자기도 자기가 주니어였을 때 선배들이 했던 말들이 메멘토처럼 남아 있다고, 그래서 자기도 후배들한테 말을 조심하게 된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거든요. 그때 메멘토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는데 뜻을 찾아보니까 "기념품"이더라고요, "사람이나 장소를 기억하기 위한 기념품".



Y: 기념품처럼 남아 있다...


S: 그때 들었을 때 마치 문신처럼 새겨지는 걸 뜻하는 느낌이었는데, 채승훈 변호사님한테는 선배들이 했던 말처럼, 또 이 책에서는 죽음을 기억하라고 하는 것처럼 살아가면서 언니한테 메멘토로 남은 것들?


Y: 흠... 우선 처음으로 생각나는 건 식사야. 나는 식사의 자리 중에서 메멘토처럼 남아있는 순간들이 몇 개 있어. 하나는 우리 가족이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즈음인가? 아침 식사를 잘 챙겨 먹었어. 그 대표적인 예로 아침에 토스트를 구워 먹었는데, 되게 구체적으로 생각이 나는데 엄마가 토스트에 넣어 먹을 재료를 다 따로따로 준비를 해줬어. 계란이며 베이컨이며 잼이며 풍성하게 식탁에 차려놓고 아침마다 각자 식빵을 가지고 그 위에 취향대로 얹어서 먹었는데 서로 다 다르게 넣었으니까 맛이 다를 거 아니야. 그러면 서로 한입씩 먹어보고, 이런 식탁 교제가 나한테는 메멘토처럼 남아 있어.


또 우리 큰외삼촌이 조금 일찍 암으로 돌아가셨거든. 그때 암에 걸리고 나서 집에 계실 때였던 것 같은데, 삼촌은 휠체어에 앉아 계셨고 나머지 가족들은 식사 준비한다고 각자 엄청 바쁘게 있었어. 아마 명절이었던 것 같아. 나는 큰외삼촌 옆에 식탁에 앉아서 콩나물을 다듬었어. 명확하게 기억이 나는데, 그것도 뭔가 식탁 교제의 화목한 순간으로 메멘토로 남아 있는 것 같아.


S: 저는 채승훈 변호사처럼 마음에 새겨져 있는 말들도 있는데 이건 몇 번 나누었으니까... 메멘토의 정의에 맞는지 모르겠는데 되게 뚜렷하게 남은 감정들이 있어요. 예를 들면 외로움 하면 생각나는 장면이던지, 두려움 하면 생각나는 시기던지, 따뜻함 하면 생각나는 무엇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내가 이번 주에 언니한테 카톡으로 얘기했던 것처럼 그때 그 친구랑 헤어지고 이촌역 그 붉은색 벽돌 출구. 그게 정확하게 붉은색 벽돌은 아닐 텐데 그런 붉은빛의 지하철역 출구인데 계단을 걸어 올라가 출구를 나가면 이렇게 쭉 걷는 길이 있고 또 길을 건너서 버스 타고 이제 서빙고까지 가야 하는데, 그 길이 나에게는 되게 선명하게 남아 있어요. 그냥 그 붉은빛이... 출구를 나오면 양 옆에 나무들이 쫙 있는데... 그때가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던 때였는데 여름이니까 해도 오래 뜨고, 바람도 솔솔 불고, 나무 냄새나 온도나 공기의 촉감이나 출구를 나오는 싱그러웠던 그 길이 무너져 가고 있던 마음하고 대조돼서... 밖은 너무 아름다운데 마음은 찢어지고 있고... 그냥 거의 기어가다시피 어떻게 어떻게 버스를 타고 서빙고에 들어가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계속 울고... 그리고 재밌는 건 별로 신실한 사람도 아니었어요. 그냥 너무 힘들 때 생각나는 게 교회밖에 없었고, 유일하게 숨 쉴 수 있는 것 같은 공간이 예배당이었고, 그래서 퇴근하면 저녁마다 가서 엉엉 울다가 오고.


예배당에 가면, '내가 오늘은 어떻게 살아냈는데, 내일은 못 버틸 것 같아요...' 그러고 그냥 엉엉 울다가 다시 집에 가서 또 하루를 회사에서 살아내고. 그러면 저녁에 다시 예배당에 가서, '내가 오늘은 또 어떻게 버텼는데, 하나님 내일은 진짜 이제 못 버틸 거 같아요...'


Y: 한 주에 한 번씩 -


S: 아니 맨날. 그때 진짜 정신이 나가 있었어요. 하루 24시간이 무언가로 항상 차 있잖아요. 나는 마지막에 장거리였으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통화하고, 오후 몇 시 즈음에 통화하고, 퇴근할 때 통화하고, 주말에는 어떻고 일상 순간순간들이 촘촘하게 그 친구로 차있었는데 헤어지면서 그냥 살점이 뜯겨나간 기분? 나는 항상 6시에 일어나서 통화를 했는데, 습관처럼 6시에 눈이 떠졌는데 통화를 못해.


Y: 아니 근데 진짜 너무 슬플 것 같아. 예고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회사를 다녔지?


S: 모르겠어요. 그때 약간 넋이 나간채로 다녔어요. 회사 사람들은 몰랐어. 연애하는 건 알았는데 헤어진 건 몰랐어. 그러니까 어디 가면 우리 팀장님도 남자친구 보내주게 사진 찍어줄까? 하는데 나는 말은 못 하고 괜찮다고 하고. 회사 사람들은 끝까지 헤어진 걸 몰랐어요. 나는 그 친구랑 결혼할 거라고 정말 굳게 믿었기 때문에 도저히 얘기할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현실을 믿지 않은 것도 있었고, 우린 다시 만날 거야 이런. 그때 그렇게  이촌역을 가던 마음이나, 아니면 하루가 온 군데 구멍이 난 채로 그냥 찬바람이 슝슝 들어오는데 어쩔 줄 모르고 겨울에 그냥 그대로 찬바람 맞으면서 덜덜 떨고 있는 느낌... 그 시간들을 어떻게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 모르겠는 게 너무 끔찍해서 그 시간들을 다시 나로 채우기까지 정말 힘들었단 말이에요.


한참 지나서, 이제 한 3년이 지나서야 겨우 나로 다시 채웠는데 나를 다시 빼서 여기에 누군가를 넣는 게 이제 무서운 거죠. 그 누군가가 떠나면 나는 또 그 부재를 견뎌야 하잖아요. 지금 나로 채워서 다시 바쁘게 24시간이 굴러가는데, 누군가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무엇 무엇을 빼서 들였는데 그 사람이 다시 빠지면 나는 그걸 또 어떻게 채워야 할까... 그런 순간들은 문신처럼 남아 있어요. 그게 나를 더 이상 아프게 하진 않지만, 그 기억들이 사라지진 않아요.


Y: 그렇지. 생각만 해도 너무 아프다. 아픈 이야기야. 그 시절의 내가 엄청 애틋할 것 같아.


S: 그래서 제가 사진 한 장은 안 버렸잖아요. 한참을 다른 것도 못 버린 채 살았지만, 나중에는 다 버려도 그 사진 한 장은 안 버렸던 이유가 사실 우리나 그 친구보다 그 사진의 나를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었던 거예요. 내가 사랑받던 시절의 나의 모습을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이 사진뿐이니까... 그때의 모습 하나는 간직하고 싶은 마음. 근데 만약에 내가 다음 사람을 만나게 돼서 또 한 번 사랑받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된다면, 그러면 그때는 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SKIP]


Y: 나는 김지수 기자가 이어령 선생님에 대한 존경, 멘토로서 엄청 따르고 있다는 게 많이 느껴졌어. 인터뷰 내용도 그렇지만 기자가 써놓은 글 안에서도 그런 게 느껴졌는데, 그 내용 중에 이런 게 있었어.

"지금 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는 못 만날 것 같은 사람에게,
지금 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는 못 들을 것 같은 진실을 듣게 되는 순간"

그게 이어령 선생님과 자기의 지금 만남의 순간이라고 표현을 했는데, 너도 지금 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 못 만날 것 같은 사람에게, 지금 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는 못 들을 것 같은 진실을 듣게 된다면 어떨 것 같아?


S: 아니 내가 이번 주에도 드라마를 보다 마음이 찡했었는데, 언니 <그 해 우리는> 봐요?


Y: 최우식 나오는 거 아니야?


S: 맞아요, 최우식하고 김다미. 그냥 평범하고 수수한 얘기라서 어떻게 보면 심심하고 잔잔한 드라마인데, 그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들이 29으로 나오거든요. 그 나이 즈음에는 이미 방어막을 많이 쌓은 채로 살아가는데, 근데 어떤 특정한 사건이나 시간에 그 방어막을 아주 잠깐 내리는 순간이 있는 것 같아요. 나의 상황에 따라 아주 잠깐 방어막을 내리게 되는 순간이 있는데, 그 순간에 내가 그 사람 옆에 있었다면 목격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 순간이 아니었으면 못 봤을, 몰랐을 그런 모습들... 그리고 우리 나이가 되면 그런 순간들이 잘 없으니까 더 극대화돼서 보이는 것 같아요. 20대 초반이었으면 일상의 반 정도는 방어막을 내린 채 사니까 오히려 서로의 내면이 너무 자연스러웠을 수도 있는데, 지금은 다 괜찮은 척하면서 사니까 어느 한순간 방어막을 내렸을 때 내가 그 모습을 목격했다면 그게 되게 강력하게 남는 것 같은 거예요. 그것도 메멘토처럼 그 사람과의 인연에 있어 강하게 남아서 그 이후에 그 사람이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아도 내가 그 사람을 바라보는 모습이 예전과 같을 수는 없는 거죠.


"지금 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는 못 만날 것 같은 사람에게,
지금 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는 못 들을 것 같은 진실을 듣게 되는 순간.
그와 나 사이에 엷은 막이 사라지고 잠깐 하나가 된 것 같은 그런 순간들."


이번 주에도 드라마 끝부분에 김지웅이 너무 힘든 하루를 보내고 길에서 우연히 국연수를 마주칠 때 나 오늘 좀 힘든 일이 있었어, 하고 순간적으로 방어막을 내리고 자기 엄마에 대한 얘기를 하는데... 그 장면이 너무 슬펐어요. 그건 아마, 최근에 내가 그날 장례식장에서 그 장면과 비슷한 순간을 마주했기 때문이었던 거 같아요. 선배는 나한테 항상 한편으로는 좀 어려운 사람이었어요. 나이랑 경력도 훨씬 길고 나를 평가하는 입장이기도 하니까 조금 불편하고 어려웠던 면이 있었는데, 그날은 상복을 입은 채로 입은 애써 웃는데 눈에는 눈물이 그득한 얼굴을 보니까 그 순간 선배가 더 이상 나를 지도하던 선배가 아니라 그저 아버지를 잃은 소년으로 변해있는 거예요. 그 모습을 그날 그 순간에 보게 된 거죠. 회사에서는 되게 센 캐릭터인데 내가 그날 그 사람의 모습을 본 이후로 이제 그 사람과 나의 관계에 있어서 예전 같을 수는 없더라고요. 그런 순간을 보게 된 건 생각이 좀 많이 복잡해지는, 그 이후에 내가 그 사람한테 갖게 되는 감정들도 그로 인해서 미묘하게 바뀌더라고요.


https://www.youtube.com/watch?v=kAvYZ50qOzA&list=LL&index=1&t=730s (11:30부터)


내가 언니랑 오빠를 생각했을 때 마음의 변화가 있었던 것도 그때 목사님 장례식장에서였는데, 이 얘기는 예전에 한번 했죠. 오빠가 와서 인사하고 우리 테이블에 앉았는데 언니가 오더니 밥 먹을래? 묻고 언니도 밥 한 공기 달라고 해서 같이 앉아서 밥을 먹는 그 모습이, 그게 되게 좋은 의미에서 충격적이었어요. 그 모습을 보는데 뭐라고 해야 할까... 그러니까 언니가 오빠 앞에서는 배고프다고 할 수 있구나. 나는 그때까지 언니가 배가 안 고프다고 생각을 했어. 근데 오빠가 도착하고 언니도 옆에서 같이 밥을 먹는 걸 보는데 그게 나한테는 사랑의 한 장면이었고 그것도 메멘토처럼 남아 있죠. 그것도 정말 그 상황에서만 볼 수 있었던 장면이겠죠, 우리가 보현이랑 모여서 축하 파티한다고 오빠랑 넷이 밥 먹을 때 옆에 앉아서 밥을 먹는 건 그 느낌이 아닐 테니까.


Y: 그렇지.


S: 그런 순간들이 메멘토예요. 안 잊혀져요.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이나 생각이나 그로 인해서 내가 언니랑 오빠를 생각할 때 드는 마음은 안 잊혀져요.


Y: 듣다 보니까 근데 너의 경우에는 그 순간들에 대해서 애잔하고 애틋한 마음이 남겨져 있잖아. 근데 나는 오히려 그 방어막을 내리는 순간 그 사람의 다른 모습을 보았을 때 생각보다 깨는 순간들이 있었어. 내가 알던 모습과는 다른 분위기나 행동을 보고, 실망이라기보다는 그냥...


S: 낯선?


Y: 맞아, 낯설었어. 딱 그 표현이 맞겠다. 그 낯선 모습이 너무 낯설어서 어떻게 내가 반응을 해줘야 될지도 모르겠고 그냥 멀뚱멀뚱 있었어. 그 낯선 모습도 그 사람의 모습이잖아 어쨌든. 근데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내가 너한테 이것까지 공유했어, 우리의 친밀도가 이렇게 더 가까워졌어라고 여길 수 있는 건데 나는 오히려 자연스레 조금 거리가 생기더라고. 이것도 나의 선입견일까, 이것도 뭔가 내가 색안경을 끼고 보는 걸까 고민을 해봤는데 나의 교만한 생각일 수도 있고 뭔가 나는 복잡한데 그 사람은 그대로야. 나도 관계가 틀어질 건 없지만 어쩌면 방어막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모르겠어, 사람마다 다른 것 같기도 하고. 그럴 때 어떻게 해야 될까?

 

S: 대신에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죠. 그러니까 그 사람과 있어서 내가 느끼는 감정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아요. 포용하게 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래서 멀어지게 되는 사람도 있을 거고. 대신 상대방이 나의 어떠함으로 인해 나한테 낯섦을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사람한테 있어서 조금 관대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설령 그 사람이 멀어지더라도 원망하지 않을 수도 있고...


Y: 그러네. 나의 감정에 대해서는 전환이 안 된다면 나와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타인에 대한 이해도는 넓어질 수 있겠다. 상대방이 나한테 공감을 못해줄 때 덜 서운해한다던지.


S: 나도 아까 언니가 말했던 구절을 적어놨었는데,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아버지에게 갔었어>가 많이 생각났어요. 아버지와의 그 순간들은 딱 그 시간, 그 상황 속에서 주인공들이 다시는 못 들을 것 같은 진실을 듣게 되고 정서적인 교감을 나눌 수 있지 않았나. 우리도 지난주 독서 모임하고 이번 주 독서 모임이 또 다를 수 있겠죠.


Y: 그럼, 우리가 그 한 주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에 따라 우리 대화의 맥락과 분위기가 너무 다르지.


S: 그러면 우리 같은 지속적인 관계에 있어서도 그 순간순간이 다 다른 거죠. 당연히 작년의 우리와 재작년의 우리와 5년 전의 우리는 -


Y: 너무 다르지.


S: 저는 또 이 부분을 적어놨어요.

"'내가 여러 번 얘기하지 않았나. 덮어놓고 살지 말라고. 왜냐면 우리 모두 덮어놓고 살거든.
덮어놓은 것을 들추는 게 철학이고 진리고 예술이야.'"

이게 되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맞아, 우리는 덮어놓고 살지... 나는 무엇을 덮어놓고 사는가? 나는 나의 감정을 덮어두고 사는 거 같아요.


Y: 그러게... 감정, 그걸 또 다른 말로 하면 나는 나를 덮어놓고 사는 것 같아. 그래서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불현듯 들었던 생각이, 나에 대한 관대함, 내가 나를 좀 살필 수 있어야 된다는 필요성을 느꼈어. 슬픈데 슬퍼하는 법을 몰랐어. 어떻게 해소해야 되는지도 모르고, 내가 슬픈가도 모르겠는 거야. 내가 나를 모르는 거야. 그래서 나는 죽음에 대한 반응으로 나는 누구일까, 나는 왜 하나님을 믿어야 할까가 계속 맴돌았던 것 같아. 그렇게 보니까 나는 나를 덮어놓고 살았구나 싶더라고. 우선순위를 나한테 두지 않았던 것들, 그게 왜 그런지도 모른 채 그냥 그랬던 거지. 근데 이제야 내가 왜 해야 되는지를 고민하고 동기 또는 인사이트를 힘입어서 해야 된다는 걸 깨달았어. 너는, 감정?


S: 저는 감정. 상처는 당연했던 것 같고, 근데 나이가 들면서 오히려 상처는 또 무뎌지면 나누게 되는 것 같아요. 근데 나이가 들수록 감정은 덮어두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사치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또 내가 점점 해야 되는 것도 많고 지켜야 하는 것도 많은데 가장 포기하기 쉬운 게 감정이었어요. 또 어렸을 때는 용기, 당돌함, 혹은 솔직함이 있었는데 이제는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 표현을 못하는 것 같아요. 감정에 있어서 감정을 절제하는 것이 어른의 덕목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있는 것 같고. 그래서 감정을 덮어두는 나를 볼 때 가끔 안타깝기도 해요.


삶을 살수록 가끔 드라마 보듯이 내 인생을 보게 될 때도 있어요. 드라마 볼 때 우리는 모든 상황과 감정을 다 아니까 안타까워하고, 저기서 마주쳤어야 하는데, 저 말을 했어야 되는데, 그런 뜻이 아니야!!! 하는 것처럼, 20대 때는 너무 혼란스러운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면 이제는 내가 한 발자국 떨어져서 오히려 드라마 보는 것처럼 나한테 '너 지금 그 말을 해야 돼, 안 그러면 후회할 거야'와 같이 감독해 줄 수도 있는데... 근데 또 감정을 덮어두고 살게 되니까 안 하게 되는 거예요 (웃음).


Y: 쉽지 않지.


S: 쉽지가 않아. 그냥 참는 게 반복이 되는 것 같아서 좋은 감정도 참게 되는 거 같아요. 짜증을 참고 이런 건 필요하죠, 내가 맨날 화내면서 살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뭔가 너무 좋은 것도 오히려 표현을 못하게 되는 것 같고...


Y: 그렇지.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그런 표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돼. 나의 감정 표현에 있어서 좀 더 관대 해지는 거지.


S: 그렇죠. 내가 그 사람의 주인공이잖아요. 표현을 할 수 있는 명분도 있고, 관계 설정도 그렇고.


Y: 감정의 폭도 넓어지고. 뭔가 슬픔, 기쁨 등 감정의 폭이 상대방과 함께하는 관계 속에서 스펙트럼이 넓지.


S: 한 3장까지 나눴는데, 지금까지의 부분에서 특별히 좋았던 부분? 저는 여러 개 있었는데 제일 마음이 찡했던 건 김지수 기자가 했던 말인데

"'늘 애절한 거죠. 매 순간이 지금 이 순간과의 헤어짐이니까요.'"

이게 너무 맞는 말이어서, 지금 이 순간이 더 특별하게, 그러니까 오늘 하루를 그냥 평범한 하루가 아니라 정말 소중했던 하루로 생각할 수 있게 우리의 시각을 잡아주는 것 같아서 이런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했어요. 매 순간이 지금 이 순간과의 헤어짐이면 진짜 순간순간이 다 소중한 거구나.


Y: 나는

"이어령 선생님의 말처럼 '죽음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가 이 인터뷰의 핵심이다. 돌아보면 선생이 이 시대에 태어나 대중 앞에 서서 쓰고 말한 모든 것도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죽음이라는 거대한 동굴을 들여다보고 그 벽에 삶이라는 빛의 열매를 드리우는 능력은 선생이 가진 특별한 힘이다. '죽음은 생명을 끝내지만 말을 끝내는 것은 아니다'라는 그의 예지는 너무도 생생해서, 살았거나 죽었거나 상관없이 그의 힘찬 육성이 일상 곳곳을 파릇파릇하게 파고든다.
결과적으로 그는 내게 어둡고 눅눅한 임사 체험이 아닌, 무섭도록 강렬한 탄생의 체험을 들려주었다.


[EXTRA]


"'탄생의 그 자리로 나는 돌아간다'던 당신의 약속처럼, 만날 때마다 선생은 소멸을 향해 가는 자가 아니라 탄생을 향해 가는 자다웠다. 태어나기 전 세상과 가까워질수록, 그의 육체는 흙과 빛을 반죽한 것처럼 더 작아지고 밝아졌다. 내가 멋쩍은 눈으로 무문을 거듭하는 사이에도 그는 웃으면서 빛이 되어 부서지곤 했다."


"'인간은 암 앞에서 결국 죽게 된다네. 이길 수 없어. 다만 나는 죽을 때까지 글을 쓰고 말을 하겠다는 거지. 하고 싶은 일을 다 해나가면 그게 암을 이기는 거 아니겠나."


"'가장 가까운 타자가 시야에서 사라져도 영영 떠난 게 아니라는 믿음, 그 믿음이 인생에서 얼마나 소중한지, 저는 압니다.'"
"'엄마가 없는 쪽에다 힘을 싣느냐, 있는 쪽에 힘을 싣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져. 해피 엔딩으로 볼 수도 영원한 헤어짐으로 볼 수도 있어.'"


"'...견디다 못한 욥이 신을 향해 저주를 하는 거야. 그때 한 말이 뭔 줄 아나? '이 고통을 반석 위에 쓸 수 있다면.' 내가 지금 억울한 것을 바위 위에 새길 수 있다면... 그게 욥의 마지막 희망이었어.'"


커버 사진

"Summertime sadness" https://unsplash.com/photos/FLigbWjCZz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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