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해야 글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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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저는 문예창작학과 학생이었습니다. 어느 날 건물 출입증을 찍고 들어가는데, 경비원 아저씨가 제 학과를 보시더니 툭 던지듯 말씀하셨습니다.

“문예창작학과면… 고생 좀 해야 글 잘 쓰지. 고난이 있어야 글이 나오잖아.”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습니다. 누군가의 인생을 향해 ‘고생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방식이 마음에 걸렸고, 동시에 그 문장 안에 사회가 글쓰기를 바라보는 오래된 믿음이 들어 있었습니다. ‘고통이 있어야 글이 깊어진다’는 믿음.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물러서는 이유가, 그 믿음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특별한 상처가 없어서, 나는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없어서, 내 글은 가치가 없을 거라고요.

하지만 저는 이제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고생한 삶이 있어야 글을 잘 쓴다는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고난은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그것은 ‘재료’일 뿐이고, 재료가 곧 글의 완성도를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고통은 사람을 성숙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반대로 사람을 침묵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어떤 고난은 기록으로 남기기 어려울 만큼 뜨겁고, 어떤 상처는 문장으로 옮기는 순간 다시 피가 나기도 합니다. 고생이 글을 ‘만든다’기보다, 글은 종종 고생을 견디게 하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글을 잘 쓰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오래 고민한 끝에 이렇게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더 많이 고생한 사람’이 아니라, 더 많이 보고, 더 오래 생각하고, 더 자주 쓰는 사람입니다.

작은 감정이 올라오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붙잡는 사람

사소한 장면에서 의미를 길어 올리는 사람

말로 넘어가던 것을 문장으로 다시 세워 보는 사람

글의 깊이는 고난의 크기가 아니라, 관찰의 밀도에서 나옵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것들입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누군가가 급히 내리는 순간, 왜 그 사람의 어깨가 그렇게 단단해 보였는지. 회의실에서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던 기류가 무엇이었는지. 집으로 돌아와 문 앞에서 잠깐 망설이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런 장면들을 붙잡아 적는 사람은, ‘큰 사건’ 없이도 충분히 좋은 글을 씁니다. 오히려 사건이 크지 않기에 더 정확하게 삶을 묘사할 수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는 성인 수강생들을 만나며 이 믿음이 얼마나 사람들을 주저앉히는지도 자주 봅니다.
“제 인생은 별 게 없어서요.”
“쓸 이야기가 없어요.”
“제가 뭘 안다고 글을 써요.”

그럴 때 저는 되묻습니다. 정말 별 게 없으셨나요. 아니면 너무 익숙해서, 별 게 아닌 것처럼 지나쳐 오신 걸까요. 우리는 매일 ‘이야기’ 속에 살지만, 대부분 그것을 이야기로 부르지 않습니다. 글쓰기는 거창한 서사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이미 지나간 하루에서 의미를 회수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날의 경비원 아저씨 말을 이렇게 다시 번역해 봅니다.

“고난이 있어야 글이 나온다”가 아니라, “살아 본 만큼 쓸 수 있다”가 더 정확합니다.
여기서 ‘살아 본 만큼’은 고통의 양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잘 살기 위해 애쓴 시간,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노력한 순간, 내 마음을 숨기지 않고 들여다본 경험. 그런 것들이 문장을 자랍니다. 혹시 지금 글쓰기를 시작하고 싶은데, 내 이야기가 약하다고 느끼신다면요. 고생을 증명하려고 애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신 오늘 하나만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가장 마음이 움직였던 장면을 하나 고르기

그 장면을 “언제/어디서/누가/무엇을/왜”로 적기

마지막에 딱 한 줄만 더하기: “그때 나는 ____을 느꼈다.”

그 한 줄이 쌓이면, 결국 ‘내 이야기’가 됩니다. 고난이 아니라 기록이 글을 만듭니다. 그날 저는 경비원 아저씨께 웃으며 인사만 하고 들어갔지만, 속으로는 조용히 반박했습니다. 고생을 해야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이 결국 자기 삶을 더 잘 살아내게 된다고요. 그리고 그 믿음은 지금도 제가 글을 쓰게 하는 가장 단단한 이유입니다.

고생이 없어도 글은 충분히 깊어질 수 있습니다. 당신의 삶은 이미 쓰일 가치가 있습니다. 필요한 건 비극이 아니라, 오늘의 한 문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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