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안 써질 때, 우리는 대개 ‘문장’ 탓을 합니다. 단어가 부족해서, 표현이 촌스러워서, 전개가 어색해서. 하지만 수업에서, 그리고 제 글쓰기에서 더 자주 발견하는 원인은 따로 있습니다. 문장이 막히는 순간, 사실은 ‘지금의 나’가 부정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강생들에게서 자주 듣는 고백이 있습니다.
“저는 아직 글을 쓸 수준이 아닌 것 같아요.”
“더 경험이 쌓이면, 더 멋진 사람이 되면 시작하려고요.”
그 말은 겸손처럼 들리지만, 마음의 바닥에는 이런 문장이 숨어 있습니다.
‘지금의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문장을 쓰는 행위는 결국, 지금의 나를 종이에 올려놓는 일입니다.
그러니 지금의 나를 믿지 못하면, 글은 시작부터 흔들립니다. ‘지금 쓰는 나는 부족하다’는 전제가 붙는 순간, 문장 하나를 쓰고도 바로 지우게 됩니다. 쓸수록 마음이 더 조급해지고, 고칠수록 스스로가 더 작아지는 기분이 듭니다. 글이 아니라 자기검열이 글쓰기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됩니다.
문장이 나오려면, 우선 마음가짐이 바뀌어야 합니다.
‘더 나은 내가 되면 쓰겠다’가 아니라,
‘지금의 나로 써도 괜찮다’로. 여기서 말하는 ‘괜찮다’는 대충 쓰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단단한 태도입니다. 글쓰기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데리고 끝까지 가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멋져 보이려는 문장은 금방 피로해지고, 증명하려는 문장은 쉽게 마릅니다. 반면 받아들이는 문장은 오래 갑니다. 오늘의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순간, 글은 숨을 쉬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저는 글을 시작하려는 분들에게 이런 질문을 권합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보다 먼저,
“나는 지금 어떤 상태인가?”
피곤한지, 불안한지, 자꾸 비교하는지,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지. 이 질문은 글감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내 편으로 세우기 위한 질문입니다. 내 편이 된 사람만이 꾸준히 씁니다. 내 편이 된 사람만이 초안을 끝까지 밀어붙입니다. 실제로 글쓰기가 다시 움직이는 순간은 대체로 화려하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대단한 글을 써야지”가 아니라, “오늘은 마음이 무겁다. 그래도 한 문장만 적자.”
이 정도의 문장이 시작점이 됩니다. 그리고 그 한 문장은 의외로 다음 문장을 데려옵니다. ‘멋진 존재’가 되기 위해 쓰는 글은 어깨가 무겁지만,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며 쓰는 글은 발이 가볍습니다. 만약 글을 쓰려다 자꾸 멈춘다면, 문장 기술을 더 배우기 전에 다음을 먼저 해보셔도 좋습니다.
지금의 나를 부정하는 문장을 발견하기
“난 아직 안 돼.” “이건 가치 없어.” “이 정도론 부족해.”
그 문장이 올라오는 순간, 글을 멈추지 말고 옆에 적어두기만 해도 됩니다.
오늘의 문장은 ‘증명’이 아니라 ‘기록’이라고 정하기
오늘은 잘 쓰는 날이 아니라, 쓰는 날입니다.
기록은 실패하지 않습니다. 기록은 쌓입니다.
문장 하나를 ‘나를 믿는 연습’으로 삼기
완성보다 중요한 건, ‘나는 써도 된다’는 감각입니다.
그 감각이 만들어지면, 기술은 나중에 따라옵니다.
글쓰기는 결국, 나를 더 훌륭하게 포장하는 일이 아니라 나를 더 정직하게 만나는 일입니다. 지금의 자신을 부정하고 더 멋진 존재가 되려고 발버둥치는 동안, 가장 중요한 도구—‘나’—가 바닥에서 흔들립니다. 반대로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고 믿는 순간, 문장은 더 이상 나를 심판하지 않습니다. 문장은 나를 따라옵니다.
오늘의 나는 완벽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오늘의 나는 쓰는 사람이면 됩니다.
그때부터 문장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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