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고치는데도 자꾸 마음에 들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한 문장을 붙였다가 떼고, 단어를 바꾸었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고, 제목을 세 번쯤 바꾸고 나면 남는 감정은 묘하게 비슷합니다. “역시 나는 안 돼.” 글이 아니라, 결국 나를 평가해 버리는 기분입니다.
퇴고는 원래 불편한 과정입니다. 처음 쓴 글은 생각보다 엉성하고, 마음속에서 반짝이던 이야기와 화면 위 문장은 언제나 거리감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불편함’ 자체가 아니라, 그 불편함이 어느 순간부터 자기혐오의 통로가 된다는 점입니다. 문장을 고치려던 손이, 어느새 나를 고치려 들고 있습니다.
그 신호는 대개 비슷한 말로 나타납니다. “뭔가 유치해요.”, “너무 평범해요.”, “제가 이런 얘길 할 자격이 있나 싶어요.” 이 말들은 문장에 대한 평가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나를 향한 판결인 경우가 많습니다. 글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입니다.
글쓰기는 이상하게도 자존감과 붙어 있습니다. 내가 나를 인정하지 못할수록, 내가 쓴 것도 인정하기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고치면서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일이 반복될 때는 이렇게 질문해 보셔도 좋습니다. 지금 이 불만족은 문장 때문입니까, 아니면 나를 바라보는 내 시선 때문입니까.
만약 후자라면, 그때 필요한 것은 더 높은 기준이 아니라 기준을 다루는 방식입니다. 저는 이것을 “퇴고의 분리”라고 부릅니다. 글을 고칠 때는 최소한 두 가지를 분리해야 합니다. ‘문장 평가’와 ‘자기 평가’입니다. “이 문장은 더 선명해질 수 있습니다”는 작업의 언어이고, “나는 별로입니다”는 상처의 언어입니다. 둘을 섞는 순간, 퇴고는 기술이 아니라 처벌이 됩니다. 실제로 도움이 되는 작은 규칙이 있습니다.
첫째, 퇴고 시간에는 ‘나’라는 단어를 잠시 금지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못 쓴다” 대신 “이 문장에는 정보가 부족합니다.”
“나는 유치하다” 대신 “이 장면이 더 구체적이면 좋겠습니다.”
주어를 ‘나’에서 ‘문장’으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통증이 줄어듭니다. 글은 다듬을 수 있는 대상이지만, 나는 다듬어야 할 결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둘째, 수정은 한 번에 하나만 하시기 바랍니다.
초안에서 ‘표현’과 ‘구조’와 ‘의미’를 한꺼번에 고치려 하면, 만족은 늘 뒤로 미뤄집니다.
1차 수정은 구조(순서, 문단, 빠진 정보)
2차 수정은 표현(단어, 리듬)
3차 수정은 마감(맞춤법, 군더더기)
단계를 나누는 순간, 퇴고는 ‘자책’이 아니라 ‘작업’이 됩니다.
셋째, 내 글을 읽는 ‘가장 친절한 독자’를 한 명 정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이 내 글을 읽고 어떤 말을 해줄지 떠올리면, 내 문장에 가해지던 폭력도 조금 누그러집니다. 우리는 종종 머릿속에 가장 잔인한 독자를 키워 놓고, 그 시선으로만 글을 심판합니다. 그 독자를 바꾸는 순간, 글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꼭 전하고 싶은 문장이 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감정은 아직 성장할 여지가 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지금의 내가 원하는 수준이 있고, 그 수준을 향해 가는 과정이기에 불편한 것입니다. 문제는 그 불편함을 ‘가능성’으로 읽지 못하고 ‘증거’로 읽는 데 있습니다. “역시 나는 안 된다”는 증거로 읽는 순간, 글쓰기는 멈춥니다.
그래서 저는 종종 이렇게 권합니다. 글이 아니라 나를 미워하고 있다면, 먼저 해야 할 일은 글을 더 고치는 일이 아니라 나를 덜 미워하는 방식으로 고치는 일입니다. 내 문장을 대하듯 나를 다루지 않기입니다. 문장은 수정하면 좋아지지만 나는 수정해야 사랑받을 존재가 아닙니다.
오늘 고치다가 또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이렇게 마무리해 보셔도 좋습니다. “이 글이 별로라서가 아니라, 내가 지금 너무 날카로워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일은 아주 작은 수정 하나만 하시면 됩니다. 글은 그런 방식으로 끝까지 갑니다.
글을 끝까지 가게 만드는 태도는 종종 삶도 조금 덜 미워하게 만듭니다. 글을 고치는 일은 결국 내가 나를 대하는 방식까지 함께 바꾸어 놓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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