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에서 종종 그런 순간이 있습니다. 수강생이 말을 하다가, 혹은 종이에 첫 문장을 적다가, 갑자기 숨이 잠깐 멎는 듯한 표정이 되는 때입니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눈물이 떨어집니다. 누군가는 급하게 웃으며 “제가 왜 이러죠”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도 될까요”라고 뒤로 물러섭니다.
그럴 때 저는 서두르지 않으려고 합니다. 눈물이 나오면, 마음이 약해진 게 아니라 마음이 정확해지고 있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평소에는 “괜찮다” “별일 아니다” “다들 그렇게 산다” 같은 말로 덮어두던 것들이, 글쓰기 앞에서는 더 이상 덮이지 않습니다. 글은 이상한 방식으로 사람을 정직하게 만듭니다. 말로는 넘길 수 있었던 감정이, 문장으로는 넘겨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성인 수강생들이 울게 되는 이유는 대체로 비슷합니다. “나도 몰랐던 내 마음을 처음 알게 됐어요”, “이걸 이렇게까지 참고 살았네요”, “내가 너무 오래 나를 무시했네요”. 글쓰기는 종종 기술로 시작하지만, 결국 인정으로 이어집니다. 인정받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내가 나를 인정하는 순간으로.
저 역시 그런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어떤 시기에는 글을 쓰다 말고 울었습니다. 울고 나면 종이가 젖고, 글자는 어설퍼지고, 문장은 자꾸 끊어졌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때의 글이 지금의 저를 살립니다. 시간이 지나 다시 읽어보면 완벽한 글이어서가 아니라, 그 문장들이 “그때의 나”를 버리지 않고 기록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날 무너졌지만, 글은 그 무너짐을 ‘없던 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글은 울고 난 뒤에도 나를 다시 세웁니다.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그래서 저는 수업에서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울음이 나온 날은 수업이 실패한 날이 아니라, 글쓰기가 시작된 날이라고요. 글쓰기는 늘 ‘괜찮은 나’만 데리고 가지 않습니다. 무너진 나, 서툰 나, 말이 잘 안 나오는 나도 데리고 갑니다. 오히려 그 순간부터 문장이 생깁니다. 우리가 평소에 억누르던 것들이 문장이 될 때, 글은 더 깊어집니다.
다만 울음이 나왔다고 해서, 그날 무리해서 많은 글을 쓰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울음 뒤에는 ‘정리’가 필요합니다. 저는 울음이 나온 수강생에게 가장 먼저 이런 방식으로 글을 권합니다. 감정을 분석하기보다, 장면을 적는 방식입니다. 감정은 넓고 추상적이라 다시 우리를 막히게 하지만, 장면은 작고 구체적이라 글을 움직이게 합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입니다.
오늘 내가 울게 만든 말 한 문장
그 말을 들은 장소(빛, 냄새, 온도)
그 순간 내 몸이 먼저 반응한 부분(목, 가슴, 손)
내가 끝내 하지 못한 말 한 문장
이것만 적어도 충분합니다. 길게 쓰지 않아도 됩니다. 울음 뒤의 글쓰기는 멋진 문장을 만드는 시간이 아니라, 마음을 안전하게 바닥에 내려놓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되면, 다음 문장이 따라옵니다. “나는 사실…”, “나는 원래…”, “나는 그때…” 이런 문장들이 아주 조심스럽게, 그러나 분명하게 이어집니다.
글쓰기에는 치유력이 있습니다. 다만 그 치유는 반짝이는 말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흔히 생각하는 ‘힐링’이 아니라, 내 마음을 정확하게 보고 “그래, 그랬구나”라고 인정하는 과정에서 생깁니다. 울음은 그 과정의 증거입니다. 감정이 흘러나왔다면, 그 감정은 이미 움직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움직이기 시작한 감정은 언젠가 정리됩니다. 그리고 정리된 감정은 문장이 됩니다.
혹시 지금 글쓰기를 시작하고 싶은데, 마음 한켠에서 이런 생각이 든다면요. “내 이야기를 꺼내면 울 것 같아서 무서워요.”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울어도 괜찮습니다. 울고 나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제자리를 찾습니다. 글은 당신을 몰아붙이지 않습니다. 글은 당신에게 묻습니다. “정말 괜찮았나요?” 그리고 당신이 고개를 흔들면, 이렇게 덧붙입니다. “그럼 이제, 그 이야기를 한 문장씩 꺼내볼까요.”
오늘은 큰 결심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딱 10분이면 됩니다. 눈물이 나도 괜찮고, 문장이 엉망이어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잘 쓰는 것’이 아니라 ‘나를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울고 나서야 써지는 문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문장이, 언젠가 당신을 다시 세울 것입니다.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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