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완벽주의를 내쫓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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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멈추게 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시간 부족’이 아니라 완벽주의입니다. 바쁜 일정은 핑계가 되기도 하지만, 사실 많은 성인이 글을 못 쓰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첫 문장을 쓰자마자 “이건 별로야”라는 판정을 먼저 내려버리는 습관. 한 문단을 적기도 전에 “이 정도로는 의미가 없어”라고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태도. 글쓰기 완벽주의는 이렇게 조용히 들어와, 문장을 만들기도 전에 문장을 해체해 버립니다.

완벽주의가 무서운 이유는 그게 ‘열심히’로 위장하기 때문입니다. “더 잘 쓰고 싶어서”, “제대로 쓰고 싶어서”라는 말 뒤에 숨어서, 결국 아무것도 쓰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완벽주의는 근면이 아니라 중단의 기술입니다. 글을 잘 쓰게 만드는 게 아니라, 글을 아예 시작하지 않게 만드는 쪽으로 작동합니다.

저는 수업에서 이 장면을 자주 봅니다. 노트를 펴고 펜을 들었는데, 손이 멈춥니다. 이유를 묻으면 대개 이렇게 말합니다. “뭔가 아닌 것 같아서요.”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분들은 이미 할 말이 많습니다. 문제는 소재가 아니라 순서입니다. 글쓰기에는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쓰는 사람’과 ‘고치는 사람’. 초안에서는 쓰는 사람이 달려야 하고, 고치는 사람은 나중에 등장해야 합니다. 그런데 완벽주의는 이 순서를 뒤집어버립니다. 시작 버튼을 누르기도 전에 편집자가 들어와서 원고를 찢어버리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글쓰기 완벽주의를 내쫓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완벽해지려는 마음을 없애는 게 아니라, 완벽주의가 등장하는 타이밍을 늦추는 것입니다. 완벽주의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은 네 차례가 아니야”라고 말해줄 수는 있습니다. 그 말을 가능하게 하는 게 바로 구조입니다.


첫째, 초안의 목적을 바꿔야 합니다.
초안은 작품이 아니라 ‘채집’입니다. 평가받기 위한 글이 아니라, 평가할 재료를 모으는 글입니다. 초안에서 해야 할 일은 멋진 문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생각을 ‘밖으로’ 꺼내 놓는 것입니다. 그런데 초안부터 “최종본처럼 써야 한다”는 기준을 들이대면, 마음은 가장 안전한 결론으로 갑니다. “그럼 아예 쓰지 말자.” 쓰지 않는 선택이 가장 덜 부끄럽고, 가장 덜 실패 같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완벽주의는 당신을 보호하는 척하지만, 결국 당신의 문장을 고립시킵니다.


둘째, 시간을 ‘길게’가 아니라 ‘고정’해야 합니다.
완벽주의는 시간이 많을수록 더 커집니다. “오늘은 제대로 써야지”라는 결심은, 보통 ‘제대로’의 기준을 끝없이 올립니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짧게 권합니다. 10분, 15분. 그 시간만큼은 ‘잘 쓰기’가 아니라 ‘끝까지 쓰기’를 목표로 합니다. 짧은 시간은 불안해 보이지만, 그 짧음이 완벽주의의 발목을 잡습니다. 완벽주의는 ‘충분한 시간’이라는 이름의 운동장을 좋아합니다. 반대로 짧은 시간은 완벽주의가 뛰어놀 공간을 줄입니다. 중요한 건 길이가 아니라 반복입니다. 글은 가끔 길게 쓰는 사람이 아니라, 자주 쓰는 사람이 멀리 갑니다.


셋째, 삭제를 금지하지 말고 ‘유예’해야 합니다.
“초안에서는 삭제 금지”라는 말이 부담인 분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현실적인 방식으로 바꿉니다. 삭제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삭제를 나중으로 미루는 장치를 두는 것입니다. 마음에 안 드는 문장이 나오면 지우지 말고 표식만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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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이건 나중에 고치자”라는 표시가 생기면, 쓰는 사람은 앞으로 갈 수 있습니다. 완벽주의는 ‘지금 당장 고쳐야 한다’고 속삭입니다. 표식은 그 속삭임을 이렇게 번역해 줍니다. “좋아, 네 말 맞아. 근데 지금은 아니야.”


넷째, 빈칸을 허용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단어’에서 멈춥니다. 정확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아 멈추고, 맞는 예시가 생각나지 않아 멈춥니다. 이때 완벽주의는 “그럼 쓰지 마”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초안은 빈칸이 있어도 됩니다. 오히려 빈칸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이 초안을 끝까지 갑니다. [여기 사례], [이때 느낌], [구체적인 숫자] 처럼 빈칸을 남기고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세요. 글은 빈칸을 남겨도 살아 있습니다. 완벽주의는 빈칸을 실패로 규정하지만, 사실 빈칸은 “계속 쓰겠다”는 선언입니다.


다섯째, 초안을 ‘하나의 출력물’로 마감해야 합니다.
완벽주의는 글의 끝을 흐립니다. “더 써야 하나?”, “이렇게 마무리하면 부족한가?” 이런 질문이 계속 이어지면서, 글은 영원히 초안 상태에 머뭅니다. 그래서 초안에는 작은 마감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이렇게 정해보세요. “오늘은 A4 반 장까지만” 혹은 “문단 3개만”. 초안의 마감은 완성의 마감이 아닙니다. 다만 멈출 수 있는 지점을 만들어, 내일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하는 마감입니다. 완벽주의는 끝을 없애고, 우리는 시작을 잃습니다. 작고 구체적인 마감은 그 반대의 일을 합니다. 끝을 만들어서, 다음 시작을 살립니다.


여기까지가 ‘완벽주의를 내쫓는 방법’의 기술이라면, 마지막은 태도입니다. 완벽주의를 쫓아내는 가장 강력한 문장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초안은 못나도 된다.” 이 문장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글쓰기는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과정의 문제가 됩니다. 완벽주의는 당신을 ‘잘 쓰는 사람’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하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쓰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 가능성이 큽니다. 반대로 초안을 허용하는 사람은, 시간이 지나며 결국 ‘고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고칠 수 있는 사람만이 완성할 수 있습니다.

만약 지금 글이 막혀 있다면, 주제를 다시 찾기 전에 먼저 확인해 보세요. 내 안에 편집자가 너무 일찍 들어와 있지는 않은지. 당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당신이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해서 멈추고 있는 건 아닌지. 오늘은 잘 쓰는 날이 아니라, 문장을 살려두는 날이면 충분합니다. 완벽주의는 잠깐 밖에서 기다리게 하세요. 그 사람이 들어오기 전에, 쓰는 사람이 한 걸음만 내딛으면 됩니다. 그 한 걸음이 쌓여 어느 날은 ‘완성’이라는 형태로 남습니다. 글쓰기에서 이기는 사람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가는 사람입니다.


글쓰기 고민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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