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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jiin Jan 04. 2022

굵어진 빗방울

불안이 수면 위로 드리우다, 평창 이야기 2










장군이


첫 번째 숙소에서 두 번째 숙소까지 대략 30분 정도 걸렸다. 우리는 그곳을 벗어났다는 안도감과 새로운 숙소에 대한 기대감으로 한껏 들떠있었다. 장군이의 스트레스가 극도로 향해있다는 것도 모른 채-


너무 급하게 출발했던 게 문제가 됐던 거 같다. 두 번째 숙소에 거의 도착했을 때 장군이가 울기 시작했다. 처음 차를 타면 잠시 안정이 될 때까지 울긴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우는 경우는 드물기에 나는 간간히 뒤를 돌아보며 '괜찮아, 다 왔어. 조금만 찾아줘' 라며 장군이 울음소리에 적당히 대응을 했다. 순간 울음소리가 멈추고 머리가 아플 정도로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당연히 아가 다다의 대변 냄새라고 생각해 고개를 돌려 다다에게 '응아 했어?"라고 물었다. 질문과 동시에 이 냄새는 다다의 것이 아니란 걸 알아챘다. 나는 고개를 왼쪽 방향으로 더 돌려 장군이와 눈이 마주쳤다. 불안함에 흔들리는 눈동자. 캐리어 안에서 장군이의 배변과 토가 뒤엉켜 있었다. 내가 이렇게 놀란 이유는 장군이는 9년 동안 한 번도 배변 실수를 하지 않았던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자기 물건과 청결에 과할 정도로 예민한 아이다. 그런 장군이가 몸속 모든 걸 비워내며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좁은 캐리어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장군이를 보는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장군이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생각이 나도 모르게 머릿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에 근처 동물 병원을 찾기 시작했지만 근처 10킬로 내에 있는 병원이라고는 가축병원이 다 였다. 그 사이 차가 숙소에 도착했고 나는 서둘러 장군이를 들고 숙소로 올라갔다. 숙소가 어떤지 볼 겨를도 없이 가장 어두운 방을 찾아 캐리어를 내려놓았다. 캐리어 문을 열자마자 녀석이 튀어나왔다. 오물이 묻었나 이리저리 살피는데 이와 중에도 깔끔한 성격이 그대로 드러났다. 앞발에 약간 묻은 거 빼고는 괜찮아 보였다. 급히 오물을 닦아내고 양주 집에서 챙겨 온 우리 이불로 장군이를 감싸줬다. 사료에 진정제도 섞어주고 고양이 자장가를 틀어주며 장군이가 안정을 되찾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장군이를 방에 넣어놓고 화장실로 가 더러워진 캐리어를 씻는데 무신경한 나에게 화가 나 울컥거리는 입술을 꽉 깨물어야 했다. 다행히 장군이는 3일 차 되는 날부터 조금씩 안정을 찾았고, 다시 사료도 먹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활발하게 움직이는 건 아니었다. 새벽, 모두가 잠든 시간대에만 나와 사료를 먹고 침대 밑이나 이불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매일 아침 사료의 양을 체크하며 장군이의 상황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이때가 내가 떠돌이 생활 중 처음으로 무기력과 두려움을 느꼈던 때 일 것이다.













새 아파트


 짐을 옮기고 숙소를 둘러보니 에어비앤비에서 소개된 그대로 새 아파트였다. 새 아파트는 새 아파트인데 2년 동안 아무도 살지 않고 지어진 그 상태 그대로 방치된 새 아파트였다. 겉보기에는 깨끗해 보였지만 먼지도 2년 동안 차곡차곡 쌓여 방바닥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호스트에게 부탁해 청소도구를 받아 닦고 닦고 또 닦았다. 대강 어느 정도 청소를 하고 안방 침대에 몸을 기댔는데 어디선가 쾌쾌한 냄새가 흘러 들어왔다. 벌떡 일어나 냄새가 나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몇 분 안돼 이 냄새의 근원지를 찾을 수 있었다. 안방 베란다. 베란다 문을 여니 다 뚫려 있는 곳임에도 곰팡이 냄새가 진동을 했다. 10분 정도 곰팡이와 사투를 벌이다 이건 내가 해결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베란다 문을 닫고 호스트에게 곰팡이가 피어 있는 사진을 보냈다. 호스트는 여기 아파트를 여러 개 갖고 있었는지 아래층으로 방을 바꿔 주겠다고 했다. 다시 장군이를 이동시켜야 한다는 게 스트레스였지만 그렇다고 이 무더운 여름날 곰팡이와 함께 지낼 수도 없었다. 호스트의 안내로 짐들을 아래층으로 옮겼다. 그리고 다시 또 입주청소를 했다. 오후 4시에 도착해 청소하고 옮기고 또 청소하니 저녁 8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이제 그만 쉬자고 에어컨을 가동하는데 이번에는 에어컨이 가동되지 않았다. 우리는 또 호스트에게 연락을 했다. 정말 죄송하다며 건너편 방으로 옮기라고 했다.


그렇게 3번의 입주청소를 마치고 나서야 우리는 방바닥에 앉아 한숨 돌릴 수 있었다.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하니 밤 11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이참에 직업을 청소 업체로 바꿔볼까 하는 우스갯소리를 하며 피곤함에 취해 잠이 들었다.


다음날이 되어서야 여기가 어딘지 파악이 됐다. 지하 주차장은 바닥에 물이 차 있었고, 벽과 엘리베이터도 습기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제대로 아파트를 관리하는 사람도 없고 실제 거주자도 몇 가구가 안 되는 유치권 행사 중인 아파트였다. 그런 아파트를 에어비앤비로 제공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식기 건조대, 밥통과 드라이기가 없었으며, 세탁기는 있지만 건조대가 없었다. 작은 식기 건조대만 호스트에게 부탁을 했고, 밥통과 드라이기, 냄비 등은 우리가 따로 구입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호스트의 응대가 빠르고 친절했다. 호스트에게 필요한 내용을 전달하면 호스트를 대신해 에어비앤비를 관리하는 사람들이 필요한 물건들을 전달해 주었다. 처음 관리자들을 만났을 때 문신으로 도배된 모습에 당황해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 했다. 한두 번 계속 만나다 보니 외모만 무섭지 서글서글하고 친절했다.


문제는 주변 환경이었다. 관계자인지 입주자인지 모르겠지만 항상 놀이터에 커다란 검은 개를 묶어 두고 옆 벤츠에서 담배를 태우며 휴식을 취하는 사람이 있었다. 아무래도 다다의 안전을 생각해야 했기 때문에 큰 개가 있을 때는 피해 놀아야 했고, 아파트 입구는 담배꽁초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우리가 머무는 10일 동안 쌓이기만 했지 누구 하나 치우는 사람들이 없었다.










검은 개


 이곳에 머무는 동안 평창은 가랑비를 지나 장마전선에 들어섰다. 3일 내내 비가 내렸던 날이 있었다. 새벽 3시쯤 됐나? 갑자기 놀이터 쪽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 혹시라도 아가가 깰까 서둘러 베란다 문을 닫았다. 시간이 지나도 개는 짖는 걸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파트의 비어있는 모든 공간들 사이사이가 개의 울부짖는 소리로 가득 차는 거 같았다. 잠귀도 예민한 나는 다시 잠을 청하지 못 했고 어느덧 그 소리는 공포스럽게까지 느껴졌다. 나와는 다르게 한번 잠이 들면 쉽게 깨지 않는 부엉이까지 이 소리에 침대에서 일어났다. 조금 더 상황을 자세히 살피러 우리는 베란다로 향했다. 어느새 빗방울이 제법 굵어졌다. 아까는 급히 베란다 문을 닫느라 미처 발견하지 못했었는데 굵어진 빗방울 사이로 낮에 봤던 검은 개가 놀이터에 묶여 있는 게 보였다. 공포가 안쓰러움으로 바뀌었고, 굵어진 빗방울은 어느새 작은 빈틈도 없이 쏟아붓기 시작했다. 견주에 대한 화가 점점 분노로 향하고 있었다. ‘도대체 이 빗속에 왜 개를 저기다 묶어둔 거야?’ 나는 이해할 수 없다며 침대에 앉아 한참을 부엉이에게 불만을 쏟아내고 있었다. 10분 정도 흘렀을까? 갑자기 밖에서 고성과 함께 욕설이 들리기 시작했다. 빗속에서 견주와 우리를 도와줬던 관리인이 싸우고 있었다. 싸움은 점점 거세졌고, 결국 경찰까지 오고 나서야 아파트는 조용해졌다. 고요함 속에 빗소리가 더욱 크고 선명하게 들렸다.




비가 갠 날부터 우리는 최대한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밖에 나와있었다. 다행히 근처에는 휘닉스파크가 있었고 휘닉스 파크의 넓은 들판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했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다다를 보며 우리는 계속 얘기했다.







이 불안은 우리 거야. 너는 몰라야 해. 너는 마치 계속 여행을 온 것처럼 지금처럼 지내야 해.















불안이 수면 위로 드리우다.



숙소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와중에 결국 일이 터졌다. 우리는 두 번째 숙소로 옮기고 3일 뒤 대리점주를 만나 확약서를 받았다. 현 사태에 대한 숙박, 이삿짐, 지체 보상을 하겠다는 내용의 확약서였다. 확약서를 작성한 건 일요일. 월요일부터 다시 공사가 진행될 예정이니 하루빨리 공사를 마무리하겠다며 죄송하다고 했다. 우리는 본사와 통화를 했다고 얘기했고 당신이 채무가 많아 계약을 해지했다고 본사에서 얘기하던데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그의 반응은 거기서 그렇게 얘기를 해요? 라며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대리점주는 업무방해로 본사를 고소할 준비를 한다며 그래서 경찰서도 오가고 있다고도 우리에게 자신의 상황을 알려줬다. 확약서를 받고 숙소로 돌아와 ‘그래, 그래도 이렇게 확약서라도 받아서 다행이야’라고 말했던 우리가 너무 순진함을 넘어 바보 같았다.


지금 와 보니 그건 아무 효력도 없는 그냥 버려져도 상관없이 종이 한 장이었다.




확약서를 받고 나서도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월요일, 우리는 공사 진행을 확인하기 위해 업무 시작 시간인 정각 9시에 대리점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는 하루 종일 우리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화요일.

하루를 더 기다려봤다. 확약서까지 쓰고 바로 일이 잘못될 리가 없다며 그래도 우리는 대기업 대리점이랑 계약을 한 거라며 하루를 더 기다렸다.


수요일.

여전히 연락이 되지 않았다. 뜬 눈으로 밤을 새우다가 결국 새벽 4시에 부엉이가 속초로 향했다. 부엉이는 공사만 진행되어 있으면 그래도 괜찮다며 확인만 하고 온다며 숙소를 나섰다. 부엉이가 나가고 침대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한여름인데 서늘한 공기가 온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5시

6시



이미 도착하고 한참이 지났을 시간인데 부엉이가 연락이 되지 않았다. 몇 시간 만에 겨우 연락된 부엉이는 ‘다시 전화할게’라며 전화를 다급하게 끊었다.


나는 그냥 제발 상황을 말해달라고 무슨 일이냐고 다그쳤다. 현장은 말 그대로 개판이라고 했다. 아무런 공사 진행이 되지 않았고 언제 먹었는지 모르는 먹다 남은 도시락에는 곰팡이가 잔뜩 피어있었고 부엌 쪽에서는 물이 새고 있었다고 한다. 새던 물은 결국 수도가 터져 거실에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고 한다. 어떻겠든 수습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 새벽에 콸콸 쏟아지는 물을 손으로 부여잡고 있었다고 한다. 결국 사태가 심각해져 119가 출동하고 경비실에서 사람들이 나와 다 같이 수습했다고 했다. 갑작스러운 수도 공사로 우리가 속한 아파트 라인 한 동이 출근시간에 단수가 돼야 하는 민폐를 끼치는 상황까지 갔었다고 한다. 일이 이 지경에까지 와있었지만 여전히 연락이 되지 않는 무능력을 넘어 무책임한 인간.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소리가 부엉이를 울렸다고 했다.


“나쁜 사람들 같으니라고”

“여기 사는 사람 앞으로 어떻게 살라고”

“일을 이렇게 만들어놔”










옷이 다 젖도록 도와주신 경비 아저씨들께는 한 달 반 뒤 이사를 마무리하고 찾아뵈었다. 그때 정말 감사했다고 점심이라도 한 끼 드시라며 인사와 함께 약소한 금액을 건넸다.


경비 아저씨께서는 아니라며, 입주민 일인데 도와야 하는 건 당연한 거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일렁였다. 사람이 미워지고, 더 이상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으며, 다다와 장군이를 등 뒤에 숨기며 머리끝까지 경계심을 곤두세우고 있던 우리에게 그래도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야 한다고 말해주는 거 같았다.



나중에 새롭게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이 대리점에서 가스배관도 그냥 절단해 놓은 후 조치를 취하지 않아서 가스가 새고 있었다는 황당을 넘어서 온몸에 소름까지 끼치는 소리까지 듣게 되었다.



오후가 돼서야 연락이 된 그 대리점주는 또 똑같은 소리를 해댔다. '죄송하다. 수습하겠다.' 더 이상 여기서 무얼 수습한다는 건지 우리는 계약을 해지할 테니 계약서상 시공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돈을 돌려 달라고 했다. 당시 공정률 40프로. 알겠다고 대리점의 대답을 듣고 우리는 며칠의 기한을 줬다. 이 날짜까지 남은 금액을 입금하라고 하지만 결국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우리가 들어야만 했던 말은




'단돈 만 원도 줄 돈이 없다'라는 말이었다.










우리는 그저 이야기가 한여름 밤의 꿈이길 바랄 뿐이었다.

하루빨리 깨고 싶은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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