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지현 동시를 읽고
안지현
피터, 수잔, 에드먼드, 루시가 들어와
코트들 사이에서 나니아를 발견했던
《사자와 마녀와 옷장》 속 옷장이
나야 지금 교실에 있어
이제 평범한 옷장이 될까 했는데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
소율이가 자꾸 반말해서 선생님이 훌쩍이길래
내가 슬쩍 옷장 문 열어 줬는데
스무 명 아이들이 쪼르르 따라 들어오는 거야
소율이까지 말이야
선생님 뒤에 아이들 아이들
코트 사이 헤집다 그만
발견해 버렸지 오래전 나니아로 통하던 문
끼익, 문이 열리고
쏟아져 나간 선생님과 아이들
그냥 교실인 줄 알았겠지만 여긴 나니아야
나니아 끝에서 멋진 왕이 된 사 남매처럼
곧 모두 멋져질거야
저기 봐
소율이가 “야, 먹어” 그래도 선생님은 울지 않고
소율이가 준 젤리를 먹잖아 아껴 먹잖아
모험은 이미 시작됐어
21세기 문학의 중심에 환상문학이 있다. 로제 카이유아는 환상의 정의를 ‘현실세계에서는 견디기 힘든 어떤 기묘하고 돌발적인 것’이라고 했다. 이렌느 브시에르는 ‘인간 이성의 한계에 대한 상상적 체험’이라고 정의했다. 여러 학자들이 언급한 환상의 정의들의 공통점은 ‘일반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합의된 리얼리티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충동’이다. 그러나 ‘합의된 리얼리티로부터 벗어난다’해도 여전히 한 발을 걸쳐둔 현실적 맥락은 생생하고 유기적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반대로 비현실 속의 논리와 질서는 많은 부분 인간 무의식의 발현이라는 점에서 사상이나 철학적 주제와 함께 뚜렷이 서 있어야 한다. (《시론》 300쪽 참고, 정끝별, 문학동네, 2021)
안지현 시인의 〈소율이와 교실과 옷장〉은 현대 환상문학의 출발선에 있는 《나니아 연대기》 중 《사자와 마녀와 옷장》 이야기를 교실 현장으로 가져왔다. 시속 화자는 옷장이고 그런 옷장은 지금 교실에 있다고 말한다. 옷장이 왜 교실에 있을까? 갸우뚱할 새도 없이 3연에서 우리는 21세기 대한민국 교실의 현실과 마주한다. “소율이가 자꾸 반말해서 선생님이 훌쩍이길래” 참 난감한 장면이다. 모방을 즐겨하는 아이들이 모여있는 초등학교 저학년 교실에 선생님께 ‘야!’라고 부르는 아이가 있다. 어르고 타일러도 말이 먹히지 않는 아이와 마주한 선생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금쪽이 상담소는 너무 멀리 있고 교사들은 언제든 이런 금쪽이들과 마주칠 운명이다.
이 시에서 환상의 개입을 통해 시인이 말하는 해법은 무엇인가. 환상적 요소인 ‘옷장’은 소율이가 여전히 반말을 멈추지 않는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견딜 수 있게 만든 장치로 작용한다. 그런 점에서 〈소율이와 교실과 옷장〉은 현실을 떠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현실을 굳게 살아내기 위해 통과하는 문이다. 결국 이 시에서 환상은 현실 도피가 아니라 어려운 현실 속에서 따뜻한 관계를 지속할 수 있게 하는 힘이다. 이 시를 통해 우리는 교육이란 무엇인가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시인의 철학을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