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쓴 맛 - 양슬기

제13회 문학동네 동시문학상 대상 수상작

by 옹달샘

우유탑

양슬기




엄마가 맘대로 우유 급식 신청해 버렸다는 장우랑

자기는 초코우유 아니면 절대로 안 먹는다는 진호랑

우유만 마시면 자꾸 배가 살살 아픈 내가

드디어 월화수목금요일 만에 우유 탑을 완성했다


전학 가서 비어 버린 보라 사물함 안에

우유우유우유랑 우유우유우유 열심히 모아서

하루하루 통통해지는 우유들 넘어져

아야아야아야 하지 않게

우유 안 마신 사람 빨리 마시라고 잔소리하는

선생님도 모르게

조심조심 높이높이 쌓았다


길가의 공짜 돌멩이들도 조심조심 높이높이 쌓으면

소원을 이루어 준다던데

무려 470원짜리 우유를 15개나 쌓았으니까

우유의 신이시여, 제발 우유 좀 안 마시게 해 주세요

ㅜㅠㅜㅠㅜㅠ




늑대슬기

양슬기


장우가 급식 시간에 소세지볶음을 먹다가 말했다

소세지가 있으면 소약하지도 있나?

그랬더니 준혁이가

그럼 소고기가 있으면 대고기도 있나?

그랬더니 하준이가

그럼 가위가 있으면 가아래도 있나?

그랬더니 승현이가

그럼 선생님이 있으면 앉은생님도 있나?

그랬더니 재원이가

그럼 양슬기 선생님이 있으면 염소슬기 앉은생님도 있나?


야, 양의 반대는 늑대잖아

그럼 늑대슬기 앉은생님이지

아, 그런가?


그랬더니 늑대슬기, 아니 양슬기 선생님이

장우와 준혁이와 하준이와 승현이와 재원이를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듯이 노려봤다


다들 조용히 소세지볶음만 뒤적이며

양의 반대는 늑대가 맞는 것 같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우리 반에 100년 묵은 다람쥐가 있다

양슬기


쉬는 시간에 미소가 선생님을 미어캣처럼 쳐다보다가 말했다

선생님 진짜 몇 살이에요?

100살이요

근데 왜 머리가 까매요?

염색하면 머리 까매져요

근데 왜 주름이 없어요?

화장하면 주름 펴져요

근데 왜 허리가 꼿꼿해요?

운동하면 허리 펴져요

근데 왜 허리가 꼿꼿해요?

운동하면 허리 펴져요

근데 왜 할머니 냄새가 안 나요?

샤워하면 할머니 냄새 없어져요

근데 왜 이가 튼튼해요?

틀니일걸요?

네?

다음 쉬는 시간에 또 미소가 부엉이처럼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말했다

선생님 그럼 무슨 띠예요?

다람쥐띠요

그런 거 없는데…… 그럼 몇 년도에 태어났어요?

1925년이요

그럼 6‧25 전쟁도 겪었어요?

아유, 말만 들어도 심장이 쫄깃해요

근데 어떻게 살아남았어요?

겨울잠 잤는데요

선생님이 겨울잠을 왜 자요?

다람쥐띠라서요

네?

찍찍

선생님 다람쥐예요?

찍찍

근데 왜 꼬리가 없어요?

어제 세탁기에 돌려서 말리는 중인데요

꼬리가 탈부착이에요?

쉿, 우리만의 비밀이니까 아무한테도 말하지 ㅁ……

야! 우리 선생님 다람쥐인데 꼬리가 탈부착이래!

미소의 말을 들은 여우, 늑대, 곰, 호랑이가

이를 드러낸 채 선생님 다람쥐예요? 물어보려고 달려 왔고

선생님은 책들을 도토리처럼 그러모으더니 졸참나무로 쪼르르 도망쳐 버렸다





24년 1월 한겨레에서 김준현 시인 동시 강의를 처음 수강하면서 양슬기 시인을 만났다. 이 동시집 첫 수록작인 〈우유 탑〉과 〈늑대슬기〉 등이 그때 과제로 만났던 동시이다. 왁자지껄 아이들의 목소리가 넘쳐나는 초등학교 교실 한구석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살아있는 말들이었다. 김준현 시인이 물었다. “사물함에 우유를 쌓아두면 터질 것 같은데요.” 슬기 샘은 우유 먹기 싫은 아이들이 사물함에 쌓아둔 우유를 실제로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일주일은 괜찮다고 했다. 수강생 중 몇 분이 투덜대듯 말했다. “우리는 교사가 아닌데 어떻게 저런 시를 쓸까요?” “교사들은 좋겠어요.” 나는 속으로만 말했다. ‘교사여도 저렇게 쓰기 어려워요.’

일단 우유라는 단어로 아이들이 쌓은 우유탑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솜씨가 놀랍다. 2연에서 우유 먹기 싫어하는 아이들 사연은 공감 하트를 꾹 누르게 만든다. “우유우유우유랑 우유우유우유 열심히 모아서”에서 “하루하루 통통해지는 우유들 넘어져/아야아야아야 하지 않게”로 넘어갔다 다시 “우유의 신이시여, 제발 유유 좀 안 마시게 해 주세요/ㅜㅠㅜㅠㅜㅠ”로 마무리하는 말놀이 형식까지 흩어진 퍼즐 조각을 제대로 맞춰 놓은 듯 완벽해 보였다.

〈늑대슬기〉도 신선했다. 시인은 동시 안에 자신의 이름까지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소세지와 소약하지. 소고기와 대고기. 가위와 가아래. 선생님과 앉은생님. 아이들 입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을 듯한 억지스런 말놀이. 그래서 더 현장감이 느껴진다. ‘내가 아이들의 재재거림을 소음으로 인식할 때, 아! 암! 조용! 이란 경고로 바로 그런 아이들 입을 막아버릴 때, 양슬기 시인은 그 말들을 받아쓰고 있나? 녹음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준현 선생님도 물었다. “아이들에게 진짜 들은 얘기 같네요?” 시인이 답했다. “처음 부분은 들은 거고 뒷부분은 상상으로 이어봤어요.”

지난 일요일에 있었던 《사회의 쓴맛》 낭독회 여운이 아직도 남아 있다. “동시의 재료를 어디서 찾는가? 어린 시절을 많이 기억하는가?”라는 질문에 시인의 답이 의외였다. ‘어린 시절은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는다. 동시에 등장하는 다양한 아이들 캐릭터는 거의 학교에서 만난 각각 아이들의 특성을 떠올리며 음성 재현을 한다.’ 동시 쓴다며 내 어린 시절만 자꾸 되새김질하려는 나를 돌아보게 하는 답이었다. 지금 내 가까이 있는 아이들 한 명 한 명 더 귀하게 바라보고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겠구나 싶었다. 좋은 삶이 좋은 동시를 부르니까.

낭독회 정점은 마지막으로 두 어린이와 양슬기 시인이 각각 해설, 질문하는 어린이, 답하는 선생님으로 역할을 나눠 들려준 〈우리 반에 100년 묵은 다람쥐가 있다〉 낭독이었다. 진행자인 이소현 시인의 즉흥적인 제안으로 이뤄졌는데 셋은 마치 교실에 마주 앉은 것처럼 능청스럽고 맛깔나게 낭독했다. 동시를 낭독하다 깔깔깔 터져버린 김*온 어린이의 웃음은 이 말을 대신하는 표현이었다. “선생님, 이 동시 너무 재미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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