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것도 계획이 필요한가요?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올해로 꼭 10년. 그간 요란스럽게도 다섯 번의 이직을 했습니다. 옮겨갈 곳 없이 소위 '생퇴사'를 했던 첫 회사에서 다음 회사 입사까지 반년 남짓을 다시 취준생으로 보냈습니다.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면서 면접과 탈락을 기약 없이 반복했던 기억이 묵직해서, 그 후에는 무조건 환승 이직을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옮겨갈 곳이 정해지면 그 사이에 한 달쯤 쉬시는 분들을 제 주변에서도 봅니다만, 저는 협상에는 영 재능이 없는지 보통은 일주일 내외로 쉬었습니다. 사이 기간이 제일 짧았을 때는 금요일까지 전 직장 출근, 주말 이틀 쉬고 월요일부터 새직장으로 출근한 적도 있습니다. 제 친구였다면 왜 그랬냐며 등짝을 때려줬을 텐데요.
일을 오랫동안 손에서 놓으면 바보가 될까 봐, 커리어 사이에 공백이 있으면 약점이 될까 봐, 하는 걱정을 안고 긴 시간을 쉬지 않고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알게 모르게 에너지의 총량이 줄고 있었고요. 새로운 툴이 나오면 같이 배워보자고 스터디를 만들던, 좋은 레퍼런스를 발견하면 스스럼없이 팀에 먼저 공유하던 모습들. 회사에서도 일부러 마음 한 구석 붙일 곳을 찾던 평소의 내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병원에서 2주는 쉬라고 한 제법 큰 수술을 했을 때도 일주일 만에 출근했던 미련한 제가, 여름의 한가운데서 한 달을 쉬기로 결심했습니다. 반짝거리는 즐거움으로 시작했던 이 일을, 그 마음 잃지 않고 더 오래오래 하고 싶어서요.
쉴 용기를 준 건 제가 좋아하는 전 직장 동료였습니다. 우리 회사에는 무급이긴 하지만 4주를 쉴 수 있는 리프레시 제도가 있다고 하니, 자기라면 당장 썼을 거라더군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 얘기를 줄줄 늘어놓으며 왜 못 쉬는지부터 얘기하니 '그럼 영원히 못 쉬어요!'라는 답이 돌아와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습니다. 그렇죠. 직장 생활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휴가 가기 좋은 타이밍이라는 건 없습니다. '길게 쉰다고 해서 성실하지 못한 것도 아니고, 재충전해서 돌아오면 일에 더 집중할 수 있다'는 흔한 얘기, 내가 온전히 신뢰하며 함께 일했던 사람이 말해주니 그제야 좀 와닿는 것 같았습니다. 꽤 오래 걸렸지만요.
상위 관리자에게 말을 꺼내기 전까지는 망설였지만, 면담하고 일정을 잡고, 업무 대체를 위한 자료를 만드는 일은 물 흐르듯 흘러갔습니다. 제목, 부제목 달아가며 문서를 몇십 장 쓰고, 참고 자료 링크까지 하나하나 달아 강의자료처럼 인수인계를 하고 나니 마음이 좀 놓입니다. 회사에서만 J력이 발휘되는 사람이라 휴직을 일주일 앞둔 지금도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습니다. 벼락치기처럼 예약해 가까운 곳으로 짧은 여행을 가고, 집에서 요리해 먹고, 책 읽고 영화 보고, 그 정도면 됐지 뭐. 샤워하다가도 설거지하다가도 자동 재생 되는 업무 생각을 꺼버리는 것만으로도 이번 쉼의 의미는 충분할 것 같습니다.
일 얘기를 남기려고 만든 이 브런치, 한동안 들여다볼 기운이 없었습니다. 발행했던 몇몇 글은 괜히 부끄러워져서 닫아두기도 했고요. 이번 글만큼은 편하게 쓰고 싶었습니다. 아무것도 쓰지 않으면 쉬지 않은 게 될 것 같아, 보고 느낀 그대로, 10년 만의 여름방학을 남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