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시대가 만든 새로운 업무
요즘 인하우스 브랜드 디자이너 혹은 아트 디렉터 채용공고에 촬영 기획, 현장 디렉팅 업무가 포함되어 있는 걸 심심치 않게 봅니다. 10년 전만 해도 촬영 기획 업무는 광고 대행사 아트 직무나 매거진 에디터의 영역이었던 것 같은데 말이죠. CF 하나 빵 찍고 옥외매체 베리 하는 게 메인이던 시절에서, 많은 소비재들의 주력 마케팅 채널이 SNS와 온사이트로 넘어왔습니다. 더 많이, 더 효율적으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인하우스에 관련 인력이 세팅되는 흐름이겠죠. 사진과 영상이 수급되어야 하는 빈도나 규모에 따라 촬영팀이 내부에 존재하는 회사도 있지만, 디렉터만 내부에 두고 촬영 자체는 외부 파트너와 함께하는 회사들이 아마 더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루한 배경 설명은 여기까지 하고, 회사에서 촬영 기획 담당이 되면 실제로 어떤 일을 하는지 좀 적어보려고 해요. 경험해보지 않으면 가장 상상하기 어려운 업무가 촬영 기획일 아닐까 합니다. 앱 화면은 피그마로 그릴 수 있고, 패키지는 프린트해서 만들어보면 되는데, 촬영 디렉팅 업무는 내가 직접 카메라 들고 찍는 게 아니니까요.
1단계: 스튜디오 찾기 - 인맥, 어쩌면 능력일지도
일단 촬영 주제에 따라 핏한 스튜디오를 찾아야 합니다. 패션, 뷰티, 푸드 등 스튜디오마다 잘 찍는 카테고리가 다르고, 사진&영상이 모두 되는 스튜디오도 있지만 아닌 경우도 많습니다. 담당자가 인맥이 있는 경우 알음알음 소개를 받기도 하는데, 마땅치 않으면 인스타그램에서 스튜디오를 찾습니다. 촬영 감독님만 필요하다면 상대적으로 간단한 촬영이고, 모델, 헤어&메이크업, 스타일리스트(혹은 소품 실장) 등이 다 필요한 촬영일 경우 공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촬영 스튜디오의 감독님께서 다른 스태프들을 연결해 주는 경우도 흔히 있고요. 만약 전임자가 계약해 둔 외주사가 있다면 이 단계는 생략됩니다. 굉장히 압축적으로 설명했는데, 후보를 추리고, 컨택하고, 일정 조율하고, 계약서 체결하는 것까지 업무에 포함이라 꽤 번거롭습니다. 그래서 보통은 원래 하던 파트너와 쭉 가는 경우가 많은 듯해요.
2단계: 촬영 기획서 작성 - 쉽게, 자세하게
스튜디오 서칭과 동시에 이루어지는 게 촬영 기획서 작성입니다. 컨택 메일에 촬영 기획서를 첨부해야 진행이 빠르니까요. (완전히 같은 말은 아니지만 촬영 기획서는 ‘콘티’라고 통용되기도 합니다.) 촬영 컨셉, 톤앤무드, 카메라 앵글과 조명, 총 컷수 등을 자세히 적은 문서입니다. 레퍼런스와 함께 컷별로 설명을 작성하는데, 적당한 레퍼런스가 없으면 합성한 이미지를 넣거나 태블릿으로 그려서 넣기도 합니다. 배치를 설명하는 용도라 잘 그릴 필요는 없고, 생성형 AI 도움을 받기도 해요. 중요한 건 같이 일하시는 분들이 이해할 수 있게 쓰는 겁니다. 멋진 말로 어렵게 설명할 필요 없음!
어떤 레퍼런스를 어디에서 보느냐는 회사 마다도 개인 마다도 너무 달라서 정답은 없습니다만, 평소에 많이 보는 게 좋습니다. 갑자기 닥쳐서 찾으려면 잘 안 찾아져요. 저는 이직을 하면서 업계가 여러 번 바뀐 터라, 식품> 패션> 뷰티 촬영을 경험했는데, 그때마다 인스타그램 계정을 하나씩 새로 파서 관련도가 높은 콘텐츠만 피드에 뜨도록 세팅했습니다. 평소에 저장해 두었다가 촬영 기획할 때 꺼내 보는 편이고요.
또 한 가지 유념할 점, 예산과 상황에 맞는 기획입니다. 예를 들면, 손모델을 쓸 수 없는 예산인데 손이 도드라지는 콘티를 짠다거나, 1시간 안에 무조건 끝내야 하는 촬영인데 스탑모션 콘티를 짠다거나 하면 힘들어지겠죠. (스탑모션 촬영은 제대로 하려면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듭니다. 최소 2시간은 있을 때 시도하는 것 추천) 레퍼런스는 유명 브랜드를 얼마든지 참고할 수는 있지만, 그 퀄리티로 구현하기 어렵다면 세팅을 어떻게 조정할지까지 기획서에 같이 담겨야 합니다.
3단계: 사전 회의 및 소품 준비 - 꼼꼼함이 미래의 나를 구한다
촬영일이 픽스되면 촬영 감독님과 회의를 잡고 구현 가능 여부를 체크합니다. 여기서 없어지는 컷이 생기기도 하고요. (feat. 이렇게는 못 찍어요, 시간 안에 못 해요…) 그리고 스타일리스트나 소품 실장 없이 진행한다면 소품을 디렉팅 담당자가 구해야 합니다. 예산이 별로 없을 때 생기는 상황이죠. 내가 직접 하면 인건비가 줄어드니까요. 소품은 촬영 콘티에 따라 모델이 입는 옷일 수도, 접시일 수도, 배경 천일 수도 있습니다. 신제품 런칭이나 홀리데이 등 힘을 줘야 하는 촬영엔 스태프들이 붙는 편이고, 그 외 자잘한 촬영이라면 소품을 직접 챙길 확률이 높습니다. 물론 이 과정도 의미 있습니다. 소품을 직접 사고 세팅해 보면서 디렉팅을 더 잘 줄 수 있는 안목이 쌓이니까요.
예산이 넉넉해 소품 스탭이 있는 경우엔 촬영장에서 변수에 대응하기 용이합니다. 실장님들께서 얼터 소품을 캐리어에 바리바리 챙겨 오시거든요. 반대로 예산이 찰랑찰랑한 경우엔 소품도 그 수준에 맞게 준비하는 거라 하나를 사도 신중해집니다. 별로면 바로 반품하고 다른 걸 찾을 수 있도록 미리미리 사는 게 좋고, 불안하면 오프라인에서 보는 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까지 제대로 준비했다면 촬영장에서 크게 속 썩을 일은 없습니다. 현장 디렉팅은 촬영된 프리뷰를 보면서 톤을 컨펌하고, 필요한 특정 앵글, 텍스트를 넣어야 해서 비워야 하는 부분 등 디테일한 조정을 요청하는 과정입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사진보다 영상 촬영이 더 오래 걸립니다. 카메라 무빙도 있고, 테이크를 다시 갈 때마다 세팅도 다시 해야 하고, 시간이 배로 늘어나니까요.
모델 디렉팅과 타임테이블 관리
모델이 있는 촬영일 경우 포즈와 표정 디렉팅도 담당자의 몫입니다. 모델도 촬영 기획안을 미리 보고 오지만 그날 촬영의 포인트를 구두로 한번 더 짚어서 설명해 줍니다. 패션 촬영이라면, 오 좋은데요? 리액션은 덤이 아닌 필수. 모델이 얼어 있으면 오케이까지 오래 걸리니 노래를 틀어두기도 해요. 다른 스태프들도 물론 계약된 시간이 있지만(하프 4시간, 풀데이 8시간) 모델은 시간 엄수가 정말 칼이기 때문에 모델이 있는 촬영일수록 타임테이블을 잘 짜두고, 수시로 체크해야 합니다.
밥은 먹고 해야 될 거 아니에요
여담이지만 촬영장에서 커피 시키고, 밥 시키는 일을 하실 수도 있습니다. 턴키 대행사를 끼면 그 대행사에서 알아서 하시겠지만, 턴키 대행사가 없는 경우를 전제하고 쓴 글이라 덧붙입니다. 촬영 스튜디오 주변에 배달 맛집을 출근길에 미리 찾아두면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됩니다. 패션이나 뷰티 촬영은 뒤처리가 용이한 김밥류를 많이들 시키는데, 저는 너무 지겨울 땐 덮밥, 볶음밥류가 같이 있는 곳을 찾습니다. 밥을 중요시하는 실장님이 계신 경우엔 가까운 데 나가서 먹기도 하고요. 푸드 스타일리스트 스튜디오에 가서 촬영하는 경우엔 좀 더 맛있는 걸 먹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네요.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아구찜을 시켜주신 실장님…)
생생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적고 보니 뭔가 너무 딱딱한 것 같아 최근에 했던 촬영을 덧붙여 봅니다. 5가지 모드가 있는 뷰티 디바이스를 다이닝 코스에 빗댄 영상인데요. 테이블보, 접시, 센터피스 식물 등등 하나하나 챙기느라 매일 택배를 깠답니다. 메뉴판도 만들고, 기물 빌리러 한남동(차리다 빌리지)에도 다녀왔고요. 가내 수공업만의 묘미를 오랜만에 느낀 촬영이었습니다.
촬영 디렉팅은 디자인 업무와는 결이 다르지만, 브랜드 이미지를 만드는 중요한 축입니다. 좀 더 넓은 관점에서 브랜딩 업무를 바라보고, 현장에서 컷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목격하고 싶은 분들이라면 재미있게 하실 수 있는 일 아닐까 싶네요. 생성형 AI가 고도화되면서 촬영이 점점 줄고 있다는 소식에 약간 슬퍼집니다. 그래도 여전히 남아 있는 촬영 판에는 수제의 맛이 듬뿍 담기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