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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Nov 10. 2024

일은 성향이 아니라 역량으로 하는 거죠

열 개의 문단으로 전하는 짧은 생각 : 열문단 #.126

01 . 

그 어느 때보다 개인의 퍼스널리티가 주목받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은 쉽게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대중이 아닌 개인의 차원에서 그들의 니즈를 파악하는 것이 회사는 물론 거대 경제에서도 중요한 목표가 되었고, 우리 개개인 역시도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관심도가 아주 높아졌기 때문이죠. 어쩌면 MBTI를 포함한 각종 성향 테스트, 유행하는 캐릭터들을 활용한 스타일과 케미스트리를 알아보는 게임들이 주목받는 것도 어쩌면 이 이유들에 근거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02 . 

예전 ⟪기획자의 독서⟫란 책의 도입부에서 이런 취지의 표현을 쓴 적이 있습니다.

'세상에 기획자라고 불리는 직무가 아주 많지만, 그중에서도 각자의 무기를 들고 있는 기획자가 늘어나면 좋겠다. 그래서 여러 스타일의 기획자가 존재하고, 그들이 만든 기획물이 세상에 더더욱 많아지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 표현을 읽고서 몇몇 분들이 DM을 통해 비슷한 질문을 주셨습니다.

"저는 내향적인 성향인데 마케팅 직무가 잘 어울릴까요? 어떤 무기를 찾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지루한 것을 못 참는 성격인데 한 브랜드를 오래 담당하는 게 좋은 선택일까요?"


03 . 

비교적 친분이 있고, 심지어 함께 일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쉽게 해줄 수 있는 답이 아니니 당연히 구체적인 답변을 드릴 수 없었습니다. 그에 대한 고민과 결정은 오롯이 본인의 몫이라는 사실을 최대한 정중히 알려드렸던 사실이 기억나니까요. 

하지만 동시에 놀랐던 사실 한 가지는 바로 꽤 많은 사람들이 성향과 성격과 역량을 구분 짓지 못하면서 일을 하고 있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자기만의 장점을 갈고닦아 그걸 무기로 만드는 과정에서 이 세 가지를 아주 주관적으로 해석해 활용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죠.


04 . 

업무를 할 때도 자주 강조하는 사실이지만 우선 성격과 성향은 명확히 구분되는 개념입니다. 성격은 '현재의 나'로 대표되는 특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를 계량화(?) 할 수 있다면 병원에서 진단을 받는 것처럼 지금 곧장 나에게서 추출해낼 수 있는 특성이 바로 성격인 것이죠. 반대로 성향은 단어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방향'의 목적이 추가된 개념입니다. 즉, 내가 갖고 있는 성격을 기반으로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 꽤 상당 부분 차지하고 있는 미래지향적 특성인 거죠. 그래서 한 줄로 정리하자면 성격은 지금의 나, 성향은 앞으로 나아가는 나라고 해도 큰 무리가 없습니다.


05 . 

그런데 간혹 이 두 가지만을 거론하면서 '저는 ~ 이런이런 성격이라 그 업무는 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라든가 '제 성향과는 맞지 않는 업무인 것 같아서 고민이 됩니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자주 봅니다. 물론 본인이 가진 특성이 직무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것은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냉정하게 따지고 보면 업무는 성격과 성향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에겐 마지막 남아있는 개념, 바로 '역량'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죠. 


06 . 

그동안 적지 않은 시간을 일해오면서 사람들의 선입견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유능한 인재들을 꽤 많이 목격했습니다. 분명 저 필드에서 일하려면 꽤나 터프하고 강직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침착하고 (어찌 보면 내성적인, 하지만) 꼼꼼한 성격의 사람이 훨씬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경우도 봤고, 아주 감성적이고 창의적이어야 하는 분야일 것 같음에도 지극히 이성적이고 데이터베이스의 사고를 하는 사람이 희대의 걸작을 만들어내는 사례도 있었으니 말이죠. 사람을 겉으로만, 아니 겉과 속을 나름 알고 있다고 해도 함부로 평가 내리면 안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었죠. 


07 . 

그리고 이 사람들을 지켜보다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들은 늘 '성향은 성향이고, 역량은 역량이다'라는 인식이 매우 분명한 사람들이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나는 A의 성향임이 분명하지만 이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B라는 역량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는 인재들이었고, A로 인해 B가 잘 발휘되지 않을 거라는 무리한 가설을 세우지 않는 타입들이었습니다. 무엇보다 A가 필요한 자리에 B를, B가 필요한 자리에 A를 거론하지 않는 메타인지를 갖추고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었고요. 


08 . 

이건 '성격과 성향은 서로 영향을 줄 수 있을지 몰라도, 이를 역량으로까지 연결 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해당 업무에 대한 경험이 적어서 이 일을 잘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됩니다'는 설득력이 있지만, '제 성격이 소심해서 이 일에 맞을지 모르겠어요'는 상당히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얘기인 거죠. 

반대로 리더의 입장에서도 역량이 아닌 성격과 성향을 기준으로 업무를 배분하는 것은 적지 않은 리스크를 동반합니다. 개인의 특성이라는 게 참고 요소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역량에 앞선 우선 요소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니 말이죠. 


09 . 

우스갯소리가 조금 섞이긴 했지만 가끔 누군가의 질문에 '일이니까요'라고 대답할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람 앞에 나서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성격이라고 했는데 발표할 때는 왜 하나도 안 떠세요?'라든가 '외향적인 사람들을 만나면 종종 기가 빨린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먼저 제안하고 태핑하고 하는 것에 스트레스받지 않는 거죠?'라는 질문이죠. 그렇다고 제가 그 순간 스스로에게 엄청난 최면을 거는 것도 아닌 라는 걸 돌이켜보면 결국 답은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역량의 범위이니, 일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과정이다'가 맞는 것 같아요. 성격과 성향을 들먹이면서 할 수 있는 일조차 밀어내고, 발전해야 할 부분조차 외면시 하는 것은 성장 욕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10 . 

개인의 특성이 주목받는 시대를 넘어 초개인화에 접근하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나라는 개인에 가장 집중해야 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입니다. 그리고 나 자신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나(성격)와 앞으로의 나(성향)를 규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내 손에 들려있는 것과 비교적 쉽고 빠르게 체득할 수 있는 것, 남들보다 더 경쟁적으로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것(역량)들과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도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쌀로 밥을 짓는다는 사실만큼 당연한 것이 '일은 역량으로 한다'는 사실일 테니 말이죠. 

그러니 누군가 일로서 여러분을 파악하려 하는 시도를 한다면 그때는 여러분 스스로 먼저 질문을 던져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나의 성격과 성향은 나의 역량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나'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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