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대상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됩니다. 보기 좋은 것을 찍다 보면 문득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데요. 미란 무엇이며 어떤 작용에 의해 아름다움을 판단하는지 고민하게 되죠. 미는 추의 개념으로 인해 아름다움을 부여받습니다. 추가 없다면 미적 판단을 할 수 없죠. 하지만 사진에서 추함을 목적이나 목표로 하는 경우는 드물고 오히려 기피합니다. 추함은 미의 완전성을 불완전하게 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반대죠. 추로 인해 미는 완전해지고 아름다움이 완성됩니다. 미와 추는 서로 떨어질 수 없으며 표현의 완전을 위해 각자의 개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조요한 선생님의 <예술철학> 구절입니다.
아름다움의 부정인 추함이 어떤 것에 생기를 주는 표현적 서술일 때가 있다. 추함이 아름다움의 배경 또는 둘레가 될 뿐 아니라 직접 미적 존재의 조건이 되기도 한다. … 로젠크란츠는 <추의 미학 (1853)>에서 “잎사귀는 꽃에 비해 불완전하고, 꽃은 열매에 비하면 불완전하다. 그러나 그것은 식물학적으로 또는 경제학적으로 하는 표현이다. 미학적 입장에서는 오히려 그것이 완전한 경우가 있다”고 기술했다. 그의 의하면 예술이 이념의 현상을 총체적으로 표현하는 데는 긍정적인 미와 부정적인 추가 서로 얽혀 있다. 추는 미적 인상에 활기를 주고 전체의 생명감을 높여주는 자극제가 된다. p45
아름다움이 주는 감정의 한계를 추함을 통해 확장되며 복합적 감정이 나타납니다. 추는 미의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 필수이며 추의 표현을 통해 미의 감각이 다시 인식되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