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릿」의 끌어당김
갑자기 찾아간 교수동에 교수님이 계시고, 느닷없이 전화드렸는데 연락이 닿고, 그 해는 아마 「시크릿」이란 책처럼 제게 끌어당김이 일어났을까요?
2004년경 제 나이 스물여덟에 새로운 출발을 하겠다며 잘 다니던 직장을 과감히 그만두고 학사편입으로 사대를 가려고 준비했던 때였어요. 칠 개월을 "김영 편입"학원을 다니며 영어만 열심히 했죠. 퇴직금과 응원차 회장님이 주신 지원금을 합쳐 400만 원으로 내 인생을 걸겠다며, 인생 최초로 자유로운 선택을 한 듯 희열을 느끼면서 즐겁게 공부했습니다.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면 좌절에 또 빠졌겠지만 다행히 보결이라도 사대가 아닌 일반과인 영문학과에 합격했어요. 정말 신기한 것은 배점이 높은 문제에 시험 보기 전에 봤던 기출문제가 거의 그대로 나왔어요. 그것 때문에 합격했을까요? 이미 합격했던 사람들이 더 등급이 좋은 다른 학교로 옮겨서 저한테 까지 오는 영광을 받았던 것 같아요. 지금에 비하면 그렇게 높은 경쟁률은 아니었지만, 3.5대 1 정도의 경쟁에 3명 정도 뽑았던 대학이었어요. 마음 같아선 정말 다니고 싶었지만 사실 지방에서 서울생활뿐 아니라 학업도 따라갈 수 있을지 너무 무서웠어요. 엄마는 열심히 했으니 한 학기라도 경험 삼아 다녀보라고 했지만 여러 사정으로 인해 두려움이 컸기 때문에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 계속해서 꿈을 꿨어요, 수능 시험 보는 꿈이요. 정말 이상하게도 41살이 되어 다시 대학원을 들어간 후로는 그 꿈을 꾸지 않았습니다. 내 안에 뭔가 자꾸 깊이 채우고 싶은 배움의 열망이 있는지 영문과와 철학과로 전혀 다른 데도 대학원 진학 후에는 수능을 보는 꿈이 중단 됐습니다.
새로운 드높은 꿈을 완전히 새롭게 꾼다는 것이 어렵다는 걸 예전에 「시크릿」을 볼 때도 느꼈지만, 대학원에 다시 진학했을 때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교수님은 이왕에 하는 것 박사까지 해보자, 지금은 석사는 의미가 없다면서 네가 취미로 할 거면, 아무 때나 와도 되지만 직업으로 가질 생각이면 나이가 중요하다고 애정 어린 조언과 두 가지 길을 안내해 주셨죠. 저는 임신 중 서른여섯에 느닷없이 번개처럼 교수님을 뵈어 그 후에, 육 개월에 한 번, 일 년에 한 번씩 안부를 드리면서 고민이 많은 저에게 교수님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셨고, 그동안 틈틈이 읽었으나 혼자 하는 것보다 지도를 받아 더 깊은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진 때 다시 찾아뵙게되었어요. 찾아간 것은 저지만 목적은 치유를 위한 수단으로 철학을 선택했고, 서울로 갈 수 없어 거주하는 이 곳으로 다시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씀드렸더니, 교수님은 학위를 따는 것은 어떠냐고 제안하시게 됐죠. 학위는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고 자신도 없었습니다. 그냥 막연하게 공부만 할 생각이었죠. 그러나 일단 상담소 두 곳을 다니고 출산직후 1년 간 육아서 백 권을 봤을 때 제 삶이 크게 바뀐 것이 없다고 그꼈기에 반드시 깊은 재학습이 필요했고 세심한 지도를 받고 싶은 마음도 커서 도전하겠습니다라고 선언하며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몰랐으나 진학하면서 온전히 독립해야 함을 늘 무언으로 말씀하셨죠. 하지만 저는 제 과거에 쌓인 채로 한 치 앞으로도 갈 수가 없었습니다. 최초의 목적이 쉽게 바뀌지 않았어요. 꿈을 크게 가지라고 하는 말이 있지만 당시 제게 가장 중요한 일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일이었으니까요. 공부를 깊게 하면 할수록 이상하게 제 트라우마가 건드려 졌습니다. 저는 알지 못했지만 친언니와 고민을 많이 얘기하면서 니체의 책을 읽는 동안 전체적인 흐름을 자꾸 놓치면서 트리거가 작동하면 저는 저의 내면으로 빨려 들어가 버리는 일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저의 외면을 보니 쉽게 느끼지 못했더라도 대학원 후배들하고 얘기할 때 그들은 저를 상당히 의아하고 이상하게 생각했을 거라 느낍니다. 참 제어할 수 없는 무엇이었죠. 감정이 소용돌이쳐 완전히 저를 감싸 외부와 내부가 뒤섞인 그런 건데 이런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책「데미안」처럼 두 세계의 분열을 느꼈고 알에서 깨어 나와야 했습니다. 저는 이전에 대학원 입학 전 우연히 대학내 벽보를 통해 시민들을 상대로 하는 대학의 열린 강의를 청강하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서 플라톤,「국가론」의 참된 세계, 이데아를 찾아 동굴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는 부분을 듣게 됐습니다. 그리고 나의 치유 말고 또 다른 명확한 꿈이 기억났습니다. 화목한 가정, 함께 웃고 떠드는 형제들과 함께 엄마 아빠와 함께 행복한 가정의 이데아를 만들고 싶다는 꿈 말입니다.
플라톤의 「국가론」, 진리를 찾는 과정을 동굴의 비유를 통해 나아갈 길
플라톤의 「국가론」은 진리를 찾는 과정을 동굴의 비유를 들어 표현한다. 태어날 때부터 동굴 속에 갇혀 사는 죄수들이 있다. 그들은 낮은 담장에 등을 대고 족쇄와 쇠사슬에 손, 발, 목이 결박되어 움직이질 못한다. 낮은 담장밑에 앉아 한쪽 방향만 볼 수 있도록 묶인 머리를 겨우 숙여야만 담장 너머의 횃불에 비추이는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바라보며 사는 죄수들처럼, 나는 부모가 비춰주는 세계에 결박되어 있었음을 알아갔다. 성장이 멈춘 성인아이에게는 부모가 세상이었다. 인식했든 인식하지 못했든 그러한 삶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느꼈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 다시 형제들을 끌고 나오고 싶었다. 그것이 간절한 소망이었기 때문이다. 왜곡되어 있던 퍼즐들이 낱낱이 흩어지다가 모두 제자리를 찾아가면서 방어되는 자갈의 고통들을 또한 느껴야 했다.
_이 글은 예전에 제가 깊은 트라우마에서 작은 발돋움을 하며 깨달은 후 「사랑의 빛은 내 안에」라는 글의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가족들은 이미 우리 부모님의 체제를 특별한 반박 없이 성장하였기에 저의 트라우마를 건드는 부분이 형제들이 부모와 많이 닮아 있었고 그 퇴색된 선글라스를 낀 안목으로 다시 우리 딸, 그들의 조카를 같은 우리 부모님이 나를 봤던 바로 그 시선으로 내 아이도 그렇게 보고 있다는 것에 저는 다시 또 지옥을 맛보고 있었습니다. 그 삶이 반복되는 거였어요. 만일 내가 스물여덟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 서울권으로 이사 가는 회사를 따라갔더라면, 만일 내가 엄마의 한 학기의 지원을 받고 서울 생활을 육 개월이라도 했었더라면, 완전히 다른 삶을 살지 않았을까? 이런 반복적은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런 이상한 나르 남편도 만날 일이 없었을 텐데라는 회한이 너무도 심했기에, 정면으로 돌파해야 했습니다. 그래 계몽하자. 내가 「배려 깊은 사랑이 행복한 영재를 만든다」 를 보지 않았더라면 새로운 사고가 없었듯이 그들은 새로운 사고를 접한 일이 없기 때문에 잘못된 부모의 시선을 그대로 복사한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전 제 치유의 과정을 통해 동시에 가족들을 계몽하기로 결심하고 대학원에 갔습니다. 모두들 같은 지역에 살고 또 결혼 전부터 또 함께 인터넷 사업도 했기 때문에 늘 보는 사이여서 트라우마도 자주 올라왔지만 계몽할 기회도 자주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12년을 개혁운동을 하였습니다. 그들의 멈춰버린 관점에서 생각하는 머리로 회전시키기에 너무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계몽운동이 확실히 10년을 넘는 때부터 변화가 있기 시작했습니다. 정신의 세계는 물질과 함께 움직인다는 거부할 수 없는 사실까지요.
20대에 처음 대학을 들어가서 들었던 플라톤의 이데아는 저의 억압된 숨통을 터주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선배들과의 멘토, 멘티 대화해서 빛을 보는 것 같아 멈출 수 없는 울음이 터져 너무도 무안했죠. 그때 이후로 저는 이데아가 있을 거라는 강한 믿음으로 쭉 살았어요. 그래서 그런지 점점 물질과 멀어지고 있는 저는 스스로는 불편함이 크게 없었지만 부모님의 평가는 점점 나빠졌고 누구에게도 인정을 못 받는 상황으로 추락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어떤 일에 깊이 몰입하지 못하는지 노력하는 것만큼 성과가 크질 않아 답답했죠. 하지만 가족들을 계몽하는 운동은 너무도 즐거웠습니다. 저의 모토는 대물림을 끊자. 계몽하자였고 두 명의 형제들이 제 말에 귀 기울여줬습니다. 이후엔 큰 언니도 마저 합류했구요. 어느 정도까지는 함께 같지만 이후는 선택과 자율에 의해 더 으싸으싸 할 수가 없었어요. 깊이 생각한다는 것은 강요할 수가 없고 함께 해야 할 도덕성이란 것은 물질적 삶과 너무도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더 빨리 정신을 차려서 교수님의 말씀대로 학위를 땄으면 더 파워풀하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을 텐데요. 왜 역량이 부쩍 늘지 않을까요.
니체는 현재에 몰두하는 노동에 대해 긍정적인 설명을 합니다. 노동이야말로 현재를 살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말합니다. 동물은 지금 현재에 몰두한다. 인간은 고통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하며 괴로워한다. 하지만 몸을 쓰고 지금 하는 일에 몰두할 때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니체의 이데아는 지금 여기에 있을 때 고통에서 벗어나 건강한 삶을 사는 자기가 되는 것을 말한다고 느꼈습니다. 아직 과거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해 한템포씩 느린 나.
계속 밀고 나아가!!
KEEP IT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