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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as Jun 27. 2023

남편이 어제 차를 팔았다

SM3 안녕

황토색 베르나


26세에 운전면허증을 따고 33임신 중에 차를 처음 몰았다. 아이를 낳고 한 번도 아이를 데려가지 않는 나르남편 덕에 운전을 할 수 있었다. 처음엔 황토색, 금색인가 베르나를 250만 원을 주고 경매로 동생이 사다 줬다. 난 마냥 좋았다. 동생은 왠지 미안했는지 괜찮냐고 자꾸 물었다. 뭐가 괜찮냐는 건지 난 마냥 좋은데. 남편은 의외로 시운전 때 절대 화를 내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날 친절한 이유는 시켜 먹기 위해서다라는 그의 마음을 듣게 됐다. 직장 내에서 신입사원에게 매뉴얼을 빠르게 알려주며 친절한 이유는 부려먹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운전은 아주 친절하게 2주가량 매주 주말에 공터 예식장 주차장을 이용해서 알려주고 결혼하자마자 바로 낳은 아이는 내가 밤 11시에 귀가해도 그는 한 번도 데려간 적이 없다. 내가 어떻게 그렇게 밤늦게까지 운전을 잘하고 다녔는지 신기하다. 집에 귀가하는 시간은 늘 한가했다. 그래서 어둡지만 다른 차와 부딪힐 위험도 적었다. 어느 날은 눈이 수북이 쌓였는데도 난 열심히 차를 운전했다. 마침 신혼집 아파트에 동생도 살고 있어서 바퀴에 체인도 직접 달아주는 수고를 남편대신해 줬다. 남편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동생 내외가 우리 아파트 앞에 있었기에 든든했을까? 비가 오는 날은 밤늦게 주차하는 날 사이드미러가 잘 보이지 않아 창을 내리고 진땀을 빼는데 지나가시는 아저씨가 도와주셨다. 그렇게 신혼은 갔다. 베르나는 속도를 높이면 바닥이 덜컹거리는 소리가 많이 났다. 아이를 태우고 다니기에 불안하고 어느 날은 에어컨 쪽 라디에이터? 에서 흰 연기가 났다.


아반떼 XD


그래서 동생이 이번엔 아반떼를 190에 사다 줬다. 은회색이었다. 이때 알게 됐다. 황토색이 참 아니란 것을... 처음에도 그랬지만 두 번째 차도 20만이 넘은 차를 샀다. 차가 어찌 됐든 내 돈으로 산 차는 다 뿌듯했다. 첫 차를 2년 정도 타고 아반떼를 타고 다닐 때 신호체계에 익숙지 않아서 2차선 좌회전 줄에서 직진하다가 3차선에서 좌회전으로 들어오는 차와 부딪혔다. 나와 부딪힌 차는 렉서스였다. 차 수리비로 180이 들었다고 했다. 위로금이라나. 남편은 어떠한 조언도 해주질 않아서 늘 동생하고 상의했다. 내가 든 보험이 보장이 낮아서 10만 원의 보장을 받고 그렇게 마무리됐다. 아반떼를 타고 난  교통사고를 2번 냈다. 마지막 사고는 사실 어이없지만 이사하는 날 싱크대에 비치된 수저를 모두 안 가지고 온 것을 알게 됐다. 밤 8시가 됐을까? 그날은 6.25일이었다. 왜 내가 그날 이사를 했을까? 다른 가족들이 모두 축하하러 왔는데. 난 새 아파트에서 헌 집으로 이사한다는 것이 내심 아쉬웠는지 기어코 그날 수저들을 찾아야 했다. 그날은 추적추적 이슬비보다 조금 굵은 비가 내려 바닥이 젖어있는 상태였다. 3년을 운전했지만 여전히 운전이 서툴었던 내가 동생이 어디쯤이냐는 전화에 당황한 나머지 길을 잘못 들어섰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밤이 어둑하고 비도 조금씩 내려서 보이지 않은데 길을 잘못 들어서는 바람에 순간 나는 차를 잠깐 멈춰 세웠다가 옆으로 좌회전하면 되겠구나 생각했다. 지금생각하면 미친 짓인데. 그땐 차도 사람처럼 맘대로 움직여지는 체계인지 순간 착각했다. 머리에 순간 쇼크가 왔나? 나중에 보니 옆에 길이 없는 고가로 가는 입구였다. 차가 움직이는 것과 사람이 움직이는 것은 다른 체계란 것을 그땐 순간 인지부조화 상태가 됐다. 당황하자 판단에 혼선이 생긴것같다. 이때 사고는 택시와 부딪혀 처음으로 병원신세를 졌다. 왜 내 기억 속에 남편이 없지? 난 교통사고건으로 보험처리 때문에 5일 정도 입원을 했다. 보험을 받으려면 5일 이상 있어야 하지만 난 최소한의 보험처리를 받고 집에 빨리 가고 싶었다. 상대방 보험사에서 내가 빨리 퇴원한 것에 의아해했던 것이 그땐 이상했다.

아 이때 남편은 타지에 있어서 남편 없이 이사를 언니 내외와 같이 한 날이었다. 내가 사고를 당했는데도 남편은 2시간 걸리는 길을 굳이 가야 하냐고 핑계를 대자 형부의 3번의 설득에 귀찮아하듯 왔던 기억이 있다. 그는 보험처리는 했어? 택시랑 부딪혔다고? 20만 원은 받아야지 너는 뭐 하냐? 라며 돈얘기만 해대서  울컥 눈물이 쏟아졌던 기억이 있다. 언니 말에 의하면, 그때 형부가 처제 저렇게 두고 가면 안 되겠다며 다시 전화해서 꼭 오라고 하라고 애써주셨다고 했다.  앞으로 내가 사야 할 세 번째 차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일로 내 뒤통수는 크게 부어서 부기가 낫기까지는 2-3달은 간 것 같다. 그때 사고에 대한 충격은 오랫동안 지속됐다 다시는 운전하고 싶지가 않았다. 다행히 몸은 크게 다친 것이 없었지만 내가 큰 실수를 했다는 죄책감이 가장 컸고 사고 그 자체가 충격적으로 싫었다. 그리고 병원에 온 3살인 둘째 딸은 "엄마 죽지 마."를 그 이후로도 3년을 말했다. 그 서른일곱 살 즈음에 이제 절대 운전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뉴세라토


그리고 마흔한 살이 돼 대학원을 간 후로 중간에 이사를 갔다. 아이들 다니던 학원과  멀어져서 1년간을 1시간씩 이동시간을 들여 버스를 타고 다녔다. 초등 5학년 딸과 초등 2학년 딸을 달래가면서 다니는 일이 힘겹지만 나는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둘째 애는 늘 버스 안에서 잠을 잤다. 그렇게 우리 셋은 지쳐갔지만 칼퇴인 남편은 한 번도 아이들은 데려가질 않았다. 그는 "잘됐다 인자 피아노랑 영어도 자연스레 끊기겠고만." 하면서 독백을 해 댔었다. 그리고 그가 나 없는 동안은 늘 아이에게 인생을 멀리 보면 피아노가 그렇게 필요하지 않다면서 너희 엄마는 잘못 가르치고 있는 거야. 힘들지? 다니기 싫지? 하면서 2-3년을 아이를 흔들어댔다. 난 그 꼼수짓에 방어하는 에 정신이 없었다. 첫째 아이는 왜 학원을 다녀야 하냐며 2년을 울며 다녔다. 둘째 아이는 1년간 울더니 내 얘기를 좀 더 들어준 것 같아 다행히 그 풍파를 잘 지나갔다.

시간이 금쪽같이 느껴졌다. 수업을 정신없이 듣고 집에 가는 시간, 이동 시간들조차도 점점 힘겹고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마침 큰언니가 차를 바꾼다면서 2007년 산 세라토를 100만 원에 가져가라고 말해보라고 했다. 그리고 언니는 30만 원은 생활하는데 쓰라고 내게 돌려줬다. 그동안 난 20만 킬로 차량들을 중고로 두 번을 몰았기 때문에 10만 조금 넘은 이 차는 성능이 매우 좋았다. 신나게 몰고 다녔다.


"SM3는 내 장난감"


 남편은 쓸데없이 집 앞으로 학원을 안 보내고 멀리 보낸다며 늘 나를 구박했는데, 마침 세라토의 릴레이가 고장 나는 바람에 그는 차라리 버리고 새로 사자면서 이사 가기 위해 미리 대출받아놓은 돈을 쓰겠다며, SM3를 660만 원에 주고 중고차 시장에서 샀다.  그는 자기 과시단어로  장난감이란 말을 자주 사용한다. 최고로 좋은 차를 샀다면서 SM은 자기 장난감이라고 했다. 같은 말을 너무 자주 반복적으로 하기 때문에 매우 지겹다. 말 같지도 않아서. 그는 아침과 저녁을 집에서 먹지 않은 바람에 그와 마트에 가지 않는 세월이 10년이 넘게 됐다. 그만큼 생활비라는 개념도 없다. 그래서 100만 원에 몰 수 있는 차를 버리고 500을 더 투자해서 다른 차로 바꾼다는 것이 난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그 돈이면 기아나 현대를 차라리 사는 게 낫고 기아나 현대를 살 거면 그냥 세라토를 모는 것이 낫다고 여러 번 말했음에도 그는 기어코 자기가 원하는 차를 샀다. 그 차는 벨런스가 맞지 않은 지 운전할 땐 쿨렁거리고 뒤뚱거림도 느껴지고 가장 심한 것은 묵은 냄새가 너무 심했으며 심지어 가스가 들어오는 듯한 느낌의 매쾌한 냄새가 났다. 하지만 그는 냄새가 안 난다며 기어코 그 차를 구매했다. 그리고 그 후로도 수리를 해야 한다며 구매처를 2번을 더 가게 했다. 나는 그 모든 과정이 찜찜하고 답답하고 힘겨웠다. 이미 보이는 현상들을 무시하며 진행하는 그가 도대체 이해가 가질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그 차는 바로 배기가스점검이라는 센서등이 켜지고 이후에는 기름이 한 칸 정도 남을 때는 또 점검 센서등이 졌다. 센서를 고치는데 10만 원이 넘어서 고치질 않았다. 차내 클리닝을 15만 원을 주고 했지만 냄새는 여전했다. 바퀴 2개는 중국산으로, 뒷바퀴 2개는 중고로 바꿨다. 몇 달이 지나자 오른쪽 깜빡이가 미친 듯이 깜빡거렸다. 또 최근에는 왼쪽 깜빡이가 미친 듯이 깜빡거렸다. SM3는 처음 뒤뚱거리고 냄새가 심해서 구매처에 2번 정도 수리를 요청했고 그 후로는 센서문제 등 고질병이 있었지만 난 이동용으로 굴러가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나름 만족했다. 남편의 발작만 없다면. 남편은 아반떼나 K3보다 훨씬 좋다며 억지를 부리면서 기어코 SM3을 사더니 일명 깡통차를 개조하겠다며  기존 내비게이션을 차체에 매립하더니, 이번에는 브레이크등을 고장 냈다. 주말에는 오전부터 새벽 1시까지 유튜브를 보면서 해결하겠다며 2-3일을 그 일만 해댔다. 그는 엔진 미미도 혼자 고치겠다고 부품 10여만 원어치를 사서 미친 사람처럼 일을 벌였다. 660에 산 차는 700이 됐다. 차취득세 등까지 하면 750은 들었을까? 나는 그의 태도가 몹시 맘에 들지 않는다. 자기 취미라나, 취미를 밥도 안 먹고 미친 사람처럼 집착을 가지고 하는 것을 보면 안쓰럽지도 않다. 100만 원에 탈 수 있는 차를 버리고 거의 750이 다 된 차를 그는 어제 처분했다. 1년 만에 500만 원대에 팔았다고 했다. 그리고 골프 6세대를 산다고 했다. 답답하다. 누굴 위한 소비냐고 하면 오로지 자기 취미를 위한 소비라고 했다. 오래된 차를 사야 고치는 재미가 있다나. 외식도 안 하고 여행도 안 다니고 아이들 학원도 그만 다니라고 방해 치는 이유가 오로지 자기 취미생활을 위해서?? 할 말이 없다.


SM3 이전에 산 차들은 내가 일하면서 샀던 차들이다. 세라토부터는 남편이 샀기 때문에 그는 통보 없이 처리한다. 이사도 그렇게 했다. 부부가 의사가 합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강압적으로 진행하면 지옥이 된다. 그리고 그의 일방적이고 강박적 증상들로, 그가 가족의 의사를 무시하면서 진행하는 것에 자신은 승리감을 맛보는 행태가 사실은 우리 가정의 삶의 질을 자꾸 떨어뜨린다는 것을 그는 모르는것 같다. 난 너무 불편하고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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