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가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도.
2020년의 개인들의 관심은 누가 뭐래도 ‘돈’과 ‘경제적 자유’였다. 판데믹으로 심화된 불안정과 불확실함의 시대에 가치 저장수단이자 표시수단인 돈은 어쩌면 유일하게 확실한 것이었다. 작년엔 유사 이래 가장 많은 개인들이 주식시장에 돈을 넣었다.
당연하게도 사람들이 말하는 ‘돈'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노동/투자/사업 소득 극대화를 이뤄낼 것인가이다. 경제적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저마다 그 방법을 찾으려 고군분투 중이며, 이제 ‘파이프라인’ 비유를 모르는 직장인을 찾기가 어렵다.
이러한 시대였던, 2020년 연말 주목할만한 책이 세상에 나왔다. 이 책은 돈에 대한 관점, 에세이 장르에 관한 새로운 지평을 제시했다. <가난의 문법>은 사회학의 눈으로 관찰한 (특히 여성)노년의 가난을 자신의 주관은 마치 에세이처럼, 관찰 대상인 노년의 삶은 리얼리즘 소설처럼 풀어내고 있다.
‘돈이 없는 노년’들은 그들의 잘못이나 의지로 가난해진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가난’이 굶어죽고 얼어죽는 것이라면, 책이 담담히 말하는 가난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다가올 수 있는 미래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고, 계속 노동해야하는 노년의 삶. 움직이지 않으면 숨을 쉴 수 없고 떠오를 수 없는 부레없는 원시 어류같은 삶. 돈이 모자란 ‘경제적 부자유’는 어쩌면 꽤나 많은 이들에게 예정된지도 모른다. 당연하게도 경제적 자유는 모두에게 찾아올 수 없는 탓에.
우리가 경제적 자유를 얻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돈이 부재한 모습, 그러니까 가난은 어떤 모습인지, 그것이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었는지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사업과 투자를 해보면 많은 경우 ‘시드가 더 많아야 했구나’하는 자조로 이어진다. 결국 돈은 나와 내가 선 토대에 대해 자각하게 한다. 이런 고민을 하는 나에게 <가난의 문법>은 다른 시대에 태어나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들과 ‘토대’들에 대한 책이었다. 또한 사회통계를 활용해 문제인식을 강하게 드러냈던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그랬듯,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외면하던 것을 직시하게 하는 탁월한 책이었다.
대단히 추천한다.
<가난의 문법>에는 가난하지만 평범한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 그리고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이 있었다.